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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로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예전과는 달리 10대의 나이에 창작인으로서 이름을 내거는 것도 드물지 않은 요즈음, 젊은 창작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최대의 메리트는 ‘지금 이 순간을 반영시킬 수 있는 호흡’이라 하겠다. 달리 현재성--이라 말해도 좋으리라. 지금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만화가들이라 해도 젊은 시절은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 당시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던 감각을 보유한 채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란 참으로 난망한 것이어서, 그 흐름에 계속해서 맞추어가며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기 그지 없다. 다시 말해, ‘가장 젊은 자가 가장 유리한’위치를 점할 수 있다. 게임, 휴대폰, 보드와 같은 요소들에 대해 억지로 적응하거나 배워가며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더라도,이른바 젊은 감각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공기처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메리트이다. 유 현의 <선녀강림>은 이러한 메리트를 무척이나 잘 살린 만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선녀와 나뭇꾼’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부분에서 기이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제갈 량, 환타, 미란다 등의 캐릭터 이름도 그렇거니와, 스토리 전개상에서의 갈등 포인트를 인연(악연)으로 잡고 있다는 점만을 생각한다면, 되려 고풍스럽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 결코 낡았다는 인상을 받을 일은 없다. 그것은 작가가 한 가지 소재나 흐름에 얽매이기보다는, 작품 안에서 자신의 구상을 펼치며 보여준 자유분방함에 기인할 것이다. 특히나 눈길이 가는 것은, 유 현을 비롯한 최근 세대의 만화가들이 한국적 요소를 작품 안에서 다룰 적에 보여주는 표현력이다. 설화, 전설, 네이밍 센스 등을 모두 포함해서, 이전까지 한국적 요소를 다룬 작품들에선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굳이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운 듯 밸런스를 잃고 지나치게 ‘한국적’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선녀강림>을 비롯해 최근 세대의 만화가들이 내놓는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스타일도 세련되고 산뜻할 수 있다는 점들이 어필되고 있다. 거기에는 예전처럼 어떤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어, 보는 사람도 맘편히 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요소는 표면에만 그치고 내용물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선녀강림>안에서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문화 코드들이, 간혹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나 있다. 또 그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것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씁쓸할 정도의 현실반영이 아닐까.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상당수가 일본으로부터 기인되었거나, 최소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소리가 아닐런지.
<선녀강림>에서 아쉬운 점을 찾는다면, 그런 부분보다 오히려 이야기 전개상의 맥을 짚기가 불편하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다. 캐릭터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각 캐릭터의 개성을 깊숙이 파고들며 서로 부딪히는 수법을 썼더라면, 더욱 재미가 넘치는 만화가 되지 않았을까. 작가가 부지런히 내놓는 설정들에는 열성과 세심함이 느껴지지만, 그로 인해 전체적 분위기가 번잡스럽게 여겨진다. 마치 대그우드 범스테드의 샌드위치처럼, 빵 두 쪽 사이에 끼워넣기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몰아놓은 느낌이다.
이른바 재기(才氣)라 일컫는, 어지럽게조차 느껴질 정도로 빼곡히 차있는 젊은 호흡이 <선녀강림> 안에는 녹아들어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연재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그런 감각을 유지시켜 주기를 기대해보고 싶다.선녀강림>선녀강림>선녀강림>선녀강림>선녀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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