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7%
  • 리뷰 총점8 14%
  • 리뷰 총점6 29%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6.0
  • 40대 8.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중한 유산
"소중한 유산" 내용보기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면서 야쿠 섬을 방문했던 것도  ’인연’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1999년 2월 재팬텍스(Japantex)의 관람을 목적으로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떠났었다.이런 여행이 대개는 그렇지만 관람 후의 남은 일정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우리 일행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소중한 유산" 내용보기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면서 야쿠 섬을 방문했던 것도  ’인연’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999년 2월 재팬텍스(Japantex)의 관람을 목적으로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떠났었다.
이런 여행이 대개는 그렇지만 관람 후의 남은 일정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우리 일행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을 종합하여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 경비를 계산하고, 숙소와 준비물 등을 준비하며 부산을 떨었었다.   그렇게 급조된 여행지가 야쿠 섬이었다.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다시 가고시마에서 야쿠 섬까지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그 먼 곳까지 갔던 이유는 그곳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여행 정보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특별한 목적도 없었던 우리 일행에게 미끄러운 비탈길을 걷는 자체로도 여행자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수령 7200년의 조몬 삼나무를 보지도 못한채 안락한 숙소의 유혹에 못이겨 길을 돌려야만 했었다.  스치듯 지나쳤던 그 섬의 원시림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잘 보존된 그들의 자연 경관은 우리 나라의 여러 여행지에 들를 때마다 내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섬에 들렀을 때도 저자는 아마 그곳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를 몰랐고, 지금 그가 기록한 삶의 자취는  나의 손에서 유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야마오 산세이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현대의 미야자와 켄지'로 불리는 저자는 많은 시와 산문을 쓴 시인이자 농부이며, 실천하는 사회 운동가이자 구도자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도쿄에서 야쿠 섬으로 들어와 손수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냈던 25년의 섬 생활은 저자가 그토록 바랬던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어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2000년 11월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2001년 8월에 조용한 죽음을 맞기까지 저자의 부인이 발문에 언급하듯이 그의 삶은 '여기에 사는 슬픔'이고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기쁨'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와 같았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부부의 사진처럼 이 책의 내용은 담담하고 소박하게 사는 가족의 일상을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조용히 써내려 가고 있다.  저자가 지향했던 '아웃도어 라이프'는 수렵과 채집의 석기시대 문화를 현실에서 즐기는 것이요, 삼라만상의 신성함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요, 지구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지역생명주의'였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필름은 바깥 세계의 온갖 대상에 감응하며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감정은 생명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명 현상'이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꽃 한 송이가 피면 이웃 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 피워지는 것이다.(P.253)
우리 모두가 농부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가 파괴한 이 자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땅에 우리는 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을.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찾았던 삼척의 무릉계곡이나 지리산 칠성계곡의 모습은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것을 몹시 그리워 하는 간절한 향수는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줘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것임을 나는 막연히 느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로 살고 있는 것이다.
s*****l 2010.04.10. 신고 공감 13 댓글 29
리뷰 총점 종이책
석기시대를 그리며
"석기시대를 그리며" 내용보기
읽는 것만으로 지구 위에서 지금 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일본 남쪽 가고시마 현에 속해 있는 야쿠 섬이 있다. 세계 자연 유산 등록지이고 제주도의 5분의 1크기라고 한다. 이 섬에 살면서 삶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전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정겹다. 일본에 이런 지역, 이런 작가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할 텐데, 이런 분들의
"석기시대를 그리며" 내용보기

읽는 것만으로 지구 위에서 지금 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일본 남쪽 가고시마 현에 속해 있는 야쿠 섬이 있다. 세계 자연 유산 등록지이고 제주도의 5분의 1크기라고 한다. 이 섬에 살면서 삶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전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정겹다. 일본에 이런 지역, 이런 작가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할 텐데, 이런 분들의 용기와 지구에 대한 책임감에 존경을 느낀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은 내 성향과 맞지 않는 말이다. 서울로 가서 제 능력을 발휘하면서 행복을 느낄 사람도 있고 굳이 서울에 가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게 세상 이치다. 그게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게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불행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지만.

 

발전과 퇴보의 경계를 생각해 본다.  발전과 퇴보의 결과도 더듬어 본다. 좋은 건 무엇인지 좋지 않은 건 무엇인지. 발전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고, 퇴보라고 다 좋지 않은 게 아니고, 발전이라고 했는데 발전이 아닌 경우도 있고 퇴보인 줄 알았는데 퇴보가 아닐 수도 있고. 어제보다 나은 건 어떤 모습이고 오늘보다 나은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책을 읽는 내내 불쑥불쑥 들었다.

 

사 놓은 지 오래된 책인데, 언제 샀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이런 좋은 책을 내가 사 놓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예전 안목이 기특했다. 이제라도 묵히지 않고 이 책을 읽어 낸 나 역시 마음에 들고.

 

석기시대로 돌아서는 방향감각, 앞으로의 내 삶, 내 취향에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좋은 물과 좋은 공기와 좋은 흙과 좋은 나무와 불. 나의 근원을 흔들어 준 고마운 책이었다.

 

(품절이라서 좀 안타깝다. 이번 일본 지진에 어떤 영향을 받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27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게는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고, 조몬 삼나무가 그리 하듯이, 텃밭 한 귀퉁이에 놓은 통나무에 앉아 날마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는 시간이야말로 참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33-34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며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문화 형태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되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충동을 나는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충동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형태로 현대에서도 석기문화는 살아 있음과 동시에 현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문화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은 관리되고 시스템화된 사회 속에서만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웃도어 라이프라고 하는 시대의 의상을 걸치고 실은 석기시대와 같은 직접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35

칼 마르크스라는 경제학자는 노동이란 오렌지나무에서 오렌지를 따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느낌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노동이라고 하기보다는 놀이고, 놀이라기보다는 삶 그 자체이다. 더욱이 거기서 사람과 원숭이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고, 원숭이는 선생님으로, 사람은 원숭이로부터 배운다.

 

71

우리의 이 시대는 조상은 물론 부모조차도 중요하지 않고 부부나 자녀로 이루어지는 가족조차도 이차적인 가치밖에 없는 개인 중심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리고 나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본래부터 개인은 무엇보다도 소중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니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족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다.

 

72

나는 무엇인가,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나는 아직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답은 얻었다. 그것은 신(나의 가장 깊은 관심)이란 자기 외부와 같이 내부에도 존재하는 근원적인 존재로 그 본질은 선한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 등등으로 나타난다.

거꾸로 말하면 자기 안이나 바깥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천국에만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신은 삼라만상으로서 하늘 구석에도 있지만 이 지상에도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존재다.

 

93

지구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삶의 방식의 하나다. 하지만 그런 삶을 대다수인 우리가, 더욱이 일생 계속할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배움과 동경의 여행은 끝나고, 여기에 사는 게 시작된다. 때때로 떠나는 여행도 포함하여,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다수인 우리에게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의 참다운 시작이다.

 

119

날씨가 좋은 날에는 모래밭이 그만큼 더 빛을 반사하며 희게 빛난다. 바다의 짙푸름은 모래밭이 희게 빛날수록 한층 깊어져서 그 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녹는 느낌이다.

 

174

우리는 가끔 바위에 올라가 앉는다. 그런데 그 바위가 어떤 이름의 바위인지, 또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안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지고 확실해질 것이다.

 

232

내 안의 또 하나의 나, 혹은 내 밖의 또 하나의 나와 나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유대를 19세기 독일의 작가인 괴테는 '친화력'이란 말로 표현했다. 우리는 그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된다. 수많은 여성, 혹은 남성 중에서 단 한 여성, 혹은 남성과 맺어지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험한 산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의 맥킨리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작은 시냇물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태국의 메콩 강을 좋아한다. 거기에 친화력이 발동할 때 사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산이나 강과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다.

 

233

남 흉내를 내지 않으며 내 길을 갈 수 있기를. 우리 가족이나 섬 주민 모두가 건강하게 자신의 일에 힘을 쏟을 수 있기를. 세계에 평화의 열매가 열려 가기를.

 

252

일상생활 속에서 이대로 좋다고 자신의 인생을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긍정할 수 있다면 굳이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에베레스트까지 갈 필요가 없다.

 

252-253

인간의 생명이라는 필름은 바깥 세계의 온갖 대상에 감응하며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감정은 생명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명 현상'이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우리 몸 속의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꽃 한 송이가 피면 이웃 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 피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문명사의 시간을 걸쳐서 인류를 자연에서 억지로 떼어 놓는 방법으로, 도시 공간으로 상징되는 인류 독자의 문명 구조를 만들어 왔다. 물론 그 방향 역시 큰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류가 행복해졌는가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우리의 외로운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밑바탕으로부터 조화를 이루고,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261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266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자각은 언뜻 보기에는 우리가 이제까지 죽기로 찾아온 자유라는 가치관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기도 한 것이다. 옛날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상가가 한 말처럼, 자유란 곧 '필연의 통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나 우리 자신에게 자유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자유란 이 하늘과 땅 그 자체인 생물과 무생물을 통해 드러나는 섭리를 통찰하는 데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69

그 사이 내 나름대로 몸과 마음을 다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지구 위의 어느 장소이든, 사람이 한 장소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거기서 나고 죽을 각오를 하면 그 장소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이런저런 실제의 여행이나 모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생을 방랑자나 모험가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리라.

하지만 나의 여행은 '여기에 산다는 것' 속에 있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삼라만상 속에서 삼라만상의 지원을 받아 가며 거기에 융화돼서 사는 것이다.

숲, 강, 바다, 풀, 벌레, 꽃, 도시, 그리고 인간은 지금 그 존망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삼라만상의 일원으로서 여기 살 수 있으면 작은 혹성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어도 앞으로 천 년이나 2천 년의 문명을 이 지구는 우리에게 허락해 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YES마니아 : 로얄 j***6 2016.04.29.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지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내용보기
책 읽으면서 저자가 참 많이도 부러웠다. 저렇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건 축복이 아닐까싶다. 물론 그 축복 또한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중요한건 그 선택에 후회가 없이 행복하다는것!! 자신이 지금 즐겁고, 행복하다 느끼는 삶이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테니깐.. 항상 끈떨어진 연처럼 무언가에 흐느적거리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저 꿈으로만 남을 이야기
"지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내용보기
책 읽으면서 저자가 참 많이도 부러웠다. 저렇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건 축복이 아닐까싶다. 물론 그 축복 또한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중요한건 그 선택에 후회가 없이 행복하다는것!! 자신이 지금 즐겁고, 행복하다 느끼는 삶이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테니깐.. 항상 끈떨어진 연처럼 무언가에 흐느적거리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저 꿈으로만 남을 이야기일껏 같다. 요즘들어 자꾸만 자연속에 파묻혀 살고싶단 생각이 많이든다. 사람과의 관계가 갈수록 힘들고, 상처받기싫어 미리 경계태세를 갖추고있는 내 모습도 처량하단 생각이들고..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말처럼 사람보다 책읽기가 좋고, 음악듣기가 좋으니 정말 미쳐버리겠다. 옛날엔 내 인생이 대단히 특별할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남들처럼만 살아갔으면 싶다. 평범하다는게 제일 어렵다는걸 이젠 정말 느낄 수가 있을것 같다. 지금부터 조금씩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위해 작가에게 일대일로 수업을 받은것 같다. 욕심없이 사소한 것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하고, 함께 살아간다는걸 잊지않으려는 배려. 그런 배려를 항상 생각한다면 산속에서 홀로사는 것도 외롭지만은 않을것 같다. 내일 친구랑 가까운 산사를 가기로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며 나도 그들의 존재를 확인해봐야겠다. 진정으로 내 삶이 즐거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위한 첫걸음이 되길 바라며..
d*******7 2003.10.0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생명지역주의와 신애니미즘의 생활양식 [여기에 사는 즐거움]
"[서평] 생명지역주의와 신애니미즘의 생활양식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 중 [비노바 베베]에 이어 14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필이자 철학책이라 할
"[서평] 생명지역주의와 신애니미즘의 생활양식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 중 [비노바 베베]에 이어 14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필이자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미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 18세기부터 전지구의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산업화'와 '경쟁지상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산업생산양식과 신자유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의 인류의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다국적 기업 뿐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 등 한국식 다국적 기업, 즉 재벌들이 내세우는 구호다. 하지만 그 구호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구 곳곳에 팔아먹기 위해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가증스럽게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다짐까지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 * 야마오 산세이는 누구인가? -----------

야마오 산세이는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지은 책으로는 <성스러운 노인> 게리 스나이더와의 대담집 <하나로 이어진 성스런 지구>,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물이 흐른다>, 시집 <비파잎 모자아래서>등이 있다. ----------
 
 
이 책은 21개의 짧은 수필을 엮어낸 것이다.
각 수필의 제목은,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 석기문화를 즐기다 /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 아웃도어 라이프 / 서부 숲길 /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 토란 / 우수 / 숲은 바다의 연인 /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 햇살이 아프다 / 물의 길 / 아난다처럼 울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내 집 짓기의 즐거움 /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 끝없는 여행"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7년부터 일본 규수 섬의 가고시마 현 아래에 위치해 있는 '야쿠 섬'으로 이사했다.
그는 야쿠 섬에 살면서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화학비료 대신에 음식 쓰레기, 똥오줌, 나뭇재를 밭에 낸다. 잡초는 베어 낸 다음 그대로 밭에 덮는다. 잡초는 끝도 없이 나지만, 그는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잡초는 베어서 땅에 덮으면 마침내 비료가 되기 때문에 밭에 잡초가 무성해 있으면 실은 비료가 무성해 있는 셈이라고 한다.
그의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저자 가족의 생활양식은 그보다 150여년 전 앞서 자연 속의 삶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모습, 농부철학자였던 50여년 전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를 떠오르게 한다.(물론,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전기도 끌어다 쓰고 자동차도 이용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동물들과 이웃하여 공생하면서 살고 있다. 야쿠 섬에서는 사슴과 원숭이의 피해가 심하다. 그냥 두면 과일과 야채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 철책을 치지만 그는 버려진 그물을 이용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손을 대지 않는 토란, 아스파라거스, 자소와 같은 작물을 택해 그들과의 공생을 꾀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마치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가이아'적 삶을 현실에 맞도록 야쿠 섬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되찾아야 문화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그 충동을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 충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 어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는 여기서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램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는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눈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밖에 지구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무엇인가?
야마오 산세이에게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미다. 가미란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다. 그러나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신을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미라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인이 가장 리얼한 가미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가 가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은 절로 가미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그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가미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 닿게 되고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고 그는 말한다.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암석이나 강이나 우주 그 자체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안쪽에는 영성,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우리는 모두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친화력으로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신애니미즘이라 부르며, 자연 환경을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가 된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희망으로 신애니미즘을 제시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이 책에는 그가 일생을 걸고 일관되게 꿈꾸며 바라 왔던 평화로운 세계를 조용하게 그리고 깊게 실천해 가기 위한 방법이 쓰여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의 글을 빌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여기에 사는 슬픔'이자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고서 야마오 산세이의 가족처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마오 산세이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거창한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인간이 '인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공기와 나무, 풀과 동물, 물고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모든 존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와 입자, 의미와 정령이 한데 어우러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나만을 위한 삶, 우리만을 위한 삶, 인간만을 위한 삶은 오히려 머지않아 나와 우리, 인류를 해치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인류가 없는 원시시대의 지구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경쟁 위주가 아닌 공생 위주'의 삶만이 그 해답일 것이다. 

 

[ 2011년 8월 07일 ]
c****n 2011.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벌써 4번째 책! >< 첨에 딱!봤을땐 되게 재밌을줄 알았는데...생각보다 약간 지루했던것같다ㅜ 음..뭐랄까..약간 수수한 책인듯.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순 있지만 뭔가 2%가 부족한 느낌이었다-0- 그래도 나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들어준 책!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기쁨..슬픔..즐거움.. 내가 겪고 있는 고통,슬픔,아픔이..결국엔 즐거움으로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벌써 4번째 책! ><

첨에 딱!봤을땐 되게 재밌을줄 알았는데...생각보다 약간 지루했던것같다ㅜ

음..뭐랄까..약간 수수한 책인듯.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순 있지만 뭔가 2%가 부족한 느낌이었다-0-

그래도 나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들어준 책!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기쁨..슬픔..즐거움..

내가 겪고 있는 고통,슬픔,아픔이..결국엔 즐거움으로 나아갈수있을까.

 

''여기에 사는 즐거움' 이란 '여기에 사는 슬픔' 이자 '여기에 사는 괴로움' 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기쁨' 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 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되게 가슴에 와닿았던 구절이다.

b******4 2011.01.0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날마다 선물하고픈 책
"날마다 선물하고픈 책 " 내용보기
지인들에게 선물을 할때가 있으면 주로 책을 고른다. 내 입맛에 맛는것을 고르는거야 어쩔수 없지만 선물하고도 혹시 안읽으면 어쩌나........맘에 안들면 어쩌나.....이런 걱정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고? 바로 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선물하게 되고 부터다. 환경단체 책읽기모임에서 처음 만난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환경책은 딱딱할 것이다, 또
"날마다 선물하고픈 책 " 내용보기
지인들에게 선물을 할때가 있으면 주로 책을 고른다. 내 입맛에 맛는것을 고르는거야 어쩔수 없지만 선물하고도 혹시 안읽으면 어쩌나........맘에 안들면 어쩌나.....이런 걱정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고? 바로 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선물하게 되고 부터다. 환경단체 책읽기모임에서 처음 만난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환경책은 딱딱할 것이다, 또는 너무 뻔한 이야기들로 지루할것이다....라는 선입견을 단박에 물리치고 꼬박 밤을 새워 읽게 한 책이다. 나는 가벼운 책을 좋아한다. 책표지도, 종이도, 또 내용도 ,,,,,,너무 심오하고 심각하면 읽다가 오히려 체할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얼마전 산 월든이란 책이 주는 중압감에 그만 중간에 책을 놓아버린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두께에 비해 무게도 가볍고 참 날렵하다. 표지의 사진도 정감있다. 마치 오랜 내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다. 마치 토토로에 나오는 그 나무처럼 오랜 자태로 서있는 [조몬 삼나무]의 사진을 보면서.... '자연이란 사람들이 말하듯이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연히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의 이면은 어둠이다. 자연은 기쁨이나 치유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동시에 죽음도 불러온다'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또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오늘도 온갖 탐욕과 포기할수없는 욕망으로 허우적대는 나의 삶을 뒤돌아 본다. 부끄럽다...........그래서 또 책을 들고 잠시 마음을 닦는다......내 마음의 거울.....같은 책으로......
m******9 2005.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무슨 일이나 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까지 익혀 온 들일, 산일의 가장 중요한 요령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내 속에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생의 근원저인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몇십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내용보기

무슨 일이나 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까지 익혀 온 들일, 산일의 가장 중요한 요령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내 속에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생의 근원저인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몇십 번 이상 태풍과 직면해 왔지만 그때마다 배우게 되는 것은 태풍은 사람의 죽음과 같아서 올 때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온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다.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그래도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면 10킬로든 20킬로든 옆으로 빗나가 달라고 바라게 되는 게 태풍의 통로에 사는 우리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올 때는 그것은 마치 미리부터 예정돼 있는 것처럼 반드시 닥쳐온다. 죽음도 그처럼 다가올 것이 틀림없음으로 태풍의 한복판에서 나는 이중의 의미에서 죽는 연습을 한다.

 

 

거꾸로 말하면 자기 안이나 바깥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를 여기에 낳아 준 지구, 지구를 낳아 준 태양계, 태양계를 나아준 은하계, 은하계를 낳아준 우주는 우리에게 삼라만상이자 대자연이지만 그것이 신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가슴에 그것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나 감사의 마음, 불가사의한 마음이 솟아날 때 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쪽이 기리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을 대하면 자연계의 삼라만상은 모두 가미로 나타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닿게 된다.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

 

 

그것을 그렇다고 쳐도, 반경 7,8킬로 이내에는 이웃집이 하나도 없다는,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K씨가 사는 방식의 특징은 산에서 끌어온 수돗물을 24시간 계속 흘려보내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흘러가는 강물은 더 마셔도 그대로 흐른다. 물은 계속해서 흐르는 게 본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반경 7,8킬로 안에는 이웃집이 없는 산중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수한 경우다.

 

 

우리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놓은 밭 같다. 나는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를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나의 경험으로부터 보자면 벤 잡초를 작물의 부근에 덮어 주면 그것이 자연히 썩어서 발효되어 비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y****a 2020.09.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