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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책을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살 수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 있는 책까지도 클릭 한 번이면 얼마든지 집에서 받을 수 있게 됐다. 책이 대량생산되고,소비자들이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대중들이 책을 손쉽게 살 수 있고,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인쇄기술이 발달해서 책을 대량 생산하게 되고, 독자층이 형성되고, 유통망이 자리잡아야 가능한 일인데, 그것은 사회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책이 이렇게 대중에게 가깝게 되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세책점(貰冊店)에 주목하고, 당시 세책점의 상황과 역할에 대해 짚어가고 있다. 세책점은 전문 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곳이었다. 조선은 민간에서 책을 간행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국가에서 인쇄를 전담하다시피 했고 중국에서 직접 책을 수입했기 때문에, 민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 없었는데, 책 수요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양란 이후 본격적으로 중국 소설이 유입되면서 부터였다. 중국에서 유입된 통속 소설의 내용이 반윤리적이고 비사실적이며 음란하다고 해서 사대부들의 비난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일부문인과 여성들 사이에서 중국 소설 애독현상이 일어나면서, 사대부 집안에서 소설책을 빌려보게 됐던 것이다. 그만큼 소설을 읽는 독자층이 사대부가에서 중인, 평민으로까지 확대됐고, 중국 소설을 번역한 소설과 또 한글 소설이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17세기 후반에 시장 경제가 어느정도 활기를 띠는 가운데 소설이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전문적으로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이 18세기 중반까지 성행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세책점에서는 필사본을 주로 대여해줬지만, 아예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량으로 찍어서 판매하는 방각본 소설도 등장하면서, 상업성을 겨냥한 근대적인 형태의 출판의 싹이 이때 심어졌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세책점이 등장한 시기가 엇 비슷했지만, 조선이나 유럽의 경우 도덕론자들은 소설이 비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세책점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반면에 중국은 일찍부터 출판이 왕성하게 이루어졌고, 판매가 활발해서 상대적으로 책세점이 뒤늦게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집으로 방문하는 카시혼야(貸本屋)가 존재했지만 여성 카시혼야의 경우에는 매춘도 겸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하니 세책점은 그 나라 사회,경제적 상황에 맞는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 세책점들은 상업성을 겨냥해서 영업을 한 것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조선의 문화와 문학이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유통과 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문화기획자이자 경영인으로 손색이 없다. 세책점 덕에 소설이나 책이 더 많이 생산되었고, 대중들에게 한층 가까와 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세책점도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그 역할을 다하고 말았다. 근대적 지식인들의 등장과 새로운 인쇄 책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 등장하는 등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에 걸맞게 출판사의 등장과 대여보다는 판매가 강세를 보이게 됐던 것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다는 옛말이 있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이 세책점 때문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권도 아니고, 수십 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빌려보려면 대여비가 경제에 부담이 됐다니 말이다. 실제로 일부 집안에서는 세책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는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비싼데도 빌려 봤다면 소설이 그만한 재미와 오락을 제공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세책점들이 17세기나 18세기 무렵에 등장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지식이 막 대중속으로 보급되고, 사상이 발전하던 시절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 세책점이 존재했고, 세책점을 통해 책은 백성들과 가까와졌다.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소설 속 세상은 억눌려있던 조선 여인들에게는 일종의 지적 쾌락이자 해방구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조선과 영국의 도덕론자들이 소설을 비난한 것만 보더라도, 소설은 현실에 대한 불만과 현실 이외의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보다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데 자극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불씨를 지폈을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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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하나의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대체적으로 조선 후기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양반들이나 가능했던 일이었다.
출간되어 유통되는 책의 종류나 양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많은 책을 소장하는 것도 일부 사람들에게나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책을 빌려서 베낀 다음에 돌려준다거나 빌린 책을 갚지 않은 이를 원망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 무렵에는 다양한 책들이 활자나 목판으로 인쇄되어 출간되었으며, 주로 대중들이 많이 찾는 소설들에 집중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이라는 부제로 보아, 이 책은 소설의 출판과 유통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책업’이란 다량을 책을 보유하여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세책가는 오늘날의 도서대여점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다만 책값이 결코 싸지 않았기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책을 사기보다 주로 세책가에서 빌려보았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에 주로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소설에 대한 관심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써 세책업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에 더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세책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조선의 그것과의 비교를 하고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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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들었던 소설이 있다 소설을 읽기 위해 재산을 탕진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나도 한 달에 책 구입비가 자그마치 50만을 넘긴 적이 많다. 아내의 불만과 아이들의 아우성이 아니었다면 100만을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책 중독도 마약 중독만큼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소설을 읽기 위해 재산을 탕진한다는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럼 조선시대는 가능했을까?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있었다고 항변한다. 정말 있었을까? 그렇다 정말 있었다.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로지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중학교 때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저자 소개는 거두절미하고, 책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표지에 적힌 부제가 말해주듯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을 다룬다. 책의 첫 문장에서 2006년도에 개봉한 <음란서생>을 끄집어낸다. 난 아직 본적이 없다. 다만 약간 음란하다는 것은 안다. 김민정이 열렬했던 일종의 코믹 영화이다. 저자의 소개문을 그대로 옮겨왔다.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의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윤석(한석규 분)은 권력과 당파 싸움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권태로운 생활을 해나가던 터에 우연히 저잣거리 유기전(鍮器廛)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난잡한 소설책’을 접하고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나. 급기야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흑곡비사]는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여성 독자들은 몸이 달아올라 너 나 할 것 없이 이 책을 빌려다 읽으려 아우성치고 심지어 구중궁궐 안 왕의 총애를 받던 정빈(김민정 분)의 손에까지 흘러들어가게 된다.” 소설 같은 이야기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되묻는 일은 당연하다. 저자는 “그렇다”라고 답한다.(6쪽) 정말 그랬다고 한다. 소설의 조선을 뒤흔들었다 한다. 그것도 음란한 소설이 말이다. 성리학이라는 고상한 철학을 가진 유교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내 허상인 ‘소설’을 배격했다. 한문학에 밀려 천대 받았지만 ‘왕실에서부터 사대부 남녀노소는 물론, 천민에 이르기까지 듣는 소설 또는 읽는 소설로서 널리 사랑을 받으며 확대, 발전’했다.(7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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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란서생]을 보고 조선후기의 상업목적의 책 대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어느 정도 이 책으로 해결했다. 역사책을 통해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은 소설에 대해서 대단히 안 좋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런데도 소설이 그렇게 많이 읽혔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 임금 같은 경우는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한 경우도 있었고, 대궐에서 숙직을 하던 정승이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대단한 중징계를 당했다는 사실도 역사책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의 독서는 어떠했을까 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전후로 중국 소설과 그 소설을 번역한 국문소설이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고 16세기 후반에는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은 국문소설을 읽는 경우가 흔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소설이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중반에는 전문적으로 책을 필사해서 돈을 받고 빌려주는 세책업이 성행한걸 보면 꽤 활발했던 것 같다. 세계의 주요국가 대부분이 18세기에 도서대여점이 등장한 걸 보면 다 비슷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인 문화기류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중국만이 책 대여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걸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아마 중국은 일찍부터 관청의 허락이 없어도 책의 출판과 판매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또 출판기술의 엄청난 발달, 또 대량출판을 해도 소화해낼 수 있는 대량의 독서인구를 가졌다는 점과 엄청나게 대규모의 서적상인이 있어서 책을 샀지 빌려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흥미거리로 조금 재미있게 읽어 볼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