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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하며 이 책을 찾아서 들고 오는 22개월의 딸아이. 아이들은 동물중에서도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더라도 그런것 같다. 산골이다 보니 갖가지 짐승들이 집에 다 있다. 송아지, 강아지, 병아리,고양이,토끼... 그 중에서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건 우리 집 똥개는 낳은 털이 뽀송뽀송한 강아지 녀석들이다. 요놈은 내가 학교에 갈때도,냇가에 놀러 나갈 때에도 졸졸 따라 다녔다. 심지어 어두운 밤 뒷간(화장실)에 갈때도 따라와서 나를 지켜 주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유년 시절이 떠 올라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강아지 치와오는 우리 주인공 꼬마 친구보다도 세살이나 더 먹은 형님 강아지이다. 꼬마는 태어나면서 부터 줄곳 치와오와 함께 가족으로 지내왔다. 기차놀이,숨박꼭질등 모든 놀이에 형님 동생으로 즐겁게 지내던 치와오가 꼬마가 유치원에 다닐때 즈음 부터는 달리기에서도 뒤쳐지게 되었다. 급기야 3학년에 올라온 후로는 치와오가 너무 많이 아프다. 가족들은 치와오를 정성으로 보살피지만 가족들을 뒤로하고 하늘 나라로 간다. 아이와 치와오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강아지 키우기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인형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아프기도 하고 나이들고 더 아프면 하늘 나라에도 갈 수 있다는 것을 ... 치와오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 까지 보살피며 지켜주는 모습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사람도 하늘 나라에 갈때 치와오처럼 많이 아프냐고 묻는 아이에게.. 뭐라 말해줘야 할지 순간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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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정말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동화입니다. 이걸 읽어주는데 치와오가 죽는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림도 참 아름답습니다. 아이와 치와오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답니다. 그림도, 내용도 참 아름답고도 슬픕니다. 태어나서 자랄때까지 함께 했던 치와오가 늙고 힘이 없어져 처음엔 소홀하게 대합니다. 그러다 욕창에 걸린 치와오를 보고 온 가족은 반성을 하지요. 그리곤 다시 사랑으로 치와오를 보살핍니다. 밤에까지 3시간에 한번씩 치와오의 몸을 움직여주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죽기 바로 직전, 있는 힘을 다낸 치와오는 아이와 함께 산책하고 싶어합니다.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말이에요. 아, 정말 아름답고 슬픈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꼭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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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에요!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도 동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꼭 안아보고 싶어 하고, 만져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고는 저를 잘 따른다 싶으면 여지없이 한 마리 사달라고 조르기까지 합니다. 마트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완동물 코너는 항상 빼놓지 않고 들리는 방앗간 같은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참을 앉아서 금붕어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엉금엉금 거북은 지난번엔 열두 마리였는데, 오늘은 스무 마리라는 둥 그 변화를 감지하기에 바쁩니다. 꼬물꼬물 토끼랑 햄스터, 기니피그 같은 동물은 판매원의 눈을 피해가며 슬쩍 쓰다듬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그런 행동에 눈을 흘기면서도 행여 또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다가 그냥 보기만 하고 놀다가 못내 아쉬운 듯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그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은 제대로 돌보는 방법도 사랑하는 것도 표현할 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안녕 치와오> 같은 책은 꼭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예쁜 것만 보지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크거나 늙어버리거나 병들거나 뚱뚱해진 동물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하고요. 이 책은 이제 더 이상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것이지요. 내 가족, 내 형제, 내 이웃과 크게 다르지 않는 한 생명체로 대하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들이 아파도, 뚱뚱해져도, 못생겨져도 내다버리거나 구박하지 말고 끝까지 책임을 져 주는 자세도 필요한 것이고요.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가 있다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책은 내용도 의미 있고 따뜻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러스트가 너무나 예쁩니다.
치와오와 아이의 모습이 어쩜 그리 귀엽고 앙증맞게 묘사되어 있는지, 색감은 또 어쩜 이렇게 따스하고 밝게 표현해냈는지...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같이 밝고 온화한 모습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림 작가의 다른 작품이 혹시 더 없나 싶어서 찾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있으면 사 보려구요. 이 책을 통해 그림작가로 데뷔를 했다고 하더니 역시 없네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더 보고 싶은데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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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목줄을 입에 물고 있는 표지그림을 보고 치와오는 강아지 이름인 것을 알았다. [안녕 치와오]는 처음 만나서 인사일까? 아님 헤어질 때 인사일까? 우리집에도 마르티스 강아지인 몽실이가 있다. 몽실이도 태어나서 두 달이 되고 우리집으로 와서 이젠 일곱 살이 되었다. 털이 날려 천식이 더 심해지곤해서 주위에서는 좋아하는 집에 주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주인공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치와오는 세 살의 나이인 강아지였다. 함께 놀며 무엇이든 함께 한다. 기차놀이, 숨바꼭질, 눈사람 만들기도 한다. 여러 해를 함께 보내면서 치와오는 남자아이에게 형이되기도하고, 동생이 되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산책을 좋아해서 푸른 줄을 매고는 함께 공원을 달리기도 한다. 어린 남자아이가 3학년이 되고 치와오는 산책을 힘들어한다. 엄마는 치와오가 열 세 살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집 안에서만 지내게 된 치와오를 잘 돌봐주지 못해서 욕창이 생긴다. 병원에 대려갔다가 치료를 하고는 모두가 욕창이 생기지 않게 돌아눕히면서 치와오를 돌봐준다. 치와오가 좋아하는 파란 목줄을 걸고는 품에 안아 산책도 간다. 새해가 되고는 치와오는 죽도 먹을 수 없게 된다. 병원에서 영양주사를 놓아주었다. 치와오와 헤어질 때가 된 것 같다. 집으로 데려와서 주사기로 미음을 먹였지만 점점 힘겨워 보였다. 2월의 어느 날 치와와가 일어서서 남자아이에게 걸어갔다. 푸른 목줄을 바라보아서 목줄을 매어 주었다. 잠시 걸어가더니 주저앉고 만다. 남자아이는 치와오를 안고 마당으로 나갔다. 치와오는 눈을 감았다. 남자아이는 많이 슬퍼했고 미안하다고 한다. 우리집 몽실이도 치와오처럼 우리와 헤어질 날이 올거지만 그날이 무서워 남에게 몽실이를 줄 수는 없었다. 생 후 6개월 째에 목욕 후 책상에서 떨어져서 호흡이 멎어서 인공호흡으로 살려낸 적이 있다. 첫 출산에 네 마리의 암놈 강아지를 낳고는 자신의 영양을 모두 줘 버려서 [하이포칼슘]이란 병명의 칼슘부족으로 죽을고비를 또 넘긴적이 있다. 일주일 후 또 그런일을 겪고 또 병원에서 영양주사를 맞고 나은 적이 있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친다. 말을 잘 들어서 정말이지 사람같은 생각이들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이란 느낌이 더 생기나보다. 몽실이도 치와오처럼 목줄을 보여주면 나가게 된다고 뛰면서 설쳐댄다. 전학을 오기전의 학교에서는 목줄을 매고 학교 운동장에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었는데 지금 학교로 전학을 오고는 강아지를 학교안에 들어오지 못하게해서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놀 장소가 적당하지 않다. 아직까지 산책을 하면서 아무곳에나 용변을 보는 것을 그냥 두고 가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다른 나라의 공원 풍경속에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고 뛰어노는 강아지들 모습을 떠올리면 가끔씩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는 나에게 물어왔다. "엄마, 우리 몽실이도 앞으로 6년 정도 지나면 죽게 되나요?", "그래, 우리 끝까지 잘 지내자?", "네.." 아직은 묻는 것도 답하는 것도 쉽겠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아이들이 얼마나 슬퍼할까? 미리 마음이 져며온다. 어느 나라에 노인이 죽으면서 많은 돈을 자신의 강아지에게 유산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 강아지가 그 노인에게는 유일한 친구였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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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반려동물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 여름이던가 목동에 있는 생명과학체험박물관에 아이와 관람하러 갔을 때 였습니다. 거기에 반려동물이란 말이 있어서 해설자에게 물어봤었거든요.. 반려동물이란 말이 있었구나...아~~~ 참 좋은 뜻의 말이구나 라고 느꼈었는데...그런데 또 여전히 애완동물이란 말을 쓰고 있네요.
하지만 '안녕, 치와오'를 아이와 같이 또 읽게 되면서 이제는 확실히 반려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책의 내용을 뛰어넘어 아주 가슴이 뭉클하고 조금은 아팠거든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냥 강아지가 귀여운 줄로만 알겠지 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주니 무척 당황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마지막을 읽어주고도 굳이 강아지가 죽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느낌으로 굉장히 슬퍼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깜짝놀랐답니다.
너무 쉽게 동물을 돈으로 소유할 수 있고 또 너무 쉽게 동물을 버리는 이런 슬픈 현실속에서 읽으니 더욱 마음이 짠 하더라구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 또 많은 어른들이 공유했으면 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우리 아이도 만날 강아지 타령을 하는데 왠지 더욱 신중을 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을 기르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으니까요...
나리유키 와카코라는 일본작가의 글인데 우리네 정서에도 정말 딱 들어맞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림도 정겹구요..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아픔과 이별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책임감은 지녀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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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봇대에 붙혀진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벽보를 보게됩니다. 가족처럼 함께 살다가 잊어버렸는지 그 찾는 사람의 애타는 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들었다는 이유로 늙었다라는 이유로 버려진 강아지들이 이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된다는 기사를 본적도 있습니다. 한때 자신들에게 가족도 되어주고 친구도 되어주면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 했을 강아지를 어찌 버릴수가 있는건지 ~~ 그럴거면 처음부터 키우지나 말지라는 생각이 많이 했었다.
이웃언니가 3개월전 공원에 병들어 버려진 강아지 한마리를 데려다 키우시는분이 계십니다. 그 강아지는 몸에 새끼까지 베고 있었지만 병들었다는 이유로 버려진 모양입니다. 애완견이었지만 버려진후 사랑에 굶주린 그 녀석은 과자 부스러기랑 빵조각 몇개 던져준 언니를 졸졸 따라왔다고 합니다. 주인을 찾아주고파서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찾을수 없어서 결국은 댁에서 키우고 계시지요.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새끼도 낳고 잘 지내고 있지만 한번 버려진 자신이 또 버려질까봐 주인에 대한 강아지의 행동은 남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안녕 치와오]를 읽고 마음이 찡하게 올라옵니다. 한낫 강아지에 불과하다 생각했던 치와오는 주인공의 어린시절부터 때론 친구처럼 때론 형제처럼 늘함께였지만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 늙어갑니다. 주인공 가족들은 치와오를 가족처럼 목숨이 다 할때까지 치와오와 함께하지만 치와오처럼 이렇게 행복한 생을 마감할 애완견들이 얼마나 될지 마음이 많이 무겁더군요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글의 메시지가 단지 좋을때만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 평생을 같이 슬플때나 기쁠때나 우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건강할때만 이뻐하지 말고 부디 끝까지 지켜봐 달라는 마음을 담아 지으셨다는 작가의 마음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애완동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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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것은 서점에서 먼저 읽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첫 마디가.. "엄마 이 책 너무 슬프다.."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요즘 "엄마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라는 말을 간혹 했는데요.. 아마도,, 강아지가 이뻐서 키우자고 했을텐데,, 이 책을 통해서 강아지의 인생을 보는 듯 했을것입니다. 하긴,, 누구나 죽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내가 아끼는 그 무엇이 죽는다는것,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저도 아직 익숙지 않으니 아이는 치와오의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였나 보니다. 이 책의 빨간 띠지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그 말이 팍 와닿은,, 아주 좋은 책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강아지를 키워본적은 없지만,, 책 속 치와오는 너무나 작고 사랑스럽고 정말 꼭 한번 안아주고픈 강아지 입니다. 이런 강아지에게 아이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느꼈겠지요. 하지만,, 책속에서 해피앤딩으로 끝난 스토리 속에서 이렇게 슬픔으로 끝이 나는 책이라 더 가슴에 와닿았나 봅니다.
요즘들 보면 동물들 참 많이 키우더라고요. 특히 강아지는 오래전 부터 사람의 사랑을 받고 지금도 키우고 있는 동물인데요. 내가 있기 전부터 가족이였던 치와오,, 그리고 나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 친구 같은 치와오,, 이런 치와오는 나에겐 소중한 친구였고, 가족에겐 식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한번 태어나면 죽는것은 당연지사,, 치와오는 결국 나이가 많아 죽게 됩니다. 내 품에서 치아오는 "낑"하고 울더니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이 책이 참 감동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또하나의 이유인거 같습니다. 바로 "그림"이랍니다. 책의 그림이 너무나 따스합니다. 그리고 잔잔하네요.. 아마,, 이런 전체적인 이미지가 이 책을 전해져 오는거 같아요.
치와오는 아마, 좋은 곳에 갔을꺼에요. 우리 아이가 물어보네요.. "엄마,, 치와오,,천당 갔어?" 라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이야기 해주었답니다.. 이 책은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 해주는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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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이야기]
딸 셋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어릴 때 우린 늘 강아지와 함께 했었다. 애완용이라기 보다는 집을 지키기 위해서 기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강아지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가족같은 느낌?까지 가질 만큼 친근하지는 않았다. 지금에야 많은 사람들이 애완용으로동물을 키우면서 가족과 같은 느낌을 갖지만 말이다.
일본에서는 독신으로 살면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들이 가족처럼 친구처럼 느끼던 애완동물과 헤어지고나서 겪는 심리적 불안감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 심리 치료나 동호회도 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애완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음이리라.
책을 보면서 단순히 강아지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아닐까 했는데 안녕은 먼~ 이별을 뜻하는 인사말이었다. 소년이 태어나기도 전에 곁에 있었던 치와오는 소년에게는 친구이자 형이자 동생이었다. 그런 치와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지켜주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동물을 오랜동안 키운 경험이 없어서 낯선 내용이기는 하지만 일상을 함께 했던 누군가가 부재한다는 것에 대한 슬픔은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책에서는 시간적인 기술에만 의존해서 치와오와 소년의 관계를 표현한 점이다. 또한 치와오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항상 묶고 있던 파란 줄을 가져와서 목에 매달라고 하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자뭇 억지스러움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단순한 놀이 상대로의 애완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같은 느낌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 그 가운데 전해지는 잔잔한 감동은 유아나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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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치와오라는 개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개가 주인공이 되어 어떤 일을 겪는 우화가 아니라 치와오라는 개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자란 아이의 눈으로 본 치와오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책은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며, 왜 그래야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통은 개의 이야기라 하면 진한 감동이 있는 스토리거나, 개가 주인공이 되어 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세상을 그리기 마련이지만 이 그림책은 그렇지 않다. 테어날 때 이미 자신보다 먼저 그 집에 살고있던 세살된 치와오와 11년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치와오가 늙어가는 모습을 본 아이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클라이막스도 없고 담담하게 그려진 다큐같은 느낌이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물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의 경우 인간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한다. 인간의 손길이 없다면, 그들이 인간의 집에서 혼자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를 들어 목욕도 시켜줘야하고 먹이도 줘야한다. 또, 놀아주기도 해야하며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 인간들이(내가 인간이라 함은 주인들을 말하나 주인이라는 개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인간이라 표기한 것이다) 집을 오래 비우거나 할때면 늘 그들(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대신 돌봐줄 곳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예 집에서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집에 들어오면 사람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는 귀여운 동물들이 있는 집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동물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 키워지고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더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들을 길들이고 야생에서 생활할 수 없도록 만든 건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들 역시 그들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것, 예를 들자면 귀엽게 꼬리치며 반기는 일이나 재롱부리는 일 등을 할 수 없는 때가 되면 귀찮아하기 시작한다. 생명이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보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탓일까?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며 키운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도 개를 키우고 있고 그들이 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걸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동이다. 늙고 병든 개들이 유기견이 되어 떠도는 모습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동물을 장난감처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는 스펀지처럼 흡수되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진한 감동을 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들도 병들고 늙기도 하는 생명체라는 걸 깨달을 것이고, 어떻게 보살펴주어야할 지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가치가 있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그림이 그다지 아이를 확 끌어당기는 힘은 없는 것 같다. 내용 역시 커다란 클라이막스랄까? 긴장감이랄까? 그런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 그림책은 조금 생각의 깊이가 있는 아이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아이들이 보기에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