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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토피아]는 우리 각자의 심장안에 있음을 이 시집에서 말한다.
시인 이기와, 나는 그녀의 신체학적인 구조가 오장육보인지 혹은 칠보인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대화중에 간간이 야물게 앙당문 입매에서 풍기는 느낌은,가시같은 세상과 맞서다가 찢어지고 다시 일어 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었을 특유의 저돌적인 당당함과 비장함이 흐르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녀의 첫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 루 스]을 건네 받았다. 시집의 제목도 예사롭지 않다. 그뿐이랴, '18세 미만 불가'를 연상케하는 책표지에 누에 고치에서 실을 뽑아 헤쳐 놓음직한, 개미의 족적을 올려 한 궤적을 이탈하지 못하고 쳇바퀴 처럼 돌고 돌아야하는 우리네 삶을, 헝클어진 세상을 대변하고자하는 듯한 저의도 얼핏 엿보인다.
시집, 그녀의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이런! 책갈피 마다 흥건하게 젖어있는게 아닌가. 시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하면서 승화시키느라 생성된 , 그녀의 '호르몬'들이다. 충격이다, 칼칼하다. 시인 이기와는 이 시집에서 全裸로 벗었다. 시셋말로 팔자가 드센 어머니의 딸, 한 남자의 아내였던 그녀가 지금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 우리 앞에 당차게 섰다. 피똥(血便)같은 시집 한 권을 손에 거머쥐고서 '내가 아는 상처는 심심할 때 뜯어먹는 말랑말랑한 식빵이 아니었음을 내가 아는 절망은
귀나 목에 치렁치렁 매달고 다니는 장신구였음을 알았지' 라고 [절망, 그 꾀병을 앓다]에서 고백하듯 담담하게 썼다. 나,우리 모두는 일찍이 이런 유형의 시를 접할 기회가 드믈수 밖에 없었다.
시의 언어(詩語)는 고와야 하고 아름다워야하는 틀에 익숙한 세상에 이기와 시인이 불쑥 던지는 첫 시집,[바람난 세상과의 블 루 스]는 기존 시집들과는 현저한 차별을 둔것 같다.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만 굴려만든 죽은 언어가 아닌 시인 자신이 걸어온 처절한 형극의 삶을 승화시켜 뽑아낸, 늘 뒤란에만 선듯한 인생 고백서, 시집 한 권을 들고 며칠 동안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시인 이기와님께 파이팅! 아침 마당과 이것이 인생이다를 통해서 이미 소개된 바 있으며 얼마전
경인방송(iTV)의 행복한 아침에 다시 선 이기와님,시인으로서 당찬, 여성으로서의 소박한 꿈이 담겨진 그녀만의 시학을 감명 깊게 보았다. 그녀의 지난 삶이 어찌되든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로도 스폿트 라이트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지싶다. TV를 보던 날, 내 위胃에 꽂힌 밥알갱이가 어떻게 소화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녀와 오랜 지기도 아닐뿐더러 나는 시인 이기와님의 지난 내력을 전혀 모른다. 왜 이 글을 쓰는지 조차도, 오늘은 아침부터 세 시간 가량 정전이 되었다. 찬물에 양치질도 못할 정도로 나약한 , 그녀의 표현을 빌어 '냄새나는 부르조아'의 강도 높은 자성 정도로 이 게시물을 치부해도 좋다. 다만 시가 좋아 독학하는 아마츄어, 독자의 눈에 비친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에 대한 독평이 시인 이기와님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유턴 할 수 없는 삶의 일방도로 복판에서 전복된 채, 몇 날 며칠 정신의 시동을 끄고 쉬고 싶다. 쉴새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철근의 희망 밖으로 견인될 때까지, 폐차장이나 고물상에 안전하게 쳐박혀 허방에 두 다리 뻗고 체류할 때까지 연거푸 돌발 사고를 유도하고 싶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초고속의 날들과 절교하고 싶은 몇 번이나 수리했어도 여전히 삐딱하게 굴러가는 개같은 이 천성 [바퀴의 근성]에서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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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이다."라는 텔레비젼 프로에서 이기와 시인을 처음 만나보았다. 세상이 너무도 그녀를 힘들게 했고, 모든 것을 이기고 딸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는 현재의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여러 서점을 다니며 그녀의 시집을 찾았으나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시집을 받아보자 마자 그녀의 시를 읽고 그녀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편의 시도, 그 시 속의 단 한 글자도 그냥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한 단어, 한단어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았던 것은 시집의 가운데 삽입되어 있는 연탄이 매달려 있는 나무밑에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서명이 되어있는걸로 보아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인듯 싶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일에 서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이겨내는 일은 자신의 살을 깎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만의 고통 이겨내기"에 성공한것이다. 삶에 지치고 힘들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왜 그리 상심했는지 하늘이 두 쪽 나는 것도, 땅이 꺼지는 일도 없는데 낙엽이 바람으 만나는 일처럼, 꽃이 벌레를 만나는 것처럼 모든게 사소한 일일 뿐인데 왜 그리 속이 아프다고, 자꾸 헛구역질이 난다고 엄살을 떨었는지 이제 태연하고 싶다. 생각없는 나뭇가지에 앉아 졸다 깨다, 깨다 졸다 하루를 공으로 보내는 미련한 새가 되고 싶다. 빌어먹을! 그짓 또한 얼마나 지적인 엄살인가? 나는 여전히 내가 아니다. 2001년 시월의 마지막 말 이기와 |
| 어느 날인가 작가의 일생을 다룬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아마도 내 기억엔 별반 큰 느낌없이 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 머릿속엔 그녀와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TV를 통해 그녀가 시집을 내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부터 나는 아예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으려 했었다. 원래 어떤 인물이 나와서 자신이 낸 책이라며 한번 떠들고 나면, 거기다 그 사람이 인생이 잘만 포장된다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속편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한 구절이 되어 맴돌기만 하던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오직 나 뿐일거라 생각에 몹시도 괴로웠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나는 이 시집을 통해 그러한 나의 모습들을 다시금 볼 수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세상 끝단에 서 있는 느낌같았던 순간 순간들이 묻어 있는 시편속에서 지난날 나 자신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의 시간들을 이겨내며 그녀가 토해내고자 했던 가슴들이 이 시집속에 묻혀 있다. 중간중간 더해지는 삽화들은 그녀가 하고픈 말들과 함께 잘도 어우러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