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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은 해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기를 유도한다. 하긴 철학에서 고민은 있어도 답을 얻을 수는 없지 않을까?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크라테스는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이다 보니 특별히 돋보이지는 않는다. 에피쿠로스 = ‘쾌락주의’라는 정의는 늘 감각적인 쾌락을 연상시킨다. 에피쿠로스파에서 추구하는 행복(쾌락)은 우정, 자유,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은 선입견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한다. “욕망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긴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도 있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이미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마당에 나는 원하노라. 죽음이 덮치기 전에 쾌락의 충만함을 축하할 훌륭한 송가를 하나 만들어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 사람들을 돕기를. - 에피쿠로스” 다음은 스토아학파의 인물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이야기이다. 그 또한 소크라테스 못지 않게 예상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린다.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란 책이 생각난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aitek&artseqno=7875079 몽테뉴의 ‘수상록’을 미루고 있는데, 그 내용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같은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내용은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인정을 담고 있다니 급 읽고 싶어진다.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몽테뉴” 쇼펜하우어는 젊을 때 누구나 한번은 빠져보게 되는 철학자일 듯 싶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aitek&artseqno=7274439 “사랑이란 것은 ...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게 만든다. 그러나 종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고. 모든 것을 그릇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제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된다. 바로 여기서, 매우 이성적이고 심지어 탁월하기까지 한 사람들이 종종 잔소리가 심하고 악마 같기도 한 사람들과 사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왜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 쇼펜하우어” 개인적으로 가치가 가장 컸던 부분은 ‘니체’ 였다.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설프게 읽었고 니체도 어설프게 알고 있었다. 왜 그가 쇼펜하우어에 빠져있다가 그에 반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니체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되었다. “나와 약간이라도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 존재들에게 나는 고통과 절망, 질병, 냉대, 경멸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독한 자기경멸과 자기불신의 고문, 패배당한 자의 열등감과 동떨어져 지내지 않기를 희망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풍부한 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앞으로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을지를 한번 물어보라.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그리고 폭력. 이런 것들이 사실은 호의적인 조건에 속하지 않는지 곰곰히 따져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떠한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 니체” 철학자를 소개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그 사상들에 대한 사유와 사색을 유도하는 책이다. 8/6/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