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서평에는 나의 취향이나 초라한 수준따위가 기준이 되어선 안될 것 같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자꾸만 든다. 처음 30장부터 그렇게 나를 흔들어놓았다. 실로 오랜만에 내 삶의 기준과 수준이 의심스러워졌으며, 실로 오랜만에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독서의 체험이었다. 프랑스리옹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행기 조종사, '어린왕자'라는 강력한 작품으로 전세계에 각인되어 있는 그 생떽쥐베리의 소개글 중 [1944년 7월 31일 남프랑스 지역정찰 비행을 위해 출격한 직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라는 마지막 줄을 읽었을때의 먹먹함이란... 정신차린 후 드는 생각은 왜 이리도 위대한 작가들은 우리 곁을 빨리 떠나느냐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토록 그가 작품속에서 부르짖었던 인간의 고귀함,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극한의 상황들 속에서의 명상과 사유들... 그것들 앞에서 깃털같이 한없이 가벼운 나의 사고들은 완전히 흩어져버리고 작가로써가 아닌 인간 생떽쥐베리의 자전적 경험들은, 그 경험에서 우러난 숭고한 사색의 결정체들은 어느새 내 마음 속을, 영혼 속을 마음껏 비행하며 헤집어 놓고 있었다.
직업이라고 규정하기에 너무 큰 의미로 다가온 비행사라는 사람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동료의식과 그것을 뛰어넘어 죽음과 인간의 고독이라는 뗄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맺어진 철저한 유대감과 휴머니즘을 이처럼 잘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또한 비행중 혹은 체류 중 만난 포로와 노예들과의 관계들 속에서의 생떽쥐베리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켜할 것들과 그 안에서 발생되는 책임이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슴 저릿하게 느껴지는 모든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여실히, 그만의 서정적인 문장과 단어들로 뱉어내는데 읽으면서 숨이막힐 것 같았다.
다시 직업적인 면으로 돌아가자면, 길에서 고장난 자동차는 잠깐 갓길로 멈춰서서 수리를 기다릴 수가 있고 바다 위에서 고장이 난 배 역시 잠시 구조를 기다리며 몸을 물에 의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것이 고장이 나거나 연료가 떨어졌다, 혹은 항로를 이탈해 버리면 멈춰 있을수도 없고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끄럽게도 나는 비행사라는 사람들, 그들이 선택에 따르는 위험성과 공포 그리고 고통, 그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은 커녕 필연적인 대가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어리석고 어리석은 우물안 개구리를 조용히 그러나 근엄하게 꾸짖는 이들이 있었으니 셍떽쥐베리의 동료들, 그리고 그가 만난 낯선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단지 다시 떠나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었던 동료 메르모즈, 결국 자신이 개척한 하늘에 숨어버려 셍떽쥐베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통보되지 않는 자연과 운명의 선고에 비행사들은 점점 죽음에, 공포에 초연해지는 자신들을 발견해나간다. 안데스 산맥을 횡단하다 조난당한 기요메의 이야기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들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과 누군가는 처절하고 어쩌면 숙연하기까지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간들을 나라는 누군가는 너무 어이없이 낭비하고 있다는 허탈함을 남긴다.
셍떽쥐베리가 비행을 하며 만난 야만인들과 바르크 영감을 비롯한 노예들, 그리고 전쟁중인 많은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너무나 인간답게 대우하고 본질적으로 꿰뚫어 표현하려고 애쓴 부분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일지라도 무지막지한 감동으로 혹은 낯설지만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로, 마치 미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인양 흥분하며 읽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인간관계를 가장 사치라고 한 셍떽쥐베리가 오아시스라고 표현한 쳅터V의 어느 낡은 오두막에 사는 가족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사치는 인정될만하며 거론된 인물들은 그의 책 속에, 그의 여행 속에 녹아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일 듯 싶다. 우리의 삶은 사막이지만 그가 발견한 관계속에서의 꿈과 열정은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꿀맛같은 오아시스였고, 그것은 비행중에 혹은 만남 속에서 끊임없이 빛났다. 설사 사막에 불시착하여 메마른 심장을 끌어안고 갈증에 허덕이며 신기루를 볼 지언정,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만의 사유의 즐거움은 빼앗아가지 못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은 비행이 마지막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이유, 자연에, 대지에 도전하며 그는 구름 속 혹은 바다 위 어디선가, 혹은 낮에는 행로의 한 지점이 되었으나 밤에는 눈앞에 들이닥치는 장애물이 될 산봉우리 어디선가, 혹은 내 마음 속 어디선가 계속 비행하고 꿈꾸고 글을 쓰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지는 위대하다.
|
|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을까? 호두과자엔 호두가 왜 안들어가 있어??? 어린시절 궁금증중의 한가지는 이랬다. 그리고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만난 소설 <어린왕자>. 거기엔 어린왕자가 들어있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을 보통 행동주의 문학의 백미라고 칭한다. 단팥빵에 들어있는 단팥처럼 그의 소설속에는 어김없이 비행기와 조종사인 그의 모습이 들어있었고, 그의 일과 경험 그리고 그의 현실 인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와 생텍쥐베리... <인간의 대지> 앞에는 언제나 이런 수식어 들이 앞선다. ' <어린왕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소설' , '생텍쥐베리의 대표적인 두 작품' 과 같이... <어린왕자>의 첫느낌이 싱그러움과 따스함(물론 어린시절과 지금의 느낌은 사뭇 차이가 있지만..) 이라면 이 책 <인간의 대지>는 약간의 무거움과 비내리기전 어두운 하늘색 이랄까? 그랬다. 색깔부터 차이를 느꼈다. 노랗고 빨간색이 전자라면 흑색, 짙은 갈색의 느낌이 후자였다. 그의 소설에서는 빠지지 않는 소재... 비행기, 사막, 고독, 친구, 그리고 조종사인 자신의 모습 담겨있다. 그는 비행기를 '완벽한 분석의 도구'라고 말한다. 이 기계를 통해 이전까지 우리를 현혹하던 대지의 참 모습을 일깨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익히 알던 길은 우리를 현혹시켰지만 이 기계는 하늘 높은 곳에서 그 진정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는 단순히 도구일 뿐이다. 그것이 목적이 될수는 없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가 우편 조종사로서 당시의 험난한 비행항로의 개척에 책임을 다하고 잦은 추락과 조난속에서 동료들과의 우정을, 함께한 시련을 최고의 순간과 가치로 꼽은 것을 보면 그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것보다 가슴에 담겨지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 메르모즈와 기요메...와 함께한 우정, 항로이탈과 조난, 사막...그리고 죽음. 그 속에서 그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엿보인다. 생에 대한 감사 ... '생명의 시작인 아침을 선물로 받는다' (P. 34) 삶의 자세 ...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일이다.' (P. 69) 생의 진리 ... '견디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P. 198) 그리고 사막에서 죽음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사막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 그에게 던져진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또 다른 희망과 인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저항하는 대지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고통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인간의 대지>는 조금은 무겁고 어렵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나 자서전의 느낌을 받게 한다. 앞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행동주의 문학의 백미라고 언급했다. 자신의 일속에서, 삶속에서,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삶에 대한 고찰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사색을 이야기한다. 대지와의 소통을, 책임을 다하다 마침내 생을 마친 자신의 동료 기요메에게 바치는 이 책 <인간의 대지>는 현실의 우리에게, 지치고 상처받은 가슴들에 내미는 작은 치유의 손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만나는 독자 스스로에게 인생의 의미와 항로를 열어가도록 하는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그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도 고개들어 하늘을 보면,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미소지으며 우리에게 손 흔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
|
생텍쥐페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어린왕자'이다. 예쁜 그림의 짤막짤막한 글때문에 꼭 동화책같다. 하지만 결코 만만하지는 않은 심오한 책 어린왕자. 나 역시 어린왕자를 어린 시절 읽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림이 예쁘긴한데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수 없었던 난해한 글... 크고 나서 너무 유명한 책이라 다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서는 다시 읽지 못했던.. 다만 수능을 위해서 몇부분만 읽곤 했던 책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의 또다른 책인 인간의 대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생텍쥐페리는 조종사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의 비행 이야기이다. 지금만큼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이 대중화 되어 있지 않고 안전하지도 않았던 시절. 그와 비행기에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그가 비행기를 타고 갔던 지역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책이다.
어린왕자와 마찮가지로 글의 문체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건이 한방향에서 진행되지 않는탓에 잠깐 딴생각을 하면 흐름을 놓쳐 한글만 읽고있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몇번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ㅡㅡ;;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나쁘지는 않았던것 같다. 잔잔한 글 속에 삶의 뼈가 들어있는 듯도 하고, 그의 삶을 내다보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사실 인간의 대지라는 제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것 같지는 않다. 그가 말하려고 했던 인간의 대지란 인간이 범접할수 없는 그런 힘을 가진 존재를 말하고 싶었던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생텍쥐페리의 책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것 같다. |
|
|
|
자전적 소설이라기 보다는 글의 화자인 '나' 생텍쥐 베리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다. 인간의 대지를 읽는 동안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된다.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사막여우,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있을 우물때문이며, 밤하늘의 별이 소중한 건 우리의 어린왕자가 수많은 별 중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손짓하며 웃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갈피 갈피에서 어린왕자가 불쑥 튀어 나와 '안녕!'하며 인사할 것 같은 느낌. 처음 읽었는데도 꽤 친숙하다. 인간의 대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늘 오갔던 비행과 사막에서의 불시착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면서 사유하게 되는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담긴 소설이다. 나, 생텍쥐 페리는 우편물 수송기를 운전하는 비행기 조종사이다. 초창기의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의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불시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비행일 수도 있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조종석에 오르지 않았을까? 칠흙같은 밤이면 오로지 '조종사' 혼자 세상에 남겨져 있는 것처럼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하늘을 홀로 나는 것이다. 아, 그 고독하고 외로운 밤하늘의 별이 그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 공기와 그 바람을 맞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조종사인 나는'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새벽녁에 문을 여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간밤의 고통을 웃음으로 날려 버리며, 따끈한 크루아상과 밀크커피를 앞에 놓고 식사를 할 것이다. 네리와 나는 이 생명의 시작인 아침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p.34> 그래서 이토록 외롭고 위험한 시간이 지나면 커피향 가득한 냄새와 구수한 빵냄새를 맡으며 소박한 아침을 즐기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이룰 수 있음을 감사한다. "아니, 절대로 아니예요. 할머니, 이번에는 동네 정원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광야의 씁쓸한 고독의 냄새와 모래바람과 열대 지방의 찬란한 달그림자를 갖고 돌아오는 길이라고요." <99> 아마도 '나는' 광야의 씁쓸한 고독의 냄새와 모래바람 때문에 위험을 무릎쓰고 하늘을 나는게 아닐까? 비록 그 탐색에 나는 조금도 희망을 걸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탐색들이 내겐 유일한 구원의 기회처럼 보인다.<196> 단 한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주저않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내가 보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걸어가는 저 사람들을 향하여 뛰어가지 않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저기, 보이지 않아!<208> 그 지독한 신기루 속에서 차가운 이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외친다. 저기요~ 내가 내가 여기 있어요. 그렇지만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내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안다. 그것은 생명이다. <232> 위험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행을 계속 하는 것은 그것은 위험을 즐기기 때문도 좋아하기 때문도 아닌, 바로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고백은 진실이다. |
|
생텍쥐페리의 소설이라서 매우 보고싶었던책이다. <인간의 대지>에서 주인공은 생텍쥐페리 자신이고 비행사 동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있다. 인상깊었던 구절이라기보단 처음에 "나의 동료 앙리 기요메에게 이책을 바치며"라고 시작하는데...앙리 기요메가 책에 등장한다. 그래서 이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보통 누구누구에게 바치며 라고할땐 그 사람이 책에 등장하기힘든데 이 사람들 진짠데! 하면서.
<어린왕자>에서도 자전적 소설인듯 쓰여졌지만 이 책은 정말 자신이 일을하면 느꼈던 비행사로서의 느낌들이 잘 전달된다. 특히 동료로 나오는 기요메와 메르모즈의 이야기가 인상깊다. 메르모즈는 베테랑 비행사였지만 어느날 돌아오지못하고 기요메 또한 50시간이라는 불가사이한 시간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두들 포기하는데 돌아온다. 인간의 대지는 비행사로서 그리고 현대처럼 기술이 발달하지않았던 예전의 비행기술로서 느꼈을 어려운 시간들을 잘 묘사했다. 지금은 기술적인 면이 많이 발달해서 아무렇지도않을 안개,바람,비 등 자연적 힘이 이때까지도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비행사여서 그런것들을 많이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구름바다를 비행하면 목숨을 내놓은것이라던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되어도 당연한일인듯 받아들여야하는... 자연의 위대한 힘과 그걸 거스를수없는 작은 인간을 잘 표현했다고할까? 생텍쥐페리도 비행을 하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는데 지표를 찾지못해 불빛만을 쫓는 부분에서 과연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하지않을수없었다.
<어린왕자>에서의 아기자기한 재미와 인상깊은 구절을 기대했지만 그것보다도 담담하게 쓰여진 생사의 고비가 오히려 강하게 남는 소설이었다. 읽는 내도록 소설이라기보단 자신의 자서전인듯 독자와 화자가 하나가 된듯해서 몰입되는 정도도 좋았다. 인간의 대지보다 인간과 대지가 더 맞지않았을까 잠시 생각했던 책이었다. |
|
그의 비행에 대한 사랑은 본능에 가깝다. 그의 하늘과 비행과 일과 대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람이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을때, 가장 많은 생각을 한다고 했던가. 그도 그랬다. 동료 비행사들의 사고와 죽음, 그리고 자신의 사막에서의 사고는 그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마도 이 책의 이야기들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사고를 예견하며 집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동료 비행사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그들의 직업의식을 볼 때 그 역시 자신이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낼 날에 대한 준비를 미리 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생텍쥐페리. 그는 과연 누구일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왕자>의 작가라는 것. 비행사였다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 이 세가지였다. 알고보니 어린왕자는 이 <인간의 대지>보다 더 후기에 쓰인 작품이었다. 그의 비행 이력이나 하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느끼다보니 그가 순수한 어린왕자를 탄생시킨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각과 글은 아름다웠다. 가끔 출장을 갈 때,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서 대지를 보면서 인간이란 참 하찮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점보다 더 작게 보이는 존재들이 그렇게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다니, 다들 한번쯤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서로 사랑하면서 살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곧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르는 것으로 동료들이 쟁취한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아는 마음, 하나의 돌을 쌓더라도 세상을 세우는 데에 이바지한다고 느끼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
생텍쥐베리가 안데스산맥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살아돌아온 친구 기요메를 두고 한 말이다. 결국 그 역시 죽음과 맞서 싸우게 되었을 때 기요메의 용기의 무게와 맞먹는 신념을 가졌을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