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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글 속에 담긴 깊은 뜻과 따뜻한 정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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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일상에 독서와 글쓰기를 빼 놓기 힘들 것 같다. 자신만의 문집을 내는 일도 뼈대있는 양반의 책무 중의 하나였다. 정민의 <책 읽는 소리>는 선비들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일상을 조망해보고, 또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싫을 만한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의 '남아수독오거서'란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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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일상에 독서와 글쓰기를 빼 놓기 힘들 것 같다. 자신만의 문집을 내는 일도 뼈대있는 양반의 책무 중의 하나였다. 정민의 <책 읽는 소리>는 선비들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옛 사람들의 일상을 조망해보고, 또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싫을 만한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의 '남아수독오거서'란 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비들에게는 책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남의 책을 빌려 필서를 해 공부한 사례들이 많이 소개된다. 어렵게 구한 책인 만큼 읽고 또 읽어 아예 통째로 외워 버리는 식으로 공부했다. 얼마를 읽었다는 것보다는 책 속에서 발견한 한 구절을 일상에 체화되어 나를 통제하는 중심이 되는 그런 독서였다.

 

예전에는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리하여 옛 문헌설화 속에는 옆집 청년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처녀가 담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인지(鄭麟趾)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 사이로 그를 엿보고 흠모의 정을 품었다고 한다. 조광조(趙光祖)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낭랑한 독서성(讀書聲)에 반한 처녀가 담을 넘었다고 한다. 과장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독서의 또 다른 측면이 아닌가 싶다. 

 

고전의 바다에서 건져낸 구슬은 참으로 많다. 무엇보다도 독서의 목적이 지식의 획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는 대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일상에 녹여 삶의 구체적 장면장면에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옛 글들에 담긴 이야기를 저자의 해설을 통해 현대적 측면에서 돌아볼 수 있게 만든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이 넘쳐나도 손에 잡지 않은 오늘날의 세태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읽는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지하철에서 출퇴근하면서 손에 책을 펼치고 있는 장면은 많이 보고 싶다.

c******4 2023.11.20. 신고 공감 2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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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를 그리워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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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 내면 풍경’이다. 저자인 정민 교수가 옛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놓았다. 1부는 ‘옛 글을 읽는 까닭’으로 독서와 관련된 글들이다. 2부 ‘마음속의 옛 글’은 글의 행간에서 옛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인 3부 ‘옛 글과 오늘’에서는 옛 글을 오늘에 적용시켜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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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 내면 풍경’이다. 저자인 정민 교수가 옛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놓았다. 1부는 ‘옛 글을 읽는 까닭’으로 독서와 관련된 글들이다. 2부 ‘마음속의 옛 글’은 글의 행간에서 옛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인 3부 ‘옛 글과 오늘’에서는 옛 글을 오늘에 적용시켜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뭔가 유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독서를 하는 만큼 지식의 환전가치나 정보의 효용가치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옛 선비들의 백독백습 행위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보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사람의 통찰력이 함께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를 선택하고 판단하고 제어하는 능력이며 자신의 판단력을 키울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인식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라는 것이다. 이런 독서를 옛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왔는데 오늘날 우리의 독서가 정보 수집에만 치중되어있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은이는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정신을 부러워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통해 오늘날 물질만능의 세계를 비판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기와 도성, 두 스님의 이야기를 따라서 현풍 비슬산을 오르며 우정을 나누는 옛 사람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계산 되어 나오는 현대인들의 관계보다는 이렇게 인간의 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습을 동경하고 있다. 달빛에 취해 서로 친구를 찾아다니는 옛 선비들의 사귐을 그리워하며 오늘날 그런 사귐을 나눌 벗이 없음을 한탄한다. 옛 사람들은 굶주리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다산과 제자들의 의리를 읽으며 오늘날 그 정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모습에 민망하기만 하다. 마음으로 만나 마음을 나누는 옛 선인들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과 만족에 대한 옛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부족한 대로 만족한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한다.


나라의 녹 한 번 받지 않았던 선비 황현은 나라가 망하자 약을 먹고 자결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나라에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던 서민들은 구제 금융으로 나라가 휘청거리자 금반지를 뽑았다. 그러나 옛날이나 오늘날에도 권력을 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무엇을 내놓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저자가 이렇게 옛 글을 읽는 이유는 옛글을 통해 오늘을 들여다보고 좀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옛 글 속에 파묻힐 수는 없겠지만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려는 저자의 마음은 공감이 갔다. 책을 덮으면서 사마 천의 <사기>는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라 때 사마 천이 쓴 <사기>는 중국의 방대한 역사서지만 과거의 일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 역사라면 <사기>를 읽으며 인간과 세상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사마 천이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써내려갔다는 <사기>가 오늘날 내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저자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좀 더 나은 내면의 모습으로 나의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t******e 2013.03.26. 신고 공감 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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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그 소리 ‘책 읽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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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를 제외하곤 소리 내어 읽지 않는다. 책 읽는 소리라고 하니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스승은 옆으로 몸을 움직이며 제자들은 앞뒤로 몸을 움직이며 천자문을 읽고 외우는 모습. 집이 가난해도 책 읽는 소리에 힘을 냈다던 옛 어른들의 말에 마음이 짠해진다. 도서관에서 아이들 책을 읽은 후에 내가 읽을 책을 빌리고 싶어서 훑어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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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를 제외하곤 소리 내어 읽지 않는다. 책 읽는 소리라고 하니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스승은 옆으로 몸을 움직이며 제자들은 앞뒤로 몸을 움직이며 천자문을 읽고 외우는 모습. 집이 가난해도 책 읽는 소리에 힘을 냈다던 옛 어른들의 말에 마음이 짠해진다. 도서관에서 아이들 책을 읽은 후에 내가 읽을 책을 빌리고 싶어서 훑어보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좀 적나라하고 재미있어서 휘리릭 보는데 낯익은 이름들이 나와서 빌렸다. 한문학이 어떻게 우리 시대와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늘 고민하는 한국한문학 박사 정민님의 책이다.

 

독서와 관련된 글을 모은 옛 글을 읽는 까닭옛 글의 행간에서 옛 사람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본 마음 속 옛 글고전을 오늘의 삶과 이어보려는 생각을 간추린 옛 글과 오늘3가지로 나눠서 옛 글과 그의 생각을 담았다. 옛 글 속에 담긴 순수함과 일침을 가하는 교훈도 들어있는데 옛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책의 고마움과 그들의 생활을 느끼며 나의 독서 습관과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글머리에도 나오고 본문에도 나오는 연암 박지원의 글에 ('창애에게 답하는 글') ‘눈 뜬 장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20년 만에 눈을 떴는데, 사물을 보면서도 오히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 길에서 우는 그에게 화담 서경덕선생이 도로 눈을 감으라고 말한다. 육체의 눈이 열리는 순간 마음의 눈이 닫혀버려 기쁨이 망상을 일으켰다고 한다. 반대로 나이 마흔에 시력을 잃게 된 정재중에게 이용휴는 사물을 보는 육체의 눈은 멀었으나 이치를 보는 마음의 눈이 열렸으니 이치를 살펴 더욱 밝아질 거라고 했다. 난 눈이 나쁜 편이다. 그래서 발달한 게 코와 귀다. 냄새를 잘 맡고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 부디 내 마음의 눈이 닫히길 않길 바란다.

(연암 1735-1805, 창애 유한준 1732-1801. 화담 1489-1546)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조선 후기 문장가, 홍길주 수여방필

재주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거나 글의 뜻은 알지 못하고 그저 읽기만 잘하는 독서를 꾸짖는다.

책을 덮은 뒤에 그 내용이 또렷이 눈앞에 보이면 이것이 산 독서이고, 책을 펴놓았을 때에는 알았다가도 책을 덮은 뒤에 망연하면 죽은 독서다.

김창흡 예원의 열 가지 즐거움

아이와 나를 위해 육아 교육서를 읽거나 자기 계발서를 읽는데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막상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고 나면 잊는 적이 많다. 아이고..

 

부모의 올바른 행실이 자식을 훌륭하게 만들었다는 글을 읽으며 독서만 강조하는 글이 아닌 부모의 도도 일깨운 그들의 마음을 읽었다. 또한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 마재로 돌아갈 정약용은 다산초당의 제자들과 다산계모임을 결성하고 다신계절목사람이 귀한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지내며 즐거워하다가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잊는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가 나온다. 시간이 흘러 찾아온 제자들에게 다산초당의 근황을 묻는 다산에게 강진은 유배지이상의 의미를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문득 나와 같이 회사를 다녔던 오래 전 동료들이 생각난다. 퇴사 후 1년 이내에는 서로 연락을 하지만 점점 뜸해지다 이젠 연락도 안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어디에서 뭘 할까? 반면에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물론 옛 선비들처럼 책만 읽고 사회와 담을 쌓으며 살라는 이야기는 아닐 거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지식을 얻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 일의 중심을 더 생각하라는 말이리라. 물질의 풍요는 지금만 못하지만 정신만은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말을 아껴 언어가 지닌 맛을 음미할 줄 알았던 선인들의 모습, 제주도에 유배 된 추사를 위로하기 위해 청나라에서 구입한 신간서적을 보낸 이상적과 추사가 그린 세한도의 사연은 자기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좀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연암의 소단적치인에 대해 작가는 직접 적이 보지 않더라도 먼 곳의 봉화를 보면 적이 쳐들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글쓰는 이의 의도가 십분 전달되는 글을 써야 하며, 같아지려고 하되 다름을 추구하여 나의 목소리, 나의 개성을 담으라는 상동구이의 정신과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새긴다.

 

사족: 책의 앞 날개에 표지화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책이 쌓여있고 한 사람이 글을 쓰는 모습이 나오는데, '道理'를 도안으로 그린 중국의 장식문자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꾸 걸아가면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된다. 삶의 바른 이치는 책 속에 있다. 책 속으로 걸어들어가 책 속에 길을 내자.

표지에서도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다. 이 책을 읽어서 참 마음이 가볍다. (리뷰가 너무 길어졌네..)



s******a 2012.06.04. 신고 공감 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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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옛 글, 소리내어 읽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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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가끔 시는 소리내어 읽어보곤 했는데 요즘 거의 시도 안읽어 소리낼 일이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소리내어 읽을 때는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다. 눈으로 책읽기도 그렇지만 읽어주는 것도 하면 할수록 는다. 아무리 재주가 굼뱅이라도^^   옛 사람들은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한번이 아니라 수백번, 김득신 같은 양반은 수만번을 읽었다. 책을 통째로 외워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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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가끔 시는 소리내어 읽어보곤 했는데 요즘 거의 시도 안읽어 소리낼 일이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소리내어 읽을 때는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다. 눈으로 책읽기도 그렇지만 읽어주는 것도 하면 할수록 는다. 아무리 재주가 굼뱅이라도^^

 

옛 사람들은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한번이 아니라 수백번, 김득신 같은 양반은 수만번을 읽었다. 책을 통째로 외워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오로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외우고 또 외운 셈이다. 우리가 지금 소리내어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외울 필요가 없는 탓인 듯 하다.

 

밤마다 책읽는 소리에 규방의 처녀들은 가슴 설레었고 참다 못한 그네들은 한밤중 담을 넘기도 했다. 어떤 선비는 냉정하게 꾸짖어 돌려보냈고, 어떤 선비는 처자를 달랜 후 정식으로 청혼을 넣겠다고 타일렀다. 앞의 선비는 조광조고, 뒤의 선비는 정인지다. 정인지는 치사하게 이사를 가버렸고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었단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용감한 여인을 받아들일 배짱은 없었나 보다. 내가 보기엔 책을 부지런히 읽은 걸 보아 분명 저 선비가 장원급제 할 것같아 장래성을 보고 모험을 한 똑똑한 여인들이 분명한데^^

 

누가 우리네 아버지들을 정 없다 했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만 하는 아버지, 아내와 자식에게 무뚝뚝하고 훈계만 하는 아버지는 실상 산업화가 낳은 산물인 듯 하다. 산업현장에서 목숨바쳐 일해야 할 정도의 노동강도에 시달리던 아버지들은 집에서 웃음지을 여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옛 아버지들을 보라.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노심초사 아이들 걱정하며 사사로운 것까지 이르고 타일렀다. 어떤 선비는 죽은 자식의 어릴적 이야기를 남겨 놓기도 했다. 그 글을 쓰며 얼마나 많이 아프고 슬퍼겠는가. 차마 쓰고 싶지 않을 터지만 그렇게라도 자식의 흔적을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글을 보면서 옛 사람들의 삶을 본다. 죽어라 책읽는 모습,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기뻐하는 모습, 달밝은 밤 친구 찾아 나들이하는 모습, 매화꽃 보며 기뻐하는 모습 등등. 저절로 천천히 읽게 되고, 인용 시구는 소리 내어 읽어본다. 글을 읽다 보면 옛 사람들을 닮고 싶다.

 

정민 선생님의 책은 읽을 때마다 100% 만족한다. 우리 문학의 깊~은 우물에서 길러낸 글은 충분한 품격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박지원의 글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새롭고 유효하다. 정민 선생님을 통해 역사속 박지원이 아니라 탁월한 천재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박지원을 알게 되었다.



n****5 2010.12.06.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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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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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글 솜씨는 정말 좋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한문 속에서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글귀를 쏙쏙 뽑아내셨는지. 옮겨 쓴 글을 읽으면 엣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높은 기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옛날 사람들은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을 요상스럽게 생각하여 낭랑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멋있게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그 총각에게 반해 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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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글 솜씨는 정말 좋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한문 속에서 어쩜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글귀를 쏙쏙 뽑아내셨는지. 옮겨 쓴 글을 읽으면 엣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높은 기상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옛날 사람들은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을 요상스럽게 생각하여 낭랑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멋있게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그 총각에게 반해 담을 넘게 된 처녀의 이야기에서 책 제목을 뽑으셨나보다. 집안 깊숙한 곳에서 바깥구경 못하고 갇혀 지내기만 한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옛날 처녀들은 오늘날 아가씨들 못지않게 활달했었나보다. 책에서 얻은 정보는 물질의 이익이 아니라 삶의 내적충실을 높이는데 사용하였던 선조들과 비교하여 실용서적이 판치는 요즘 세태의 가벼움을 꼬집기도 하고 관찰과 메모를 중시하여 소중한 기록을 남긴 선조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는 빈핍했지만 짧은 편지도 소중히 여겨 간직하며, 여유롭고 깊이 있는 사귐을 나누었던 옛사람들의 사귐이 부럽다. 글쓰기 방법에 대한 옛글을 다루면서 잠깐 일본 사람이 남긴 글로 건너가기도 하지만, 우리의 당면한 혼란을 ‘여기에 사는 우리가 저기의 방법을 익히고, 지금을 살면서 그 때의 생각을 잊은 데서 비롯된다’며 끝맺는다.
g***d 2005.02.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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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 속에서 그 사람을 천번 백번 찾았네(衆裏尋他千百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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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저자의 책이다. 그의 책, 그의 글은 부담스럽지 않다. 편하다. 그러면서도 감동이 있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우리 이야기여서 그런 걸까?(물론 중국 이야기도 많고,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일본 이야기도 나오지만, 동일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라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까?) 더 쉽게,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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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저자의 책이다. 그의 책, 그의 글은 부담스럽지 않다. 편하다. 그러면서도 감동이 있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우리 이야기여서 그런 걸까?(물론 중국 이야기도 많고,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일본 이야기도 나오지만, 동일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라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까?) 더 쉽게, 더 많이 감동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며 점점 더 옛 어른들의 ‘선비’ 정신이 그리워진다. 무릇 ‘공부’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못내 마음 아프다.

 

아, 그리고... 한문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글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고전의 바다 속에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구슬이 너무나 많다.”(9) 아, 아름다운 표현! 그리고 동감되는 ‘사실’!

 

2.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읽어보니 중세 유럽에서도 책은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었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가 묵독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눈으로만 읽은 묵독(黙讀)은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요사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18) 암브로시우스의 묵독 이야기는 어디선가 보았는데... 찾아보니 C. S. 루이스가 쓴 [개인 기도]에 나오는 대목(71p)이다.

 

3. 옛 선비들의 독서와 독서의 목적 “옛 선비들에게 있어서 독서란 곧 세상을 읽고 나 자신을 옳게 아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책에서 얻는 정보는 물질의 이익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삶의 내적 충실을 높이는 데 쓰였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삶의 극적인 전환,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서 독서는 언제나 큰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자기 합리화의 그럴듯한 변명을 제공하는 대신, 대의의 길을 당당히 걷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는 그대로 내 삶 속에 체화(體化)되어 나를 간섭하고 통어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25, 44) 오늘날 대중의 독서와 그 목적은 어떤가? ...

 

4. “‘우리 같은 무리는 단지 물 마시고 밥 먹고 잠만 퍼잘 뿐’이라고 부끄러워했다. 그의 부끄러움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37) - 부끄러운가... 부끄러워하는가?... 부끄러움 없는 시대...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이만부의 [부끄러움을 닦는 법]이라는 글은 원문이 모두 98자인데 이 가운데 부끄러울 치(恥)자가 무려 35회나 나오는 재미있는 글이다. 장난끼가 잔뜩 담겨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전체를 다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그 중 첫 머리만 잠깐...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하략)”(145)

 

5. “일제 시대에 나온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는 지금도 대학 교수들이 주석을 달아 수업교재로 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가 20대에 학부 졸업논문으로 쓴 것이다.”(45) - 놀람! 오늘날의 교육과 당시의 교육... 재질의 차이도 있을까?...

 

6.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상에는 인간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만 있고, 인간에 관한 책은 없다’고 통탄했다.”(46) - 마치 J. I. 패커가 [Knowing God]에서 하나닝에 대해 아는 것(Know about God)과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은 다르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우리는 늘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부수적인 것’에 집착한다.

 

7. 재주, 부지런함, 그리고 깨달음! “어떤 사람은 간신히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종이를 펼쳐 붓을 내달리면 쟁그랑 소리를 울리며 환히 빛나, 만권의 책을 외우는 자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한다. 간혹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어도 식견이 늘지 않고 저작에 볼 만한 것이 없으며, 한 사람은 반 너머 잊어버렸지만 그 핵심 되는 알맹이는 모두 섭취하여 폐와 간에 깃들여 이를 펼쳐 글로 지으면 이따금 방불하게 되곤 한다. 어째서 그럴까? 재주는 부지런한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47) - 정말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이치! 적게 읽는 것보다 많이 읽는 것이 더 낫기야 하겠지만, 깨달음이 없다고 한다면야...

“오직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손 가는 대로 펼쳐 봐도 핵심이 되는 것에 저절로 눈이 가서 멎는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단지 십 수 장만 따져보고 그만둘 뿐인데도 그 효과를 보는 것은 전부 읽은 사람의 배나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두세 권의 책을 읽고 있을 때에 나는 이미 백 권을 읽고, 효과를 보는 것 또한 나보다 배가 되는 것이다.”(48) - (앞의 문장과 여기 나오는 문장은 홍길주의 글이다.) 그런 사람!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신의 독서 방법, 혹은 연구 방법을 소개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한번 죽 훑으며 단락의 첫 문장들 위주로 본 후에, 다시 읽으면 중요한 부분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성(悟性)이 열려야 한다. 깨달음 없이 그저 독서 목록만 추가한다면 그야말로 한갓 읽기만 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일 뿐이다. 오성은 재주만으로는 안 되고 노력이 없이는 더더욱 안 된다. 깨달은 사람의 독서는 다르다. 그냥 훌훌 넘겨도 책 한 권의 양분을 온전히 섭취한다. 멍청한 사람의 독서는 다르다. 밑줄을 쳐 메모를 해가며 읽어도 읽고 나면 머릿속이 휑하니 남는 게 없다.”(49) - 이는 저자의 설명이다. 이 설명으로 본다면 다카시의 경우를 홍길주가 제시하는 경우와 일치시키는 것은 좀 어려울 듯 하기도... 단지 외적인 흡사함 뿐일까?

“세상에서 말하는 도술(道術)이나 문장이라는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진실로 능히 깨닫기만 한다면 지난날 하나를 듣고 하나도 알지 못하던 자가 열 가지 백 가지를 알 수 있다. … 옛날에 천권 만권의 책 속에서 찾아 헤매던 것이 한두 권만 보면 너끈하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의 방법은 방향도 없고 실체도 없다. 잡을 수도 없고, 묶어둘 수도 없다. … 옛날에 성련이라는 사람이 바다의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다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로 그랬다. … 대개 성련의 깨달음은 열 해 동안 깊이 생각한 힘으로 된 것이지, 하루아침 사이에 어쩌다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깨달으라고 권하기보다는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낫다. … 도술과 문장을 사모하는 것은 우러러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 못하다.”(50, 51) - 김택영의 글이다. 깨달음의 효용과 그 예, 그리고 그것의 적용에 대한 내용이다. 특별히 깨달음과 생각을 연결시킨 것은 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들어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생각은 깨달음을 위한 기초적인 요건이 된다는 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8. 산 독서 vs 죽은 독서 “그(김창흡)은 독서에는 산 독서와 죽은 독서가 있는데, ‘책을 덮은 뒤에 그 내용이 또렷이 눈앞에 보이면 이것이 산 독서이고, 책을 펴놓았을 때에는 알았다가 책을 덮은 뒤에 망연하면 죽은 독서’라고 말했다.”(53) - ‘깨달음’을 말한 것이라 보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고 그것의 ‘암기’도 함께 의미하고 있는 듯... 그만큼 당시의 독서법과 우리의 독서법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읽는 방법에서도(당시에는 모든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도(우리의 ‘이해’라는 것과 당시 사람들의 ‘암기’와 동일한 ‘이해’)...

 

9. 기록에 대한 애착 “기록에 대한 선인들의 집착은 때로 병적으로 보일 정도다. 편지를 써도 꼭 한 벌을 따로 베껴두었다. … 요즘 어느 누가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를 복사해둘까?”(65) - 예전에 편지를 즐겨 쓸 적에는 복사해 둔 적도 있었다. 또 요즘 메일의 경우는 보내면서 보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기록에 대한 ‘집착’ 또는 ‘애착’은 배울 필요가 있는 듯...

 

10. 자기 작품을 아낌에 대하여 “훌륭한 작가만이 자기 작품을 아낀다. 자기가 아끼지 않는데 어떤 독자가 그 작품을 아끼겠는가?”(68)

 

11.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라는 글(79-)은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시집가는 딸이 베껴서 가져가고 싶어 했던 소설책,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채 못 베낀 것을 아버지와 사촌 동생, 친 동생과 조카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필사하여 보낸다. 그리고 거기 덧붙인 편지 끝의 한 마디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저자는 잘 묘사해 놓았다.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뒤늦게 친정에서 보내온 이 책을 받아든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때 소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책일 수가 없다. 그리운 아버지, 보고 싶은 동생과 친정 식구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필사기가 적힌 마지막 장에는 그녀의 눈물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부모의 이런 마음이 딸에게는 그 힘든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붓으로 베껴 쓴 옛 소설책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다.”(82)

백광훈이 자녀들을 훈계하며 쓴 편지는 따끔하지만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듣자니 너희가 자못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고, 또 남의 허물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더구나. 사람이 배우는 것은 다만 이러한 병통을 없애려 함인데, 이제 너희가 만약 정말로 이와 같다면 비록 만 권의 글을 배워 곧장 과거에 급제한다 해도 그 사람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놀라고 절통하여 죽고만 싶구나. 이후로도 너희들이 이 같은 버릇을 딱 끊지 못하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들을 보지 않겠다.”(86)

 

12. 저자의 글 가운데 ‘박지원’에 대한 글이 띄엄띄엄 나온다. 그의 식견, 그의 탁월함, 그의 인물 됨... 예전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솟아오른다!

“늘 빽빽한 한자의 숲 속에 산다. 옛 글 하면 고리타분한 생각부터 든다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그 속에서 노는 나는 사람 냄새 물씬하고, 때로 죽비로 뒤통수를 내려치는 듯한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에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을 때마다 사람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하는 글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글이 그렇다.”(95) 그리곤 ‘빛깔과 때깔’에 대한 박지원의 글과 그에 대한 디자인과 교수의 지적을 소개한다. 그것은 ‘명도와 채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비들의 가난한 삶, 집안의 물건들과 심지어는 책까지 팔아서 끼니를 이어야 했던 모습을 그리면서도 박지원을 언급한다. “며칠을 굶다가 이대로는 굶어죽겠다 싶어 못쓰게 된 각기소리라도 팔아먹을 생각으로 집어들다가, 우레소리에 놀라 그나마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박지원이나 이덕무나, 아니 김용준까지도 책을 팔아 밥을 먹던 가난은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그 절대 궁핍 속에서 그들은 찬연한 문학의 꽃밭을 일구고, 학문의 열매를 맺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나는 무언가? 아! 부끄럽구나.”(117) - 그렇다! 부끄럽다. 나 역시도...

저자는 책의 말미(‘글뒤에’)에서 다시 한 번 박지원과 에코를 비교하여 말한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가서 코끼리를 처음 대면하고 받은 충격에 대해 쓴 [상기(象記)]를 읽었다. 코끼리라는 기호를 통해 우주 만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한 글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보니 낙타를 두고 비슷한 내용으로 쓴 글이 있다. 250년 전 연암의 논리가 현대 서구의 기호학자의 입에서 앵무새처럼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에코에게 연암의 이 글을 읽게 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글을 읽는 내내 이러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252) - 우리는 우리 것 보다 남의 것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저자는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주장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잘 지적해주고 있다. 무조건 좋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좋은지 나쁜지에 앞서 무엇이, 어떤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13. 신의! 사람 vs 짐승. “사람이 귀한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지내며 즐거워하다가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잊는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123)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가 풀려 강진을 떠나면서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한 말이다. 저자는 다산의 제자들이 어떻게 매년 그를 찾아뵈었는지를 소개한다. 참 부러운 모습이다. 함께 있을 때는 즐겁게 지내지만 헤어진 후에는 연락조차 없고,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사람과 짐승...

 

14. “일단 소음에 길들면 가끔씩 찾아드는 정밀(靜謐)의 시간이 오히려 감내하기 어렵게 되는 모양이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도리어 불안하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미덕을 잊은 지 오래다. 내가 나를 만나본 지가 언제였던가?(169, 170) - 기독교의 수도자들이 외로움과 고독을 분별하여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난다.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허전함이지만, 고독은 스스로 찾는 홀로 있음이다. 후자는 때때로 가져야 하는 것이요,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는 좋은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정밀의 시간’이다.

“명나라 진계유는 [안득장자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뒤돌아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170) -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미쉘 꽈스트 신부의 [삶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나오는 ‘전화’라는 글이 떠오른다. 전화를 끊은 후에야 상대방이 왜 전화했을까를 떠올렸다며, 자기 말만 주절거린 것을 회개하는 기도문 형태로 쓰여진 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겠지...

 

15. “뭇사람 속에서 그 사람을 천번 백번 찾았네(衆裏尋他千百度)”(172) - 저자는 이 말이 ‘고인의 시구’라고 소개하면서, 연구실에 이 글씨의 전각을 표구해서 붙여놓았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만남을 기다리면서... 짧은 글이지만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아니, 내 심장에 날아와 콱! 꽂힌다! 내게도 그런 만남이 있기를...

그러면서 저자는 이용휴를 찾아간 이단전, 그리고 황헌지가 찾아갔던 양흔이라는 소년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곤... “법은 이렇게 전해져 왔다. 스승과 제자의 그 아름다운 만남을 이제 어디서 찾을까? 겨울비 내리는 연구실에 앉아 뭇사람 속에 숨어 있을 그 한 사람을 기약없이 나는 기다린다.”(174) - 아!

 

16. 아내가 달인 약은 양이 일정치 않아 화를 내고, 첩이 달인 약이 양이 일정하자 사랑했는데, 첩은 양이 많으면 땅에 쏟고 적으면 물을 탔다는 이야기. 역시 박지원의 [마장전]에 나오는 이야기다(197). 연암이 가르치는 아첨의 3단계. 상첨(上諂)은 겉으로 무관심한 척하면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 중첨(中諂)은 비위에 맞는 말을 하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하첨(下諂)은 하는 말마다 옳고 하는 일마다 훌륭하다고 하는 것(197-198). 재미있는 분류다.

 

17.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프랑스의 수학자 푸앵카레라는 사람의 “창조란 버섯과 같다”는 말을 인용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송이버섯은 생장에 좋은 조건이 계속되면 결코 포자를 만들지 않고 뿌리로만 살아가다가 노화해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급격한 온도의 변화 등 갑작스레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제서야 포자를 만들어 계속 발전해나가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송이버섯 중에는 5백년이나 뿌리 상태로만 있다가 말라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201) - 저자는 이제 슬슬 일본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 사람치고 일본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편견’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도 양심적인 이들이 있으니까.

저자는 ‘일본 고전 산문의 매력’에서 요시다 겐코, 나카노 고지, 마츠오 바쇼, 사이교 법사 등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선조들의 이런 해맑은 정신을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따뜻한 마음을 지녔던 이웃에게서 섬뜩한 전제주의의 광기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왠지 좀 슬프다.”(214).

 

18. ‘달랠 길 없는 마음’이라는 내용은 저자의 표현처럼 ‘뭔가 말하기 어려운 마음의 무늬’를 느끼게 된다. 슬프면서도,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리고 묘한... “일본의 와카나 하이쿠에는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있다. 한국의 한의 정서와 비슷하기도 하고, 꼭 같지도 않은 무언가 뭐라 말하기 힘든 마음의 무늬가 있다. 며칠 앓느라 마음이 맑게 비어서였을까? 오늘 따라 더 애잔하게 읽힌다.”(215) - 꽤 오래 전에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하네다 노부오의 [겨울부채]와 아이다 슈이치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를 읽고는 하이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류시화가 편역한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하이쿠 모음집도 사놓았었는데 읽지는 못하고 있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하이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느낀다. 특히 [바쇼의 하이쿠 기행]이라는 책에 관심이 많이 갔다.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19. 꿈과 현실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말했다. ‘꿈은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라고.”(231) -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20. ‘글쓰기와 병법’(232~)은 이 책의 마지막 꼭지다. 그는 여기에서 현대의 ‘논술’ 교육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독서’에 대한 책을 ‘글쓰기’에 대한 짧지 않은 이야기로 끝맺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읽기는 결국 쓰기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둘은 순서가 반대일 뿐이요, 그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그의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심심치 않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21. 몇 가지 일화들...

 

1) 김득신 “머리가 나쁘기로 유명했던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열전’을 1억1천1백번이나 외워, 그 호를 억만재라고 했다. 옛날에 1억은 10만을 나타내는 숫자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글을 외웠다. 그렇게 많이 외운 ‘백이열전’을 중간에 깜빡 잊어버렸다. 그러자 곁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하인이 막힌 부분을 잊어버렸다. 하도 많이 들어 뜻도 모르고 외운 것이다. 머쓱해진 김득신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 내 대신 말을 타고 가라며 종을 태우고 자신이 고삐를 잡고 갔다.”(16) - 해학!

 

2) 화담 “화담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의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면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138-139) 이는 박지원이 ‘창애에게 답하는 글]이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설명을 단다. “도로 눈을 감으라는 말은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뜻이다. 그저 장님 주제로나 살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눈이 닫히면, 육체의 눈은 있으나 마다 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 눈을 뜨자 정말로 장님이 되어버린 장님과, 장님이 되고서야 마음의 눈을 뜬 장님 중 누가 더 나은가? 나는 혹시 길에서 울고 있는 눈 뜬 장님이 아닐까?”(139) - 깨달음!

 

3) 관아재와 겸재의 이야기 “관아재 조영석과 겸재 정선은 모두 유명한 화가가. 한번은 관아재가 겸재에게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저 문설주 위 빈 곳에 언제 그림 하나 그려주시지요.’ ‘그럼세.’ 그러고는 그려달란 사람이나 그려주겠단 사람이나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꽤 시간이 흘렀다. 달빛 훤한 어느 겨울 밤, 겸재가 막내아들을 앞세우고 불쑥 관아재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쓰다 달다 말없이 하는 말. ‘벼루에 먹을 갈게. 내 오늘 전날의 약속을 지키러 왔네.’ 그러더니 문설주 위에 몰아치듯 붓을 휘둘러 절강의 가을 순식간에 그리는 것이었다. 그 필세가 어찌나 기이하고 장하던지, 붓끝에서 우르르 쾅쾅 파도가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림을 마치고 붓을 던지자, 이번엔 관아재가 그 붓을 들어 그 곁에 썼다.”(140~) 그러곤 저자는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더 실감나게 상황 설명을 다시금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 설명 중에 뜬금없이 “이튿날 이 소문을 들은 이병연이 그림을 구경하겠다고 찾아와서 시 한 수를 더 남겼다.”(142)고 써놨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순간 화선지에 먹물 번져나가듯 번지는 ‘부러움!’ 그립다. 이런 사람들!

 

4) 김종서와 황희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천성이 뻣뻣하여 그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우곤 했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 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한 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내가 육진(六鎭)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네.’ 정식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그 한마디가 이 강골의 장수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165) - 황희의 그 기지!

 

5) 매천 황현 “1910년 8월, 한일합방의 소식에 음식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전남 구례 월곡리의 집에서 ‘나라가 선비 기르기 5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 죽는 자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라!’하는 유서와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아편덩이를 삼켜 자결하였다.”(176) - 아! 가슴 깊이 / 굵은... 길따란 / 살이 날아와 / 푸~ㄱ / 박히는 듯! / 무어라...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겨우 ‘기개!’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곤 뒤에 나온 루쉰의 글(179)을 보며 마음이 더 아팠다. “사실상 나라가 망할 때마다 순국하는 충신이 몇 명씩 늘어나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옛것을 되찾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직 그 몇 명의 충신들을 찬미할 뿐이다.”(179)

j*****n 2008.01.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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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도서 리뷰 - 책 읽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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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기 보다는 가끔씩 책을 사는 걸 즐겼다. 내가 산 책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번 달, 정신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꽂아뒀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 처음이 "책 읽는 소리" 였다. 글머리에 저자가 남겨놓은 글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 옛 글의 숲에는 여러 갈래 길이 많다. 아무도 가지 않아 가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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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기 보다는 가끔씩 책을 사는 걸 즐겼다.

내가 산 책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번 달, 정신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꽂아뒀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 처음이 "책 읽는 소리" 였다.

글머리에 저자가 남겨놓은 글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 옛 글의 숲에는 여러 갈래 길이 많다. 아무도 가지 않아 가시덤불로 막힌 길이지만, 덤불을 헤치면 지금도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난만하게 피고 진다. 그 향기의 한 자락을 더불어 나누자는 것이다. 그 맛난 과실을 함께 한 입 베어 물자는 것이다." 

책을 통해 옛날과 지금, 현재와 미래, 나와 다른 세상 세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책을 읽는 것 같다.

책 중에 많은 고전 소설 속 내용과 문구 중,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라는 임경업전 필사본에 적힌 어느 한 아버지의 필사기가 생각이 난다. 이처럼 책 한권에도 단순한 이야기 하나가 아닌 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YES마니아 : 로얄 l******n 2022.10.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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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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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깨달음 없이 그저 독서 목록만 추가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더 큰 확신이 생겼다. 올 한해 나의 독서를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은 허무감이였다. 작년보다 많은 책을 읽고 나름 대로 열심히 독서했다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함에서 오는 진부함, 그리고 도능독의 독서 때문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읽으리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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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는 깨달음 없이 그저 독서 목록만 추가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더 큰 확신이 생겼다. 올 한해 나의 독서를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은 허무감이였다. 작년보다 많은 책을 읽고 나름 대로 열심히 독서했다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함에서 오는 진부함, 그리고 도능독의 독서 때문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던 시간은 쉬엄 쉬엄 하자는 마음으로 굳혔고 사색하며 독서 하기를 갈구하고자 내년의 독서 양은 목표를 잡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나의 독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옛 선인들의 독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독서라기 보단 암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한권의 책이 수 백권의 책을 능가한다는 걸 알기에 선인들의 독서에 감히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양이 아닌 질이 중요하다는 것에 어찌 책도 예외가 아니겠는가. 책을 통째로 외우되 무작정 책 내용만 줄줄이 늘어 놓는 것이 아닌 책 속에 담겨 있는 진리와 깨달음을 위해 평생 학문에 정진하는 옛 선비들의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칼칼한 감동을 주었따. 평생 하는 일이 학문탐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비들이 책과 함께 정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그 정도의 독서와 탐구는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 선비들의 모습을 보며 학문은 양반들과 지식층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파생의 것이 그 외의 신분들이였다. 그 외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리고 서러움과 다가갈 수없는 소유일 수도 있다. 지식이 소유일 수 있겠냐만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옛날 처럼 책은 지식층의 소유가 아니고 학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앎에서 오는 과시는 현존하기에 소외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있어 책 내용과는 멀게 씁쓸함이 든 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잠시 제쳐두고 선인들의 독서와 그 안에 깃든 내면의 모습과 고전과 현대를 이어 보려는 저자의 의도 속을 좀 더 여행해보자. 총 3장으로 나뉜 책 속의 선인들과 고전 그리고 그에 얽힌 수 많은 이야기와 의미는 내게 참 신선했다. 책의 겉모습만 보고, 책을 대충 훑어보고 바로 고리타분함을 느낀 내게 ''책''이라는 그 자체가 나를 이끌어 읽었던 것인데 한국 고전과 옛 것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 역할의 가장 큰 묘미는 저자의 정갈한 해석과 문체였을 것이다. 우리가 위해하기 쉽게, 현 시류에 맞게 펼쳐놓은 고전은 나를 책 속에 빨려들게 만들었다. 고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옛 선인들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밀려왔다. 공자는 독서의 유익함 가운데에서 근심과 번뇌를 없애 준다고 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즐거움에 풍덩 빠졌던 것이다. 깊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 책을 읽었고 독서에 심취하였던 선인들을 보면 동질감을 느낀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따. 그들이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그 주역은 책이였고 책을 통한 생각의 흘러옴이였다. 책과 일치된 내면의 아름다움은 책 그 자체였고 때론 그 보다 더한 넘침이였다. 그 넘침을 주워 담는 것만도 행복에 겨웠으니 책을 멀리 할 수가 있을까? 책의 2장 3장은 내가 느끼었던 감동에서 조금씩 벗어나 책 속의 소소한 느낌과 선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였지만 자연스레 동화되어 간다. 오히려 책 속에서 그렇게 많은 걸 발견하며 전달해주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저자가 고마울 정도였다. 고전은 좋아하면서도 외국의 고전에만 빠졌을 뿐 우리의 고전은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말도 안되는 편견 속에서 멀리 하였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도 우리고 가장 사랑할 사람도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전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와준 선인들의 독서는 한국의 고전을 사랑할 수 있는 만남의 장까지 열어주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고전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이 지속되길 바란다.
s****m 2006.1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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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서 갈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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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시대에 상담사로 일하면서 아이들 과외 공부도 좀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이 준비가 미흡하다. 얼마 전에는 국사 문제 중에 최익현이란 이름이 나왔는데 물어 보는 아이들에게 대뜸 한다는 소리가, “ 나도 모르지” ~~@@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박광호가 향숙이가 죽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다는 예의 그 특유한 목소리로 따라쟁이가 되버렸다. 얼마나 창피하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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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시대에 상담사로 일하면서 아이들 과외 공부도 좀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항상 이 준비가 미흡하다. 얼마 전에는 국사 문제 중에 최익현이란 이름이 나왔는데 물어 보는 아이들에게 대뜸 한다는 소리가, “ 나도 모르지” ~~@@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박광호가 향숙이가 죽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다는 예의 그 특유한 목소리로 따라쟁이가 되버렸다. 얼마나 창피하고 무안하던지 준비도 안하는 선생이라고 혼쭐이 났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길에 읽었던 책 읽는 소리. 아뿔싸. 하루만 먼저 읽었더라면 그런 창피는 안당했을텐데..하면서 속이 쓰렸다. <책 읽는 소리>는 정민 선생님이 한시를 읽으면서 또는 성현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을 수필식으로 엮은 책이다. 그곳에 연암 최익현 선생이 죽기 전에 쓴 글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고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한문은 더더구나 싫어하는 나로서는 정민선생이 왜 인기가 있을까 하면서 구입한 책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손이 안 갔고 집에 사 놓은 책이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었을때 손에 들게 된 것이다. 구입한지 4달만의 일이었다--; 책 속에는 책을 읽는 참맛을 알게 해 주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고서를 접하는 것에 대단한 두려움이 있던 나로서는 그랬다. 최익현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통국했던 매천 황현에 대한 글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구는 한일합방 직후 “나라가 선비 기르기 오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사람 죽는자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랴!” 하고는 절명했다. 죽기 전에 약을 입에 세 번 대었다가 뗀 자신을 질책하며 “ 내가 이다지도 어리석었던가” 했을 때는 내 가슴이 울컥했다. 매천 황현이 나라의 녹도 제대로 받지 않고 평생 비평자로서, 아첨하지 않고 고고히 책을 쓰다가 돌아가셨던 분인데, 나라의 운명을 통탄해 돌아가신 것이 우리 시대에는 누가 될 수 있을까 생각게 했다. 문득 문신부님이 부안에서 14일째 단식하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노란 옷을 입으면 전경들이 찍어 죽인다고 해서 일부러 입고 다닌다고 하시면서, 광주 사태나 다름없다는 부안에서 쓰러져가는 나라를 위해 단식투쟁을 하시고, 약한자 힘없는 자들과 함께 하시려는 그 분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그런 분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200억이니 100억이니 정치비자금 소식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울산 한 공무원의 3억에 가까운 뇌물수수에 대한 재산 몰수는 더 이상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도 어떻게 이런 난국의 상황을 분석해야 할지, 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리지만, 황현 선생의 ‘절명시’는 자꾸만 부끄럽게 만들었다. 또 있다. 명나라 진계유의 安得長子言 중에 “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뒤돌아본 다음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 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졸업 후에 진로를 결정하기 못하고 서성거리는 나를 위해 침묵 명상을 몇 번했다. 마음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옆에서 동생이 뒤척거리기라도 한다면 침묵명상은 깨지고 만다. 그러나 침묵하는 그 시간에는 지나쳤던 일들에 대한 후회도 있고, 어린시절 숨기려고만 했던 아픔들도 다시 기어 나온다. 그럴 때는 성장통을 앓는 것만 같다. 옛 사람들도 침묵으로 자신을 만나려 했다는 것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지혜롭다던 사람들도 자기반성 앞에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도 어찌보니 반가웁다. 부끄러움에 대하여 쓴 이만부의 글에서도, 연암 박지원이 왜 비슷해지려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레오처럼 자유의지를 갖고 책을 읽었으나, 그 글속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나를 보게 되고, 부끄럽게 되고, 자연히 오늘을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무심코 덮으려다 보니 여기저기에 내 글씨의 흔적이 있다. 읽을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생각나는 것을 써 놓는 버릇 탓이다. 여기저기에 2004년에 어떻게 성장할까에 대한 고민이 서려있다. 침묵명상 일주일에 세 번,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여행 떠나기, 기록한 것을 모으기 등등. 참 많았다. 나에게 내는 성장숙제는 스스로 즐겁다.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재치가 서린 글들을 읽으며 내년도 계획을 세웠다.

[인상깊은구절]
왜 비슷해 지려하는가? 비슷함을 추구함은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서로 같은 것을 '꼭 닮았다' 하고 분간이 어려운 것을 '진짜 같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이미 가짜라는 뜻과 다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p******9 2003.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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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고르고 쉬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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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우리 나라 국민의 1인당 한달 독서 량이 평균 1.2 권이라는 기사를 봤다. 세련되게 장정된 책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살면서 지나치게 적은 양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붓으로 필사본을 만들며, 밤을 낮 삼아 책을 읽었던 조상들의 모습에 비춰보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책읽는 소리]는 한문학자인 저자가 조상들의 독서 습관이나, 고전에서 가슴에 새길만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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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우리 나라 국민의 1인당 한달 독서 량이 평균 1.2 권이라는 기사를 봤다. 세련되게 장정된 책들이 너무나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살면서 지나치게 적은 양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붓으로 필사본을 만들며, 밤을 낮 삼아 책을 읽었던 조상들의 모습에 비춰보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책읽는 소리]는 한문학자인 저자가 조상들의 독서 습관이나, 고전에서 가슴에 새길만한 부분을 찾아내 주석을 단 형식으로, 꼿꼿한 선비정신과 아울러 정신적인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일생동안 단 몇 권의 책만 읽고 또 읽어 욀 정도가 되어 그것이 깊이 내면화되어서 그 들의 삶의 방식이 되고 지혜로 다시 살아나는, 느리나 진정 깊이 있는 시대를 살았던 그들. 속도의 시대에 인터넷을 클릭하기만 하면 수많은 정보가 널려있어 독서의 효용성조차 의심되는 시대에, 책에서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던 옛 선인들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읽은 책의 독후감 쓰는 것조차 게으름에 밀려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오늘의 내 모습도 반성하면서.... 그러나 책읽기를 최고의 행복으로 치는 나의 열정만큼은 게으름을 조금이나마 덮어주지 않을까.
j***0 2002.10.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