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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이야기를 참 아름답게도 썼다. 맑기만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는데 글쓴이인 이스마엘 배아는 나보다 두 살을 더 먹었다. 책을 읽으며 어떤 눈빛을 가진 사람일까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 그를 찾아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는 온통 피범벅인 종잇장을 견디고 견뎌야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개머리판이 뭔지는 이때 확실히 알았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고, 이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하며 애써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개머리판에 맞고 총칼에 찔리는 버마의 민중들이 보였다. 1980년이 아니라 2007년이었다. 하기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총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싸우는 것도 오늘 일이고 이라크 전쟁도 어제 일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가 겪은 80년 광주의 '오늘'은 우리 세대에 와서도 아직 저물지 않고 있다. 이스마엘 배아는 이것을 깨우쳐 주었다. 또 하나의 어제같은 오늘이 이 책에서 펼쳐진다. 시에라리온의 소년병 출신인 이스마엘 배아가 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이땅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현실이 편하든 불편하든, 익숙하든 그렇지 않든, 떠올리는 그것이 우리가 발붙인 좁은 땅을 벗어나 온세상을 둘러보고 얻은 마음인지를 묻는다. 오늘의 삶이 편하고 익숙하다면, 그 익숙한 오늘은 누구의 것이냐고,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고 그는 묻고 있다. "이런 꼴을 보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147쪽) 이스마엘은 어떤 것에도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전쟁에, 불신과 분노에, 욕심이 가장하는 어떤 모양의 편안함에도. 실제로 나는, 어제로 기억하는 일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오늘의 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는 내내 힘주어 기억해야만 했다.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아주 자주, 소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은밀히 둘러쳐진 수많은 금과 벽을 드러내고 그것이 구석구석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를 보게 한다.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시간의 경계,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현실공간의 경계가 어디에 어떤 식으로 그어져 있는지를 들추어내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이 아직도 온세상에 널려 있는 오늘, 만약 우리가 살만하다 여기고 있다면, 대체 우리의 영혼은 어떤 금 안에서 이 거짓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볼 것을 보지 않고 들을 것을 듣지 않고, 함께 사람답게 사는 일을 기억하는 것을 게을리 하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일 뿐은 아닐까? 금 밖의 시공간엔 아직도 수많은 이스마엘이 있었다. 바로 '오늘' 말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왔다고 생각하는 순간의 우리 영혼이 혹시 '이쪽'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한다. 욕심으로 그은 그 수많은 금들을 넘어 저쪽으로 가지 못한다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제라고 믿고 싶은 아픔을 오늘 '계속'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광주에서 총성이 그쳤다고 총포소리 가득한 이땅의 울음이 다 그친 것은 아니었다. 버마의 민중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오늘, 이스마엘의 고향인 시에라리온의 오늘, 그리고 우리의 오늘 사이에 금 같은 건 그어져있지 않다. 시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하면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다. 씁쓸하다. 이스마엘은 살았지만 여전히 이 땅의 오늘은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씁쓸함이든, 달콤함이든 이스마엘 배아의 이야기는 들어야만 한다. 듣고, 현재형으로 알고 현재형으로 기억해야만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편한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진짜 도피다." 반대는 어떠한가. 불편한 것을 편하게 누리는 것 말이다. 마찬가지로 도피일 것이다. 이스마엘 배아는 기적처럼 살아서 불편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의 이야기에 우리가 또 잠시 불편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쓸모가 있다. 이야기는 살아서, 자기의 욕심으로 도망가는 우리의 길을 지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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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로 접어든 지금, 분단국가에 태어나 '휴전'중인 지금의 상태에서도 전쟁은 내전이 빈번한 저 멀리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의 일로만 치부하며 안일한 삶을 살고있다. 아마 주변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거라 생각한다. 간혹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상황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도 평화롭고 살기좋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내 '복'을 다행이라 여겨본적이 없다. 최근에 접했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아프리카의 기아와 내전에 대해 알게됐고, 오늘읽은 <집으로 가는길>은 그중 내전에 촛점이 맞추어진 책이었다.
평화로운 시에라리온의 한 마을, 이스마엘은 힙합을 좋아하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장기자랑에 참가하기위해 먼길을 가던중 갑작스럽게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책은 크게 3파트를 가지는데, 평화스러운 시에라리온과 전쟁이 발발하여 피난길에 오르는 부분이 그 첫번째라고 할 수 있다. 몇몇의 친구와 함께 반란군을 피해 도주를 해야만 하는 상황들, 마을이 불타고 반란군들에게 살해당한 정부군들과 민간인들의 시체, 한명씩 쓰러져가는 친구들, 오로지 살기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만 하는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버려진 상한 음식 단지가 눈에 띄었다. 시체와 가구며 옷가지 등 온갖 가재도구들이 사방에 마구 널려 있었다. 어느 베란다에 잠자는 듯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의 이마에는 총알구멍이 뚫려 있었고, 현관 아래에는 마셰티로 성기와 사지를 다 잘라낸 두 남자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 옆에는 그들에게서 잘린 신체 부위가 쌓여있었다"
두번째 파트는 이스마엘이 살기위해 정부군마을에 당도해 군인으로 착출당하는 부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에게 주어진 ak47소총, 코카인과 마리화나를 피워가며 마약에 의지해 살인기계로 변해가는 소년들을 그린다. 반란군들에 비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군인들의 눈조차 쳐다보지 못하던 겁많은 소년은 어느샌가 사지를 토막내고 람보처럼 반란군을 토벌하는 살인기계가 되있었다. 성인군인이 절대적으로 모자르는 상황에 이처럼 10대 소년들조차 전쟁에 동원되어 피도 눈물도 없는 마약에 절여진 군인으로 탈바꿈 되어졌다. "나는 그들의 발에 총을 쏘고 온종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 다음 머리에 총을 쏘아 영원히 입을 다물게 했다. 한 명씩 쏠때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 포로의 눈빛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평온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음산한 눈빛이 짜증을 돋구었다"
세번째 파트는 유니세프소속의 사람들에게 넘겨져 재활훈련을 하게되는 장면이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진 어린 소년들이 재활원에서 고통스럽게 재활훈련에 임하는 장면들이 마음을 아프게했다. 마약을 하지못해 폭력적이고 무기력해지는 모습들, 총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겁을주고 권력을 가졌던 군인시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들에서 전쟁의 아픔이 느껴졌다고 하면 내가 오바한게 되는걸까? 현실을 보는 눈은 기억의 회로를 가득채운 전쟁과 오버랩되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소년들을 괴롭힌다. 전쟁이 가져다 주는 피해, 그것은 비단 물질적인 파괴뿐만 아니라 소년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장애가 더욱 크다는걸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물론 이스마엘은 이런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은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를 맡고있다.
전쟁이 없는 세상에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당연히 나는 죽을때까지 얼마나 더 행복할지는 모를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이스마엘같은 홍보대사들을 응원하고 <집으로 가는길>같은 책을 읽으며 그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것 정도가 전부일것 같다. 전쟁을 통해 비참해질 수 밖에없는 현실을 조금은 체험한듯한 지금, 그 느낌이 가시기전에 당신들을 위로하며 마음을 다해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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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재 내가 대한 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행운의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집으로 가는 길]을 읽는 내내 그러한 생각 조차도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어떠한 이유로든 소수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겉으로는 평화협정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이는 것이다. 내가 가진 행복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보이는 것만 믿고 싶고 보이는 것만 알았으면 하는 게 인간 심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드시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시에라리온의 소년 이스마엘이 내전으로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한 이야기다. 힙합을 좋아하는 이스마엘은 친형과 동네 또래와 함께 이웃마을인 마트루종으로 장기자랑을 하러 집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이 집과 식구들과의 마지막이 된 줄은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스마엘의 삶이 한순간에 뒤바뀐 기막힌 현실이다. 그 후, 이스마엘과 친구들은 RUF반란군들을 피해 끝없이 이어지는 도망과 그 속에서 겪고 보게 될 잔인한 살육, 그리고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 책에서 이스마엘이 겪은 일들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인간이라면 상상하기 조차 힘든 아픔이다.
삶이 반란군을 피하기 위한 삶의 연속이었던 이스마엘에게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현실이 이어진다. 얼마 안 가면 가족들이 있는 곳인 마을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고 그 마을의 모든 민간인들은 반란군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충격에 빠진 이스마엘은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부군에 가담하게 되고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란군과 맞서 싸우는 잔인한 소년병으로 변신하게 된다. 끔찍했다. 어린 소년들을 데려가서 총과 칼을 지급하고, 흰색 알약을 먹이면서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죽인 적들에게 복수하라고 일깨우는 어른들의 잔학성이 끔찍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게 한다는, 그래서 갈수록 그러한 내전은 아무런 대의명분도 없이 그저 살육이 최대의 관심과 목표가 되어가고 있는 전쟁터에서 이스마엘은 따스했던 인간성을 잃어가게 된다. 사람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지 이스마엘의 경험으로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스마엘의 말처럼 '자신은 그저 운이 좋을 뿐이다.' 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쏟아지는 총탄 앞에서 옆에서 자신의 친구들이 죽어가는 데 이스마엘은 원망스럽게도 자신만 죽지 않고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가슴아파 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살육 속에서 이스마엘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 이외에 또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평화를 대표하는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이스마엘은 살육의 현장에서 구조되게 된다. 하지만, 그 소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받았던 상처의 흔적들이다. 마약 중독의 금단 현상과 정글에서 터득한 본능적 행동이 휴식센터에서의 적응기간에 너무나도 어려움으로 다가왔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아마 그 때에 받은 충격과 고통 속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아픈 과거로 남아 있음을 이야기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유엔에서 이스마엘과 같이 내전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던 소년들이 세상에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연설을 했지만, 겉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평화일 뿐, 아직도 곳곳에는 이러한 소년병들이 늘어나고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까지 어른들의 이러한 잔인한 행태를 보아야 하는가? 늘 권력자들은 모든 부를 손아귀에 쥐고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러한 것을 가지지 못하고 탐한적인 없는 무고한 사람들끼리의 싸움과 죽음만 계속 되는 잔인한 현실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 가슴 아프다. 이스마엘의 생각처럼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한 그러한 꼬리의 끈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에 현실의 벽이 너무나 단단함이 답답하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다면 그러한 답답하고 끔찍한 것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지금 불행과 고통에서 헤매고 있을 많은 소년병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러한 사실들이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아픈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면 금방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사랑을 보탠다면 그런 고통의 끈은 끝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너무나도 가슴아픈 감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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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북스코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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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설 연휴 귀성전쟁이 시작되었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명절이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는 저 끝없는 귀성 행렬. 내가 태어난 곳, 나를 낳아준 사람, 핏줄로 맞닿은 사람들을 향해 떠나는 길은 전날의 피로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만남의 설렘만이 들뜨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고향, 내 마음의 안식처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 저편에는 자신의 집과 부모를 잃고, 달콤한 추억마저 잊고 싶은 과거가 되어버린, 잊으려 몸부림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생생한 기억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슴을 알지 못했다.
서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내전으로 만여 명의 국민이 사망한 인구 육백만 명의 불행한 나라. 평균수명 40세, 일인당 GDP 290 달러의 가난한 나라 시에라리온 공화국. 그 나라의 작은 마을 모그브웨모에 힙합을 좋아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랩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기를 즐기던 평범한 십대 소년 이스마엘은 친구들과 장기자랑 참가를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 듣게된 청천벽력 같은 소식. 고향 마을에 대한 반군의 습격. 이스마엘은 가족과 떨어진 채 무작정 달아났다. 추위와 배고픔, 반군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방향도 종착지도 모르는 여정 속에서 우연히 전해들은 가족의 소식과 상봉을 눈 앞에 둔 순간, 간발의 차로 반군들에게 가족들이 몰상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소년 이스마엘은 정부군이 지키는 마을에서 잠깐의 평온을 찾았으나 끝없이 이어지는 반군의 공격으로 병력이 부족해진 정부군은 급기야 마을의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착출한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반군들이 그들의 가족을 죽인 원수들이라고 세뇌시키는가 하면, 전쟁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소년들의 영웅심을 자극하여 공포심도 동정심도 없는 악마로 변하게 하였다. 무자비한 살상과 마약 흡입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은 감정이 없는 살인 병기로 변해가고 자신들의 잔인함과 소총의 위력으로 민간인들 위에 얼마든지 군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빠져든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소년병 이스마엘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에 몸서리를 쳤다.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온 이스마엘은 재활 센터로 이송되어 8개월의 재활치료를 받는다. 금단증상으로 인한 폭력과 자학, 끔찍했던 전쟁터의 기억과 편두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재활 센터 직원들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헌신적으로 대한다. 그렇게 치료를 마친 이스마엘은 수도 프리타운에 사는 삼촌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잠시 다시 시작된 군사 쿠데타의 내전, 이스마엘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탈출하였다.
전쟁의 참상을 망각한 채 포탄이 난무하는 걸프전을 생중계로 즐겼던 나의 무관심과 군대에서 대대 탄약계로 근무하며 수없이 들어도 오싹한 전율이 가시지 않았던 총성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소년병 이스마엘이 전해주는 생생한 체험담이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몹시 무겁게 한다. '신은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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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뉴욕에 갔을때 가는곳마다 스타벅스매장에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무슨 책일까 하고 관심을 가졌던 책이다. 원서를 읽는건 영 속도가 안날 것같아서 번역본이 나오길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책이 나왔길래 반가움과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한장한장 책장을 넘기면서, 열살이 조금 넘은 아이들이 피로 얼룩진 전쟁터를 헤매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소년병'이라는 단어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이미지는 너무도 단편적이었음을 절감했다. 그저 마을 사람들에게 '적이 쳐들어와요'라는 소식을 전하는 전령 정도로 생각했던 것일까. 너무도 갑작스럽게 전쟁이 터지고, 가족을 찾아갈 틈도 없이 총칼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소년은 몇 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기면서 상상만으로도 끔찍함에 눈을 감을수밖에 없는 전쟁의 참상을 두눈으로 똑똑히 목도하고 만다. 그리고 전쟁에서 벗어나려고 수풀속으로 숨어다니던 소년은 결국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소년병이 된다.
전쟁에 나서는 군인의 이념은 무엇인가. 전쟁의 명분을 생각하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고작 열두살짜리 아이가 이런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자신이 뭘 위해 싸워야하는지 알 수 있었을리가 없다. 이스마엘은 그저 부모형제를 죽인 철천지원수에게 총을 겨누고, 뭔지도 모르고 먹기 시작한 마약의 힘을 빌려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 복수심을 심어준 것도, 마약을 손에 쥐여준것도 다 어른들이었다.
어른들이 벌인 전쟁 때문에 이스마엘은 너무도 먼 길을 가야했다. 작별인사도 없이 떠난 길이 가족과 마지막이 될줄도 모른채 길을 나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족들을 찾기 위해, 나중에는 그저 나아갈 수 밖에 없어서 머나먼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함께했던 친구들이 바로 옆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열두살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일들이다. 마침내 안식처를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마치 이스마엘에게 불행만을 가져다주려는 것처럼....
잔혹한 전쟁 한가운데를 헤쳐가는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전쟁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자, 한 소년의 슬픈 유년에 관한 기록, 생환의 길을 향한 용기의 기록이다. 책을 덮고나자 가슴 한구석이 뻐근히 아파왔다.
"이런 추억을 더듬어 찾아내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두 눈을 불끈 감고 옛 기억을 불러냈을 때에는 너무나 슬퍼서 온몸의 뼈마디가 아파왔다. 강으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강바닥에 앉아버렸지만 내 생각은 거기까지도 나를 따라왔다." - 가족들을 회상하면서 이스마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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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 제대로 못 먹으면 아기가 짝눈이 된데~" 지금 여섯살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덧을 거의 하지 않은 대신 식욕만 왕성해서는... 그날도 저녁 한그릇 뚝딱 하고는 남편과 함께 동네 막창집에 앉았다. 지글지글~ 막창 굽히는 소리마저 향기롭기만한데 술이 거하게 취한듯한 아저씨가 목청높여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에잇~ 전쟁이나 터져서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져 버려랏~!!" 그 순간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 앉는 것 같았다. ㅠ.ㅜ 예정일에 맞추어 의학분업 사태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 또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했었어도 전쟁이 나면 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전쟁... 이라고? 내 아가는, 나와 남편, 우리 가족은... 갑자기 울컥 부아가 치밀었다. 이미 막창맛은 달아나 버렸고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남모르게 째려보기만 했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이면서 '휴전' 상태인 나라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남의 나라 일인양 가슴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내 부모님은 어린시절 피난을 겪었고,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세우시는데 한평생을 보내셨지만 자식인 우리 세대는 전쟁에서 너무나도 멀어져 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분단된 조국이었기에 머나 먼 미래에도 그냥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이란 막연한 확신(?)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 단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딱 한번 그 심각성을 절실히 고민해본적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경우이다. 심리적으로 예민해지고,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는 시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로 인한 본능적 반응이었나 싶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 이 책은 전쟁을 직접 겪은 이스마엘 베아의 실제 이야기다. 랩 음악과 힙합 댄스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이스마엘은 이웃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참석하기위해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선 뒤에 뜻하지 않게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놓여지게 된다. 이로써 집으로의 힘겨운 여정이 시작되는데... 인간이 극한에 처하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어떤 초인적인 힘이 솟는 것일까. 12살 어린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한 상황들이 많은 부분에 걸쳐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 돌아와서 람보 영화의 나머지 장면을 본다든지 마약을 먹어가면서 강행군을 하는 부분은 실로 충격적이다. 이스마엘이 들려주는 전쟁이야기는 더구나 이 모든 것이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슴을 조여들게 만든다.
전쟁은 인간을 지독하게도 무자비하게 만든다. 반군이나 정부군모두 서로가 국민을 위한 군대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더 나쁜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 (이는 6.25때 미군,국군,북한군 모두가 민간인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사실과 같다) 마을에 침입해서 빼앗고, 부수고, 불태우고, 민간인을 학살하는등 만행을 저지르고 소년병을 앞세우는 것조차도 다를 것이 없다. 안타깝게도 어린 병사들은 어른들보다 더 깊이 전쟁에 몰입한다. 처음엔 살기 위해, 죽지 않기위해 총을 들었지만 어느순간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소년병들이 유니세프와 같은 구호기관의 재활훈련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장으로 보내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에서 섬뜩하면서도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파왔다.
삶이 힘겹다고,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전쟁을 입에 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쟁이란 나 한사람을 위해 행해지는 이벤트같이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나와 내 가족은 빼놓고 눈에 가시같은 사람들만 제거해주는 맞춤형이 아니란 말이다. 전쟁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빼앗아 갈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고, 가난과 기아만을 남겨 줄 것이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이스마엘이 말하는 전쟁... 이것이 진짜 전쟁의 참상이다.
책을 덮으며, 이스마엘의 나라 '시에라리온'을 검색하여 보았다.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낯선 나라. 가로줄 세 개로 이루어진 국기의 초록은 천연자원과 산, 하양은 통일, 파랑은 세계평화를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세계평화'라는 단어 참으로 낯설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자연과 가장 부조화스러운 존재이며 모순덩어리다. 그 중에서도 전쟁은 인간이 보여주는 모순의 극치다. 이념과 사상, 종교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전쟁을 일으키는 자마다 '평화'와 '미래','희망'을 부르짖는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덮어두고라도 30만 소년병들은... 이건 정말 아니다. 그들만큼은 어른들의 전쟁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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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책은 구입한지가 꽤 되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 탓인지.. 꼭 '집으로 갈 때' 보아야지하고 아껴둔 책이었다.. 나또한 제대로 되지 못한 '어른'이기에 그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같은것..
대구로 가는 두시간 남짓안에 다 못볼것 같아서 다시 새마을호로 바꾸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시절이 내 생에 가장 '뚱뚱'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표지의 소년처럼.. 그 표정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난의 시간을 건너오고 또 지금도 그런 악몽속에 빠져있는 소년들이지만, 그들도 알하지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 유니폼에 광분하고 이스마엘이 그랬던 것처럼 최신 댄스가요에 흥겨워하는 평범한 소년들 아니겠는가. 무엇이 그 어린 소년들의 몸에 상흔을 입히고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살인의 추억을 남기고 가족도, 친구도, 또한 마땅히 아름다워야할 유년의 기억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가게 만들었는가. 따지고 보면 다 어른들 잘못 아닌가. 무슨 이념이 어쩌네 종교가 어쩌네 이권이 어쩌네 등등..
오래전 일이지만 그 때 이 책을 안 빌려보고 돈주고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담배값을 좀 줄이고 소년병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봐야겠다.
그것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열두살을 보내었던 '못난 어른'의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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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띄우는 편지들...(<내일은 맑음>과 <집으로 가는 길>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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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흘러내리려 하는 눈물을 꾹 참느라 혼이 났다. 이건 소설이 아니야라고 다시 생각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마치 영화같은, 소설 같은, 아니 영화이고 소설이고를 바랬던 이야기. 이스마엘이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언제가부터 언론에서 자주 다뤄져서 익숙해진 시에라리온. 그 곳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그곳에서는 그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사들이고 또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리디 어린 소년병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마약을 하고 또 하고, 마약에 취한 그 황폐화된 정신으로 또 다시 총을 잡고 한 때 내 이웃이었을 그들에게 무기를 사용한다. 겨우 10살을 넘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참혹한 고통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이스마엘은 한 때 랩퍼를 꿈꾼 소년이었다. 비록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살고 있지만 내색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사도 모르는 소년병이 되어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의 기억은 언제가부터 나지 않는다. 기억의 시작은 총을 들고 누군가를 죽였을 그 때부터 시작된다.
전쟁을 피해 달아나고 또 달아나다 결국 소년병이 된 이스마엘의 여정이 이 책에는 너무나도 잘 쓰여 있다. 읽는 내내 소설이나 전쟁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자꾸 들 정도로 책 속의 현실은 참혹하다. 대체 왜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전쟁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장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부분은 아이들이 재활하는 과정이다. 물론 재활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것도 무척이나 운이 좋은 아이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재활 과정은 정말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늘 전쟁터에서 총을 쏘고 마약을 했던 아이들이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하지만 밤이 되면 땀을 흘리며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기 일쑤였다.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장면들을 쫓아내려고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리곤 했다. 잠에서 깨어 갑자기 아무나 옆 침대에 있는 아이의 목을 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간신히 뜯어말리면 밖으로 미친놈처럼 뛰쳐나갔다. 직원들은 이렇게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소동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돌아가며 감시를 했다. 그래도 아침이면 늘 축구장 옆 잔디밭에 숨어 있다가 발견되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떻게 자기가 거기까지 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 아침에 어느 직원이 이렇게 말하며 내 몸을 담요로 감싸주는 것을 느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정말로 아니야. 이겨내야 해." 그는 운동장에서 나를 끌어 일으켜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도 이 책의 이스마엘은 전쟁을 겪고 그 중심에 있었고 또 그것을 벗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잘못이 아닌 어른들의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파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 가고 있다. 이 책에서 수십번도 더 나온, 그리고 재활센터의 직원들이 매일 하는 말이라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겨우 전쟁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오게된 이스마엘은 자기가 이날까지 살아있을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소년병이 되어보자.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더이상 나는 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는 없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