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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물이 셋이나 나타났다. 벤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 오카다에게 돈은 있느냐며 유일하게 말을 건 너트메그. 완벽한 것이 신경질적이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게하는 시나몬. 마주하면 아주 불쾌하고 거북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우시카와. 오카다에게는 책의 권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떠나간다. 구미코가 떠났고, 가노 구레타가 떠나갔고, 가사하라 메이 역시 떠나버렸다. 하지만 역시..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존재와 부재가 오카다, 그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의 하루만큼의 부재가 세계의 하루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또 나의 부재가 내가 있는 지금의 이 세계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세계 속의 내가 아닌, 나의 세계 속의 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점점 더 알 수 없어지고 있다.
p.77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평소처럼 부엌 식탁에 앉아 맥주를 한 병 마시고 라디오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누구하고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날씨 이야기든 정부를 욕하는 말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쨌든 나는 누구하고 이야기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야기를 할 상대는 단 한 사람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고양이조차 없다.
p.218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아요. 나에게 지금은 유예기간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에요. 통과 지점도 아니에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어디로 갈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나에게는 이곳이 막다른 골목인지도 몰라요. 그렇죠? 그래서 정확히 말한다면 나는 여기에서의 일을 즐기고 있다고는 할 수가 없어요. 나는 다만 이 일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을 뿐이죠. 가발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가발 만드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도 꽤 진지하게, 정말로 땀이 흥건히 배어나올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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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82년《양을 둘러싼 모험》 1985년《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7년《노르웨이의 숲》 1994년《태엽 감는 새》 2005년《해변의 카프카》 2009년《1Q84》 2013년《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제 하루키의 '대표작'(출간된 작품은 이보다 훨씬 많다) 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 빼고 다 읽었다. <양을 둘러싼 모험>과 <해변의 카프카>는 읽은 지 하도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다시 읽어볼 생각이고, 대표작을 다 읽고나면 그 외 작품과 에세이들을 빠짐없이 읽어야지. 현존하는 작가 중에 이렇게 작품 목록을 기록해 하나하나 지워가며 읽을 작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 책 표지 소개글에서 다른 건 다 알겠는데 '해체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사랑, 그리고 성性의 궁극적 의미를 모색한' 작품이라는 대목은 왜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지 모른다. 정말 이 작품에 그런 게 나왔던가? 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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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을 읽었다. 2권을 언제 읽었나 찾아 봤더니 작년 6월이다. 일년 하고도 절반이나 지난 다음에 본 책인데 신기하다. 1권과 2권을 읽었던 사이의 시간적 거리보다 더 큰 차이가 있었음에도, 남는 인상은 비슷하게 여겨진다. 흘러가 버린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읽으면서 앞의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내 기억력의 탓일까, 작가의 능력일까. 순수하게 내 기억력으로만 본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게 떠오르는 앞선 내용들, 아무래도 작가의 힘일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낯익을 수가 없다.
무엇이 무엇인지, 작가를 비롯한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어떤 뜻을 숨기고 있는지, 거의 알아내지 못하면서 그저 읽었다. 신기한 일이다. 모르는 기분으로 읽어 나가는데도 어색하거나 답답하지 않다는 것. 문장 하나하나, 표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대로 내 의식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키스러움, 하루키처럼 생각하고 싶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 적당한 거리감으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에 대한 동경.
곁들여 장석주의 해설을 흥미있게 읽었다. 분석해 놓은 내용이 내 독해력의 수준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와 닿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정녕 그런 의도를 담아 놓은 것이라고 해도 별로 섭섭하지는 않겠다. 몰라서 못 느끼는 것이므로, 내가 알아낸 만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므로. '상징'은 참 묘하게도 사람을 비틀거리게 한다.
4권은 곧 읽어야겠다. 다시 내년까지 미루어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
|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해서 '태엽감는 새' 까지. 국내에 소개된 하루키의 장편작품 이라면 안읽어 본게 없다.하루키의 작품은 읽고나면 쓸쓸한 마음이 자꾸만 커지고, 재깐에는 어줍잖은 사색에 빠지게 되서 안읽겠다고 다짐하곤 하지만, 벌써 이렇게 되버렸다. 뿐만 아니라, 2권 이상의 시리즈물은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못하겠다고- 언제나 되뇌이던 나이건만, 책을 펼치면서부터 덮는 순간까지 나직한 한숨과 함께 주인공을 절절히 이해해며 한장한장을 넘기게 되었다. 하루키의 문학코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그 무언가' 와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존재 이유의 상실'- 그 치유과정, 즉- 빛바래고 퇴색했지만 늘 근처에 있는 '희망' 이란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에 그럭저럭 맞추어 살아가고는 있지만 매일매일의 상투적인 생할 중, 꼭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버려 공허한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상실감. 이러한 현대인들의 모습에 세세히 촛점을 맞추고 있는자 하루키. 그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하드 보일드' 하다. 사소한 일에, 또는 대범한 일에까지 무감각 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통렬히 슬퍼한다. 그들의 무대는 하나같이 '자본주의 사회'이며 동시에 그 안의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잃어버린 , 그저 그런 현실에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하나의 '피사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이라 해서 단순히 치부해 버릴 수 만은 없는 것이,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와 다를바 없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들이 행하는 치유의 과정이 바로 우리네의 삶의 여정과 매우 흡하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삶의 여정을 그린 '태엽감는 새'에 대해 간략이 살펴보기 위해 중요한 키워드 몇 개를 찾아보자면, 먼저 제목과 동일한 '태엽감는 새'가 있다. '태엽감는 새'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상실해 버린 존재의 이유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의 '태엽'은 '수동적'인 모습을 말하려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이 책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지는 암울하고 어둑한 '우물'은 주인공의 내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태엽감는 새'를 찾도록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장소라 할 수 있겠고, 떠나버린 아내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컴퓨터 채팅'은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통신이 활성화 되지 않은 수년전이란 것을 감안했을 때, 현대의 미래상을 정확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모습을 냉정히 그린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깊은 우물이 있고, 그 우물 저 너머로의 세계에서는 '태엽감는 새'가 태엽을 감으며 '정말로' 울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태엽감는 새'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아직 상실된 그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슬픈 자본주의 사회. 상실의 시대의 저 너머에는 지금도 동이틈과 동시에 태엽을 감아 우는, 아니- 태엽이 아닌, 뭔진 모르지만 '여하튼' 진실된 새가 뮤즈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로 삶의 향기를 노래하고 있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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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4권으로 되어 있는 작품 태엽감는 새. 그중 드디어 3권을 읽었다. 2권을 읽고 나서 좀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였지만 책을 읽다 보니 전편의 이야기가 점차 선명하게 떠올랐다. 3권은 뭔가 산만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4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2권에 이어 주인공 오카다는 여전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집을 나가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단지 전편에 이어 달라진 점은 아내 먼저 집을 나갔던 고양이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 나간다. 이제 마지막 한 권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떠할지 매우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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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http://blog.yes24.com/document/11966567)에서 사라졌던 고양이가 돌아왔다. 그리고 <1Q84> 3권(http://blog.yes24.com/document/11716900)에서 등장했던 '우시카와',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길래 찾아보니 역시였다. 이 책에서도 <1Q84>에서와 비슷한 역할. 그리고 역할 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사람인 듯 하다. 1권 첫 페이지에 1984년이란 연도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닐 듯. 4권까지 읽은 후에 <1Q84>와 좀 비교를 해봐야겠다. 3권에서는 앞의 2권에서와 달리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카사카 너트메그'와 '아카사카 시나몬'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우시카와'까지. 2권까지 등장한 인물들은 그냥 사라지는 듯.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방향도 바뀐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무언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3권은 1, 2권에 비해 조금 얇은 편이다. 그래서 시간상으로는 조금 빨리 읽었다. 최근에 새로 나온 책 <태엽 감는 새 연대기 3>은 3권과 4권을 합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한 권 남았네. 이 이야기는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리고 <1Q84>와는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 이제 마지막 여정을 떠나야지. 아무튼 움직임은 시작된 거야, 하고 종이봉투를 껴안고 걸어가면서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어쨌든 떨어지지 않도록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장소에.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고양이가 나를 맞았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울면서 끝이 약간 구부러진 꼬리를 위로 세우고 내게 다가왔다.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던 와타야 노보루였다. 나는 식료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내려놓고 고양이를 껴안았다. (pp.7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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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읽고나면 진을 빼버린다. 그 누군가는 '가벼움의 미학'이라고 했던가.(뭐 이 말은 꽤나 좋은 칭찬임에 틀림없지만 말이다. 가볍지만 그것은 미학이라 불릴만 한 것이다 쯤 되려나) 하지만 결코 내겐 가볍지 않다.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가 하나하나 옷을 벗듯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며 그 바닥을 보이려 하는 그런 하루키의 소설이 어째서 가벼울 수 있단 말인가.
하루키의 긴 소설 태엽감는 새. 그 어딘가에서 세계의 태엽을 스르륵스르륵 감으며 이 세계를 유지시켜주는 새. 모든 것이 그 아귀가 딱딱 들어맞도록 잘 재단되어 있는 소설이다. 일단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떼기가 매우 어려운데다 200쪽이 조금씩 넘는 분량의 총 네 권으로 되어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좀 한가한 기간에 읽는 것이 좋다. [인상깊은구절] 어쩌면 세상이라는 것은 회전문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문득 생각했다. 그 칸막이의 어디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단지 발을 내딛는 방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어떤 칸막이 속에는 호랑이가 있고, 다른 칸막이 속에는 호랑이가 없다-요컨대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논리적인 연속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라는 것 따위도 실제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과 세상의 '어긋남'을 잘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
| 저는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제가 살면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하루키의 소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J'바에 가서 재즈음악을 들으며 맥주와 감자튀김등을 먹으며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근심없이 단 며칠만이라도 하릴없이 보내는 것입니다.이렇듯 하루키는 별 변함없고 일상적인 일들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꾸는 희한한 힘이 있습니다. 저는 하루키의 일상적인 매혹과 시덥잖게 갈긴듯한 인상을 주는 문장의 신선함, 가치관을 일시에 뒤엎어버리는 (어쩌면 무기력하게도 보이는) 대담함,그의 글 속에서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인간생활의 하나일뿐인 섹스,그의 취향을 귀로 듣는 듯한 무대장치인 음악들-이런 것에 열광하여 8년전 그의 단편을 읽고부터 하루키의 책들은 거의 몇번씩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읽을때마다 그의 소설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바람결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설 중에서 제 맘에 쏙 드는 책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태엽감는새'입니다. '태엽감는새'를 읽기 전에 그는 저에게 재밌고, 재치있는 한 소설가였는데, '태엽감는새'를 되씹어가며 읽는 동안 저는 하루키에 대해 신앙심이 생길정도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온 세상의 태엽을 감는 새, 그러한 가상의 새를 통해 일상과 비일상이 세계로 독자를 자유자재로 이끌고 가는 재주.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태엽을 감고는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태엽감는 새를 생각하자 어쩐지 저도 그 새의 소리를 들은 것만 같고, 그 새의 흔적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가사하라 메이의 편지글도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문체가 경쾌하고, 또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넣은 계란이 어쩌면 중간에는 그라탱으로 변했다가 뚜껑을 열었을때 계란찜으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라든지, 눈물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나요.라고 해 놓고 어쩌면 그림자가 흘리는 눈물이 진짜고,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그림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뒤집기는 제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혼다씨와 연결된 우물(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우물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하루키바람을 일으킨 '상실의 시대'에서도 첫 장면이 우물과 연결되었지요.)과 마미야 중위 이야기는 자칫 가벼워 질 수 있는 하루키 소설을 묵직하게 하였습니다. 가사하라메이의 가벼움(경쾌함), 혹은 가벼움(경쾌함)을 통한 존재의 무거움 뒤집기와 마미야중위의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존재의 가벼운 아름다움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읽을때마다 저는 하루키의 재미와 매력속에 깊이 빠져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하루가 그저 그렇다 해도 하루키에게 있어서는 그런 무기력함과 권태로움이 이야기가 되고, 또 그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활력이 됩니다.그것만으로도 하루키는 글읽는 재미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는 건 아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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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씩 핵심에 다가가고 있다. 고양이는 돌아오고, 가시하라 메이는 먼 곳에서 계속 편지를 쓰고. 너트메그와 시나몬의 기묘한 이야기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태엽감는 새에 이끌린 미궁으로의 여행....
3권이라해도 1,2권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서 그것을 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많이 표현되는 현실과 비현실 은유등 이 3권에서는 시점까지오가며 독자들을 여기저기 이끌고 다는 듯 하다. 가사하라 메이는 어디에선가 태엽감는 새님인 오카다에게 편지를 쓴다.그녀의 편지는 중간중간에 끼워져있다. 그리고 오카다의 집근처에 있던 우물이 있는 집. 소위 '목매 죽은 집'에 관한 기사가 초반에 나온다. 그리고 오카다는 그 우물이 있는 집을 우물을 갖기 위해 사려고 하고 겨우내 집에서 모든 사람과 단절하고 자신안으로 침잠해서 지나다가 겨울을 나고 다시 시내로 나와 사람들을 관찰하던 그는 너트메그를 만나게 된다. 본격적으로 그가 우물안에서 고요와 어둠속에서 자신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이 잃은 것으로의 접근을 시도한다. 그렇게 관계 맺게 되는 너그메트와 시나몬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오카다와 그의 반점 그리고 우물 , 치유 이러한 것들과 함께 이야기 된다.
얼마전 언니랑 술을 한잔 하는데 언니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하루키의 1Q84라고 했다 사실 하루키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라 공감을 하지는 않지만 자꾸 궁금해지고 놓을 수가 없는 흡입력이 있어서 읽고 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지않고 그저 느낌 가는대로 읽어 나가고 있다고... 그게 그의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고...
그런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 난 이 태엽감는 새인 것 같다. 우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생긴 반점 그 반점을 알아보고 그와 함께 일을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너트메그 그럼으로서 자신의 상실의 부분을 찾아 나서고 그 핵심에 도달하는 오카다. 일련의 사건의 흐름이 도무지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웬지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렇게 황당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집을 나간 고양이를 찾고 집을 나간 아내를 찾은 과정에서 알게되는 사람들과 사건들 드디어 아내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현실과 맞닥들이게 되는 그의 남은 여정은 어떻게 전개될까.
말라버린 우물과 얼굴의 반점 그리고 그의 치유능력 범상치 않은 그의 주변의 사람들은 과연 제자리로 돌아가고 주인공 오카다는 상실한 모든 것의 의미와 자신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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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수많은 비유가 등장하고, 시간의 순서가 a.b.c.d.의 순서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그의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퍼즐을 풀어나가는듯한 전개가 마음에 든다. 이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을 태엽감는 새로 상정했는데.. 이세계를 돌아가게 하는것은 어떠한 거대한 장치가 아니라, 개개의 태엽감는 새이며, 이것들이 바삐 이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은.. 태엽을 감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때 그 세계는 비단 현실의 위계만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질을 향한 세계일수있다. 그리고 태엽을 감는것을 멈추었을때 이세계또한 움직이길 거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