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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내용보기
소나무   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산신각 앞 바위 위 에 외로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리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꼭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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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나무가 우레를 먹었다

우레를 먹은 나무는 암자의 산신각 앞 바위 위

에 외로 서 있다

암자는 구름 위에 있다

우레를 먹은 그 나무는 소나무다

번개가 소나무를 휘감으며 내리쳤으나

나무는 부러지는 대신

번개를 삼켜버렸다

칼자국이 지나간 검객의 얼굴처럼

비스듬히

소나무의 몸에 긴 흉터가 새겨졌다

소나무는 흉터를 꼭 물고 있다

흉터는 도망가지도 없어지지도 못한다

흉터가 더 푸르다

우레를 꿀꺽 삼켜 소화시켜버린 목울대가

툭 불거져나와 구불구불한

저 소나무는 

 

주말,내소사를 찾았다.

왠일인지 쓰러진 나무가 곳곳에서 목격 되였다. 사연인 즉 2012년 태풍 블라벤에 의해 쓰러진 나무들인데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는 버섯이 자라기도 하고,곤충들의 집이 되는 까닭이기도 해서란다.

그리고 무언가 검색하다 '소나무'라는 시를 만났다. 솔직히 더 충격(?)적인 것은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이란 시집 첫 장을 열었던 시였던거다.오래전 읽었을때는 기억에 조차 들어오지 못했던 시였는데 말이다. 시간이 그냥 흘러간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 읽었던 그때,모든 시가 다 마음에 들어 오진 않았지만,두고 두고 찾아 읽어 보리라 했던 기억이 새롭다.다시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겨 가면서,그때는 눈에 들어 오지 않았던 시들이 쏙쏙 눈에 들어온다.

묵혀서 제맛인 것은 시에게도 해당되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나고,읽는 이의 경험이 더해질수록 시는 팔색조처럼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다.

 

별의 죽음

 

별들도 인간처럼 생로병사를 겪는다 진화한다

죽어가면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한다

초신성 폭발이다

거대한 폭발로 밤하늘을 빛내며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도 50억 년 뒤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별이 태어나도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여전히 죽음이다

분주하다 우주는 죽음을 맞이하느라 고요할 틈리

없다

격렬하다 우주는

별과 나무아 고래가 들숨과 날숨 사이의

한 호흡에 있다

모든 행성이 발 디딜 데 없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린 오래 진화 중이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은 직후라 더 시들이 오롯하게 박혔는지도 모르겠다.삶과 죽음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몇년 전 그때만 해도,'죽음'이란 화두가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록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그런데 결국 우리는 격렬하게 살다 가는 것,그것을 진화중이라 표현한 시인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무엇일까.우리가 자연에게서 배우는 것은 '변화'일 것이다.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상주가 없고 공적하여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흘러간다는 것,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것을 늘 깨닫게 해준다.변화를 자신의 존재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삶은 진정 자유로울 것이다" (해설 中 에서) 

w*******i 2013.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슬을 읽는다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이슬을 읽는다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내용보기
시를 노래하는 시 61   이슬을 읽는다―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조용미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7.10.31. 7000원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아이들을 읽습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읽고, 아이들 낯빛을 읽으며, 아이들 움직임을 읽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늘 들을 읽습니다. 들내음을 읽고, 들바람을 읽으며, 들빛과 들소리와 들숨을 읽습니다.   공장에서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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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61

 


이슬을 읽는다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조용미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7.10.31. 7000원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아이들을 읽습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읽고, 아이들 낯빛을 읽으며, 아이들 움직임을 읽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늘 들을 읽습니다. 들내음을 읽고, 들바람을 읽으며, 들빛과 들소리와 들숨을 읽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는 사람은 기계에서 숨소리를 느낍니다. 기계를 벗이나 이웃으로 여깁니다.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바늘과 실을 한몸처럼 느낍니다. 버스를 모는 일꾼은 버스가 내 몸과 같고, 택시를 모는 일꾼은 택시가 내 몸하고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은 종이와 연필이 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가 늘 옆에 있어야 합니다. 들일 밭일 하는 사람은 호미가 언제나 가까이 있어야 해요.


  삶자리에 따라 일자리가 다릅니다. 삶터에 따라 쉼터가 다릅니다. 삶을 누리는 모습에 따라 넋과 말이 다릅니다.


.. 종이 한 장 깔지 않은 흙바닥을 이토록 매끈하게 만든 사람은 / 어떤 연장보다 빛나는 손을 가졌을 것이다 / 나는 자꾸 흙바닥을 만져본다 ..  (흙 속의 잠)


  밤새 자는 동안 집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가 내 몸을 이룹니다. 내 집 둘레에서 자동차가 쉴새없이 오가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이 소리가 머리에서 윙윙 울립니다. 내 집 둘레에서 풀벌레가 나긋나긋 노래를 하면, 이 노래가 머리에서 잔잔히 감돕니다. 공장에서 밤샘일 하고 나서 아침에 잠드는 사람은 잠결에도 기계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과 하루 내내 뒹굴며 놀고 부대끼고 돌보고 하다가 함께 곯아떨어진 사람은 잠결에도 아이들하고 노닥거립니다.


  개나 고양이는 집에서 밥을 주는 사람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 바퀴 소리를 알아차립니다. 발걸음 소리도 알아차리지요. 낯익고 반가운 사람 발걸음 소리에다가 숨소리까지 알아차려요. 낯설거나 달갑잖은 사람 발걸음 소리랑 숨소리도 알아차립니다.


  아이들도 느껴요. 아이들도 어버이가 기쁜 마음인지 슬픈 마음인지 좋은 마음인지 짜증스러운 마음인지 하나하나 느껴요. 어버이가 입을 열기 앞서 어떤 말이 터져나올까 하고 알아차립니다. 어른들도 그렇지요. 아이들 움직임과 낯빛만 보고도 어떤 말을 읊을는지 알아차려요.


.. 오층석탑과 천년수 사이에 짧은 시누대 터널이 있다 천 년 묵은 나무와 천 년 묵은 탑 사이에 있는 대숲 터널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빽빽하고 어둑하다 ..  (만일암터)


  우리는 모두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입을 열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도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귀를 쫑긋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살결을 쓰다듬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느끼고 알기에 입과 귀와 눈과 살결을 거쳐 더 깊고 넓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느끼거나 알면 입이나 귀나 눈이나 살결 아니고도 한결 깊고 넓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불을 맞추지 않아 냄비가 탈 적에, 눈으로 안 보고 코로 냄새를 느끼지요. 작은 풀개구리를 손바닥에 얹을 적에, 눈으로 안 보고 살결로 풀개구리 살떨림을 느끼지요.


  즐겁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 온몸 가득 즐거움이 샘솟습니다. 내키지 않는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 온몸 그득 내키지 않아 싫고 짜증스럽고 못마땅한 기운이 솟구칩니다.


  마음을 생각할 적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마음을 살필 적에 삶이 빛납니다. 마음을 아끼고 가꿀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고, 두 다리로 마실을 다니면서 늘 마음을 살펴요. 아침과 낮과 저녁에 언제나 마음을 헤아려요. 마음이 흐뭇할 만한 곳에서 마음이 노래할 만한 일거리를 찾아요.


.. 나는 이 지상의 / 어느 먼 별에 와 있는 것일까 ..  (검은 달, 흰 달)


  조용미 님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지성사,2007)을 읽습니다. 시를 하나둘 읽다가 문득 이슬빛을 떠올립니다. 도시에서 살면서도 이슬빛을 느낄 사람은 느낍니다. 시골에서 살면서도 이슬빛을 못 느낄 사람은 못 느낍니다.


  이슬은 어디에나 있어요. 어디에나 있는 이슬을 느낄 사람으 느끼고 못 느낄 사람은 못 느낍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별은 똑같이 뜨고 집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별을 보려는 사람은 언제나 별을 봅니다. 도시에서 고작 별 한두 송이 본다 하더라도 별을 봐요. 시골에서 미리내랑 별똥별까지 보아야 별바라기가 아니에요. 마음으로 담을 애틋한 빛살 하나를 헤아리면 모두 별바라기입니다.


  도시에서도 들풀을 뜯는 사람은 들풀을 뜯고 들꽃을 보지요. 시골에서도 들풀을 안 뜯는 사람은 들풀을 모르고 들꽃을 지나쳐요.


  마음이 있을 때에 마음이 서로 만나요. 마음이 있을 때에 마음에 사랑을 담아요.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눈을 뜨고, 천천히 입을 열며, 시나브로 시를 씁니다.


.. 그가 깊은 산속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만 산다는 /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산다는 꼬리치레도룡뇽을 살리려고 / 생명을 내놓았다 // … // 이 화엄벌의 늪에 지율의 친구 도룡뇽이 산다 / 갈색 등에 노란 점무늬가 별처럼 펼쳐져 있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 꼬리치레도룡뇽은 겨울잠에 들었다 ..  (도룡뇽 수를 놓다)


  삶이 드러나는 시 한 줄입니다. 삶을 말하는 시 두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시 석 줄이요, 삶을 즐기는 시 넉 줄입니다.


  지율 스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 있고, 지율 스님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천성산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저 천성산을 길그림책에서 찾을 수 있고, 천성산으로 몸소 찾아가서 그곳 숲을 누릴 수 있으며, 고속철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삶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꼬리치레도룡뇽만 도룡뇽이 아닙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도 신갈나무 떡갈나무입니다. 개구리는 개구리요, 송사리는 송사리예요. 사람한테는 꼬리치레도룡뇽뿐 아니라 송사리를 죽일 권리나 권한이 없어요. 사람한테는 천연기념물만 돌보라는 권리나 권한이 없어요.


  맹꽁이는 죽여도 될까요. 두꺼비 삶터를 없애도 될까요. 강아지풀 삶터나 씀바귀 밭자락을 밀어 없애도 될까요.


.. 꽃 피운 앵두나무 앞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다/ 내가 지금 꽃나무 앞에 이토록 오래 서 있는 까닭을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이슬을 읽어요. 깊은 밤 지새우고 새벽을 맞이하는 이슬을 읽어요. 이슬을 먹고 자라는 풀잎을 읽고 풀벌레를 읽어요. 이슬을 먹고 자라는 풀잎을 맛나게 뜯어먹는 숱한 숨결을 읽어요. 이슬이 없으면 풀이 없고, 풀이 없으면 사람이 없어요.


  도시에는 풀이 거의 없지만, 도시에 없는 풀을 도시사람은 시골에서 사다 먹지요. 상추이든 배추이든 모두 풀이에요. 쌀이든 보리이든 모두 풀이지요. 돼지도 소도 닭도 모두 풀을 먹고 자랍니다. 풀이 없으면 풀벌레도 없고, 풀짐승도 없어요.


  그런데, 이 도시에는 풀을 없애고 밀어내며 짓밟으려는 사람과 교육과 제도와 정치와 경제만 있습니다. 시골에서도 풀을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손짓이나 몸짓이나 마음짓이 없습니다. 풀이 없으면 이슬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풀을 없애면 이슬은 어디에 맺혀야 하나요.


.. 뿌옇게 비안개가 내려오고 있다 비안개는 대숲의 한쪽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다 바람이 몰아치면 소리를 퍼뜨리며 아무렇게나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진박새가 보랏빛 꽃송이가 둥그렇게 피어 있는 수국 속을 포동포동 들락거리고 있다 ..  (두륜산 小記)


  석유도 석탄도 풀 한 포기에서 비롯했습니다. 우라늄도 금도 은도 구리도 쇠도 풀 한 포기에서 비롯했습니다. 사람도 풀 한 포기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다시 풀 한 포기가 됩니다. 풀과 나란히 나무가 자랄 적에 아름답습니다. 풀 곁에 나무가 있으면서 다 함께 이슬을 누릴 적에 즐겁습니다.


  이슬을 읽어요. 이슬을 사랑하고 이슬을 노래해요. 이슬을 마시고 이슬을 아껴요. 이슬빛 읽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슬노래 부를 수 있을 적에 바야흐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4346.10.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h*******e 2013.10.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