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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비가 몹시 내렸고, 지금은 개이기 시작한다. 새롭고 신선한 날이다. 이 새로운 날이 마치 단 하루밖에 없는 것처럼 만나자. 어제의 기억은 모두 뒤에 남겨놓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 본문 중에서 (p. 30)
드디어 이 책의 끝장을 읽었다. 이 책이 우리집에 온지 무려 20일만이니, 나는 얼마나 게을리 이 책을 읽었는가. 아니 또 반대로 얼마나 신중하게 읽었는가. 난 감히, 게으른 독서는 아니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같은 책을 여러번, 같은 페이지를 여러번 다시 읽었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신중함이라기보다는 이해부족이라는 점이겠지만 말이다. 책머리에 대지는 비를 필요로 하고, 건물에 창이 있어야 하듯 우리가 항상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차마 읽어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도록 독려해준 일고십회원님들께 짙은 감사를 전한다. 혼자라면 절대로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여러번 머릿속에서 되뇌인 문장이 바로 이 페이지에 들어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우리처럼 나날의 문제들에 얽매여있다.(p.32)"는. 한때 나는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었는데 당시에 내가 참 많이 했던 말이 "하느님, 저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였다. 짙은 원망과 깊은 눈물이 마구 뒤섞인 한탄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힘들다고 하는 그 순간을 지나오기 마련이듯 나도 그 순간을 지나왔다. 이겨낸건지 지워낸건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내게 이 문장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모두 나처럼, 나날의 문제에 얽매여있으니- 나에게만 고통을 주신다고 원망하지말자는 그런 마음. 난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내렸다. 우리는 삶, 정치, 경체 상황, 공포, 잔인성, 자신의 슬픔은 물론 이 세상의 슬픔에 관해 불안해하며,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심히 옹색하게 제약돼 있는가를 깨닫는다. - 본문 중에서 (p.41) 첫번째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생각이 많았다. 난 다소 감정적인 사람이라 주변의 감정에도 잘 전염되고 사회의 문제나 잔인성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문득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오는 영향이라고 생각해보니 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도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했다. 해골물의 비유를 이 책에서 깨닫다니. 나는 지난 삼십년간 무엇을 위한 독서와 사색을 해왔단 말인가. 물론 시간이 또 지나면 잊을 수도 있지만, 난 아무래도 이 장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싶어한다. 사회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경할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대접받고 반면에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은 천대받는다. 세상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어떤 지위를 원하고 또는 신의 오른팔 위에 앉기를 바란다. - 본문중에서 (p. 63) 사실 이 다섯번째 이야기는 이해가 되기도 했고, 안되기도 했다. 이해가 되지않던 부분은 공포를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었고 기억해두고싶은 말은 공포가 과거의 영역이라는 말이었다. 공포가 생각의 결과라면 그 공포는 과거의 영역이라는. 물론 책에서처럼 우리가 현재를 완전히 사는 것은 어렵겠지만, 내 신조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것이기에 나는 마음도 오늘을 살도록 더 노력하자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스스로 내가 참 오만하구나, 라고 느낀 부분은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읽을 때였다. 난 그동안 내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해왔고, 그런 이념의 정당을 지지하는 등 비교적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활력과관심을 그것에 기울일 수 있는가? (...) 만일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발견하기위해 온 마음을 바쳐 주의를 기울여라. 그저 뒷전에 물러앉아서 "어디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해봐" 라고 말하지말라" (p.84~85) 비난이나 정당화가 들어있는 눈으로는 분노도 폭력도 볼 수 없다는 말이 내게는 참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그동안 이런 정치이념이 있다, 비폭력주의자다 해왔던 시간이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다고해서 크리슈나무르티 할아버지께 혼만 난 독서는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당신은 모르는가? 증오 없이 질투 없이 분노 없이 그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바에 간섭하려고 하지않고 비난 없이 비교 없이 사랑하는 것. 당신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비교가 있는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온마음을 다해, 온 심장을 다해, 당신의 전 존재를 다해 사랑할 때, 거기에 비교가 있는가? 당신이 그 사랑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칠 때 거기엔 다른 사랑이 있을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p. 130) 나는 이 말을 오래도록 적어두려한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려하는 어느 날, 마음이 좋지않아지는 어느날, 이 말을 꺼내보며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를 온 심장을 다해 사랑한다고 느꼈던 첫 날의 감정을 영영 잊지않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도록. 명상은 버스에 앉아있거나 빛과 그림자로 가득찬 숲속을 걸어갈 때 또는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거나 아내나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 일어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p.184) 또 문득, 내마음이 어지럽고 힘든 날이 오면 이런 구절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을 정화해볼 수 있는 힘도 얻었다. 이 가르침을 얼마나 길게 가슴에 담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게 이 책은 길고 깊은 독서였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단이었음은 분명하다. 내 이해가 독서의 시간만큼 깊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말이다. |
1. 완벽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단체 안에서 나 자신이 되어 개인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가? 책에서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찾는데에 있어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지않는다." (p.32) 고. 그뿐아니라 엄연히 말하자면 우리를 단체에서 배제하고는 사실 생활이 영위되지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가 무엇일까? 정말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먹고, 싸고.. 그것만이 자유일까? 가장 중요한 자유는 나의 의지에서 온다. 이 말 자체에 정답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의지에 따라 단체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때로는 단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이기도 하다고. 회사라는 단체 안에서 나는 종종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라는 생각도 해본다. 쉽게 말하자면 이거다.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이루어진 회사에서는 "나와의 관계"보다는 "이익관계"가 우선된다. 그런 점은 환멸이 되기도 하고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잘 생각하면 자유와도 밀접히 연관지을 수 있다. 어느 점에서는 단체에 속에서의 제약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 의지를, 나의 생각을 펼치고 말고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비록 단체안에서 나는 몸의 자유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한 이론을 왜 이렇게 대답할까. 이제야 해골물의 지혜를 깨달았던 부족함을 마음껏 뽑낸다. 2. 깨달음과 성찰을 위해 고통이나 고독은 필수적인 요소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짤막한 고독의 시간을 갈망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나는 사실 한순간도 혼자있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내내 누군가와 붙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등에 매달려 행복해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있게 되는 짧은 순간이 오면 그렇게 좋더라. 종종 회사에서 밥을 먹은 후 혼자 공원을 한바퀴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머리와 입과 표정과 마음과 기타등등을 쉬고 머릿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게 된다. 결국 고독이 없이는 쉬이 생각하고 정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선조들이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른 까닭도 거기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철저히 혼자있는 곳이기에 근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고통 역시 필요한가? 사실 가급적이면 고통이 없으면 좋으련만, 고통을 통해 깨달음과 성찰을 얻는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다. 지난해,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스트레스 상황을 겪게 되었고 그 순간엔 미칠거 같은 시간이었으나 지나고보니 나를 한층 깊게하는, 나로하여금 생각하고 현실을 파악하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일을 겪지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테다. 결과적으로 고통도 고독도 필요하다. 분명.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일부러 질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질문을 보고나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읽게 될까봐 겁이 나서. 책을 읽은 후, 질문을 미리보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고민한 부분을 딱 찝어낸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휘연님의 냉철함은 나를 매번 놀랍게 한다. 종종 일고십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일고십의, 회원님들의 대단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아마 일고십이 아니었다면 이 좋은 책을 읽어내지 못했을테니. 그 점에 대해 깊은 감사와 사랑과, 감동과 기타등등 세상의 모든 좋은 감정을 담아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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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 나는 살아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살아야 하는가? 등 많은 생각을 했다. 우울함에 몸부림치면서 굳이 살아 있을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깊이 깊이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답이 없는, 바닥이 없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곧 내가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생각에 길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읽고 번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혼자 구원 받을까 하다가 혼자 받는 구원은 구원이 아니므로 번역을 하기로 했다고(8) 한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감사하다. 함께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내적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살고 있기 위해서, 완전한 변화를 이루어야 하고, 이것은 내적 혁명을 통해 가능하다.
저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신지학회(1875년에 미국에서 신비주의적 종교관을 바탕으로 창설되어 주로 인도에서 활동하는 국제적 종교단체)에서 13세에 ‘세계의 스승’으로 선택되어 그렇게 길러진다. 많은 영적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탐구하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정말 ‘스승’이 되었다. 1929년에 32살이 되었을 때 돌연 스스로 모든 단체와 연을 끊고 개인으로서 깨달음을 추구하길 촉구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 이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다. 광적으로 잔인한 세계에 홀로 서 있어야(150)야만 가능하다. 그는 그것을 명백히 보았고, 알았다. 그리고 행동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삶을 살아나갔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혼자, 개인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어디에서든 잘 살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행복하게 도란 도란 살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변화할 것이고, 세계는 바뀌어야만 한다. 이것이 진리이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게 단체든, 애초에 혼자였든 상관은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가 자꾸 생각났다. 나 자신을 좀 더 추스르고, 어차피 명확한 답을 내진 못하더라도, 조금 더 함께 고민해 주는,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길을 알려 주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다섯 번째 이야기, 공포로부터의 자유 부분은 여러 번 읊조리며 읽었다. 속속들이 나의 과거 행동을 분석해주었다.
나의 공격성이 왜 생겼는지 알았다. 특히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편인 나는, 그것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겼다. 내가 한 일에 대해 꼭 칭찬 받고 싶어 하고 인정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내가 잘못 한 것인지 의구심이 생기고, 나를 비하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다른 이들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하는 모습이다. 관계에 있어서 그렇게나 서툴렀던 나였다. 이에 더해,
그런 실수들을 곱씹으며 사는 나는 한없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곳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자꾸만 나를 끌어내리고 끌어내려 무겁게 만들어 하찮게 만들었다.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주변을 보지 못하는 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할 텐데 라고 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결국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런 생각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혹은 어떻게 하면 더 지금을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블로그 이웃님의 신조 중 하나가 모든 만남을 이벤트처럼 여기신다고 한다. 그 말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 지금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이벤트인데, 그걸 제대로 보지 못해 헤매고 있었구나. 지금 이 순간도 못난 과거로 만들며 흑역사에 흑역사를 쌓고 있었다. 나도 저 신조를 항상 명심하고 싶다. 귀한 만남을 특별하게 여길 수 있도록, 좋은 순간 순간이 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각 장을 하나 하나 논하고 싶다. 고전인 이유.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 토론해보고 싶다. 생각을 나누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마구 마구 일으킨다.
우리가 하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넘으면 무엇이 있는가?(14) 라고 질문을 던지며 책을 시작한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답을 함께 찾아가자며 조용히 한 발 앞서 걷고 있다. 사실 한 발 앞서 걸어가는 그 보폭에 맞춰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책에 많은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생각해보았지만, 나도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그가 제시한 해결 방식이 낯설고 겁이 나기도 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나마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었다. 재독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책이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 걷고 싶다. 뒤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만들면서 말이다. 어떻게 달라질 지 기대된다.
(한동안 명상 하기 전에 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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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작가가 당신이 이러이러 하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말을 한다
그럴때마다 이 책을 덮어야하나 생각했다
나는 자격이 없는가
나는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깨달음에대해 책을 통해 배운다 한들 그 깨달음에 한치라도 가까워 질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작은 한 계단이라도 올라섰을까
양말 한 짝을 벗은 것 만큼은 자유로워졌을까
그것은 책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이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면 다음 기회가 있다
그렇게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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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제 당신에게 뭔가 가르쳐준 체험을 했고, 그 체험이 가르쳐준 것은 이내 새로운 권위가 된다. 그리고 어제의 그 권위는 천년 묵은 권위와 마찬가지로 파괴적이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제의 것이든 천년 묵은 것이든 어떤 권위도 필요치 않다. 우리는 살아 있으며, 항상 움직이고 유동하여 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제의 죽은 권위를 가지고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순간은 물론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특질조차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모든 권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어제의 몯느 것이 죽는다는 뜻이며, 그때 당신의 마음은 항상 신선하고 젊고 천진하고 활력과 정열이 넘치게 된다. 우리가 배우고 관찰하는 것은 오직 그런 상태에서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앎이 필요한데, 즉 그것은 당신 안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 p.30
보통은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리뷰도 그렇게 메모해 놓은 글들 위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 수긍이 가는 듯도 하면서, 좋은 문장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내부적 모순과 저항들을 마주하면서, 나의 내면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일 당신이 쾌락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에 대해서 아무 강제나 논의 없이 자연스럽게 죽는다면, 당신은 비로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하며,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변화이며, 그 안에서 생각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을 때 거기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곧 죽음이며, 그러면 당신은 살고 있는 것이다. - p.122
내 내면에서 울리는 움직임. 나는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삶은 더 의미가 있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언젠가 죽어가는 그 순간이 있기에, 나는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수많은 생각을, 또 깨달음을 주는 명문장들이 많지만, 나는 그 명문장들 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명문장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냥 느낄 뿐이다. 그러므로,내게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란 내게 생각을 하게끔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 흘려보낼 수 있는 무심한 마음이다. 무심한 마음으로 나를 깨우는 오늘.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지금이다.
이 리뷰는 [일고십-일년에 고전 십이권만 읽자] 2019년 1월 선정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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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하려고 하지 않고, 비난 없이, 비교 없이 사랑하는 것. 당신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비교가 있는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온 심장을 다해, 온 몸을 다해, 당신의 전 존재를 다해 사랑할 때, 거기에 비교가 있는가
- 본문 중에서 (p.130)
이 책은 아직 읽는 중이다. 중간정도 읽은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리뷰를 쓸 때가 되면, 어쩌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의 중간독서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감히 다 읽지않았기에, 이 책의 진짜 리뷰는 남겨두기로 했다.
먼저 이 책의 저자에 대해 남겨보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20세기에 가장 훌륭한 철학가이자 명상가다. 이는 네이버에서 검색한 내용인데,
관심이 가는 문장은 "스스로 변화해야하며 관계의 거울을 통해 관찰된다"란 말이다. 그래,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본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못하면 무의미하고, 아무리 멋진 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쓰레기에 불과하다. 또, 내 주변사람들과 함께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혼자 던지는 공일뿐, 주고받는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읽으며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읽기 어려운 만큼, 오래남는 책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적이었던 부분은 누군가와 동떨어져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종종 만났는데
또 사랑에 관한 그의 의견에서는
아직 내가 읽어야 할 부분은 많다. 그럼에도 중간 부분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은 |
| 영성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들어봤기에 처음으로 그의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좋은글임에는 확실하나 글의 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글일지라도 저는 쉽게 읽히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읽다가 이해의 흐름이 자꾸 끊겨서 다시 한번 몇문장 앞쪽부터 다시 읽어보면서 의미를 곱씹어볼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한번에 읽기보다 여러번 읽어보고 시간이 지나 깨달음이 더 커졌을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읽으면서 이해한 내용을 나만의 글로 정리하면 내용 이해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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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많은 것들, 가령 종교, 정치적 신념, 교육에 대한 관점, 사람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알게 모르게 나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삶의 방향, 생각의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임에는 확실하다. 이런 외적인 영향을 모두 배제한 상태의 진정하고, 유일한 나만의 생각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쉽지 않은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와중에 나만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외부로 부터 영향을 끼치는 많은 지식들은 나의 생각에 많은 옷을 덧입혀지고 있고, 그 옷도 때론 유행에 따라서 바꾸기도 하고, 또 두텁게 입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모름지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외부요소를 걷어낸 상태로 읽을 수 있느냐를 말한는 것 같다. 그런 자유를 얻을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한개 한개씩 그 생각을 벗겨낼때마다 막혀버리고 또 은연중에 그 과정을 시기하는 많은 생각들로부터 이겨내는 시간 또한 필요한 것이리라. 난 개인적으로 명상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지만, 그것은 내가 겪어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지난한 과정에 뛰어들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개인적인 명상, 자신을 알아가고자 하는 과정에 대한 것은 이 세상의 지위권을 갖고 있는 사상들이 거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이 나의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으로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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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바에서 우연히 찾은 책인데 보자말자 묘한 느낌에 끌려 주인장에게 팔수 있냐 물었더니 팔 수 없다 하였던 책으로, 직접 사서 보았는데 이 책을 본 이후로 나의 무지했던 인식과 의식의 규모가 확장되기 시작한 책으로 진리와 깨달음, 철학, 과학, 종교학, 수학, 뇌과학, 논리학 등의 여러 학문의 출발점이 된 책으로 이 책을 전후로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의 조준점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처한 맥락에 따라 와닿는 책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가장 원초적이자 가장 궁극적인 질문을 하고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