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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단순한 이야기지만 ‘잘 믿는 것’은 신앙인이 가지는 가장 근원적인 소망이다. 특히 개신교 안에서는 믿음이 구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잘 믿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가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는 믿음의 무게에 비해서 진정으로 잘 믿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어떻게 보면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이것이 오늘날 내가 보는 대중화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잘 믿는 것을 소망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는 굳이 사막으로 나가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최우선에 두었던 은둔자들이 있었고, 그 후에는 풍요로운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순례의 길을 걸었던 기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름도 감추어진 어느 러시아인의 순례 이야기에 나오는 순례자도 그런 사람이다.
『이름 없는 순례자』는 개신교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주교나 동방 교회에서는 꽤나 유명한 책이다. 적어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최고의 은혜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추천되는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좀 더 잘 믿고자 하는 주인공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읽으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는 말씀에 도전을 받는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인지를 찾아 헤맨다. 책들을 뒤지고 사람들을 만나서 기도에 대한 교설을 들어보지만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순례자는 우연히 스승을 만나서 가슴 후련한 가르침을 받는다. 예수의 기도로 알려진 끊임없는 기도는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2권에서는 “죄 많은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번역된 이 기도는 마치 불교 승려가 “나무아미타불”을 연신 외는 것과 비슷한 방식의 기도다. 순례자는 하루에 12,000번까지 이 기도를 드릴만큼 열심을 부리는데 결국은 이를 통해서 기도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기도가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례자는 더 깊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순례의 길을 계속하는 데 그의 노정은 넓은 시베리아를 가로질러서 이르쿠츠크까지 계속된다.
러시아 한 복판에 있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가본 적이 있어서 그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 비행기로는 3시간 반, 기차로는 3일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그런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는 주인공의 순례가 일단 대단하다. 그 옛날에야 돈 있는 사람은 마차를 타고 가난한 사람은 걷는 것 외에 길이 없었겠지만 주인공의 순례는 나중에 이르쿠츠크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계속된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따져 봐도 쉽게 용단이 내려지지 않는 여행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나타나는 순례자의 마음에는 머뭇거리는 태도가 없다. 단지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또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그런 자세로 일관한다. 오늘날 만나는 신앙인들에게서는 찾기가 어려운 모습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경험을 담은 기행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단지 성경책 한 권과 주인공이 소중히 여기는 기도를 돕는 책으로써 『수덕의 실천』, 달랑 두 권의 책만으로 어디든지 가는 순례자의 모습은 『천로역정』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영성수련의 기초로 이 책을 접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문이 너무 자자했던 책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관심이 있다고는 아니면 여전히 침묵과 묵상에 익숙하지 않은 개신교도이기 때문에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순례자의 삶과 정신은 이 땅을 살면서 천국을 보는 순례자의 단순한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은 너무 특별해서 책을 덮고 난 이후로도 그가 보여준 태도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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