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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오울프. 현대에 변주된 서사시. 그리고 함의.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베오울프’는 하이랜더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의 동명 영화를 통해서일 것이다. 이 곳에서 크리스토퍼 램버트는 ‘베오울프’ 역을 맡아 헤오르트 성을 침입하여 사람을 해치는 악마적 존재 그렌델을 제거하는 역을 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베오울프’는 신화나 전설 속의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렇듯 낯익은 이름이지만, 동시에 생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오울프가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간단한 이야기 형식의 서적으로는 접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마침 새로이 ‘베오울프’의 영화가 개봉되는 차에 영화의 원작인 닐 게이먼의 동명 소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닐 게이먼의 작품은 서사시 베오울프와 기본적인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번영하던 왕국을 몰락시키는 괴물 그렌델과 이를 제거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베오울프와 용사들. 그리고 왕이 된 베오울프와 용의 대결.
그러나 그 기본적인 뼈대의 일부와 자잘한 내용들의 변용으로 두 작품은 궤가 다소 달라진다. 역자의 말을 빌어 짜깁기 해보자면 오래된 서사시를 현대적으로 대담히 변주한 작품이라 하겠는데, 그러한 변주의 내용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렌델’에 초점을 맞춰봐야 한다. 책의 첫 페이지에 붙여진 헌정사에는 ‘그렌델을 위하여……’ 라는 구절이 있는데, 닐 게이먼은 기존의 베오울프에서 그렌델이 맡고 있던 단순한 영웅의 대적자의 역할을 뛰어넘어, 이 가련한 괴물에게 하나의 인격을 부여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것의 존재로서 동시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존재의 비밀은 흐로드가르 왕의 향락의 궁전, 헤오르트 궁에 대비된다. 헤오르트의 부와 권력의 이면에 감춰진 복잡한 진실과 그늘은 곧 양날의 칼이 되어 헤오르트 궁을 위협하는 것이다.
실제 서사시에서는 그렌델과 그렌델의 어미가 베오울프에 의해 제거되지만, 닐 게이먼은 그 어미를 살려둠으로써 인간의 부와 권력이 있는 한 그 이면에는 권력과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그들의 집단과 사회를 파멸로 이끌 끊임없는 유혹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 그렌델의 어미는 그 자체로 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을 시험하는 매개체로 보아야 한다. 이는 여운이 짙게 남는 글의 결말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베오울프가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고 용과 맞서게 되는 이야기가 닐 게이먼의 작품에서 변형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의 거짓들, 그리고 권력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은 그 권력을 쥔 자가 바뀐다해도 달라질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탐욕과 권력의 부패, 타락의 상징으로서 닐 게이먼은 ‘황금 뿔잔’을 상정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그 것을 도로 버리고 다른 사름들 뒤를 따라 절벽을 올라가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그 것을 들어올렸다.’
이 ‘황금 뿔잔’은 J.R.R 톨킨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절대 반지’와 같이 보다 구체화된 권력욕과 부패의 상징이다. 절대 반지가 고귀한 혈통의 보로미르를 잠시 타락시켰듯, 트릭스터가 유독 강한 위글라프조차 ‘황금 뿔잔’의 유혹에 흔들리고 만다.
만약 카시러의 말대로 신화가 하나의 신념의 체계이며 현실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극적 구조의 이야기체라고 한다면, 닐 게이먼이 만든 것은 단순한 고대 서사시의 상업적 활용만은 아니며 권력에의 탐욕을 경계하는 하나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낸 것으로 볼 수 있을 듯싶다.
서사시를 현대적 소설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이 글은 서사시의 장엄함과 고색창연함은 다소 퇴색하는 한편으로 대중소설의 긴장감과 세밀한 묘사를 가져왔다. 근래의 판타지라는 장르 시장의 특성을 살펴볼 때, 이 작품이 과연 얼마만큼 장르 시장의 독자들에게 선택될 것인가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의 고착화된 대여점 장르 시장의 독자들이 대여점의 판타지 책들이 모여 있는 책장 사이 어딘가에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한다면, 생각 없이 손쉽게 선택하지는 못할 듯싶다. 이 작품은 달리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고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글이지만, 외국 작품의 특징(번역체)에 덧대어 서사시의 변형 과정에서 이어지는 장엄함과 고색창연함의 약점이 있다. 일부 독자층에서는 ‘지루하다’라는 평이 쉽게 나올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베오울프’라는 이름은 낯익어도 내용은 낯선 작품에 대한 판타지라는 장르를 애호하는 독자의 호기심, 그리고 영화에 대한 관심은 ‘베오울프’에 대한 약간의 인내를 가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유럽 신화의 내용에 대한 빈번한 언급 또한 관심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더욱이 글에 짙게 깔려있는 우중충한 분위기는 책의 광고문구마냥 ‘당신의 영혼을 전율케 할 어둠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은 ‘지루하다’라는 평을 낼만한 취향의 독자라도 약간의 인내만 있다면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에는 충분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분량은 생각처럼 길지 않고, 상황의 묘사는 영화를 보듯 무리 없이 흘러간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독자의 범위를 넓힌다면... 외국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독자. 혹은 닐 게이먼이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에 좋은 선택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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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문학 작품인 베오울프의 연대기에 역사적인 사실과 방대한 북유럽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 그리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하여 만들어진 소설로, 닐 게이먼과 케이틀린 R.키어넌이 함께 집필한 작품이다. 탄탄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이어져 나가는 소설로 잘 쓴 소설이긴 하지만 재미의 측면에선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닐 게이먼의 명성에 반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므로 - 실제로 책을 분류할 때 공저의 경우 따로 주저자, 보조저자로 구분해놓지 않는 경우 알파벳 순서가 빠른 쪽을 먼저 기재하는 원칙에 따라 게이먼(G)이 키어넌(K)보다 앞서 닐 게이먼의 소설로 분류되어 있기도 했고 - 닐 게이먼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기대했었는데, 이 작품에서만은 그런 점이 배재되어 있다.
매우 유명한 작품을 재구성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원작의 줄기를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또한 게르만 족의 영웅의 일대기를 망칠 수도 없고 말이다. 최대한 그대로 재현하되 인물들의 심리적인 부분에서만 상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선과 악의 구도를 뒤틀어서 과연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결국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큰 어떤 존재 앞에 무력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힘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영웅적인 면모 역시 잘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이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했으리란 것은 역주에 나와 있는 용어 해설을 보면 알 수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각종 신들의 이름과 기타 중요한 단어들에 대해 풀어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다면 괜찮은 진지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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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책인데 이제야 리뷰를 올립니다.
고대 영어, 그러니까 원래는 덴마크와 스웨덴 및 독일 서북부 작센 지역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들의 언어로 쓰여진 최초의 영웅 서사시인 베오울프를 작가 닐 게이먼이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다시 설정하여 쓴 소설입니다.
원전에서는 기독교적인 사상이 강하던 베오울프를 여기서는 게르만족의 원래 신앙인 오딘과 토르 및 그밖의 에시르 신앙에 맞추어 구성했습니다.
사실, 앵글로 색슨족은 영국에 침입해 이주하고 한참 후인 7세기 말에 가서야 기독교로 개종했으니 어쩌면 닐 게이먼의 설정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원전에서는 인격이 없는 단순한 괴물에 지나지 않던 그렌델과 그 어미를 닐 게이먼은 인간과 결부시켜 독특한 해석을 했습니다. 그렌델은 어미인 물의 마녀가 흐로스가르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이고, 나중에 나오는 드래곤도 베오울프와 물의 마녀 사이의 자식이라는거죠.
물론 이런 생각은 1998년에 개봉된 헐리우드 영화 <베오울프>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리가 주연을 맡은 SF 영화인데, 무척 괴기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죠.
작품의 본 내용은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베오울프>를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 드립니다. 그 영화의 원작이 된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미처 다루어지지 못한 부분들까지 자세하게 나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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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드, 베르단디, 스쿨드. 이 노른의 세 여신은 이제 더이상 세계수의 가지 아래에서 운명의 실을 자아내지 않는다. 이제 그녀들 세 자매는 천상계의 '구원 여신 사무소'에 소속 되어 있으며, 어떤 착해 빠졌지만 멍청해 보이는 남자 아이를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대의 우리는 운명을 좌지우지 하던 세 여신을 애니메이션 팬들의 핀업걸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아무도 종교-종교라기보다는 '믿음'이라는 차원에서 말 해야 할 것 같지만 달리 이말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로서 북유럽에 분명히 존재하던 신들, 신화들, 영웅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러한 시대에 재탄생된 이야기이다. 그는 마지막 영웅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라그나로크와 오딘과 영웅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발할라에 들어간 것이 바로 그였다. 영웅, 베오울프다.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전에 내려진 정의로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영웅' 이란 신과 닮은 인간, 즉 지혜와 재능과 용맹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사람, 보통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베오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실제로 바다 괴물들을 찢어죽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일개 예이츠인 전사였던 그는 덴마크의 왕이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까지 영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도 얼마든지 물의 여인이 준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의 여인이 주지 않았더라도 왕자가 없는 왕의 아들이 될 수 있었고, 젊고 아름다운 왕비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영광은 물의 여인이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는 수식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약속과 물의 여인의 아름다움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에 인간의 나약함이 있다. 베오울프는 영웅이었으나 영웅이 아니었고 평범한 인간조차도 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은 나약했고, 그의 몸은 강했기 때문에.
북유럽 신화를 멋지게 재 탄생시킨 이 '베오울프'란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주인공은 베오울프가 아니다. 너무나도 거칠고 강하며 신을 제외한 모든것을 초월한 듯한 존재인 반면 불쌍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아이 같이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 그렌델이다. 물의 마녀와 인간사이의 계약에 의해 태어난, 거인족도 인간도 아닌 아이. 그의 존재는 양 쪽 어느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다. 그 가엾은 아이는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나 보다.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노는 인간들의 소리를 견디지 못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흉칙한 모습과 포악한 성격은 어미를, 인간들이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노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외로움은 아비를 닮은 모양이다. 결국 그 괴물같은 가엾은 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새로운 아들, 베오울프에게 죽음을 당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로인해 약간의-그에게는 약간이겠지.-보복을 가했다는 이유로. 포악하게 인간을 찢어죽인 그렌델을 정말 惡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를 찢어죽인 베오울프는 어떤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매력적이고 강한 남성을 물의 마녀는 어떤 심정으로 유혹했을까.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의 그 장면을 보며 내가 느낀 그녀의 심정은 죽은 아들을 사랑하지만 더 강하고 아름다운 아들을 낳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 열망으로인해 죽은 자신의 아들을 낳게 했던 아비보다 더 강한-자신의 아들마저도 죽일 정도로-남자를 유혹하여 아이를 가진 것이라고만 생각되었다. 책에서는 물의 여인이 베오울프를 유혹한 이유를 오래전에는 자신을 여신으로 떠받들던 인간들이 인간의 아이이기도 한 자신의 아이를 무참히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표현한 것 같다. '더 강한 아이를 낳아 그 아이로 하여금 너희들을 다 없애버리게 할꺼야' 라고 되뇌이는 그녀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한 장면이었다. 물의 여인이자 마녀인 그녀는 어떤 용사든 자신앞에 무릎꿇릴 수 있었다. 계약을 맺고 남은것은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예견된 결말 앞에 어떻게 무너져 갈지.
예상대로 베오울프와 물의여인 사이의 아들은 그렌델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아릅다고, 강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렌델보다 어미를 훨씬 닮았고 아비를 더욱 닮았다. 장성한 아이는 이젠 늙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이 장면에선 오이디푸스를 떠올렸다. 역시 신화라는건 어디의 신화일지라도 인간을 배경으로 쓰여졌기에 닮아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인간은 어머니를 배반했다. 인간인 아버지는 그아이에게도 애증의 대상이었던 것일까.
베오울프 오딘의 연회장, 발할라로 들어간 마지막 전사였다. 그가 젊었던 시절부터 오딘과 신족들은 로마에서 온-정확히는 아니지만 대 제국 로마가 국교로 인정했으니 그렇게 표현 할 만 하다-다른 신과 영역을 다투기 시작했고 그가 늙었을 즈음엔 오딘과 신족들에 대한 숭배를 이교로 부르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를 다룬 이 책에서는 이 종교적 세계관의 대립을 매우 여러 차례 찾아 볼 수가 있다. 베오울프는 끝까지 개종을 거부하고 오딘의 전사로 죽는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오딘과 발키리들은 그 자리를 유일신과 그의 아들에게 내어 주었다. 나는 천주교이지만 그리 독실한 신자는 아닌 모양이다. 사실 이교, 이단라는 말을 싫어하기도 한다. 異敎라는 말은 누구의 입장에서 본 것인가. 단지 크리스트교에서 다른 종교들을 배척하는 시각일 뿐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원전이 존재함과 원전을 변형시켜 다루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원래의 구전되어온 '베오울프' 이야기는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다면 영화가 내게 어떻게 보여졌을지도 생각 해 본다. 개봉 이전에 시사회로 영화 '베오울프'를 접했을 때는 모션캡쳐 방식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란 점 외에 어떤 주목할 만 한 점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길고긴 이야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으니, 모든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그 필연성이 존재 하지 않았다. 어림잡아 짐작하고 내 식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을 뿐이다. 책을 읽어보니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역시 책 쪽이 탁월한 묘사와 치밀한 설정이 돋보일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장면을 보여주고, 책은 묘사와 설정을 통해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내가 상상해 봤던 장면들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확인하는 재미를 맛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악마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베오울프는 그렌델이 자신의 악마라고 여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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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베오울프의 이야기는 이전에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영화로도 책으로도. 그저 그런 게 있대 수준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도서 수집가들을 다룬 논픽션 『젠틀 매드니스』를 읽으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가� 오래된 영미 문학. 이리저리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보관에 신중을 가하며 복원하려고 한다고 했던가? 그리고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약간 관심이 생겼을까. 그러나 읽을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베오울프』를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닐 게이먼 사실 내게 닐 게이먼은 그리 관심 가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을 몇 번 읽어본 적은 있지만 빠져본 적은 없다. 닥터후의 에피소드 몇 개를 쓰든, 샌드맨을 쓰든 '닐 게이먼이었구나!' 이상으로 인식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임은 틀림 없다. 이전에 읽었던 『신들의 전쟁』도 나에겐 잘 안 맞았지만 이야기나 소재가 매력적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닐 게이먼은 상도 엄청 많이 받았는데, 휴고상, 네뷸러상, 브램스토커상 등 SF, 판타지 쪽에서 권위 있는 상들은 다 휩쓴 듯...(그 상 받은 작품이 신들의 전쟁이다.) 어쨌든 그런 닐 게이먼이 베오울프를 다시 썼다. 공동 작가인 케이틀린 R 키어넌은 닐 게이먼만한 유명세는 없지만 몇 번 상을 받은 작가라고 한다. 세련되어진 영웅시 난 베오울프 원작은 읽어본 적이 없어 이들이 베오울프를 어떻게 고쳤는지, 어느 부분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처음 읽을 때 오래된 이야기 치고 참 세련되었네 싶었다. 인간적인 괴물들, 인간적인 영웅.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새로 덧붙이고 강조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바뀌었든 간에 재창조의 방향은 오랜 영웅시를 현대화시키는 쪽이 아니었나 싶다. 구전되다가 8세기 쯤에 기록된 오래된 이야기라니, 얼마나 케케묵었을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닐 게이먼은 그걸 현대적으로 바꾸어서 술술 읽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덴마크의 흐로드가르왕의 연회 중 괴물 그렌델이 쳐들어온다.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와중, 바다에서 베오울프가 온다. 베오울프는 그렌델을 물리치고 왕이 된다. 그리고 왕이 된 베오울프를 용이 위협하는데 그 용도 물리치고 덴마크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1부 그렌델은 왕이 되기 전, 2부 용은 왕이 된 후의 이야기이다.
베오울프는 줄거리만 보면 별 다를 게 없는 영웅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북유럽 신화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는 사회상, 인간적인 괴물들의 괴로움, 물의 마녀의 매혹적인 모습들은 알 수 없다. 특히 내게는 베오울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닐 게이먼은 이 인물을 뻔한 영웅이 아니라 흔들리고 유혹에 빠지며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인물로 만들어놨다.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의 투린과도 같이 영웅인데 영웅인 걸 인정하기 싫은 그런 모습들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베오울프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놨는데, 베오울프의 자기 정의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나, 그렌델? 그렇다면 알려주지. 나는 토막 내는 자, 찢는 자, 베어내는 자, 그리고 후벼파는 자다. 나는 어둠의 이빨이며 밤의 발톱이다. 나는 네가 네 자신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다. 나의 아버지 에즈데오우는 나를 베오울프라고 이름지었다. 벌들의 늑대라는 뜻이지. 네가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면 말이야. 이 악마야."-p.144
"나를 기억해주오." 그가 말했다. "왕이나 영웅, 악마를 죽인 자로 기억하지 말고, 실수를 저지르고 결함이 있는 평범한 남자로 기억해주시오. 그게 내가 기억되고픈 모습이오."-p.321
전통적이며 현대적인 옛이야기
닐 게이먼의 『베오울프』는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되었다. 이제까지 그의 작품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전해온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하고, 베오울프의 내용이 궁금했던 나에게 충분한 답을 주었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베오울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에 기반한 오래된 영웅 설화가 궁금한 분이라면 이 책을 읽을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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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를 한편 본듯한 느낌이다.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소설 베오울프는 영화의 영상미 못지않은 장면묘사가 일품이다. 글을 읽은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따라다니면서 한장면 한장면을 눈꺼풀에 각인시킨것처럼 나중에도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는게 신기하다. 빠르고 박진감넘치고 유머러스한것이 영락없는 한편의 헐리웃 영화이다. 엔터테인먼트소설로는 이만한것도 없을듯 싶다. 베오울프의 전설속에 빠져있는 동안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지만,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유명한 반지의제왕을 시작으로 수많은 환상소설의 모티브가 된것이 북유럽신화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작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려고 하면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신화나 설화가 그렇듯 오랫동안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온 탓에 이렇다 할 정형화된 문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훗날 기록되었다해도 서사시이다보니까 특히 문화권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그 원문을 확인하기가 힘들뿐더러 요약이나 각색한 작품마저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와 그것이 주는 재미라는 면에서는, 단순하고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를 다룬 구전설화보다 환상소설쪽이 더 만족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방대하고 치밀하다고 해도 개인이 만들어낸 세계관으로는 충족시킬수 없는 부분이 있는것 같다. 북유럽신화라면 그들 민족만의 세계관, 인간관, 생활상이 반영되어있을것이고 바이킹의 후예인 그들의 용맹함이나 호전성의 근원이 되는 가치관을 엿볼수 있을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 민족만이 가진 혼을 느껴보고 싶은것이다. 이런것들은 아무리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멋들어진 줄거리를 가졌다고 해도 환상소설에는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면에서 소설 베오울프는 어느정도 그 빈자리를 채워줄만한 작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문서사시라는 베오울프를 각색한 이 작품은 물론 오락적요소가 가미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지만, 베오울프라는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북유럽신화를 엿볼수 있는 대안이 될수 있을듯 하다. 마법이 난무하고 요정이 날아다니는 세상을 읽는것도 즐겁지만 힘과 용맹함이 최고의 미덕이던 시대의 근육질의 영웅을 읽는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였다. 무엇보다도 고뇌하는 영웅, 선과 악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미 넘치는 베오울프의 모습은 단순한 오락소설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도 부여해주었다.
쉽게 접할수 없던 고대설화를 이렇게 재기넘치는 필치의 글로 읽을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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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베오울프라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설화와 역사 등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바다의 마녀(네르푸스)와 계약을 한 호로드가르 왕과 마찬가지로 계약자이며 그의 후계자인 베오울프의 영웅담 이면의 이야기입니다. 뭐 무슨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요즘 나오는 이러한 설명은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으니 현 시점에서는 사실여부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둘 다 그들과 네르푸스와의 아들들(각각그렌델과 황금인간-용)간의 각축이 이야기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재미는 있는 편인데 추진력이 좀 떨어집니다. 구성상 헛점도 몇 개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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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신화를 작가적 재해석으로 탄생한 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간 소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나 신화류를 좋아해서 더 귀가 솔깃했는데다가 '백투더 퓨쳐'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기에 책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여건상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네요.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영화보다 먼저 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영화 참 잘 만들었군..하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다 읽고나서야 영화를 소설화한거더군요. 물론 같은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맡았다고 하지만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읽는 쪽을 권하고 싶어요.
책이 영화보다 각 인물들의 심정을 더 잘 묘사했고, 영화에서 알려줄수 없었던 북유럽의 신화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알수 있다는 점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더 재미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면 소설화한 영화라서인지 전반적인 스토리에서 주는 긴장감이 사라져서 아쉽더군요.
흐로드가르왕은 한때 영웅이었던 왕이지만 이제는 늙어 병약해진 한낱 보잘것 없는 인간으로 전락합니다. 그에게 한가지 근심이 있다면 바로 '그렌델'이라고 불리는 괴물인데, 그 괴물을 무찌를 자신을 대신할 영웅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베오울프는 흐로드가르왕의 바람대로 '그렌델'을 무찌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베오울프 역시 흐로드가르왕의 저주를 안고 살게 되었네요.
책 속에서 나오는 그렌델과 화룡은 흐로드가르왕과 베오울프의 자식인 동시에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괴물이 물의 여인을 통해 형체를 갖추게 된것이지요.
책속의 주인공은 베오울프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렌델과 화룡의 어미인 물의 여인이 마음에 드는 캐릭터네요. 인간의 시각에서 그녀는 괴물이지만, 그녀가 보인 모성이나 인간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인간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괴물이란 입장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적대시하고 멸종시킨 인간이, 그녀 종족에게는 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것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 외에도 마녀와 괴물이 등장하던 고대에서 인간이 지배하게 되는 중세로 넘어가는 시점이 등장한다는것이었습니다. 신화와 전설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기독교의 시대로 들어서면 어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괴물들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영화와는 약간의 다른 결말을 보여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설속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영화보다는 책 쪽으로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 책의 주석은 뒤에 수록 되어 있어서 읽기 불편했다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저는 전자책을 읽어서 주석을 글과 함께 볼수 있어서 그런 불편은 없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