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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나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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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두고 필사라고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지만 암튼 나는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베껴 쓰곤 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의 처음서부터 끝까지 베껴 쓰는 일은 해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인내력이 약한 나로서는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의 노트에는 이 책 저 책의 글들이 중구난방으로 적혀 있다. 때로는 같은 문장을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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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두고 필사라고 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지만 암튼 나는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베껴 쓰곤 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의 처음서부터 끝까지 베껴 쓰는 일은 해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인내력이 약한 나로서는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의 노트에는 이 책 저 책의 글들이 중구난방으로 적혀 있다. 때로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옮겨 적기도 하고, 각기 다른 책에 수록된 비슷한 내용의 문장들을 한 데 섞어 기록하기도 한다. 마치 주문이나 탄트라를 외듯 말이다. 그럴 때 책은 나의 종교요, 나의 영혼을 붙잡는 경전이 된다.

 

예스 블로그에서 진행하는 '문장 필사 리뷰 이벤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여러 권의 노트를 뒤적여 보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결코 거들떠보지 않았을 먼지 쌓인 노트들. 그 노트들 중에는 아내가 쓴 일기 형식의 노트도 몇 권 섞여 있었고, 본의 아니게 아내의 동글동글한 필체를 읽어내려가면서 한참을 울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 깨닫게 되는 누군가의 인생은 마치 구도자의 행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의미하고, 고통이나 인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참혹하며, 구도의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을 떠난 아내가 뭔가 배우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낡은 노트에 내가 가장 많이 옮겨 썼던 책은 칼릴 지브란이 쓴 <예언자>였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예언자>를 읽은 소감이나 리뷰를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책은 나의 그릇에 비해 너무나 크고 엄청난 내용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칼릴 지브란이 쓴 다른 책 <스승의 목소리>를 소개하려 한다. 리뷰를 쓰겠다는 말보다는 소개하겠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나는 칼릴 지브란의 책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까닭에 <스승의 목소리>에 나오는 문장들을 여러 번 옭겨 적곤 했었다. 오늘처럼 마음이 심란할 때는.

 

 

 

 

레바논의 비샤리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다가 2년 후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베이루트에 있는 '지혜의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다. 1908년 파리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나 3년간 미술 공부를 하기도 했던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책은 스승이 제자에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이 땅에서 지낸 시간들은 삶과 아름다움과 행복과 평화에 대해 얻은 깨달음의 근원이었다'고 하면서 '삶이란 우리가 영혼을 통해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분별력과 이성을 통해서 이 세상을 알게 되는 법'이라고도 했다. 스승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알무타다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전국을 떠돌며 스승의 지혜를 전파한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어제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한 종류는 비뚤어진 디딤대에 몸을 지탱하고 서있어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구습에 얽매인 사람들'이고 '두 번째 종류는 발에 날개를 단 젊은이처럼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알무타다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스승이 그에게 남겨준 지혜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다. 마침내 알무타다가 암자에서 나와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고, 그 가르침은 레바논의 방방곡곡에 전해졌다.

 

훗날 사람들이 알무타다의 가르침을 편지 형식의 책으로 만들어 아랍 땅 전체로 확산시켰다고 하는데 책의 일부는 스승이 직접 남기신 말씀이었지만, 일부는 과거부터 전해온 지혜와 교훈을 스승과 제자가 추려낸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인 즉 삶에 대하여, 생각과 명상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인간의 신성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지혜에 대하여, 사랑과 평등에 대하여 등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들로 빼곡하다.

 

 

 

 

어떤 문구를 가슴에 담는다는 건 이 세상의 종교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것이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일지언정 내게는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보잘것없는 나의 생각만으로 적히기도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나의 믿음인 것을. 

s*****l 2019.02.24. 신고 공감 24 댓글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