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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을 빌려 바라본 세상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눈이라는 게, 어른들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때론 고통스러운 일이다. 동심으로 돌아가고픈, 간절한 마음의 소원 같은 것. 어쩔 수 없이 성장해야만 했던 어른들의 보고서 같은 것.
아모스 오즈는 <나의 미카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 정말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어"라는 친구의 말에 어떤 작가일까 궁금해서 단숨에 서점으로 갔던 날 사서 봤던 <나의 미카엘>. 지독하게 읽혀지지 않던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나는 이 작가는 분명 고집센 사람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글이 좋았다. 책을 끝까지 읽진 않았지만-나는 책을 사서 쌓아두는 타입이라 읽히는 것만 끝까지 읽는다- 나는 이 작가를 기억하기로 했다.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성을 가진 '아모스 오즈'.
그는 이스라엘의 국민 작가란다. 이스라엘. 멀기만 한 나라다. 여행중에 만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뭉쳐다녔고 소음을 만들었고 소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개개인으로 만난 이스라엘 친구들은 괜찮았다. 그게 전부다. 내가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만 그것으로 그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박해 받은 민족이다. 왜? 세계사를 아무리 배워도, 전쟁 영화를 아무리 봐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추방되고 박해 당하고 심지어 단체 학살까지 당했다. 어쩌면 그것들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런지도 모른다. 성서에서 또한 이스라엘 민족은 박해 당한다. 하나님은 끊임 없이 그들을 '선택 받은 백성'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다른 민족의 미움을 받고 끌려가 노동을 착취당하고 박해 받는다. 이렇게 길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토록 박해 당하고 수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지만 그들은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 그 나라의 국민작가 아모스 오즈는 그 시대를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자전적 소설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왜?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겪기 힘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다. 열두세살 정도의 소년, 프로피가 친구들과 지하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적과 조용한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얘네들이 전쟁 놀이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이스라엘의 위급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인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오즈답지 않게 상당히 위트가 넘치는 문체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부분은 프로피가 야르데나(스무살)에 대해 서술할 때다. 우연히 프로피는 야르데나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목격한다. 억울하게도 그 찰나가 너무 짧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프로피의 양심은 말해야 한다와 자신이 본 것을 야르데나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말할 필요 없다로 갈라진다. 끊임없이 그 생각을 놓지 못한 어느 날, 야르데나가 프로피의 집에 온다. 그들의 대화는 입가의 미소를 머금게 했고 내게 아슬아슬한 혹은 애틋한 사랑 직전의 달콤한 대화로 기록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모스 오즈가 얼마나 위트 있는 작가인지를 알게 됐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 열두세살의 소년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이 있는 시선이라 조금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 소년은 소년답게 귀엽고 사랑스럽고 엉뚱했다.
일본 소설이 넘쳐나는 요즘, 다른 문화권의 소설은 내게 참 고마운 녀석이다. 우연히 이스라엘 사람을 만났을 때, '아모스 오즈'를 알고 있다는 사실 단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그들과 포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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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관한 소설은 그 내용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다가와서, 주인공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이 책 또한, 12살3개월 나이의 소년 눈으로 본 히브리 국가 이스라엘이 탄생하는 전쟁의 끝무렵 이야기이어서인지 주인공 소년 프로피의 눈으로 보는 전쟁의 상황이 그대로 느껴지는 내용이다.
프로피는 친구들과 지하조직을 만들고, 자신들 나름의 독립활동을 꿈꾼다.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다. 그러던 중에 프로피는 던롭경사를 알게 되고, 그와 히브리어와 영어를 서로 가르치며 친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친구들에게 '배신자'로 내몰리게 된다. 친구들이 대문 담벼락에 '배신자'라고 써놓자, 프로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며 힘들어 한다.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애국심과 종교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뭉쳐진 민족이다. 그런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가득 묻어나온다. 아들을 둔 프로피의 부모는 자기 아들에게 히브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랑스러움에 대해 항상 교육하고, 몰래 독립을 위한 활동을 돕는다. 그런 부모 아래서 프로피는 자신도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던롭형사와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은 이야기 하지 않고, 내성적인 던롭형사의 주변 이야기와 계획이야기를 들어 스스로 첩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일 예이다. 그리고, 항상 밤에는 아이답게도 밖에서 나는 소리가 모두 투사들을 돕는 소리이고 그 소리를 자신은 어리기 때문에 아는척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어른스럽다고 여기면서...
이 책은 성인이 된 프로피가 독립국가를 이뤄낸 그 감격의 시기를 떠올리며 아이시절 프로피의 관점에서 쓴 책이다. 가끔 중간중간 성인이 된 프로피의 시각도 들어가는 것이 아주 감칠맛 난다. 게다가, 아이의 상상력에 발맞춘 '영화'라는 소재는 이 책의 현실감을 더욱 짙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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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어른'들도 해야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오즈의 어린시절을 닮아 있는 프로피가 좋다. 사랑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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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는 한 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느 성장소설과는 다르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프로피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의 시대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피의 가족들은 유럽에서 이사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하며 살게 되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는 영국인들이 그곳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언젠가 영국이 물러가게 되면 갖게 될 자신의 히브리 국가를 생각하며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간다. 프로피 또한 부모님에게 그런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게 되고 친구들과 자신들만의 비밀조직을 결성한다. 프로피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하고 영국인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연히 던롭경사와의 만나게 되는데 프로피는 처음에 그와 만나면서 던롭경사에게 정보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 일을 두고 프로피에게 던롭경사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며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멀리하게 되는데 프로피 자신은 배신자가 아니고 단지 던롭경사에게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끝부분으로 가면서 이 아이도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이 소년은 던롭경사를 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의 친구 말대로 던롭경사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아이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더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영국인과의 우정은 배신자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시대가 아니라 서로 평화로운 시대에 이 둘이 만났다면 그 누구에게도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 턴데…… 이 아이는 배신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게 된다면 과연 이 세상에는 배신자라는 단어가 필요할까? 이 단어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할 마음의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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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이 개입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분쟁을 보면서 사실 난 팔레스타인의 편이었다. 2,000년 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그들은 각국에서 유대인의 명성을 떨치며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굳이 그들은 그 땅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잃어버린 땅 때문에 더 똘똘 뭉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오랫동안 그곳이 자신들의 터전이라 믿으며 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의 중국 대륙이 예전에 우리 고구려 용사들이 누비고 다녔던 곳이라고 해서 그곳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며 우리도 돌려달라고 미친 척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강대국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운 유대인들의 능력은 높이 사고 싶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 강대국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돕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박해를 받고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1948년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947년의 이스라엘 이야기이다. '열 두살하고도 삼 개월'의 소년 프로피는 '영국군이 철수한 후 이스라엘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태어나기 일 년 전',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이른바 FOD(Freedom or Death)라는 비밀지하조직을 결성한다. 그리고 지하조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하실의 검은 표범》의 제목을 따 자신의 별명으로 삼는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에게 어떤 압제를 가했기에 어린 소년마저도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 책에는 구체적인 압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년이 비밀지하조직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상상만 할 뿐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일은 없다. 게다가 소년의 부모가 소년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이 당한 제재라고는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감과 집에 함께 간 후 부모님께 외출 금지를 당한 정도라고나 할까. 소년은 경감과 사제지간이다. 경감이 소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면 소년은 경감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준다. 경감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 진정한 배신자가 될 것 같아 절대 그에게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FOD 조직원들은 그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재판에 회부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소년의 눈과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인지라 그리 잔혹하다거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년의 눈과 입을 빌려 그 분위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림자는 빼고요, 아빠. 조금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빠 말이 거의 옳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그림자는 한 면만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어요. 못 믿으시겠거든 가서 확인해보세요. 실험도 한두 번 해볼 수 있겠죠. 법칙을 증명하는 것은 예외라고,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신 건 아빠 아니었어요? 직접 저한테 가르쳐 주시곤 아빠는 잊으셨군요." (P. 19)
실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원래 이름은 아모스 클라우스너였다. 이야기 속 프로피처럼 과격함을 쫓던 오즈는 열네 살 때 '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오즈'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옮은 것과 옳은 것이 부딪칠 때는 그 '옮음'보다 더 높은 가치가 이겨야 한다. 그 가치는 바로 생명 그 자체다"라는 주제를 일관되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가장 높은 가치가 바로 생명이라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그들의 입장을 전해줄 수 있는 작가를 찾아볼 수 없다. 아모스 오즈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
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_ 어머니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_ 아버지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_ 야르데나 (P. 226)
2007/12/22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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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수록 내가 정말 많은 것을 모르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래서 책읽기를 간접경험이라고 하는구나. 또 한번 깨닫게 해 준 책 [지하실의 검은 표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작품이라길래 귀가 솔깃해진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랄까. 거기다가 하나를 덧붙이자면, 아직 내겐 조금 낯선 국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건국 즈음의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작가가 1939년생이니,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주인공은 프로피, 열두살 난 유대인 소년, 이야기 중간중간에 현시점에서의 작가가 종종 개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주인공 "프로피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는 히브리 국가 이스라엘이 탄생하기 직전 영국 위임통치 시절의 예루살렘"(책228 옮긴이의 말 中).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열두살 프로피를 통해 자주 표현되는데,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라 해맸다.(서방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우호적"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하지만 영국의 강압적인 위임통치와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정책(예를 들자면, 맥마흔선언과 밸푸어선언처럼)을 체험하면서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당시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가끔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를 상상하곤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가슴에 와 닿을수록 책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이 책 128쪽의 이런 문장 말이다. "그리고는 '신경쓰지 말아줘'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는데,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 얼굴이 더욱 더 붉어졌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차례 거론되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이 책을 읽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나는 여전히 단어를 쫓아 적당한 자리에 놓고 있다."(본문 p54)는 그의 말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간결하면서도 매우 수사적이고,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 표현들이 많았다. 내가 헤브라이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원문으로 책을 읽는 재미도 꽤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중동의 분쟁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한편으로는 대단한 민족이란 생각, 또 한편으론 안쓰러운 민족이란 생각이 드는 유대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동유럽에서 나고 자라 예루살렘으로 이민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은 작가의 나이 열두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아모스 오즈의 어머니와 같은 또다른 유대인의 모습을 생각해 본 계기도 되었다. 이 책이 내겐 많은 생각과 간접체험을 하게 해 준 참 괜찮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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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그러나 이름은 이상하게 친숙했다. 아마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름의 발음에서 풍기는 익숙함, 가령 아모즈는 맘모스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오즈는 오즈의 마법사나 미드 오즈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리고 아모즈와 오즈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영 잊어버리기 힘든 이름이다. 그런만큼 이 작가는 남다른 것이 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중동 평화 활동가란다. ’침묵하지 않는 작가’라는 별칭도 있을만큼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칭송받고 있다. 오즈라는 성은 그가 불과 14살 때 ’힘’이라는 히브리어로 바꾼 것이란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조숙한 소년이었던 것이다.
이는 주인공 프로피(별명)의 캐릭터와도 상당부분 닮아있다. 프로피는 영국군 주둔하의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열두살 하고도 삼개월이 된 소년이고, 그가 조직한 지하조직(FOD)의 두뇌(2인자)이며, 단어수집광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아침 그의 집 담벼락에 ’배신자’라는 낙인이 씌여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경찰 던롭경사와의 친분관계로 인해 그가 속해있던 지하조직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프로피는 단순히 정보를 캐내려고 던롭경사를 이용했다고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이미 그 관계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후로 프로피의 내면은 끊임없이 "배신"에 질문들로 채워진다.
이야기의 핵심은 "배신"에 관한 것이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이를 보고 프로피가 느끼는 일들에 관한 것들을 그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다. 배신은 무엇일까. 말을 하는 것이 배신일까, 하지 않는 것이 배신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이미 말을 해버리고 후회하고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후회한다. 그의 행동은 생각을 배신하고 이것이 또 배신인지 골몰하게 된다. 그의 배신의 핵심은 "적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FOD의 대장 벤 허의 말에 따르면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비밀을 알려주는 것보다 나쁘"고 "적들에게 무기를 파는 것보다도 나쁘"고 "심지어는 적에게 넘어가서 그들 편에서 싸우는 것보다도 나쁘"다고 한다. 대장답게 통찰력있는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적은 던롭경사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던롭경사에 대해 프로피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나는 언제나 당혹해하는 사람들에게서 애정어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순하고 살찐양같은 던롭경사를 어떻게 적으로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프로피는 고민에 빠져든다. 그는 명백히 영국군이고 지하조직에 다시 속하려면 그를 부인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간식을 먹으며 잡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 인간으로서 던롭경사도 다른 사람과, 즉 그가 속한 세계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게 된다. 적은 자신의 이익을 강탈하는 무자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던롭은 오히려 프로피를 존중하며 히브리세계를 칭송한다. 그의 고민은 또래집단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관심,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깊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고민들은 해결된다. 방학이 지나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또다른 조직을 만들어 어울려 놀며, 그가 연정을 품던 야르데냐는 프로피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더 옳은 건 말야..엿보는 대신 부탁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부탁하는 법을 배우면 엿보지 않아도 되거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온갖 것을 다 부탁하지만 똑바로 부탁하지를 않아. 그러다 보면 부탁하기를 그만두고 공격을 하거나 받거나 하지. 결국 그런 것에 전부 익숙해져서 굳이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도 안 쓰게 돼. 그렇게 되면 이제 끝이야. 인생은 이미 끝이야.> p.199
<네 친구는, 절대 친구를 갖지 못할 거야. 특히 애인은. 오로지 부하뿐이지...너에게는 여자친구들이 생길거야...왜냐면 너는 무언가를 받을 때, 그게 롤빵이든 종이 냅킨이든 찻숟가락이든,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행동하니까.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말이야.> p.200
부모님이 떠난 밤, 야르데냐와 단둘이 나눈 이야기들이 프로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대단히 인상깊었고, 글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그녀의 말에 결국 작가가 된 프로피를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대화가 큰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프로피는 많은 고민을 지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벤 허(모임의 대장격)에게는 결정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한 "연민"을 지니고 있었기에 결코 그의 인생은 불우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성장한 후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벤 허는 여전히 끊임없이 갈증 속에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처럼 허기져보인다. 그리고 프로피는 작가가 되어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던롭경사를 찾고 있다.
시간이 지나 영국군은 철수하고 마침내 히브리국가가 세워지던 날 밤, 프로피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본다. 항상 강경하고 단호했던 아버지는 프로피의 침대에 누워 유대인으로 받았던 설움을 토해낸다. 마지막 장에서 프로피는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을 회상한다. 사랑에 빠져 눈먼 시인을 좇아 떠났다가 플루트를 가지고 돌아온 의사 마그다 그리피우스, 지하조직의 일원이었던 치타의 두 아버지, 결혼식날 자살한 라자루스, 지하조직, 벤 허, 그리고 어머니가 이야기해주었던 개울을 떠다니는 파란 대문. 이 모든 것들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프로피의 성장기에 함께 있었던 것들이다. 이 각각의 이야기들은 프로피가 살아온 이야기들이고, 이로 인해 프로피는 <모든 것에는 어떤 종류의 그림자가 있다. 어쩌면 그림자에도 그림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책의 처음부분에 나왔던 어머니의 말 <사랑을 한다면 그 누구도 배신자가 아니야>라는 말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가슴을 울린다. 적을 사랑함으로써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용서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던롭을 정겹게 기억하고 있는 그가 직접 경험한 바이기 때문이다. 벤 허가 프로피를 몰아세웠던 것도, 결국 적을 사랑하게 되면 용서하게 되고,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큰 배신이라는 점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벤 허와는 다르게 프로피는 바로 그것이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화의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이 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공감가는 바가 많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을 용서하겠지만, 그들이 자신을 용서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프로피 아버지의 말처럼, <결국은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용서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을 위해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랑이란 서로간에 교류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교류를 통해 이해를 하면서 상대를 내 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책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어린 소년의 성장기를 담담하게 엮어냈다. 한 소년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것이 안으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세계와 교류하면서 의문을 품고 변화하면서 균형을 잘 타고 있다. 이야기 자체가 시류와 맞거나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다지 빨려들어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면서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이 꽤 있었고, 곱씹어 볼수록 맛이 있었다. 문장이 깔끔하며 절제미가 있어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끊어줄 부분에서 적당히 끊어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 읽고 치울 소설이 아니라, 몇 번이고 읽으면 더 맛이 우러나올 소설인 것 같다. 책 자체도 줄간격이 보기좋고, 재질이 정겹다. 요즘 나오는 소설들처럼 매끈매끈하기보다 좀 하얀 재활용지 같은 느낌으로 내용에 걸맞는것 같다. 이 책을 산지는 꽤 오래 되었다. 대강 줄거리만 따라 읽다가 지루해져서 묵혀두었었는데, 거의 1년이 지나 조용한 마음으로 집어드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평론가들이 별 5개를 주는 지루한 예술영화같은, 재미로 보면 재미없고, 재미를 버리고 보면 재미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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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작품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약이 없긴 하지만 설레는 건 분명하다. 그 설레임은 내 손에 그 작가의 작품이 쥐어질 때 최고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설레임이 내게로 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모스 오즈를 무척 좋아하지만 번역이 더뎌 그의 작품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또 다시 저자의 문체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최근에 나온 그의 작품은 아니지만, 희미하게나마 번역이 끊이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모스 오즈와 만남은 이번이 네번째다. <나의 미카엘>,<여자를 안다는 것>,<블랙박스>를 통해 그의 팬이 된 이후 맹목적으로 그의 작품을 기다려 왔던게 사실이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 이전에 <바람을 스치며 물결을 스치며>도 출간되어 내 책 꽃이에 꽃혀 있지만, 읽을 시기를 놓쳐 버리고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남은 한권의 책도 읽고 싶어 안절부절이다. 넘쳐나는 책 속에서 아껴서 읽고 싶은 책. 그게 아모스 오즈의 책이기 때문에 한권의 책을 남겨 놓고도 호들갑을 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도 소중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밝은 분위기가 아니였음에도 뚜렷한 드러남없이 두리뭉실한 면이 많았음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모스 오즈의 세계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열두 살의 프로피는 유년시절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두 살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불리우며 소년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는 몰라도(요즘은 너무나 빠른 변화가 있어서 고리타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프로피는 한참 성장기를 겪고 있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피의 위치에서 오로지 프로피만이 주인공이라면 나의 성장기와 비교하며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프로피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커져가는 혼란스러운 이때에 국가의 안위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나름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국이 위임 통치하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으니 아무리 평범한 아이라고 해도 주변의 혼란스러움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끼리의 장난스러운 모임이라고 해도 영국 정권을 몰아내는, 소위 비밀 조직의 결성부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던롭 경사와의 만남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배신자라 낙인 찍히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프로피는 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일까. 다름아닌 던롭 경사가 영국인이였기 때문이다. 던롭 경사와의 접촉 자체가 조직의 규율에 위반된 것이고 비밀이 새어 나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피는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조직과 기밀이 노출되지 않았음은 물론 되려 정보를 캐왔다고 해도 벤 허는 '적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배신이야'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들에게 영국은 몰아 내야할 적이였기에 던롭 경사도 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로피가 생각하고 있던 적의 모습은 던롭 경사에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프로피가 생각하는 적, 배신, 평화의 의미에 혼란을 줄 뿐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삶의 위치를 즐겨야 했으니 정치적인 국면을 떠나 12살이라는 나이에 맞는 내면적 고민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성에 관한 호기심, 프로피의 눈으로 바라본 부모님을 통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통찰, 친구들과의 우정도 생각해야 하고 방학을 맞아 일상의 자유도 누려야 했으니, 나름 번뇌가 짙은 12살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프로피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보면 이야기의 끝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프로피가 속해 있는 시대적 배경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해도 프로피에겐 그것이 끝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자의 자전적인 모습이 들어가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프로피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이 중요하더라도 어린 프로피에게는 기억의 한토막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유년시절의 특별한 기억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록처럼 어떤 시기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은 프로피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피의 삶이 책의 끝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엉그러 모은 기억의 단편을 펼친 것처럼 한 소년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배신자라 낙인이 찍인 후에도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처럼 프로피가 바라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12살의 프로피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아모스 오즈의 세계는 내 몸 구석구석에 배인 느낌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색이 깃든 문체 속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었다. 때로는 그런 면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운데 이끌려가는 세계는 현재의 공간을 잊게 할만큼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하는 아모스 오즈. 그의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이끌림을 받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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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책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이 책.
뭐랄까...?
어린 소년이 바라보는 조국. 슬펐다.
이런 매력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부족한듯하다.
이스라엘. 관심은 굉장히 많았지만 실상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그런 나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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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 허진 옮김 / 지식의 숲
이 책을 읽기 전 ‘배신자’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봤다.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단어로 가지치기하며 배신, 비열하다, 믿음, 의리 등의 뜻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주요 단어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배신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한 소년의 나이는 열 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지하조직을 만들며, 영국이라는 나라를 적대시한다. 그런 주인공 프로피는 우연한 기회로 영국군 던롭경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국인 예루살렘과 유태인들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신뢰하게 된다. 그 후 프로피는 외출금지 시간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던롭경사와의 만남을 가진다. 그와 만나며 던롭경사는 프로피에게 영어를, 프로피는 그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준다. 프로피의 목적은 단 하나. 지하실의 검은표범처럼 그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프로피는 영국군과 싸우기에는 너무 어렸다. 또, 던롭경사를 미워하기엔 너무 어리고 순수했다. 이런 순수한 모습들이 책 속 곳곳이 나타나있다. 의외로 조숙한 모습이였기 때문에 주인공의 순수한 모습들이 귀엽기만 했다. 그렇게 순수한 그가 결국엔 적을 사랑하게 된다. 친구와 함께 만난 FOD의 규칙상 그는 영국이라는 나라는 적대시하고 미워하고 증오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적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그는 정말 비열한 배신자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하면 배신자가 아니라는 그(프로피)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던롭경사를 사랑하는데 친구들은 자신을 배신자라고 한다. 참으로 모순적인 말이다.
전쟁이라는 무서운 순간들과 적과 배신자라는 무선운 단어들이 이 책을 다소 어렵게 만들어 버린듯 하다. 또한, 결코 순탄하지 않은 주인공의 성장과정 역시 난해한 일들 뿐이었다. 하지만, 적을 사랑한다는 것이 꼭 배신은 아니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와 친구들 사이의 모순 중 나는 어머니의 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랑하면, 그것은 배신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