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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의 (하)권은 주로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바우돌리노 일행의 모험에 대한 얘기다. 그러니까 악한(惡漢) 소설에서 모험 소설로의 변환이다. 요한 사제란, 중세 시대에 서구에 널리 퍼졌던 신화였다. 동쪽에 요한 사제라는 기독교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요한 사제의 왕국과 연락이 닿으면 (종파가 좀 다르지만) 그래도 기독교를 믿으니까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데 힘을 합칠 수 있을 거라 여겼다(그들에게 기독교라는 믿음은 무조건 善이었으니까. 요한 사제의 존재는 희망 같은 것이었고, 또한 그 왕국은 이상향이었다. 그런데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바우돌리노 일행이 겪는 사건들을 보면 요상하다. 요한 사제의 존재에 대해서도 서로 깊게 공유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믿음 때문에, 어떤 이는 명성 때문에, 어떤 이는 재물 때문에, 또 어떤 이는 도망가기 위해 요한 사제를 찾아가는 모험에 동참한다. 요한 사제에게 가져가 믿음의 징표로 삼도록 선물할 성물(聖物)은, 사실 바우돌리노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작된 성물에 대해서, 그들이 조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성물처럼 여긴다. 조작된 것이지만 그렇게 인정된 것은 가치가 있었다. 그런 성물은 존재한다는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게 현실에 존재한다면 가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요한 사제와 그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바우돌리노 일행은 요한 사제의 왕국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은 거기까지 닿지 못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건 실패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이기도 하다. 사실 그 와중의 모험은 (픈다페침에서의 기묘한 동물들과의 교류, 히파티아와의 사랑 등을 포함하여) 좀 지겹다. 중세의 우화를 절묘하게 옮겨온 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걸 우리말로 읽기에는 너무 지리하다(원저로 읽으면 어떨른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의 참맛은 말의 쓰임새에 있다고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고 활기를 띤다. 그건 과거의 사건이 들춰지면서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고, 그들의 여정 도중에 벌어진 프리드리히 대왕의 죽음에 대한 추리와 싸움이 벌어진다. 마치 이 소설이 추리 소설류에 속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결국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죽음은 모두가 책임이 있고, 또 모두가 책임이 없기도 한 것이 되었다. 이야기의 재미가 기묘한 것들의 나열보다는 불꽃 튀는 대결에 더 많이 기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우돌리노』라는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중에서가 가장 환상적이다. 기본적으로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간 바우돌리노였으니 당연하다. 그런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도 믿을 만하지 않으며, 그러니 그가 말한 것들도 당연히 믿을 만하지 않다. 거기에는 그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기독교 믿음의 부산물들도 포함한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를 갖는지, 혹은 그러면서도 얼마나 유구하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 속을 파고들었는지를 이 소설은 얘기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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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우돌리노는 주인공인 바우돌리노가 자신의 이야기를 양피지에 직접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놀라운 점은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은연 중에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다! 우리의 바우돌리노는 괘씸하게도(?) 자신의 거짓말을 이렇게 길게도 풀어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지껏 들어왔던 이야기는 모두 진짜인가? 실은 그렇지 않다. 설령 실제로 경험한 일을 온전히 담았다는 이야기일지라도 그건 화자의 당시 감정, 사회적 위치, 기억의 오류 등으로 모조리 새롭게 재탄생된 것일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 바우돌리노도 실은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바우돌리노가 적은 그것이 전부 그의 상상에서 나온 것에 다름 없을지라도 바우돌리노 나름의 신념과 생각을 훌륭하게 재구성하고 있지 않는가. 이쯤 도달하면 사실 이야기를 읽을 가치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빠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인간은 지금까지 잘도 이야기를 즐겨왔다. 왜? 간단하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즐겁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주고,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조차 다음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힘을 길러준다. 인간은 단지 이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과 착각하지 않으면 된다. 결국 이야기에 현실을 구태여 대입할 필요가 하등 없다. 그것의 본질은 현실이 아닌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냥 보고 즐기면 된다. 즐거운 마음은 진짜다! 이렇게 보면 몹쓸 거짓말쟁이 바우돌리노는 어느새 꿀잼 보장해주는 샤방한 이야기꾼으로 보인다. 어이쿠, 그래 이거 에코가 쓴 소설이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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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종교, 특히 천주교나 기독교적 색체가 짙은 소설은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그냥 바우돌리노의 모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인지 편안하게 읽은 듯하다. 아니면 소설 초반부터 바우돌리노가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까발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소설들과 분위기가 좀 달랐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기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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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보고 약간 모자란 얼간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는데 인간미 넘치는 영웅이었네요. 아주 아주 흥미넘치고 애정이 가는 캐릭터로 잘 묘사됐습니다. 바우돌리노가 겪는 파란만장한 사건들은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면서도 뭔가 아련한 우수의 분위기가 묘하게 첨가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다 읽고 나서 여운이 진하게 남는 정말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코의 소설은 번역이 어려운지 어떤 책들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이 책은 그래도 끝까지 별 거부감없이 완독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