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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열전 -정조편- >>
저자의 군주열전 시리즈 마지막인 정조편이다. 정조에 대한 평가내지 시각은 대체적으로 개혁군주, 비운의 군주, 실지적 조선의 마지막 군주등으로 보는게 보편적인 평가이고 시각인것 같고, 사극에서 다루워지는것도 그런면 일색인게 사실이다. 저자는 앞선 시리즈에서도 표방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군주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태종,세종,성종,선조,숙종에 대한 평가도 그런면에서 상당히 신선함을 느낀다. 물론 역사평가는 주관적일수 밖에 없고 항상 후세의 선입간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러면에서 정조에 대한 저자의 평가 또한 그 일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정조는 임오년의 변란 흔희 임오의리(사도세자죽음)와 영조의 유혼에서 상당히 고민하고 방황했던 인물이다. 그 제위 24년간 끊이없는 노론벽파와의 싸움에서도 알수있듯이 사를 따르자니 공이 무너지고 공을 따르자니 아비가 울고... 아마도 역대 조선군주중에서 가장 비통한 군주였음은 더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에서 정조에게 충복이 절대 부족했다는 점도 있다. 세손시설 대리청정을 둘러싼 암투와 힘들게 제위에 올를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악역을 맡은 정순왕대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것이다. 물론 다른 대안은 없었지만...
정조즉위식날 '나는 세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했지만 결국 훙하는 날까지 임오의리에 대한 자신의 분풀이는 하지 못했다. 물론 정조도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됀다. 탕평이 아닌 정국은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자체를 뒤흔들것이라는 것을 결국 정조가 선택한것은 적과의 적절한 동침이었다. 규장각을 세워 세종조의 인재풀을 형성할려고 무던히 노력했고 노론,소론,남인등 적절히 인사배치하여 당파에 치우치지 않게 이끌어갔다. 사실은 정조제위기간내내 3정승의 자리는 어느 한 당파가 차지한적이 없었다.
단지 정조는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공격을 군사(군주와 스승이 일치한다)로서 다스릴려고 했다. 물론 조선시대 통틀어 정조만한 석학은 없다. 그러다보니 신하들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게 아마도 임오의리에 대한 분풀이는 아니었을까..
정조시대는 유달리 역모와 변괴가 많았던 시절이다. 제위에 오르고 10년간 매년 역모고변에 시달리고 결국 이복동생인 은전군의 사사로 까지 이어지는등 정국자체가 혼미한 상태였다. 물론 그 만큼 정조의 반대세력이 깊게 박혀 있었다는 반증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슬기롭게 지켜나 갈수 있었던 건 정조의 군사정신이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정조의 정치기반이 안정되고 친위세력이 자리잡은 제위 16년부터가 본격적인 개혁정치로 나아가는 기간이었으리라 그런걸 보면 정말 역사엔 가정이란 없나보다. 그로부터 체10년을 못넘기고 훙하였으니.. 영남만인소 이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을 본격적으로 추승하고 수원화성신도시 건설을 통한 벽파에 대한 공격수위를 높인다. 그리고 신해통공이라는 금난전권의 폐지를 통해 상업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오고, 인조때 부터 대두된 서얼형통을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다. 그를 통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등의 인재를 발탁하고 미래의 브레인으로 키운다.
정조는 서학(천주교)에 대해선 상당히 관대한 입장이었다. 적어도 진산사건 내지는 신해박해(윤지충의 어머니 신주를 불살은 사건)이 있기 전까진 서학에 대한 정조의 입장은 경학을 소홀히 하여 생겨난 폐단으로 인식했던것이다. 군사라 자부하는 정조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을것이다. 선비들이 경학을 등한시 하니 폐관이나 서학들이 고개를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학서적의 분서을 명하기도 하며 특히 남인들중에 서학과 관련되 인사들에게 반성문을 제출하게 하고 그것으로 사태 확산을 막고자 했다. 뒤에 문체반정을 통하여 올바른 학문 정학,경학을 내세우면서 서학의 정치화를 적극막았던 점 또한 그의 학문적 깊이가 느껴진다. 정조는 역대 군주중에서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실록에 의하면 신하들과의 면대자리에서 주고 받은 말은 주로 정조의 말 일색이다. 이 역시 스승이 제자를 나무라는 투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정조는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컷던것이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꿈은 일시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린다. 순조 등극후 정순왕대비의 수렴으로 철저하게 정조흔적 지우기에 나서 결국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 점은 정조또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 만큼 친위세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 소론, 남인, 시파등 정조에게 우호세력 또한 정조의 유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는 정조는 이상형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물론 개인적인 가족사 문제등과 맞물려 있지만, 이역시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 아쉽다 못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정조 사후 사실상 조선이란 국가는 와해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희들 정조의 죽음에 대하여 독살설등 의혹의 여지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실록상으론 독살설에 대한 의심이 없지만, 거야 노론벽파입장에서 서술한 실록이니 신빙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고 해야할까....
저자의 표현대로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은 사실상 끝을 맺는다고 봐야할것이다. 순조이후 등장하는 세도정치의 시대 그리고 왕가혈통이라고 엄밀히 말하기 힘들 왕위계승, 다시한번 역사의 가정이 있다면 정조가 좀더 제위기간에 있었더라면 향후 역사는 정말 어디로 흘러갔을까 그가 원하던 만천명월주인옹을 이루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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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한우의 책을 야금 야금 한권씩 늘려 가고 있다. 저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예전에는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잠시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가 이 책이후로 다시 애매한 입장이 되었다. 첫번째로 읽었던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를 읽어보니 그는 평범한 보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잘나가는 기자출신답게 끌어 당기는 글의 힘이 좋았다. 두번째로 "숙종"읽어보니 그의 독특한 해석이 나왔다. 강력한 왕권을 숭앙하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이니 뭐라할것은 없고 평범한 역사해석이었다.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http://blog.yes24.com/document/7882945 숙종 http://blog.yes24.com/document/7907453 이한우의 역사의식과 내면이 나오는 책은 바로 "정조"였다. 책 처음에 그는 정조를 보수적 개혁가로 설정하면서 수신제가에 성공했으나 실패한 개혁군주로 평가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무리없어 보이고 오히려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보였다.
나는 다른 이유에서 영정조시대를 실패로 평가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위 평가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책 뒤로 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제목과 이상하게 흘러가는 내용들
정조의 정치가 미숙한것은 노론의 저항이 심했기 때문이고 탕평을 깨려 한것이 아니라 노론일당독재에서 폭을 넓히려 한것이 아닌가? 책은 노론의 입장으로 글이 흘러간다. 나는 노론에 대해서 이덕일씨처럼 반노론적인 생각도 옹호하려는 마음도 없다. 노론은 단지 당파의 이기심 발휘에 성공한 집단일 뿐이다. 모든 당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뭉치고 권력을 얻으면 분열한다. 노론이든 남인이든 모든 권력집단이 공유하는 생리다. 하지만 이한우는 노론적 관점에서 정조를 비판하고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정조의 실패원인이 노론임을 무시한다. 이한우는 정조가 사도세자평가를 통해 정국을 바꾸려는 시도를 "국시"를 바꾸려는 시도로 명명한다. 이는 과거로의 희귀가 아니라 역사평가가 하나의 판결이고 헌법재판소기능을 하던 조선시대에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영조 시대도 몇 십년을 의리에 대한 평가로 시끄럽고 피가 낭자하게 된다. 이 책이 나온게 2007년이다. 이한우는 이백년 전 정조와 2007년의 정치인을 같이 놓고 비판하고 싶은게 아닐까? 아니면 이한우는 그 2007년의 정치인에게서 정조를 느껴 정조까지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정조에게서 우리가 잠시 가졌었던 "성공한 인간이었으나 현실의 벽을 이기지 못한 실패한 개혁 정치가"가 생각나는것은 편파적인 생각일까? "성공한 인간, 미완의 개혁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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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윗분처럼 '노무현이 싫어요'라는 말을 차라리 했다면 좋았을뻔한 작품이다. (그 분 멘트를 보면서 살짝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이 말에 100% 공감이 가게 된다. 군주열전 씨리즈의 평균 발간 기간을 앞당겨 서둘러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다. 이산의 흥행? 대통령 선거?)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본다는 취지에서 본다면 받아들일 수 있으나 군주열전 씨리즈 마다 등장하는 동일한 형태의 사건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작자가 단순히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더 나아가 지나치게 정치적, 개인적 주관들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봐야 할것이다. 정조를 말하면서 개혁주의자의 단점을 사고와 행동의 극단적인 이분법이라고 하는데 현대사를 비극으로 만들어간 (아군 아니면 빨갱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양분법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보수주의자들이란 걸 알아야 할 것 같다.
처음 이씨리즈를 읽을 때 저자 이한우씨가 조선일보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보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흥미롭긴 했지만 전권을 읽고 나니 결국은 용두사미로 끝나게 되어 매우 아쉽다.
정조 또한 완벽한 군주가 아니기에 군주로써 해결하지 못한 일에 비판을 가하는것은 역사를 정리하는 우리들이 해나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씁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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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한우 저자의 숙종편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탕평을 내세운 현종, 숙종, 영조 까지! 중간 중간 상소문이라던지 여러 관련 글들은 조금 지루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깔끌하게 잘 정리된 내용이라 생각되었다
같은 저자이기에 정조편도 기대를 하고 읽게되었는데... 그 느낌은 뭐랄까? 내가 알기를 원했던 내용이 아닌 다른 내용이~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분명 누구나가 아는 정조라는 인물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나머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라는 당혹감이 드는건 사실이다
정조라는 인물은 사극으로도 여러번 다루어졌고 조선이라는 논쟁거리에서 항시 빠질수 없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조선사에서 상당하다 개혁하면 정조요, 정조하면 개혁아닌가.. 이게 우리가 아는 정조의 모습이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에서도 정순왕후는 정조를 독살하는 표독한 여인으로. 정조는 개혁을 이루지 못한 불운한 군주로 나온다 학계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에 정조는 개혁을 못다이룬 안타까운 군주인데 어째서 저자는 정조를 한낱 열등감에 빠져 국정운영의 실패를 이끈 장본인이라 평할까?
다른 리뷰어분들은 너무 극단적인 자기만의 생각으로 평을 했다는 내용으로 책을 평가한다 나또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지만 무턱데고 저자에 대한 혹평을 할생각은 없다 혹평할 만큼 내가 수준있는 사람도 아니고...
분명한것은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조에대한 평가를 방바닥에 깔아놓고 시작한다 개혁의 상징이라 부르짖지만 정조는 열등감의 상징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화성을 신축한것과 개혁과 무슨상관이 있으며,개혁을 부르짖지만 시종일관 사도세자에 대한 추존에만 메달려왔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정순왕후가 노론의 상징으로 정조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것을 말하며 그 예로 정조승하후 효의왕후 김씨와 혜빈을 극진히 보살폈다는 예를 든다
이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갈피를 잡을수가 없다 사람에 대한 인물평은 그 보는 시각에 따라 천양지차다 분명 저자가 정조를 엉덩이로 깔고 앉는 모습은 눈쌀을 찌푸리게 하며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을정도지만 실상 그의 주장데로 책 내용만을 놓고 보자면 정조라는 인물은 개혁과 관련된 뚜렷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일반적으로 정조는 개혁의 화신인데 어째서 이럴까 싶다 그러나 저자 의 논리대로만 보자면 즉 책에 쓰여진 대로만 보자면 저자의 주장이 전혀 허무맹랑 하지만은 않다는걸 느낄수 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나름대로 저자와는 다르게 추론해보자 저자또한 언급하는 정순왕후의 정조승하후 행태는 정조와 척을 둘만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저자가 바로 뒷부분에서 언급하는 정조승하후 정조와 관련된 모든 인사가 정치적 보복을 당하고 제도또한 모두 폐지하다시피했다는 내용과 극명하게 대립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정조와 척을 질사이도 아닌 손자를 이뻐했던 정순왕후가 왜 불연듯 그런 서슬퍼런 행동을 일삼는단 말인지? 더더욱 놀라운건 저자는 이런 정치적 보복을 언급하면서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버린다
어떤분은 노무현이 싫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식으로 언급하셨지만 차라리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까대고 보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면 차라리 저자때리기에 동참이라도 하겠지만 나름의 점잖은 방식으로 정조를 에둘러 비난키에 그러하지도 못하겠다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저자는 일반적인 정조에 대한 시각이 너무 단편적이라는것을 지적하면서 본인또한 정조의 평가에 본인의 잣대만을 들이데려 했다는 점이다 정순왕후의 아비인 김한구와 김상로등의 노론이 사도세자를 낭떠러지로 떠밀다시피 한 것은 사도세자가 광인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할지라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조또한 저자의 주장데로 화증을 가진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일지라면 어떻게 영조는 천수를 다할수 있단 말인지?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화증과 기이한 행동 은 저자또한 언급하듯이 영조로 부터 시작되지 않았는지~ 영조는 사도세자나 정조보다 더 기이하고 괴팍스러운 변덕의 극치를 보여주었지만 그 둘에 대한 평가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의 르네상르를 연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묻혀 있어 국정운영에 미스를 범했다는점에서는 백번양보하고 또한충분히그럴개연성이 있기에 인정할순 있지만 노론이 정조를 옥죄인것은 자기방어적인 측면에서 어쩔수 없었다 는 뉘앙스의 내용과 정순왕후가 정조를 대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정조를 다른시각으로 묘사하려는 그 시도는 좋았다 역사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기때문이다 또한 그래야하고... 그렇지만 새로운시각의 조명이 좋다할지라도 그것이 그 의도하는바가없어야지 더욱 빛날터인데 같은 내용을 놓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고 나머지 부분은 증명할수 없는바 라는 식으로 논지를 이끌고 가는것은 결국 자기 주장에 대한 자기모순이자 자기 부정이 아닐지?
어차피 책이란것은 저자의 사상과 시대상이 녹아들수 밖에 없지만 숙종이란 책을 읽고 나서인지 몰라도 숙종보다 좀더 저자의 이념이 많이 녹아든 정조에선 아쉬움이 남을수 밖에 없는거 같다
만약 현종과 숙종, 영조가 탕평이라는 이름으로 남인과 서인을 저울질 하며 파리목숨처럼 대하지 않았다면 사도세자는 정조는 어찌되었을까라는 생각을 불현듯 해보곤한다 한낱 미물도 자기방어라는 본능은 타고난바 누구나 극한에 몰리면 살궁리를 하게 마련인것을 정조의 윗대 왕들은 어찌해서 그렇게 탕평이라는 미명하에 사화를 일삼으며 허구헌날 판을 뒤엎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노론이 택군이라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게된것도 아무리 잘해도 어차피 내쳐질거 이래 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니 자신들의 국왕을 세워보자는 취지로 실행한것일터... 진정한 CEO는 자신대에만 잘하는게 아니라 후임이 잘할수 있도록 터를 닦고 후임자에게 비전을 제시하는것이라고 했다 현종 숙종 영조는 그런점에서 실패한 CEO이다 즉 자신들의 왕권만 생각했지 후대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것이다 결국 그것이 신권이 왕권을 능가하는게 당연시되고 택군이라는 돌연변이를 낳게 된것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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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무현이 싫어요' 하면 될것을... 그동안 이한우의 군주열전을 재미있게 봐왔던 나로서는 저자가 약속했던 영조편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고, 자신의 정치색으로 뒤범벅해놓은 정조편에 배신감마저 든다. 너무 심했다. 내년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저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약속했던 영조편을 써 내놓고 정조편을 다시 가다듬어 내놓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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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저자의 책을 그저 잘보고잇었는데 이번 정조편에서 그의 정조에대한 폄훼하는 모습, 폄하하는 선입견때문에 너무 불편해서 읽을수가 없어 중간에 화가나서 던져버렷다.자신의 감정대로 정조라는 임금을 너무 피해망상증 환자처럼 안좋은쪽으로 써서 짜증이 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다른군주들은 객관적으로 잘썼다고 생각하는데 정조를 왜그리도 혐오하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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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책을 그리 즐겨읽지 않으나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소설책들을 많이 섭렵하였다. 책을 읽은 후 한 마디 소감은 "본 책은 역사에 지나치게 충실하려고 한 저자의 주관적 해석으로써 상당히 딱딱하다는 것"이다. 좀 더 손쉽게 소설책에서 맛보는 유려한 필체는 거의 없으니 읽어보시는 분들은 매우 따분한 분위기를 참아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교과서인지, 아니면 이미 조선의 역사를 상당히 많이 아는 사람이 읽어봐야 이해가 되는 책인지, 나는 참으로 알기가 힘들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보았는데, 다들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이 책이 써 놓은 구절들에 대하여 무리없이 읽어보신 것같다. 예로 들어 볼테니, 본인의 리뷰를 보고 부디 이 책자를 구입하시길 바란다. 나는 "군주열전" 전체를 구입했는데, 약간 후회가 든다. #1 노론과 소론, 남인과 북인이 갈라져 정세를 어렵게 한 시절이 바로 이 영조/정조때인데, 나는 이들의 구체적인 차이점이 뭔지 이책을 통해서 발견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인가 보다. #2 책자 106페이지. "김상로로는 숙종의 외가인 청풍 김씨 집안으로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김유이다. 영조 10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거쳤고 1742년 강원도관찰사에 오른다. 2년후 승지에 올랐다가 경상다관찰사로 나갔고 ....대사헌 도승지 병조판서를 두고 지냈고..." 나는 이들 직책이 무엇을 담당하였는지, 또한 정조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력을 왜 그리고 얼마나 상세히 설명하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이 꼭 대학 역사학과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3 책에서 인용되는 각종 문구들 (예를 들어 실록...을 인용한 부분들)을 보면, 작가는 본인의 지식으로 충분히 이해되었을 것이지만 읽는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 "전조에 신칙하여 문관은 돈령 도정에 음관은 부령에 의망하게 하였다"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래도 상당히 배웠다는 사람인데 내가 이리 무식한지 이 책을 통해서 드문드문 스스로를 책망하기까지 했다. 이 책 사시기 전에, 부디 빌려서 읽어들 보시고, 그래도 이해가 될 상 싶으시면 그 때 사시기 바란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이신데, 아마 원래 역사에 심취하여 폭넓은 지식이 있는 분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독자들은 중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배웠고 사회에서 교양서 수준으로 역사를 대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볼 때에, 아무래도 역사학과를 전공한 사람들이 읽어봐야 할 책으로 생각된다. 글 구성이 참....딱딱하고....별로 재미가 없는 책이다. 그렇다고 놔두고 볼 "사전식 역사책으로써 객관적으고 참고할 만한 책자"도 아니다. 왜냐면 저자는 본인 스스로 "기존의 정조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을 담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자이니 단순히 역사소설책으로 아셨다가는 큰일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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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정조대왕의 역사적 사실들이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몇권의 책을 빌려 계속 읽었다. 이책은 보다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였다는것이 느껴졌다. 작가는 정조가 성군인세종 다음가는 업적이 많은 군주로 평가되고 있지만 반론을 제기하며 24년의 재위기간중 개인적인문제로 세월을 보내서 희망을 주는 정치라고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조의 집권초부터 10년 이상 계속된 역모와 반란은 정조를 힘들게 하고 백성의 일부 무리는 천주학에 빠졌고,<정감록>과 같은 전통적 예언사상에 기대했다. 이는 나라, 임금,조정에 대해 더이상 희망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텐데 생각햇엇는데, 정조이전부터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백성들의 굶주림,자연재해등으로 인해서 정조의 애민사상의 힘으로도 역부적였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때부터 프롤로그 글이 시작된다. 영조는 임오년 승정원일기를 세초하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세손 정조를 효장세자 양자로 삼아 후사를 잇는다는 갑신처분을 내려 영빈이씨,혜경궁홍씨,세손까지 충격에 빠뜨린다. 즉 임오화변도 실록에서는 "모년"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조는 즉위 12년까지 끊임없는 역모로 한시 마음을 놓일수가 없고 방향을 찾지 못하였다. 즉위초에 김귀주,정후겸,홍인한 3대 기득권 세력을 척결하여 세손시절 자리를 위협했던 무리들을 제거하였다. 여기서 정조나, 사후 정순왕후 마찬가지로 모두 급진적으로 처리하여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은것으로 보인다. 정조의 업적중 하나가 서얼에게 관직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정조의 민본주의 정신이 실현된다. 조선에서 서학이 유행되는 배경은 북경에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조선에 소개되고,거기에는 자유분방함이 있었고 숨막힐듯한 조선의 정치상황에 염증을 느껴 젊은 식자들이 매료된다고 했다. 그중에 한명 "북학의"의 저자 홍대용은 노론의 신진엘리트로서 요즘으로 말하면 사상적 전환이 됐다는 케이스. 그는 청나라 북경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북학의라는 책을 통해 선진국와의 비교를 통해 조선의 한계를 들여다보았다고 할수 있다.
조선의 세도정치가 씨앗이 무엇이었을까? 세자인 순조의 세자빈인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여는 단서가 된것이다.순조의 장인 김조순이 세도정치의 시초였다는것.
현종,숙종이 외아들이였고 영조는 딸만 많았고 사도세자가 외아들이며 아들자손이 귀했다. 그러다가 사도세자 아들은 정조외에 은언군,은신군,은전군이 있었는데 은전군은 역모로 이름이 거론되어 희생되고, 은신군은 김귀주 일당의 무고로 유배되어 죽었다. 장조가 마지막 남은 은언군을 적극 비호하려는 이유는 왕실의 씨족이 다 말라버려 유일한 남자형제인 은언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했다. 신하들과 정순왕후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년 세도세자 기일일때 은언군은 유배지 강화도에서 풀어 한양 집에 머물게 했다. 하나 남은 서제를 적극 비호한것이다. 정조는 왕실의 자손들이 역모에 엮어 억울하게 죽어가는것을 인식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나마 은언군까지 죽였으면 강화도령 철종도 없었을것이고 조선이 망해가고있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수있다.(사견임)
정조의 사후로 정순왕후 등극 작가는 그나마 정순왕후가 흔들리는 왕실과 조정의 중심을 바로잡아 더 큰혼란으로 몰아가지 않는 공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유박해, 수렴청정하자마자 정조 측근들을 없애는 보복정치, 그과정에서도 형식적인 탄핵절차도 필요없이 일방적인 유배명령을 내렸고,그 탄핵대상자는 산자와 죽은자를 가리지않고 하루에 몇명씩 처리했다. 정순왕후를 복수의 여신이라 칭한것이 무리는 아니다 싶다. 신유박해로 1.000여명이 사형되었고, 400여명이 유배됐다. 작가는 영조가 정조에게 남긴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사도세자 죽인것보다 정순왕후 존제 자체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순왕후 잘한것중의 하나는 정조 세손시절 화완옹주 무리들이 정조 대리청정을 방해하고 동궁자리에서 밀어버리려고할때 적극 세손입장에서 공세를 막아주었다고 한다. 그 은혜로 정조는 재위때 정순대비를 지극정성으로 효도하였다고 한다.
정조는 24년 즉위하엿으며 그의 죽음으로 조선의 방향을 멈추었다.조선이 망할것은 정확히 정조사후 100년이후였다. 정조의 병 원인은 여러책에서도 공통적으로 숙종,영조,사도세자에 이어지는 고질병인 "화병"이라고 했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죽었으며, 그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또한 사도세자 죽음에 앞장섰던 노론벽파의 구선복 등을 10년 가까이 그들의 면상을 마주하면서 사는게 화병이 걸릴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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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태평성대를 일군 성군으로 묘사된 정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정조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신하들과의 갈등도 많았다. 정조가 집권한 시절이 당파 갈등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 세손시절부터 죽음을 무릅쓴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또한 당쟁의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런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손 정조는 가슴속 한 구석에 한이 서려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집권하여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을 한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후에 정조를 일찍 요절한 장남 효장세자의 대통을 잇게 한다. 이런 영조의 결정에 정조는 반기를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맺힌 한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정조가 집권하자마자 이런 선언은 단순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사도세자 죽음과 관련되어 피바람이 휘몰아칠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 한가지는 사도세자가 노론과 맞섰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영조의 말대로라면 광증이 심각해져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아들을 죽였다고 하는데 그 실상을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한가지 사실만으로 그 때의 사건을 단정짓기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 책에서는 정조의 정치적 한계를 이야기한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그늘에서 집권기간 내내 벗어나지 못했다고 가혹한 혹평을 한다. 수원화성 건설도 사도세자와 연관이 있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집안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도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또한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세력이었던 정후겸 등도 제거한다. 비단 보복성의 조치만 취한 것은 아니다. 정조 개인을 살펴보면 학문적 깊이가 세종대왕에 버금갈 정도로 학습과 훈련이 잘 되었다고 한다. 즉위하면서 개혁과 대통합을 위한 탕평책을 시도했으나 절반만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유는 그가 죽은 뒤로 집권한 노론 벽파에 의해 모두 폐기되었고 끝까지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정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사도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 때문에 집권시기 내내 그의 정책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안타까움과 그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조선이 외세에 대항할 수 있는 내공을 쌓을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정조의 집권시기는 우리민족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거나 퇴보하거나 결정하는 시기인데, 우리는 퇴보를 선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겪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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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격언을 씁쓸하게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의 저자는 오늘날 진보의 시각에서 정조가 개혁군주가 아니라 성리학 근본주의로 회귀하려는 수구주의자라고 낙인을 찍더니만 조선일보파 이한우는 정조가 노론벽파와 대립하면서 추진했던 개혁조치들이 개혁의지에서라기보다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한에서 비롯된 사적 감정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분들의 서평대로 오늘날 진보들에게는 보수우익으로, 수구들에게는 진보좌파 라고 비난받는 노무현을 정조에게 대입하면 얼추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온다. E.H.Carr의 명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를, 이한우처럼 현재의 색안경으로 과거를 윤색하는 것(그것도 매우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을 정당화하는 데 써먹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정순왕후가 세손을 보호하고 혜경궁홍씨를 돌봤다고 주장하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대의명분이 정조가 아니라 정순왕후쪽에 있었다는 주장은 가히 썩소를 날리게 한다. 정순왕후는 순조비를 들일 때 혜경궁홍씨가 폐백도 못받게 탄압했던 인물이다. 조선일보 독자들에게나 통할 이 따위 짜깁기 기술을 인문 서적 독자들을 대상으로 써먹어 보겠다는 저자의 잔머리가 가소롭다. 다만, 전반적으로 글이 읽히는 맛이 있어 별 두개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