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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툭툭 두드리면 글을 쓸 수 있는 편안한 컴퓨터에 길들여져서인지 오른손으로 연필을 꼭 잡고 종이 위에 사각사각 글씨를 써내려가던 그 느낌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학창시절 하루 종일 함께였으면서도 집에 가서 동무들에게 또 편지를 쓰고 되돌아오는 답장에 즐거워하던 기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가며 마음이 싸해진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차갑고 각박한 현실 속에 살게 된 것일까? 서로에게 따스한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 보낼 여유조차 없는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나의 넋두리는 전부 [작가들의 우정편지]라는 이 책 탓이리라.
문학을 사랑하여 고독한 그들의 편지들은 정해진 시기가 없다. 문단에 등단하기 훨씬 이전인 학창시절의 편지들도 있고 이미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된 이후에 쓴 최근의 편지들도 있다. 아직 여물기 전의 곡식처럼 조금은 어설프고 순수한 그들의 문체에 살포시 미소 짓다가도 이미 잘 익어 고개가 숙여진 벼처럼 꽉 차고 숙련된 글들을 읽으며 역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르구나하는 감탄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러 작가들의 우정 어린 편지를 읽으며 나는 좀처럼 듣기 힘든 그들의 창작의 고통에 대한 토로와 여러 사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사색을 하며 문학을 사랑하기에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글이 없이는 살아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는 참으로 모순된 상황 속에 처해있다. 그러한 복잡한 상황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서로가 나눈 진심어린 편지는 간절하고 때로는 애잔하다.
편지문학이란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분야이다. 편지들만을 모아 출간한 책도 많지 않고 독자들은 편지글을 문학의 한 종류라고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출간된 [작가들의 우정편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문학의 모습을 소개해주고 작가들만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작년에 [작가들의 연애편지]가 먼저 출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우정의 편지도 재미있었지만 연애편지는 왠지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이제 작가들의 우정은 충분히 음미했으니 그들의 연애편지를 훔쳐볼 시간인 것 같다. 갑자기 연필과 종이가 그리운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으로 펼쳤던 책을 감동이 가득 찬 상태로 덮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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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만을 위한 나만의 그 무언가를 떠올리니 편지가 따라온다. 손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데 친구의 생일이나 지인에게 깜짝 선물로 편지만큼 좋은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종종 편지를 쓴다. '작가들의 우정편지'라는 이름을 보고 작가들은 얼마나 멋지게 편지글을 쓸까 하고 무척 궁금했다. 시인들은 한 편의 시처럼 편지를 쓰지 않을까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색다른 글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달려나오고 있었다.
편지라는 형식을 빌어 또 다른 문학장르를 소개하고 싶었던 김다은 작가의 신선함이 무척 돋보이는 책이라 우선 말해두어야겠다. 편지라는 이름을 빌어 자신의 문학적신념을 이야기하고 또 서로 소통하는 작가들의 편지를 읽노라니 새삼 문학을 꿈꾸었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훔쳐오는 듯 나는 살짝 흥분하기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미래의 작가를 알아보고 펜팔형식으로 편지를 주고 받은 작가이전의 작가들의 편지는 내게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신변잡기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나의 그 시절 편지를 떠올리면 작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닌가 싶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작품으로 접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짧은 편지글을 통해서 그 작가의 글을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윤성희, 함정님같은 작가들의 이름은 낯이 익지만 그녀들의 작품보다 나는 편지글을 먼저 만났기에 추후에 작품을 만나더라도 그녀들의 편지가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한강의 어릴 적 추억을 엿보는 듯 했기에 그 즐거움은 표현하기 어렵다.
여러가지 편지글 중에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애절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숙하기 까지 했다. 마음의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은 돌아가신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편지글을 쓰는 동안 사는데 바빠서 잊고 지내는 나의 불효도 용서받고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시도인 상대를 알지 못하는 채로 쓴 편지는 어릴 적 위문편지의 묘한 느낌을 떠올렸는데 작가들의 편지에는 짤막한 문학강의를 듣는 듯 했다.
편지라는 것이 작가들에게 있어 문학의 연장선에 있다는 저자의 설명을 만나니 편지라는 것이 참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또 하나의 일기와 같은 기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게도 상대와 나만의 기록일 수 있으니 편지를 쓸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요즘 편지라는 것이 받는 사람의 기쁨보다 편지를 쓰고 있는 내게 주어지는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알고 있기에 연말이 되어 부랴부랴 형식적인 새해인사가 아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써야겠다. 생각뿐 아니라 당장 고운 편지지 하나 장만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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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있을 미지의 독자에게, 제가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까닭은 지난주 내내 우리 시대 작가들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의 우정편지』의 편저자 김다은은, 편지는 일기와는 달리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독자를 향해 말하는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라 일러줍니다. 편지들을 읽으며 ‘내가 편지를 쓴 때가 언제였던가?’ 하는 아련한 그리움을 넘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리하여 맨 처음 생각나는 동무에게 편지를 썼고 이렇게 다시 미지의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막상 편지를 쓰려니 쓰고 싶은 욕망만이 넘실댈 뿐 모니터의 커서는 제자리에서 오래도록 깜박입니다. 첫 문장이 문제인 것이지요. 그다음 또한 문제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얘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여전히 막막하고 갑갑합니다. 책에서 소설가 권지예는 소설가 조경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작가인 우리는 고통 민감증 환자인지 모릅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는 나의 힘, 나는 고통을 잉크 삼아 글을 쓴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고통스러울 때 글을 쓰는 일이란, 마치 고통의 피고름이 가득한 심장에 펜을 콕 찍어 글을 쓰는 동통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고통의 잉크도 준비되어 있고 심장에 펜을 콕 찍어 쓸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작가들도 저러할 진데, 하찮은 잡문이나 쓰는 제가 독자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경란처럼 “여태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 무능에 대한 한탄이 어느새 첫 문장이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태수는 친구 우석에게 죽음을 앞두고 말하지요. “그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작가들도 작가가 되기 위한 그 불안하고 치열했던 습작 시절보다는 그다음이 문제인 모양입니다. 소설가 김나정은 소설가 이정은에게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전에 나는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다. 사는 게 고달파도 몇 시간 글을 쓰면 속이 후련했다. 까만 말을 타고 흰 들판을 휙휙 날아다녔다. 그런데 덜컥 등단을 하니 프로가 되었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등단 이후로는 글 쓰는 게 정말 힘들었다. (중략) 문학이 너를 끝끝내 괴롭힐 것 같으면 버리렴. 하지만, 끝끝내 버리지 못하겠으면? 지금 끝내면 난 죽을 때까지 미련이 참 많이 남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지, 그 말을 서둘러 해버리자는 게 아닌 것 같다. 정은아, 문학 그 더럽고 질긴 사랑에 지금은 온 힘을 기울여주는 것이 예의일 듯싶다.」 또 다른 작가는 습작 시절의 그 죽음처럼 깊은 절망과 기다림보다 등단 후에 깨달은 문학이란 것이 더욱 아픈 울림으로 들려옵니다. 작가가 되겠다며 해발 600미터의 탄광촌으로 찾아든 자신의 행보가 얼마나 삶을 기만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이들을 깔보았던 섣부른 충동이었는지를 작가는 고백합니다. 등단에의 무망한 기다림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떠나려 했던 교정에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 작가를 오늘에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에서 저는 소름이 돋고 살갗을 파고드는 전율에 진저리를 칩니다. 소설가 박상우는 그 시절 자신의 문학적 사표였던 선배에게 편지를 씁니다. 「문학이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문학이 내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열정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지도 이제는 압니다. 의사에게 청진기가 있고, 축구선수에게 공이 있듯이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언어’라는 도구가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중략) 작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생을 위해 참다운 글을 지어야 합니다. (중략) 요컨대 참다운 문학은 인위적인 ‘쓰기’가 아니라 자연스런 ‘짓기’입니다.」 「문학은 결국 ‘나’로부터 ‘다른 나’에게로 가는 인간적인 통로임으로 나를 끊임없이 연마하고 다듬어 인생의 본질적인 무늬에 더욱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글짓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당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죽는 날까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중략) 나는 고작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형은 문학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깊은 깨침이 되어 오늘 지천명이 되었음에도 형은 여전히 내 부끄러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미지의 독자여, 우리가 조금의 시간과 더 적은 수고만 있으면 만나고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이렇듯 깊고 깊은 동통과 죽음과도 과감히 바꾸려 했던 작가들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태어나는 고통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문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학을 ‘살기 위해’ 지금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신음하며 아파하며 피고름 맺힌 심장에 펜을 콕 찍어 짜야만 하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작가라는 외로움입니다. 소설가 윤성희는 일 년 먼저 등단한 선배 강영숙에게 외로움과 작가로 된 불안감을 토로합니다. 「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었어요. 사방이 막혀 있었는데도 바람이 부는 것 같았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저는 일 년 전 선배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 미안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저는 많은 위로를 받거든요.」 소설가 해이수도 소설가 친구 노희준에게 외로움을 말합니다. 그들은 소설가 해이수가 학생들과 함께 ‘신중히’ 한 학기를 보내면, 다음 학기에는 그 학생들을 노희준이 ‘까칠하게’ 가르치는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또한 노희준이 ‘시비조’로 강의했던 아이들을 해이수가 ‘섬세하게’ 출석을 부르는 같은 학교의 동료 선생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문득’ 만나서 서로 ‘불현듯’ 딴소리를 하며 취했다가는 ‘별안간’ 헤어지기 일쑤니까. 그러나 그 간극 속에서 내가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믿음 또는 이해의 소통을 갈망하는 결핍된 존재, 외로운 단자라는 사실이다.」 소설가 김영현은 후배 소설가 이명랑에게 “나이 들수록 실없어져야 한다. 허튼소리만 해야 해.”라고 일러줍니다. 이명랑은 김영현의 실제 삶에서 그 말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닮고 싶어 합니다. 미지의 독자여, 삶을 살면서 주위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앞서 보았듯이 박상우에게 마석규 선배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은, 곧 이 지리멸렬하고 부조리한 삶을 견디도록 해주는 가장 큰 힘인 것이지요. 「선생님은 정말 그리하셨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스스로 낮추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중략) 저 사람을 닮고 싶다.」 그런가 하면 시인이자 소설가요, 날카로운 평론가인 이승하는 문단의 권위적 편견과 교조적 선입견으로 괴로워합니다. 또한 허섭스레기만도 못한 문학상 수상 여부가 작가의 문학적 밀도와 질량을 표시하는 문단의 풍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합니다. 일침을 가한다기보다는 그런 작단의 시류에 부적응 양상을 보이는 자신이 한스럽고, 심지어는 죄책감에 울어야 합니다. 시인은 시만 써야 하고 소설가는 산문만을 고집하라는 장르 고수의 협박은 대체 누가 만들어 놓은 작가의 감옥인 것인지요. 미지의 독자여, 우리 문단의 주례사 비평에 대한 힐난과 비판에서 익히 알고 있듯이, 몇몇 메이저 출판사와 그와 결탁한 영혼 없는 작가들의 글 생산과 뒷배 봐주기는 정말이지 끔찍한 지경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독자여, 그대도 이승하의 『뼈아픈 별을 찾아서』를 읽으며 나처럼 철철 눈물을 흘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밑에서 /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 하지 않는다면 /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 아들아 네 등 뒤로 떨어지며 /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 뼈아픈 별이기에 /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아들에게」 중에서) 이 편지의 수신자인 독자여, 당신에게 쓴 편지라는 것이 고작 책에서 읽은 것을 골라 적은 졸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이 편지가 나의 신산스러운 일상을 전하고자 함도 아니요, 잡다한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고자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전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글을 쓸까?’ 그것이 궁금했고 책을 통해 보게 된 작가들의 속살을 본대로 알려주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소설가 정영문이 소설가 은희경에게 쓴 편지에는 재미난 일화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배가 그곳(시애틀)에 살던 무렵 어느 날 물가에 피크닉을 갔을 때 주위에 몰려든 까마귀들에게 어떤 음식-겨자가 들어간 유부초밥이었나요?-을 주자 그것들이 맛을 보고는 그 얼얼한 맛에 화가 나 사람들을 공격해 결국 피크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요.」 미지의 독자여, 저는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편저자 김다은이 “왜 우리 문학에서는 서간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편지가 문학 텍스트 혹은 한 문학 장르로 발전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해설을 실어준 것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미하일 바흐찐의 “장르는 형식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면서 역사적인 실체”라는 시각에서, 우리의 편지문학이 식민지배와 군부독재의 정보정치로 인한 억압에서 발전하기 어려웠고, 전통적인 장르에 대한 신봉으로 편지문학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는 편저자의 설명에 “옳다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혹은 바로 여기에서 만날 독자여, 이제 저의 편지를 마쳐야겠습니다. 제가 오늘 독자와 나눈 작가들의 생각은 어쩌면 당신이 그들을 다시 만날 때, 다르게 읽히고 제 생각과 다르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생각은 누구나 자신만의 것임으로, 그것은 작가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는 나의 경험과 나의 시선으로만 대상을 보고 생각할 뿐입니다. 다만 여러분 혹은 당신이 작가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그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편지를 받을 미지의 독자여, 그대에게 쓴 이 편지로 저는 행복하였습니다. 안녕히! 겨울이 어른거리는 땅 위에서 이목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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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우정편지 - 김다은 편저
중해 하며 박스에 담아 놓고 두고두고 꺼내보고 그랬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만들기도 하고 또는 가장 이쁜 카드를 주고 싶어 여러군데 돌며 카드를 돌아보고 다니곤 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히 느껴 질 정도로 편지와 담쌓고 사는 요즘이다.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편지다운 편지는 아니지만 남편에게 엽서 한두장 썼던게 다인것 같다. 그런 중에 내 눈에 들어온 작가들이 다른 사람과 나눴다는 편지들이 담긴 책 한권이 있다. 정편지". 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문학을 한다는 것과 문학을 산다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줬다는 어떤 작가의 편지. 자신은 고작 문학 을 하며 살았고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담겨있다는 다른 작가. 우리가 보기엔 아마 그들 다 잘 살았을 거다. 문학을 살았을 거다. 자신의 자리는 낮추고 상대방의 자리를 자연스레 높여주는 마음씀이 곱다.
"문학은 결국 '나'로부터 ''다른 나'에게로 가는 인간적인 통로이므로 나를 끊임없이 연마하고 다듬어 인생의 본질적인 무늬에 더욱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글짓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당도하게 되기를 간 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인간적인 고뇌 끝에 나온 결과가 아닐 까 생각해본다. 그러기에 더 인상깊게 다가왔는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적어온 나의 행위가 되돌아보아졌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나로선 짜임새있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끔 하는 능력은 없다. 다 만 내 느낌을 진솔하게 적으려고 노력은 해왔다. 그런 나에 비해 작가들의 책을 쓰거나 시를 쓰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선배, 저는 여태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첫문 장 쓰기가 그토록이나 어렵단 말인가. 작가들의 창작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편지 한편한편을 읽으면서, 거의 다 읽어가면서, 우정편지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연애편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사랑을 이야기할지 궁금증이 더해져 감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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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해외에서 살 때, 인터넷도 없었고, 전화비도 비쌌기에, 한국에서 예쁜 편지지를 잔뜩 사서, 친구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쓰곤했었다. 그 덕분에, 초반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편지란 받으면 정말 기분이 좋은데, 쉽게 쓰게되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전화와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는 시대에 편지란 왠지 구시대적으로 느껴지기도한다. 하지만, 정말 좋은 책,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읽으며, 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편지는 단순히 안부/소식을 전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는 공간이고, 남이 아닌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곳이기도 하다. 같은 작가끼리 격려와 비판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생판 남인 두사람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작가들에게 편지는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습작의 장이었고, 이미 많은 세계 유명 작가들의 편지 역시 문학작품만큼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남에게 쓰는 편지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고, 얼마나 재미가 있으려나- 처음 받은 책의 표지는 너무 예뻤지만, 소장용으로 만족할 것 같았고, 내용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작가들이 느꼈던 아픔과 기쁨과 즐거움에 마음이 자꾸 촉촉해졌다. 이미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그리움, 과거를 추억하는 기쁨, 상대방을 비판하고 격려하는 그들의 글은 마치 나를 향한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 편지가 쓰여진 이유인 수신자가 부러웠다.
이 책을 읽고, 편지마저도, 열심히 쓰는 작가들의 모습에서 아무말이나 쉽게 써버리는 내 자신의 글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특히나, 요즘처럼 거의 습관적으로 노력도 안하고 비슷한 글을 쓰는 내가 잘못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느낀 것을 솔직히 적어내려간다는 핑계로 좀 더 아름답고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나-
우정과 편지는 각각 따로 놓고 보아도, 누가 소유하더라도 아름답고 따뜻하다. 좋은 글을 써내는 작가분들의 편지와 우정은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동안 메말라있던 가슴이 작가들의 우정편지로 다소 촉촉해진 것 같아 무척 기쁘다. 그들의 편지가 언젠가 서간문학이라는 한 문학의 장르를 개척하는 시작점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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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출간된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이어,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은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출간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와 에세이스트와 외국 작가들이 모두 모여 한판 일구어낸 우정편지들은 문학 습작시절의 우정, 작품의 영감을 위한 우정, 여행같은 삶의 우정, 갈등하고 위로하는 우정, 국경을 초월한 우정, 죽음을 초월한 우정이라는 항목으로 나뉘어 저마다의 삶과 작품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실린 32명의 편지에 보이는 형식은 참 다양하다. 작가가 되기 이전인 중학생때의 편지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고, 고인에게 보낸 편지들까지 시기와 대상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함께 실려있는 경우에는 그들 사이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하기에 더 쉬웠고, 그들의 작품에서 간접적으로 추측해야 하는 것보다 더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책 표지에 쓰여있는 문구, '문학을 가로지르며 삶을 이어주는 편지 속을 걷다'는 말이 아주 정확하다고 할까.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소설가인 편저자 김다은 님이 편지를 쓰고 받은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김다은의 우체통' 코너는, 그들의 역사까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작가들이 책에서 걸어나와 실체로 우뚝 서는 순간이라고 할까.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사는 이들에 대한 친근감이 우러난다.
일기가 혼자만의 비밀스럽고 자유로운 글이라면, 편지는 쓰는 이와 받는 이 두 사람간의 믿음과 추억을 전제로 하는 사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작가의 사망 후 그들이 다른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바로 출간되는 문화가 있는 모양이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사적인 비밀스러움을 지켜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그런 책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읽는 내내 그들 둘만의 공간에 조용히 들어가 엿보는 듯한 묘한 기분과 함께, 마치 내가 편지의 수신자인 듯한 착각도 들었다. 이메일에 밀려, 이제는 문자 메시지에 밀려 손으로 쓴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한번쯤 정성껏 손으로 쓰고 말린 나뭇잎을 곱게 끼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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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 유년기, 학창시절에 썼던 편지들을 뒤돌아보면 새삼 놀랍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편지를 썼고, 어쩌면 그렇게 추억들이 많은지. 어버이날이랍시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왠지 편지로 쓰면 유치하고 낯부끄러운 말도 쉽게 써지지 않던가) 사랑과 존경의 메시지를 담뿍 담았던 일, 레이서의 딸이자 쭉쭉빵빵 금발미녀였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고생과 펜팔을 주고 받던 일, 누가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 그저 예쁜 아이, 그저 착한 아이가 받겠거니 하고 기도하면서 두근두근 집단(?) 편지를 적던 일, 멀리 전학가버린 친구에게 유일한 소통의 수단으로서 편지를 쓰던 일... 심지어는 예쁜 편지지를 판다고 하여 먼 문방구까지 걸어서 찾아갔다가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골라 힘든지도 모르고 돌아오던 일이나, 밤에만 보인다는 펜을 사서 비밀 편지를 쓰던 일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웃음이 걸리는 이런 기억들을 어쩜 그렇게도 잊고 살았는지. 일반인인 나에게도 그런 즐거운, 혹은 행복한, 가끔은 쓰라린 기억들이 많은데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에게는 왜 그런 일들이 없을까. 그런 편지들 중 '우정'에 관련된 편지들을 모아서 펴낸 것이 이 책 '작가들의 우정편지'다. 편지문학이라는, 어쩌면 가장 아름다울지 모를, 그리고 가장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풍부하게 느껴질 지 모를, 하지만 그리 대중화되지 않은 장르를 확립하기 위한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기획서적인 셈이다. 작가들이라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편지 하나하나가 가끔은 소설처럼, 가끔은 시처럼, 그리고 가끔은 기행문처럼 보일까. 일반문이라 할 수 있는 편지 속에 가득한 미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래서 작가구나'라는 느낌에 새삼 놀랍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산고를 겪으며 꺼내놓는 작품들인지도 겉핧기로나마 알게 되기도 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혹은 그의 작품을 읽었던 작가들의 편지들을 읽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지. 그런 마음에 하나하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른 두 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편지를 읽었다. 여기에 자청하여 우체부가 되어준 소설가이자 교수인 김다은씨는 편지에 등장하는 작가들과 편지를 쓰게 된 상황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주어 훨씬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기획서적이었기에 가능했을 법한 26년전 중학생 시절에 받았던 편지에 이미 작가가 된 후에 쓰게 된 답장이나, 어린 시절에 쓴 편지를 통해 이미 그의 작가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편지들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늦으막히 답장을 받았을 때나, 서랍을 뒤져 예전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에도 여전히 기쁘고 반가운 편지의 특성을 잘 살린 그런 기획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졌다. 비록 이미 키보드에, 그리고 즉각적인 e-mail의 반응에 익숙해져버린 나이기에 편지지를 고르고, 펜을 고르고. 그리고 혹시나 틀려 보기 싫을까 머릿 속으로 한 번 써보고 또박또박 신경써서 써내려가고, 그리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수고로움은 감수하고 싶지 않아져버린 나이지만, 우체부가 알려준 소설가 함정임씨의 디지로그식 편지(e-mail이라는 디지털을 활용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날로그의 문체, 호흡, 리듬이 꼿꼿하게 살아있는 그런 편지)라면 한 번쯤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 보낼지부터가 이미 즐겁다. 새삼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한 편지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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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한데 뭉쳐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혜민이, 진숙이, 길쭈(길주현), 현미..... 그리고 나^^ 2학년때의 친구들이다. 학교 교문 앞을 나서면 바로 울 집이라서 점심 시간때면 도시락을 들고 울 집에서 먹거나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소풍 땐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가서 음악 맞춰 신나게 춤 췄던 친구들. 우린 그 때 소위 반장과 부반장과 00부장... 제법 잘 나가는 아해들이었다. 무엇보다 어렸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았고, 마음도 제법 잘 맞았고, 은연중의 경쟁심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도 있었던 반면 나에겐 두드러지지 않지만 마음의 친구도 있었다. 미화....^^ 편지로 주고받았던 곱고 고왔던 친구. 고흐와 동생 테오처럼 영혼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서로의 삶과 서로의 친구가 있었지만 혼돈 가득한 사춘기 시절 고민과 힘겨움의 시간들을 편지로서 교감했던 친구 말이다. 예쁜 편지지에 깨알같이 예쁘고 사랑스런 글자가 또박또박 내 마음을 품어주었고, 너와 내가 있기에 더 의지되었던 시간들..... 월요일.... 학교 우체통엔 예쁜 편지봉투들이 소담스레 쌓여있었다. 미화와 연희의 편지 말고도 힘겨운 시간들을 보듬어 안아 줄 또다른 영혼의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 수북히 쌓인 편지들이 사랑스런 이유이다^^ 친구와 편지가 있었기에 유년의 학창시절은 추억이란 타임머신을 타고서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편지는 너와 나의 영혼의 소통이다. 말로 할 수 없는 마음 속 품었던 생각들을 언어란 매개체를 이용해 소통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아날로그적 편지가 기억 속에서만 유영하고 있다. 느림의 편지가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시대 속으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운 것이다. 그때의 사람과 그때의 추억과 그때의 편지가 그때의 서정이^^
<작가들의 우정편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편지란 제목이 가장 먼저..... 제목에서처럼 작가를 꿈꿔왔던 사람들의 우정이 시간 속에서 녹아있다. 편지를 통해 가꾸어 온 작가들의 우정. 지극히 사적인 편지라기보다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평론가로서의 문학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이 편지 속에 녹아있다. 이 편지는 다분히 작가들에겐 의미있는 실험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습작을 했으니깐..... 읽는 단 한 사람의 독자가 수신자란 이름으로 있으니깐. 작가가 되어 한 사람의 독자라도 설득하고 마음을 흔드는 법을 알아야 되니깐. ~편지란 글쓰기로 우정을 이어 나갔다.... 글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어진다. 편지도 서간체(문)으로서의 문학텍스트로 규정지음에 따라 의미있는 실험적 글쓰기의 한 마당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글쓰는 사람들. 목적지는 달라도 출발지는 같은 사람들의 소통의 공간. 충분히 의미있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 그들은 어쩌면 위로받고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소박한 편지만의 매력이다. 국적이 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편지 속에 마음과 마음이 흐르니깐.... 알지도 못 하는 사람과 겸연쩍해지는 것도 편지가 커버해 줄 수 있다. 편지 쓸때 정성으로 물들인 마음들을 꾹꾹~ 눌러 적었으니깐.... 다음에 처음 만나 얼굴을 마주 대할때도 어색함은 저 멀리 날아갔으니깐... 우리는 영혼으로 소통한 지기니깐^^
<작가들의 우정편지>..... 편지 한 통.... 기대감과 설레임... 얼마나 그들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을까..... 그렇다... 편지는 그렇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 봄빛의 살가움마냥 반가움이다. 디지털의 빠름에 익숙해져버려 아날로그적 감성이 어디로 갔을까? 이 멋지고 풍경 좋은 가을 속에서 나도 편지 한 통 보내야겠다.... 모든 그리움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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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 본 게 대체 언제였었나.. 하다 못해 이메일 이라도.. 업무적으로 쓰는 이메일이야 하루에도 여러 번이지만 마음을 담아 쓰는 편지 혹은 이메일은 정말 오래 전이었던 것 같다 처음 메일을 쓸 때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 동안 메일 쓰는데 빠져 살았더랬다 친구한테도 쓰고 오래 소식이 끊겼던 이들에게도 쓰고 선생님께도 쓰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열심으로 써 댔던 것 같다ㅎㅎ 그치만 요즘엔.. 하다 못해 안부 문자 메세지조차도 거의 못 보내고 있는 듯 못 보낸다고 했지만 어쩜 안 보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구실로.. 이 책은 작가들이 나눈 우정의 편지를 엮은 책이다 소설가인 저자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내외 여러 작가들의 편지를 모아 '작가들의 우정편지' 를 내었다 작가들이 직접 쓴 편지라.. 어쩐지 생소하다 하지만 그만큼 궁금하기도 하고 편지를 쓰는 이가 작가인 만큼 편지의 내용에도 창작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창작에 목말라 하는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남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느낌을 갖는 작가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도 같다 편지라고는 하지만 마치 한 편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은 누군가의 은밀한 일기이거나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나도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편지라도 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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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간혹 시나리오 집필과정을 보게 되거나 다 된 시나리오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 부럽고 대단한 일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글쓰는 일인것 같다. 그냥 글만 쓰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다 감동도 줘야하고, 뭔가 느낌을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작업일 것 같다.
일단 글쓰기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편지는 어떻까? 궁금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때도 그렇지만, 우정편지 또한 궁금했다. 과연 글쓰는 사람들은 지인들과 어떤 편지내용을 주고 받는지..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은 "참, 어쩜 편지도 이렇게 소설스러울까"였다. 이 말은 나쁜듯이 아니라, 꾸밈없이 그냥 쓴 글일텐데도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편지를 내가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걔 중에는 우리처럼 평범한 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역시 글쓰는 사람들은 평범한 안부편지도 다르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총 6단락으로 이뤄진 글들중에 습작시절에 나눴던 편지들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 당선의 기쁨을 나눔에 있어서도 참 담담했던 모습들.. 그런 과정을 겪은후 진정한 문학인의 길을 가기위한 또다른 고뇌들..
때론 낭만적인 말로, 때론 가슴절인 아픔으로 그리고 시대를 풍자하는 글들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들의 속내을 엿보고나니 그들이 너무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도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