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끊임 없이 스스로에게 주지시킨 건, 어떤 경우에라도 글쓴이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왜곡시키지 말자.였다. 공창제 도입 논란이 기폭제가 되어 우리 사회에 성매매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지나가는 이들이 별 생각 없이 한 두 마디 보탠 거품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미 수면 위로 그 문제가 떠올랐다는 것이 일종의 수확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매춘 그 자체가 아니라, 매매춘을 바라보는 우리의 적대적인 태도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상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글쓴이의 주장이다. 그런데 건전한 매매춘이 과연 가능한가? 글쓴이는 무엇을 위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황당함과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과 술을 마시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며 당당하게 묻던 글쓴이는 뒤이어 성매매는 종신직업이 아닌, 일시적인 일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또한 성을 구매하는 남자의 대부분이 기혼자이고 이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포함하는 성적 약속의 위반이라고 말하다가 만약 두 성인 남녀가 성정 행위를 위해 경제적 거래에 합의하고 그들의 행위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논리에 끼워맞추기 위해서라면 성매매로 인한 관계에서 친밀감이 없다는 주장은 그들의 편견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할 수 있다니 정말 두 손 들었다.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내가 발견한 유일한 점(이로 인해 별 하나를 주었다)은 매매춘에 대한 역사와 그 안에서의 논의를 비교적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는 그 시각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반박하려 했으나 설득력있는 독창적 시각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와 더불어 내가 분노했던 점은 미묘한 어휘 사용이나 문체를 통해 상대방을 유치하고 우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최소한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절하하는 일은 같은 학자로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일례로 페미니스트 정치학 이론에 대한 그녀의 문제제기는 실소를 자아낸다. 성매매 현장에 존재하는 소수의 여성고객이나 매춘 남성의 존재, 그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론 자체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 다는 듯한 주장은 무언가? 이론의 개념 자체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생각이 든다.(이론을 구분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 범위에 따라 일반이론과 부분이론 혹은 중범위이론으로 나눌 수 있다. 현상의 원인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하는 일반이론은 현상의 설명 혹은 예측의 범위에 있어서 보다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론 내지 중범위이론보다는 통상적이지 못하다. 부분이론은 말하자면 건축물의 일부분과 같은 것으로 언젠가는 이들 건축 부분을 조립하여 현상 전체를 해명할 수 있는 일반이론으로 완성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러한 과정이 옳다는 주장이 현실적으로는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반이론의 형성이 우선적이며 부분이론은 일반이론으로부터 연역되는 것이거나 일반이론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오직 모든 연구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최선의 이론이라는 것은 가장 간결해야한다는 주장', 즉 최소의 기본적인 전제와 변수를 갖고서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론작업의 필요성은 나 역시 절감하지만 그것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시각이나 사회의 인식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성매매 직업 여성은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이다. 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숙고해 보시기 바란다. 글쓴이의 논리에 따르자면 우리는 인간의 장기 판매도 허용해야 한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거래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간의 전 영역을 상품화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살인을 막을 수 없으며 제노사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고도 과연 인간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글쓴이의 주장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 그 주장을 펼쳐가는 글쓴이의 작업과정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책을 읽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이 순간조차도 화가 나는, 불쾌한 책이다. |
| 가끔 TV에서 윤락 여성과 그 실태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차라리 완전히 양성화하고 사창 대신 공창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떤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없고, 공창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공창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윤락 또는 매매춘의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공창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한번 매춘부였던 사람은 영원히 매춘부"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입니다. 매춘 여성을 관에서 기록하여 관리하는 것이니만큼 이런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매춘이 무슨 평생 직업도 아닌데 말입니다. 주제가 그러해서인지(?) 참 흥미있게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매매춘의 역사를 알 수 있었고, 매매춘의 근절을 위한 견해를 통해 그 기본적인 사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춘 여성들을 위험한 조건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권위주의적 계몽주의 페미니즘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 속에, 매춘 여성들은 자아 의식이 전혀 없는, 강제된 조건 속에서 침묵하고 무기력하며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한계는, "자본주의 이전에도 매매춘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또한 매매춘을 자본주의 사회제도만큼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는 매매춘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업적인 섹스의 형태를 추방하기는 어렵다(p.122)"는 것이 그녀의 생각입니다. 매매춘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러나 저자 역시 결론을 명쾌하게 내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가장 그럴듯한 결론은 매매춘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매매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있다,도 아니고 있는 것 같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엄청난 문제를 몇 마디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역시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겠다.(p.123) 제목 그대로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운을 띄운 것이 불과합니다. 그러나 짧은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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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론사이건 간에 2004년에 10대뉴스를 선정하는 데 있어 성매매 특별법은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얘기인데, 일부 남성의 일상과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인데가 일부 신문의 매매춘에 대한 경제적 평가와 이에 대한 여성단체의 반발, 나중에는 매매춘여성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등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은 2004을 뜨겁게 달구었다.
작가는 마치 이 모든 문제를 예상했기라도 하듯이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담론만이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작가가 아주 착실히 정리해놓았듯이 역사적으로 어떤 이론이나 정책도 성매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작가는 실패의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매매가 나쁘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성을 매매하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되는 서비스를 매매하는 것으로 보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면 굉장히 쿨한 느낌이고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잘 들어맞는 진보적인 생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없다. 이 작가의 기본적인 전제는 성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서비스라는 것이다. 돈을 주고 술을 사고, 물건을 사듯이 화대를 지불하고 쾌락이라는 감성을 사는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을 술과 같은 상품과 동일 범주에 둘 수 있는가? 작가의 주장처럼 인간에게 있어 성을 오직 상품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이 합당한가? 성을 인간성과 분리시킬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작가는 매매춘의 도덕성문제에 대해서는 매매춘 여성들은 자신의 인격과 상관없는 성이라는 상품만을 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부에서 주장하는 인격적인 교감 없는 섹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매매춘 여성이 키스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매매춘에서도 감정적이고 친밀한 섹스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모순된 논거를 들었다. 즉, 분명히 매매춘의 성을 상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인간성을 배제한 하나의 서비스라는 주장을 한 후, 나중에는 서비스 소비자 입장에서 상업적인 섹스가 물질적 욕구를 위해 친밀성으로 포장한 수준 높은 상업적 섹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103p) 상반된 주장을 하였다. 물론 친밀성으로 포장한다는 표현을 통해 주장의 모순은 피하였지만 그렇다면 아주 보기좋고 그럴듯한 상품으로 보이기 위해 친밀성으로 포장된 성은 인간에게 정말 친밀한 것인가? 아니면 가장 삭막한 것인가?
이 책은 성매매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그동안의 성매매에 대한 이론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 사고가 그렇게 쿨하지 못해서 인지 몰라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인상깊은구절] 성은 돈을 사고 기분좋게 마실 수 있는 술과 같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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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은 'ㅇㅇ 리스트' 정국이다. 그 중 하나가 '고 장자연 리스트'였다. 리스트는 아니지만 청와대 행정관이 성매매를 했다. 사실 '성매매'는 2009년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역사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성매매를 '매매춘'로 정의할 수 있을지 좁게 정의하면 잘 모르겠지만 넓게 해석하면 매매춘에 포함될 수 있다. 성매매가 은밀하게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매매춘은 지정된 장소에서 많은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2001년 김강자 당시 서울경찰청 방범과장은 미성년과 노예 매춘을 줄이기 위해 공창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 논란이 한창 붙어었다. 그 중 하나가 이성숙씨가 쓴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예순 한번째로 나온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이다.
이성숙은 매매춘을 자본주의의 산물로 보지 않고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역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행한 삶의 양식으로 이해한다. 특히 남성 위주의 성 담론 해체의 일환으로 여성의 매춘을 노동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따위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는 놀랍고, 충격이다. 읽는 이로서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매춘 여성은 그녀의 성적 부분과 육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성적 서비스 형태를 판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 노동자로서 매춘 여성과 다른 직종의 노동자나 서비스 판매자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매춘부는 단지 자신의 신체상 재산에 대해 외적 관계에 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매춘 여성은 자신의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이 아니며, 그녀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과 아무 손해 없이 거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20쪽)
이성숙은 공창제가 서구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매매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된 시도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발상이자 정책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페미니스트 담론들도 매춘 여성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형태라고 비판한다. 이성숙이 하고 싶은 말은 매매춘 자체가 아니라 매매춘을 바라보는 우리의 적대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매춘은 인정하면서 매춘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기 거부하는 남성 위주의 도덕주의자들의 견해가 비논리적이듯이, 매춘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 존재로 인식해야 하지만 매매춘은 추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비논리적이다.(30쪽)
이성숙은 건전한 매매춘 형성에 필요한 페미니스트 이론은 매춘 여성들이 성병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남성 고객의 성기를 검사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 강조, 매춘 여성은 곧 성 노동자라는 개념 인식,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따위를 강조한다.
이성숙은 매매춘 이미지를 재창조하기 위해 사회적인 가치와 태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매춘 여성들의 거주 공간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져 매매춘에 대한 우리 인식이 변화되면 매춘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폭행과 인권 유린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매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범죄 행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이성숙이 주장하는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충격이 크다. 솔직히 이성숙 주장을 마지막까지 동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매매춘에 대한 새로은 시각을 접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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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로색슨 체제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자유 대한의 품에서살고있다 외친다. 하지만 그건 자치제일뿐 완전한 독립국은 아니다. 서양의 매매춘에 관한 가치정립은 옥타비아누스로 불렸던 아우구스투스황제에 의해 완성되었다. 동양에도 혼음의 문화가 면면히 내려오고 북방에도 대처제 문화가 유유히 내려온건 사실이다. 이 세상에 야만족은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뿐 고구려때 우씨 황비가 살고 있었다 그 시절 형의 아내를 상속받는건 당연한 것이었으나 조선의 유교주의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극도로 나쁜행동으로 보였겠지 성경에도 있지 않는가 형의 아내를 물려받았다고 신구약 모두에.. 유엔은 매춘여성으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매매춘이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선언했따. 우리는 단세포생물에서 시작했고 신라나 유목민족들은 혼음이 존재했으며 미야모토 무사시에서도 혼음이 성행했다 바벨론이 다산의 여신 이시타르 신전에서도 매춘은 순수한 목적에서 이루어졌으며 근세까지도 유럽에서는 매춘이 음식점이나 정비소처럼 단지 하나의 점포였던 것으로 인식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의 특히 프로테스탄트들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하여 매춘은 사회에서 차별화되기 시작했고 우리의 의식속에서도 매춘은 사회에서 추방되어야하는 더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어 경찰이나 사회의 보호를 받을수 없었기에 매춘부들은 기둥서방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전과 경제를 의지할 수 밖에 없게되었던 우리의 매춘에 대한 의식을 확 바꾸게하는 의식전환의 책이다. 매춘부도 사람이고 직업의식이 있는 하나의 업종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책이다 예전에 읽었던 아메리카타운 왕언니 죽기오분전까지 악을 쓰다 란 책제목이 생각난다. 누가 당신딸을 그 업종에 종사시킬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당연히 노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업종에 대한 의식전환을 상기시켜준다 그동안 편견을 가진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는 바이며 이런 곳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쓴 저자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첫번째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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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자서장의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를 읽었었다. 거기서 공창제도입에 관하여 나온다. 그렇구나했느데 이글을 읽으니 위험한 제도라는걸 느낀다. 어느 라디오프로에서 그런다 한국의 사창가는 기독교문화와 유교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진거라고 신라에는 혼음문화가 존재했기에 아랍인이었던 처용은 이상하게 생각했던 거겠지 고대엔 친족간에도 결혼했고 고려 광종도 친동생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조용진교수님의 '한국,한국인의 낯'이란 책을 보면 보통 반경4킬로미터 이내에서 결혼이 이루어진다고했다. 미야모토 무사시에선 해적들이 약탈하고 돌아와 축하의 의미에서 이웃부녀자와 남편이 보는 앞에서 혼음을 했고 신라도 길쌈을 하고 단오에 여러 무리가 혼음을 했다. 고려 왕실에서도 이모와 결혼한 예는 많다 당나라 양귀비는 당현종의 며느리가 아니던가 김유신도 자기조카와 결혼하지 않았던가 이런것이 유교가 도입되면서 차차사라지고 과부의 재가도 금지되는 풍조가 생겨났으니 모든건 문화의 차이아닐까 내가 어릴땐 거리에서 아기에서 젓먹이던 엄마들을 많이 본다 골목 모퉁이에선 오줌을 누는 사람들도 흔했다 나도 여러번 그랬으니까 몇년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갔었다 거기선 화장실이 부족하여 큰 트럭옆에서 바퀴에 오줌을 눈다 문화가 많이 협소해짐을 느낀다. 좋은 책이라 생각되어 다시한번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다 지금에야 손을 댄다.
생태계가 너무 파괴되어 인도에서 호랑이 보호를 위해 생각있는 사람들이 숲을 늘리기 위해 나무를 심는데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몇 명을 죽이고 달아난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나무를 계속심는다. 남북전쟁시 남측의 흑인들을 탈출시키기위해 북측의 뜻있는 백인 몇몇이 모여 지하철도라고 불리는 루트로 흑인들을 탈출시킨다 이것이 혹성탈출이란 영화의 모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잘못된 곳으로 훌러가는 문화옆엔 몇몇 소중한 의식을 가지신 분들이 소수 존재하신다. 이 책 '매매춘과 페미니즘'도 그런 소중한 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쓰신건 아닐까
일본에서도 임진왜란이후 메이지유신때까지 인구가 늘지않았다고한다 식량이 없어 아이를 죽이거나 계집아이는 대부분 유곽(기생집)으로 자진해 팔려갔다. 대학졸업하고 소심한 성격고치기위해 책외판을 한적이 있었다 그 때 모두가 "우와"할 정도로 늘씬하고 단정한 여직원이 입사했는데 너무 돈이 안되어 그만두었고 우리과 계장님이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아프셔서 도저히 안되어 술집에 가는것 외엔 달리방도가 없다고하며 전화를 끊는다. 한달정도 같이 지내봤는데 교양도 있고 괜찮아 보였지만 같이 지내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워낙에 스크루..신지라 도저히 손을 내밀수가 없었다 젊지만 힘없던 안타까운 인생의 한편이었다. 세랭게티에 간다 그곳의 동물들은 잠자고 사냥하거나 풀을 뜯고 사냥하고 섹스하고 새끼를 키우고 그게 다다 700만년전 콩고의 보노보원숭이에서 갈라져나온 인류에게 섹스란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없다면 구매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영양분이다. 사먹는 음식이 그렇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숀 코너리 주연의'장미의 이름'이란 영화가 있었다 원로수도승 한사람이 주장과 실제있었던 이야기가 맞지 않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진실을 알아버린 수도승들을 차례로 죽인다는 대충 그런내용이다. 2차대전후 시온주의자들은 평화롭게 살던 아랍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데려오고 주변국들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던 유대인들을 충동질하고 자유롭게 주변민족과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규율을 강압해 결국엔 오늘날의 테러를 스스로 자초한다. 예수는 솔직히 콘스탄티누스황제시절 유세비우스가 만들어낸 통치수단용 가상인물일 뿐이다. 일본우파도 1790년 러시아의 남하에 불안감을 느낀 극단적인 사람들이 민중을 충동질해 만든 하나의 테러집단일 뿐인데 사람들은 속고있지나 않을까 나치의 선전부장관 괴벨스가 그랬다 민중은 사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으면 넘어간다고 송시열의 동성동본법도 그시절 양반이 5%였기에 가능했지만 그게 없어지는데 300년이걸렸다. 20세기초 미국에서 시작된 복음주의자들의 원리주의신앙도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시키기 위하여 아랍인들에게 주로 쓰는 용어로 재탄생하지 않았던가 백강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은 섬나라 부여인들은 천무천황시절 자기네 역사서에 있지도 않은 삼한정벌설을 써넣어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들에게 한국침략의 발판을 만들게했으며 이것이 허구인것으로 결론이 나는 시기는 20세기가 넘어서였다. 남북한의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남한에서는 무슨일만 있으면 빨갱이라는 흉측한 지문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을 북으로 돌려 자신의 정권을 공공히하고 북한도 남조선이란 흉측한 지문을 내세워 자신들의 정권을 공공히 하지않았던가 우리가 알렉산더대왕의 업적을 소상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같이 다니던 한 명의 광대가 그의 업적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만큼 글쟁이들의 힘은 크다. 만일 그 광대가 알렉산더대왕에게 화가나 있지도 않은 사실을 그 글속에 집어넣는다면 우리는 그 모든걸 사실로 받아들일것이다. 진실은 두가지다 내가 지금 이글을 쓰고 있다는건 진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내가 어저께 이 글을 썼다고 믿는다면 그것 또한 진실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작가의 노력이 대단해보인다 뭇사람들에게 돌을 맞을 각오를 하며 썼다는것이 그리고 철판같이 공고해진 인식을 바꾸려고 시도한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바이다. 한가지 걱정이 되는것은 우리집 근처에 문방구나 서점이 있으면 아이들교육에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포르노 같은 업종이 주택가에 들어선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것에 대해 논의하자고 작가께서는 한마디 남기셨는데 그것만 해결된다면 매춘 그리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한국이 세계 제1위의 포르노.. 수입1위 아니던가 남성의 유흥업소 출입1위고 그런 여자끼고 먹는 술문화가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 판을 치고 있다고하니 참 웃음만 나온다.
매매춘에서 남성고객들이 여성들을 인격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춘이라는 특정 직업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매매춘 추방 논리는 적대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견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매춘 여성의 노동 환경과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매춘 그 자체가 아니라, 매매춘을 바라보는 우리의 적대적인 태도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상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한마디 - 세상은 돌고도는 것 계유정난이 있었다 조선의 싱크탱크를 무참히 짓밟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 어디를 가도 도심속에 고분이 있는 곳은 얼마안된다 극소수가 맞을것이다 그 중에 선릉이 있다 두명의 젊은 왕비가 같이 묻힌곳 누구의 딸일까 한명회 자신의 죄의 업보는 자손에게 미친다 무수한 살생은 금물 그럼 수양의 후손은 무사했을까 역사책을 참조하시길. 역사는 돌고돈다 임사홍은 간신의 대명사 하지만 그의 셋째 아들은 의를 지키다 사화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안중근의사의 둘째아들 안중생은 친일을 하다하다 해방후 김구선생님에게한 두번의 면회를 거절당한다. 명성황후시혜사건의 주모자중 한사람 우범술 하지만 그의 아들 우장춘박사는 한국의 종자독립의 최대기여자로 우리모두는 그분의 은혜를 입고있다. - 역사는 돌고도는것 나는 지금 세상에 죄를 짓고 있는가 선행을 하고있는걸까 |
| 매매춘(개인적으로는 ‘성매매’라는 단어가 보다 옳다고 생각하나 저자가 ‘매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만큼 이 글에서도 ‘매매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을 둘러싼 논란들은 어쩌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 관점들 모두는 나름대로의 강점들과 강점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매매춘 문제 하나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페미니즘 안에는 여러 갈래의 관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관점들이 매매춘을 추방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매춘 여성을 옹호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보다 대안적인 페미니즘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자생적으로 페미니즘의 흐름 내에 존재하는 모순점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대안점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가 취한 입장의 급진성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저자는 매매춘은 수량화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기존의 페미니즘 논의들은 매춘 여성의 입장이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매매춘을 기술하는 엘리트적인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매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기존의 도덕주의적 페미니즘이나 온정주의적 페미니즘의 경우, 매춘 여성을 위한다는 입장을 취하고는 있었으나 실제적으로는 매춘 행위를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지음으로써 매춘에 참여하는 여성들 역시 가치 폄하하는 점이 없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매춘 여성을 도덕적 교화의 대상이자 치료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매춘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매춘 여성이 포주에 종속적이 되고, 더 나아가 매춘 행위가 음성적으로 변질되는, 궁극적으로는 매춘에 있어서 여성이 소외되는 결과를 나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녀는 매춘의 역사를 고찰해 봄으로써 매춘이 결코 자본주의의 속성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해왔던 결코 사라지지 않을 제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매춘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매매춘 형태를 건전한 매매춘 형태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논의를 보면서 과연 바람직한 매매춘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는 남성들의 성적 욕구는 주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매매춘은 꼭 필요하다는 식의 귀결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고, 이의 충족을 위한 남성 매춘까지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춘 여성은 돈을 벌고 남성은 성적 만족을 얻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매매춘을 사먹는 음식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나름대로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어쩌면 그런 내 안에도 보수성이 잠재되어 있었던지, 그녀의 주장은 너무도 파격적으로 여겨졌다. 나로서는 매매춘에 참여하는 남성의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나 정신적 충격 등이 해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동시에 섹스가 구매될 수 있는 대상인지, 어떠한 정서적 유대감도 없이 금전적인 이유에 입각해 성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여성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쩌면 성과 관련된 담론들은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 주장에 근거한, 고리타분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이 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열린 마음 가짐이 필요할 듯 싶었다. 하지만 참신한 의견과 함께, 매매춘을 둘러싼 기존의 논의들이 지니는 모순점들, 역사 속에서 보여진 매매춘을 바라보는 관점들과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상세히 제시한 점은 마음에 든다. 어쩌면 매매춘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매춘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그녀들을 위한 무언가를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매춘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이며 동시에 (모든) 여성의 성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속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 매매춘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저자의 주장에는 힘이 실려 있다. 물론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자료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매매춘의 역사 변천의 흐름 등 저자는 그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문제의 해결책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단, 저자의 주장에는 많은 모순이 담겨져 있다. 저자가 페미니스트들의 모순성에 비판을 했듯이 저자 또한 애매모호한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문제의 접근방식과 해결책 사이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이 주관적인 견해로서 그 효력을 발휘하기 힘이든다. 즉, 많은 정보를 토데로 모순 투성이였던 이론들을 비판하는 것에는 성공하였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해결책의 근거는 빈약하고 문제의 핵심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려가면서 그것이 결코 틀린 생각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서도 일관성 없는 주장에 문제를 삼고 싶다. 매매춘의 페미니즘 그 새로운 담론에서 우리가 확실히 인지해야할 부분은 그것이 환경의 특성에 따라 존재유무가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이상의 인권유린을 저지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성 상품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인정되어서도 안된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그 존재유무가 어느 한 특성으로 인해 결정지어질수 없다는 것은 인간 그 존재의 깊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화 경향의 문화로서 그것을 비판할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당연한것이지만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을 알면서도 문제삼고 있는 것은 매매춘이 정당화된다거나 일상적인 환경속에 깊이 침투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이 옳고 나쁘고를 떠나서 새로운 도덕적 잣대를 다시 생성해야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도덕적 문제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들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내면적으로 내세우는 도덕성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정신을 지탱해주는 버팀목과 같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준 것이며 정체성의 한 일부분인 것이다. 성 노동자와 성 소비자 그것은 사회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포함되는 것 또한 아니며 소외되었다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지키기에는 아직 우리는 너무나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만약, 저자가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소비문화에 상관없이 매춘이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매춘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문화에 동참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이론적으로는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도덕의 잣대를 통해 매춘을 일반화 시키려한다면 그것 또한 더 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간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벽들을 허물어트리고 부작용을 발생시키지 않을 방안을 확실하게 내세우지 않는다면, 저자 또한 새로운 하나의 모순덩어리 페미니스트 이론을 정립시키려 하는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인격유린을 일부분 해소할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내세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저자는 깊은 관심과 앞으로의 노력을 통해 애매모호하지 않은 확실한 대응책을 마련할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이 매춘을 비판하는 글로 읽힐수도 있으나 난 단지, 그의 저서가 소외계층인 그들의 인격을 회복시켜준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이러한 비판을 통해 보다 좋은 문제 접근 방식을 가진 효율적인 강구책을 누군가 연구해보지는 않을까해서 몇 자 적어 본다. 지난 역사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현실에 맞는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이러한 연구에는 연구자의 냉정함과 올바른 시각이 가장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