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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도 자살할 생각이 날까?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독특한 소재, 흥미로운 인물로 가득찬 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면 주인공이나 배경, 그리고 사건들을 나름의 상상으로 그려보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대낮부터 컴컴한 어둡고, 축축한 그늘속 배경에 표지그림만큼이나 우울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무척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한 자살도구들과 방법들,그리고 쏟아지는 저주의 축문들은 '보다 긍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나를 읽기조차 마득찮게 만들었고, 검붉은 색의 자살장면 속에는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키작은 나라에서는 키큰 사람사람이 돌연변이'이듯 자살을 권해야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튀바슈가문에 '원하지 않게 태어난' 막둥이의 미소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저주'로 여기는 이야기속에서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나마 측은한 이들인지 생각케 했다.
이 소설의 모티브이기도 하고 늘어나는 '자살사건'은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된 현실을 생각해 보건데, 결국은 '혼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을 아닐까? 제 혼자는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필경 최소한 가족은 있을테고, 동료나 친구 지인들이 있을텐데 단지 '무늬만 있을 뿐', 사실은 철저하게 혼자라는 외로움이 그들을 제 한 몸 부숴도 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낳게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게다가 자살하는 그 순간도 만난 적도 없지만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감행하는 것을 보면 그순간 마저도 외롭고 두려워하는 '정말 겁많은' 동물이 인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살을 권하는 가게'는 아마도 '한없이 우울하기만 한 우리들의 뉴스와 주변'일테고, 막둥이 '알랑'은 그런 현실을 아직 모르는 순순한 아이들이던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진리를 깨달은 자들을 말할 것이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에요.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서툴거나 부족하면 서툴고 부족한 그대로 삶은 스스로 담당하는 몫이 있는 법입니다.
삶에 그 이상 지나친 것을 바라선 안되는 거에요. 다들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삶을 말살하려 드는 겁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모든 것을 좋은 면에서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 (p154)
이 책을 덮었던 오늘의 출근길 아침풍경.
계절이름에 걸맞게 추워진 날씨를 마득찮은듯 심술나 있는 사람, 한 곳만 바라보며 바쁜 발걸음으로 쏠려가는 사람들, 한줄기 바람이 몸에 닿을까 온몸을 칭칭감고 움추린 어깨를 더 감추는 사람들. 이들의 표정엔 웃음은 커녕 미소조차 찾을 수 없다. 자살가게를 향해 가는 사람들처럼.
코가 맞닿을 듯 켜켜이 겹쳐진 신경질로 가득한 지하철속 사람들 사이에서 '까르르' 웃는 두살배기 아이의 웃음이 들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사람들에 뭍혀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몇 분후.
아이는 더 큰 소리로 '까르르 까르르'웃어재꼈고, 그 웃음 소리에 내 주위 몇 명도 함께 웃었다. 미소들이 이내 번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오늘 아침, 내가 탄 지하철에 또 한 명의 '알랑'이 숨어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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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주는 무거움. 세상에 대한 철저한 복수인 동시에, 남겨진 자에게 한없는 죄책감을 안겨주는 '자살'. 자살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 벌렁거리는 이 때에, 충격 완화를 위한 방편이자, 나름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자 집어든 책이다.
번역서의 경우에, 항상 눈길을 끄는 것이 옮긴이의 글이다. 성귀수 님은 '웬만하면 자살하지 말자!'라는 강한 어조로 글을 풀고 있다. 그렇다고 자살을 희화화하거나, 극단적인 삶의 단편을 보여주진 않는다. 제목부터가 자살가게 아닌가? 10대째 '자살가게'의 가업을 잇고 있는 튀바슈 가문. 가족 이름이 자살로 점철된 인물들의 이름이다. 미시마(할복자살한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첫째 아들 뱅상(고흐), 둘째 딸 마를린(먼로), 막내 알랑(앨런 튜링).
'죽고 싶으세요? 성공적인 자살을 도와드립니다'란 안내문에서 볼수 있듯, 세기말 자살을 꿈꾸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물론 자살을 꿈꾸기까지 어떤 말못할 고통이 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철저히 자살, 그 자체에만 매달린다.
소설은 막내 아들 알랑에 의해 자살가게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달하는 행복가게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시마 부부에게 알랑은 출생 자체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는 알랑. 자살가게에서 이런 행복 바이러스는 그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상황인 것이다. 결국 알랑에 의해, 첫째 아들 뱅상이 식욕을 되찾고, 마를린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엄마인 뤼크레스조차 자신의 요리에 애착을 갖고 삶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10대째 내려오는 자살가게가 종지부를 찍는 상황에서 막내 아들 알랑이 자살을 하는 장면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분노한 아버지에게 쫓겨 창문에 매달린 알랑이 가족들의 도움으로 구출되기 직전, 자신이 붙들고 있던 붕대를 놓아버린 것이다. 순간, 뭐야?하는 끝모를 허무함. 상황으로 보자면 알랑은 이 자살가게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태어난 것인가?하는 다소 머리아픈 의문을 갖게 한다.
그 밖에 자살을 돕는 갖가지 소품이 인상적이었다. 자살하는데도 고상과 우아를 떨 수 있을까? 다소 작위적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요즘 인터넷의 자살모임을 봤을 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죽 혼자 죽을 자신이 없었으면 누군가와 함께, 혹은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황당무계 그로테스크 엽기발랄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이 소설'에서 삶의 존재론적 사유나 철학을 찾는 것은 무리다. 다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다소 소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데 우리의 알랑은 왜 자살을 했을까? 작가에게 막 물어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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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된건 오래전인데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표지와 두께에
책 제목처럼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가족들이 있고,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가족들도 그에 걸맞게 서로서로 죽음을 찬양한다. 자살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더 효과적으로 죽을 수 있는 기구들을 의논하고,
유독 막내아들인 알랑만 행복 전도사이자 긍정마인드 소유자다. 죽음, 그것도 자살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인데도 표면적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놓으니,
또 이렇게 괜찮은 책을 읽어서, 확실하게 각인된 "장 퇼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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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기발하지만 꽤나 황당하게 만드는 문구였다. 튀바슈 가문의 평화로운 일상에(물론 사람들에게 자살을 권하는 평화로움) 첫 항상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튀바슈 가문이 수 많은 예비 자살자들에게 그리고 그런 알랑을 수치스러운 골칫덩이로 여기며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의아한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를 낳고 끊임 없이 대를 이어오면서까지 그리고 삶과 죽음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는 동안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를 말하는 거에요.
나 스스로는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튀바슈 가문의 우울과 불행이 저만치 사라지고 마침내 그들의 얼굴에도 황당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자살가게에서 끊임없이 비춰졌던 것인데 죽음에 가까웠던 튀바슈 가문과 삶에 충실했던 알랑의 생과 사가 바뀌었고 가볍게 읽었지만 그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았던 책.
죽음으로서 삶을 생각하게 해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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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라는 책의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갖고 있지 않았다. 자살가게는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5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책속에서는 알랑의 작은 말한마디로 사람들이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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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 시리즈 중 한 권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고찰이었다. 남겨진 자의 시선에서 죽음의 의미를 가늠해 보았던 책이었다. 그 전에도 지금도 그러하지만 내게 죽음이란 단어는 참 오묘한 마력을 가진 말인데 특히 '자살'이라는 말이 가지는 묘한 카타르시스는 기막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자살중독자라고는 생각하지말길 바란다. 아직 세상은 살아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죽지 못함으로 죽음을 동경한다고 쓰면 딱 좋은 표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혹은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곳 '잊혀진 종교'단지의 자살가게의 일가에 대한 이야기다. 자살만은 완벽하게 도와준다는 가게의 선전 성공률 100퍼센트를 자랑하면서 몇 대를 걸쳐 음침하게 영업중인데 그 가운데 알랑이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자살 , 스스로 심장활동을 정지시키는 일 ,목을 메거나 , 팔의 혈관을 자르거나 대퇴부 정맥을 자르거나 수면유도제를 과다복용하거나 ,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정도가 아주 고전적인 자살의 방법인데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을 메면 목이 막혀 괴로워 참지 못하고 그 끈을 잡기가 일쑤고 동맥을 잘라보려한들 면도칼의 아픔을 참지 못해 얕게 자르면 아니한만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면 피바다를 보거나 장소가 더러워지므로 욕먹기 일쑤고 그래서 사람들은 따뜻한 물에서 동맥을 귿기도 한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해본들 먹다가 지치고 , 옥상에서 뛰어내려본들 나무에 걸리기도 하고 농약을 마시려고 노력해봤으나 제초제가 아니라 단순한 농약을 마셔서 배만 아프고병원비만 많이 나온다.
자살가게의 자살도구들은 진화를 해서 죽음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죽음이란 것이 초반부에 자살도구의 아름답고 은유적인 이름들에서 죽음이란 것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것으로 그 결과물이 명확하게 나와야하는 것으로 치부되다가 후반부에 가면 죽음은 그 철학적 의미라든지 , 사무적인 의미를 벗어버리고 , 의미를 전성하여 죽음이란 칙칙한 키워드는 웃고 즐기는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어 사람들에게 소비된다. 현대는 이미지 소비의 시대이기도 해서인지 죽음이란 추상적 이미지까지도 현실 속으로 이끌어내어 대중들에게 판매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일고 이런 소리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제목에서 예고되었듯이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잔인하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죽어버린 사람 이야기가 그로테스크하지만 유쾌한 이야기 속에 숨어 있으니 말이다.
죽음은 스스로 죽음에 임할 사람은 자신이 죽은 다음 남겨진 자가 생각할 자신의 죽음의 의미와 무게를 생각해봐야한다. 만약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아무런 기억도 없이 , 아무런 느낌도 없고 오히려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죽음이라면 스스로 죽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가장 잔인하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포와 두려움일까? 아니라면 죽음에 처한 자와 함께한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 사람은 죽어 말이 없으나 죽지 못하고 그 사람을 기억해야하는 것은 남겨진 자들의 행복이 아니라 지독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다. 자살가게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죽음을 준비하는 자라면 읽지 말기를 바란다. 너무나도 명징하고 완벽한 죽음을 성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것이거든.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살아가야 할 자들에게 자신의 의미를 각인시키면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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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한 책이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다고나 할까. 정말 생각치도 못한 소재, 그리고 캐릭터들,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말 요즘들어 읽어본 책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오라! 만족할 만한 도구와 온갖 방법에 대한 조언담이 가능하며 겁이 난다면 가게로 찾아와라. 자살할 수 있도록 잔뜩 용기를 줄것이며, 꼭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줄 것이다. 늘 연구하고 새로운 기구와 방법을 개발하는 이 집안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도구를 팔지만 말이다.
타고난 혈통이 절대 웃을 수 없는 이 집안에 이상하게도 막내가 웃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해맑게 씨익. 그리고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든 세상이 그 아이에겐 장미빛 인생이다. 형이 만드는 끔찍한 도구들도 예술성이 지극히 높은 멋진 작품이고, 항상 외모를 비관하는 누나의 추한 얼굴도 막내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매혹적이다. 엄마가 아무렇게나 만든 음식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자살특공대 캠프에서 교관이 자살하게 만들고만 엄청난 장미빛 오로라의 소유자!
한 사람의 엄청난 긍정의 힘이 정말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웃음을 만들 줄 알았던 이 아이는 섹스를 통해 감염되서 죽고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구멍난 콘돔을 시험해보다 태어난 알랑. 그 막내가 이제 가족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큰형은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고 누나는 사랑을 찾았고 엄마는 왠지 모르게 막내가 해오던 긍정적인 말을 따라하게 된다.
어느날 몸이 안 좋았던 아빠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었던 시간 동안 가게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왠지 알랑이 몇 대를 걸쳐온 가업이 무너트리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빠는 이러한 변화가 너무나도 싫다. 대체 왜 우리 집안이 이렇게 변해가는거냐면서 자살도구를 찾는 손님과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 와중에도 가게는 이상하게 축제 분위기이다. 자살가게가 이제 자가 없어진 살가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살을 하지 말하야 한다를 깨닫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유쾌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고만 생각했다. 큰 교훈은 담겨있지 않지만 허무맹랑함으로 웃음을 주는 코드의 일본소설들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너무나 밋밋한 결론이겠지? 이게 뭐야하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는 놀라운 반전을 던져준다. 진짜 이것은 던져준다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 던져진 반전 때문에 책을 읽고 얼마나 얼이 빠졌는지 모르겠다.
아, 또 원서로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책 한권이 늘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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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살고 성공하면 죽는 것은? (자살) 갑자기 등장한 수수께끼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삶이 더 이상에 재미가 없다 느낄때면 한번쯤 아니 가끔은 자살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심심풀이 삼아 하는 생각일뿐 실천으로 옮길 시도는 해본적이 없다. 만약 자살했는데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더 재미난 인생이 예비되어져 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 더 살아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올라 타고 있다. 그 순서가 빠르냐 늦으냐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도 죽음에서 회피할수는 없다.
가문 대대로 자살 용품만을 판매해 온 상점, 가게에는 다양한 자살도구를 준비되어 있고 자살을 위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꼭 필요한 용품들을 판매한다. 구멍 난 콘돔을 시험해보다 태어난 아이라는 막내 알랑은 다른 가족들과 달리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다. 큰 아들 뱅상이 꿈꾸는 '자살 테마파크'같은 곳이 세워진다면 고객은 얼마나 될까? 만약 대한민국에 이런 가게가 등장한다면 그것을 정부는 정식으로 허가를 내줄까? 왠지 비밀리에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꼭 자살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궁금해서 한번쯤은 찾아보게 될지도.
"작은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할 수 있다네. 정말이지 작은 것만으로도....." (p.113) 진정한 행복은 큰것에 있지 않다는 것, 딸이 보여주는 예쁜 짓 하나에도 웃음꽃이 피어날수있는 것이 가족의 정이다. 현재 가진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부릴때 사람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긴다. 가질수없는 것을 올려다보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행복할수 없는 것이다. 2013년도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소년 사망 원인 순위에 당당하게 1위를 마크한 것은 '자살'이었다. 다음으론 운수사고(7.8명), 암(3.8명), 심장질환(1.0%), 익사사고(0.8%) 순으로 나타났다.
알랑이 자라면서 그들의 사람도 자살가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자살 방지 가게로 전환되어져 갔다.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 삶의 희망을 얻어가는 사람들, 단순히 책이 그렇게 끝이 난다면 재미 없겠지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했음일까 작가는 큰 반전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가게가 세상에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라. 이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자살용품들을 늘어놓고 고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가게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미래 세상은 자살도 정당한 죽음의 한가지 방법으로 인정받게 될런지도.
자살, 자신 스스로를 살해하는 방법인 동시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죄책감과 기나긴 상처를 남겨주는 지독한 살해방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파는 자살가게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의 존재는 정상적이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10대를 이어져 내려온 유서깊은 가문에 그런 아이의 존재란 어쩌면 비극일수도 있다. 그건 차라리 가게 문을 닫으란 말과 같으니까. 하지만 저자에게 묻고 싶다. 정말 알랑에게 그런 결말을 줘야만 했단 말입니까? 좀 유치하더라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과를 줄수는 없었냐고. 알랑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찾아간 수많은 사람들이나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실패한 인생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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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용품을 판매하는 부부가 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물론이거니와, 가게 운영을 하는 부부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부부의 장남과 딸 또한 우울증 환자들이다. 그러나 '구멍난 콘돔'을 시험해보다가 태어난 막내 알랑만은 순도 100%의 긍정소년이다. 이 철없는 막내가 자식들의 우울증을 약화시키기도 하고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괜한 미소를 선사하기도 해서 부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막내를 문제아 취급하며 장남과 딸을 본받으라고 내내 꾸짖지만 막내의 기질은 전혀 변하지 않고, 막내의 긍정적이고 유쾌한 성품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어 온 가족에게, 그리고 손님들에게 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