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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거대한 해외 영토를 보유한 프랑스는 식민주의 제국의 영광과 이념을 선전하고 식민지 정책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갖가지 식민지 관련 행사들을 개최하였다. 그중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박람회는 그러한 제국주의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초대형 전시로서, 방대한 뱅센 숲에 식민지 각국을 상징하는 화려한 건축물을 재현해놓고 각국 공연단과 이국적 볼거리들이 빚어낸 엄청난 규모의 축제였다. 프랑스 정부가 환상적으로 왜곡해놓은 이 제국주의 박람회는 그 후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의 마음속에 식민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았다.
『파리의 식인종』은 1931년 파리의 식민지박람회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된 누벨칼레도니(영어 이름은 뉴칼레도니아 (New Caledonia)로 국내에서는 한 드라마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의 토착 원주민 백여 명이 등장인물인데, 이들은 동물원에 갇혀 가슴과 이빨을 드러낸 채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원시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된다. 나중에야 한 것이지만 파리의 시민들에게 그들은 '식인종'일 따름이다. 이런 미개한 부족에게 프랑스의 영화롭게 빛나는 문명을 전파한다는 미명은 은연 중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백여 명의 카낙들 중 일부는 박람회 개막식을 앞두고 갑자기 떼죽음을 당한 악어들을 대체하기 위해 맞교환되어 독일의 서커스단으로 보내지게 된다. 본인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졸지에 식인종이 되고 이유 없이 끌려간 약혼녀와 부족들을 되찾기 위해 카낙 청년 고세네와 그의 친구 바디무앵이 동물원을 탈출하면서 그들이 보고 듣고 겪는 프랑스의 실상이 작품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그들이 지하철역에서 만난 세네갈 출신의 흑인의 이야기는 그 당시 프랑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난 세네갈 태생이오. 카자망스에서 태어났지. 내 고향 마을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베르됭 전투에서 죽었소. 독가스에 말이지……. 백인 병사들은 공격에 나서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장군은 우리들 식민지군 저격병들에게 프랑스를 구하라 했소. 이른 새벽에 우리는 마사크도 쓰지 않은 채 참호의 진흙구덩이를 나섰소.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한 군 경찰과 헌병들에게 떠밀려서 말이오. 그들은 죽음의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우리 형제들을 마구 두들겨 팼다오. 독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데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세풀베다의 경우처럼 읽는 재미는 덜 하나 문학의 역할이나 기능, 문학의 효용성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옮긴이의 말에 실린 '호텐토트 비너스' 사례와 더불어 프랑스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악을 고발하는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작품은 프랑스 식민지 노예해방 15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덧붙임] 국내 출판시장이 매우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거대한 메이저 출판사들은 존재한다. 그들이 가지는 함의나 역할 등등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많은 것으로 알지만 차치하고, 개인적으로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나 1인 출판사들도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환경, 안정적으로 좋은 책들을 꾸준히 소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 출판 문화를 위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마뱀 출판사도 국내에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데, 내가 예전에 좋아했지만 이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출판사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함께 고민해볼 문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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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식인종'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소설보다 더 허구같은 현실에서 문학이란 무엇이냐고. '파리의 식인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남태평양의 누벨칼라도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소설은 나에게 생소한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때는 1931년, 아직 제국주의가 청산되지 못한 시기다. 그 때 파리에서 식민지 박람회가 개최된다. 근대는 박람회가 유행한다. 특히 제국주의는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박랍회를 통해 과시하려 했다. 남태평양의 누벨칼라도니 역시 프랑스 식민지로서 박람회에 초청받는다. 말이 초청이지 강제로 동원된 것이다. 누벨칼라도니의 원주민 카낙은 박람회에서 식인종의 역할을 맡는다. 박람회 도중 그들은 자신의 전통과 무관한 의식주 생활을 하도록 강제받는다. 전시를 위해서. 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박람회 주최 측의 실수로 대통령에게 보여주려고 한 악어가 떼로 죽어버린다. 해결책은 독일의 서커스단으로부터 악어를 빌려오기. 악어를 제공하는 대신 서커스단은 누벨칼라도니의 원주민 카낙을 받기로 한다. 악어와 동등한 가치로 인간이 거래가 된다. 이것이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통치하는 방식이다. (논의를 더욱 확대시키면 휴머니즘과 생태주의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말자)
소설은 상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식민지 박람회 풍경. 잃어버린 동료를 찾기 위한 고세네의 노력. 그리고 1980년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누벨칼라도니의 카낙들. 정말 분노를 금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주인공 고세네는 의외로 천진난만하고 재기발랄하다. 번역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는 제국주의 비판과 함께 도시화, 산업화로 상징되는 근대에 대한 비판을 고세네의 입으로 보여주려 한 듯하다.
나는 프랑스 지성을 사랑한다. 데리다, 푸코, 들뢰즈, 바타이유, 샤르트르, 보드리야르, 보부아르, 기타 등등. 하지만 프랑스 역시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국가였다. 물론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표면상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인정하는 한에서 - 더불어 프랑스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 - 식민지 국민들을 프랑스 제국의 시민으로 인정하는 방침을 펼쳤지만 알제리, 누벨칼라도니의 전쟁 등 제국주의에 내재한 모순은 똑같다. 포스트 모던은 포스트 제국주의다. 제국주의는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 근대와 제국주의는 밀접한 관계다. 작가의 비판적 시선처럼 제국주의의 청산은 근대라는 가치 자체에 대한 비판이 함께 제기될 때 가능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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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나는 이런 책을 재미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속터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권할 수가 없다. 내가 권하는 이유를 내 의도대로 제대로 받아들일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 읽고 홀로 생각했다가 홀로 덮는다. 그게 아주 슬프다. 이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없다는 것이. 살아오는 동안 없었다는 것이. 앞으로는 구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은 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가끔 회의에 젖기도 한다. 이런 책 혹은 이런 주제를 담은 영화를 보면 그러하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빠질 수 있는가. 내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게 속상하고 화가 난다. 1930년대 지구 반대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니, 마냥 소설같지만은 않다는 게 더 속상하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내가 모르는 세상의 곳곳에서는 이 소설 속에서 있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있을 것이다. 지구 위에는 돈 많고 권력 있고 힘 있고 그리고 도덕심 없는 나쁜 사람들이 꽤나 살고 있으니. 그들 눈에 힘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일 턱이 없다. 가지고 놀다 재미없으면 버려도 좋을 장난감으로 보일 텐데.
내가 좋아하는 나라 프랑스와 직접 관련되는 내용이다 싶으니 프랑스에 대한 매력까지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프랑스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얼마나 피상적인 착각인가. 내가 프랑스의 무엇을 좋아한단 말인가, 우스운 노릇이지. 제국주의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면 어떨까? 읽고 난 뒤에 덧붙여 설명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몫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제국주의에 대한 수업을 한 후에 혹은 그 전에 이 책을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려나.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다짐을 할 수 있으려나. '우리도 힘을 키워 힘 약한 나라를 잡아먹자' 이런 생각은 하지 않겠지. 이리저리 마음이 어지러워진 소설이다.
덧붙이는 말 : 나도 모르게 시작되었다가 끝난 이벤트 이후 내게 보내 주신 Yes24의 선물이다. Yes24 블로그를 이용하면서 두 번째 받은 책 선물. 이것만으로도 나는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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