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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정요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 딸처럼 나 역시 처음에는 저자나 껍데기를 보고 책을 고르는 종류의 인간은, 친구가 택배로 보내준, 제목도 별로 당길 것이 없고 표지 그림도 밋밋한데다 저자는 누군지 잘 모르는 이런 책에 별로 당길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첫장을 열자마자 '사장나무', '참연' 등 모르는 단어가 얼굴을 내민다. 무엇보다도 '가시나'라든가 '계집아이'라는 남 다 아는 표현 대신 '가시낭년'이란 표현을 쓴 첫 줄에서 나는 슬쩍 마음이 이 소설로 떠밀려짐을 느낀다.
그렇다. 이 소설에서는 땅끝 해남의 사투리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흉내를 낼래야 한 마디도 낼 수 없는 토속어들이 시원한 소나기가 마른 땅 적시듯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서 춤추고 있다.
이야기의 씨실은 우리 시대의 원죄이다. 혹시라도 때지난 연좌제에 다시 걸릴까봐 전전긍긍하며 텔레비젼에서만 남북 가족들의 해후를 숨죽여 울며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들이 돌이키고 싶지 않는 동족간의 전쟁, 육이오가 바로 그것이다. 동학혁명에 가담했다가 땅끝까지 밀려와 바닷물에 보를 막아 짠물을 퍼내 논을 만들고 뼈빠지게 일해서 살만하게 된 사람들의 후손에게 벼락치듯 닥친 이념의 송곳싸움. 제편인지 남의 편인지 구분하기 위해 쏘아대는 총, 그리고 제가 살기 위해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을 바닷물 속으로 밀어버려야 했던 사람이 있다.
그가 낳은 8남매 중 여섯째인 행남이가 엮어 내리는 제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실이 된다. 씨실은 빡빡하지만, 날실은 섬세하다. 아들만 위해 바치는 집안에서 아들 얘긴 재미없고 딸들 얘기는 흐드러진다. 얼굴이 하얀 서울의 은행원과 결혼할 꿈에 빛나는, 머리를 '후까시'로 높게 올리고 분홍색 공단으로 만든 차이나식 원피스를 입고 파라솔을 든 큰언니, 허천병이 들어 먹고 먹고 또 먹고 뒷방살이 하며 사람 취급을 못받는 두찌니 (둘째) 또딸이,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 나중에 아버지 힘빠지면 오라비와 남동생 뒷바라지 하라며 서울의 대학까지 보내졌지만 결국은 신원조회때마다 걸려 직장도 못갖게 되는 세째 시찌니, 뒤늦게 낳은 남동생 애보기하느라 초등학교도 못다니고 나중엔 공장에서 병을 얻게 되는 네째 니찌니, 팔랑팔랑 나비같고, 통통 튀는 하얀 공 같은 다섯째 다찌니, 그리고 속은 쫀쫀하나 겉으로는 맏아들의 권위를 시시때때로 보이고 싶어하는 오빠, 막내이자 아들인 관계로 할머니의 귀염을 독차지하며 매사에 퉁을 부리는 제남이.
한 동리에 사는 사람들도 다들 얘깃거리를 풍성하게 펼쳐 놓는다. 태어날 때 솥뚜껑으로 받아진 가짜 점장이 뚜껑례, 집안 살림 다 하면서 탕탕 튀며 노는 속도 빤한 수자, 날마다 바다로 나가는 할아버지와 거멍숲에 무언가를 빌러 가는 쫑알댁, 색소폰을 애절하게 불어대는 폐병장이 문영이, 애절하면서도 재미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역시 씨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소설이 읽히려면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작가의 말솜씨는 거침이 없다. 가뭄에도 부쩍 자라 옷이 짧아진 것을 "누님네 사는 메뚜기"로 표현해 놓았다. 누님네 집에 얹혀 사는 메뚜기는 밥은 누나가 퍼주니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만, 옷감은 시어머니가 마르면서 항상 모자라게 베니까 그꼴이라는 거다. 능청스러움을 빗대 표현한 '뱃속에 영감이 들어앉았다'는 잘 아는 얘기도 "콩알만한 게 속에 노랑영감이 들어갖고."라고 둘러쳐 놓았다. 주제는 뻑뻑하지만, 그것이 뻑뻑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가의 말솜씨는 '오지다.' 다 읽고 나니 시원한 소나기 내린 후 개울물 힘차게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한번 읽으면 그걸로 끝인 소설이 많은 요즈음, 읽고 또 읽고 할 수 있는 소설을 발견해서 정말 기쁘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제목이 밋밋하다는 점이다. 제목이 좀 더 튀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재미있는 소설을 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집 뒷방에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찐빵처럼 부푼, 아니 돌하르방처럼 온몸이 부푼 어떤 존재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처럼 배는 청오산만한데 입이 바늘귀처럼 작아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바로 그 아귀의 화신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리가 끊어질 듯 배가 고픈 병, '허천병'이라고 했다. 끼니때의 밥만으론 충분치가 않아서 고구마를 한 가마솥씩 삶아먹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우리 식구의 며칠분 식량으로 삶아놓은 보리쌀을 다 먹어버리고 광 속 항아리의 생쌀도 씹어먹고 심지어는 시궁창에 떨어진 풋감이나 떫은 무화과까지도 주워먹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 뒷방에 살고 있지만 우리와 생활을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식구들이 그냥 무슨 물건처럼 '뒷방것'이라고만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