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가 E.H.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간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간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역사라는 것이 단지 사실의 나열일 뿐아니라 사건의 재구성이자 새로운 창조라는 뜻이다. 이 책은 소설가가 써서 그런지 역사라는 Facts 보다는 사실의 재구성과 새로운 해석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다른 역사책과는 달리 미시적인 관점에서도 보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쉽게 읽히고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로 쓰여진 듯 하다. 로렌스가 이 책을 썼던 때는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던 시절이다. 또한 역사 발전 단계 이론의 마지막 단계인 사회주의가 실현되기 전 단계 곧 자본주의 심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자본, 물질문명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18장 이탈리아 편의 마지막 문장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가 매우 아름다운 열매처럼 보이지만 입 속으로 들어가면 재로 변한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자유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의 유물론적 사관을 생각나게 한다.
이 책의 구성은 서양 역사 철학의 거대한 줄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되어있지만 그러함에도 쉽게 읽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대가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이다.
|
| 1학년 때 법학 전공을 결심하고 처음 들은 법학 과목이 민법총칙(1)이었다. 그 중 처음 얼마간에 우리 민법의 연원을 배웠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 민법은 우리 전래의 민법이 아니다. 조선에는 백성간의 일에 대한 민법이 따로 제정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독립 후 주로 일본 민법을 의용하여 민법전을 쓰게 되었다. 또한 일본 민법은 프랑스 민법과 독일 민법을 바탕했으며, 프랑스 민법과 독일 민법의 뿌리는 로마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대학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곧잘 그 학문의 연원을 살펴보고는 했는데, 대부분은 그리스나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나는 결국 유럽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 생활을 움직이는 사상이나 기술은 동양이 아니라 서양의 것인데, 현재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지만, 그 중심을 낳은 어머니는 유럽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 얼마간엔 그리스 신화 서적을 몇 권 읽어보았고, 다음엔 로마 관련 서적을 읽어보았다. 그 중 [로마인 이야기]는 내용이 상세하였지만 로마사 전반에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게 지나친 상세함과 지루함이 되었다. 더불어 전반의 줄거리를 알아야 세부적인 사실들을 기억하기가 쉽다는 어느 책의 뇌과학적 주장에 힘입어 나는 유럽사 전반에 대한 비교적 쉬운 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찾은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책은 로마 시대로부터 출발해 19세기의 독일 통일기까지를 다룬다. 이 책이 쓰여진 시대가 20세기 초이므로 당시에는 유럽사 전체 바로 그것과 큰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서유럽 중심이다. 그 중에서도 유럽 본토의 프랑스와 독일 중심이다. 영국이나 그리스, 러시아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유럽사 전반의 주역이 줄곧 유럽 본토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비록 영국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18세기 이후의 유럽사 주역이었지만, 그렇다고 유럽본토가 소외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서술방법은 책의 서문에도 나와있지만 역사의 객관적 전개 속에 구체적인 인물의 행적을 삽입하는 식으로 서술이 되어 있다. 그래서 로마의 성장과 제국의 성립, 그리고 제국의 쇠퇴와 분리, 훈족의 침입에 의한 고트, 반달 족의 이동, 서로마 제국의 멸망, 기독교의 성립과 성장 등... 유럽사의 굵직한 줄거리를 다루는데도 읽기에 어렵지 않고 약간은 소설적인 재미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유럽사 전반에 대해 관통하는 어떤 깨달음이랄까 하는 것들이 함께 서술 되고 있어, 그에 동의할 수 있든 없든 좋은 이해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쪽수가 450쪽이나 되지만 책의 판형이 작은 편이라 읽는데 너무 힘들지는 않았다. 내용 자체가 읽기도 편하고 번역도 훌륭했던 것 같다. 고교생 이상이라면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
| 처음 로렌스가 역사서를 썼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놀라게 만들었다. 역사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그의 대표작인 '차탈레부인의 사랑'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한 탓이다. 솔직히 불륜적인 성묘사로 한때 유럽을 떠들석하게 했던 그가 역사서를 쓰다니! 그것이 이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였다. 그러나 이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그건 바로 19세기에서 20세기의 격변의 현장을 산 동시대의 지식인이 가지는 색다른 시각에 연유한 것이다. 솔직히 후세의 사가가 아무리 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해도 결국 모든 저작에는 주관적 시각이 들어가는 것이 역사서가 아니던가! 그럴바에야 역사가가 아닌 고뇌하는 지식인의 시각으로 쓴 역사서도 분명 색다른 시각이란 면에서 차라리 나을수 있을 것이다. 지금 유럽은 한참 통합의 기운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20년전만 하더라도 유럽은 개국가와 민족간의 고유문명간의 차가 너무 크서 결코 완전한 통합을 이룰수 없을 것이라고 , EU는 결국 실패한 정치가들의 이상론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통합을 향해 두발 더 다가선 유럽제국은 나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이책은 그 해답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세속과 영적인 권리를 한손에 잡고 서로 신의 대리자를 자임하며 자기네의 문명세계의 최고통치자를 꿈구던 두사람, 황제와 교황의 투쟁과 다툼은 지상에서 신국을 꿈꾼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유럽인들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던 것이다. 동일한 신을 섬기며 동일한 언어, 이것이 가지는 동일한 가치와 신념 그리고 이런것들을 보호하는 제국이라는 울타리 바로 이것이 지금 유럽인이 꿈꾸는 통합유럽제국이 아닐까? 분열과 통합의 반복속에서 그들은 19세기 지식인들이 과거의 로마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던 꿈을 이룰 수 있을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해준다. 그게 바로 로렌스가꿈꾸었던 미래유럽의 모습이니까... 이책은 양장본이고 겉껍질을 벗기면 더 멋있는 속표지가 나온다. 군데 군데 삽입된 삽화들은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잘보지못했던 진귀한 것이다. 게다가 앗틸라에서 시작되는 신기한 유럽의 모습들은 분명 이책이 일반적인 역사서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 사상서의 참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로렌스의 최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