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지며 무슨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들먹이기 전에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것으로 쌓여진 생각입니다. 아울러 선택하는 당사자, 나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내가 거의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가장 확연히 느끼고 겪은 것은 아무래도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 아이 때도 그랬지만 둘째 아이가 아내의 몸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 아내는 둘째 아이 갖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고 나는 반대했습니다. 아내는 둘째 아이가 첫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정하게 할 것이라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첫 아이 혼자 충분히 그런 것을 벗들과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피임은 철저했습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속초로 출장 갔을 때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확인하니 둘째 아이가 벌써 아내 몸에서 자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둘째 아이 낳는 것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그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미 자라고 있는 아이를 까맣게 모르는 채 며칠 전 아내와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것에 대해 의견 대립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것이 아닙니다. 이미 자라는 아이를 두고 아이를 한 명 더 갖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떠올라 웃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둘째 아이 낳는 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아내와 통화하는 순간 한번 느껴보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를 긍정하는 어떤 기운에 쌓여 반가운 웃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렇게 둘째 아이는 태어났고 아내와 나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장난꾸러기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임신 중에는 아내 온몸을 빨갛게 긁게 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마침내 졸도까지 하게 한 아이지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첫 아이가 여자아이고 교과서 같은 모습이라면 둘째 아이는 남자아이에다 개구쟁이라서 새로움이 더합니다. 게다가 첫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정하게 할 것이라는 아내의 말도 어느 정도 맞아들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신비한 생명입니다. 아이를 낳은 부모라면 내가 겪은 신비함 정도는 대부분 겪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사 베크가 아담을 기다리며 겪은 신비함은 우리가 보통 겪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거의 마흔여덟 시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위험한 상황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이 임신했을 때 먹던 것을 사서 오고, 아파트 밑 식료품 가게에서 난 불 때문에 의식이 오락가락하며 비틀거리고 있을 때 연기 속에서 구해준 알 수 없는 사내가 나타나는 것 같은 신비함이 이어집니다. 마사는 그런 신비함을 처음에는 놀라워할 따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사는 철저히 하버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부의 공립학교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려고 성공을 향한 맹렬한 추진력과 체제에 맞아 들어가려는 갈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어려운 과목을 선택하여 미친 듯이 공부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기도 전에 석사, 박사 과정이 통합된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하나를 이루고 나면 조바심을 치며 다음 성취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그러니 하버드와 대척점에 있는 신비함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상은 온통 하버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기쁨도 없는 성취와 명성을 향해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맨 앞에서 마사는 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쉽게 아담의 신비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다운증후군 아이 아담의 신비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리라는 두려움도 한몫 합니다. 하지만 아담은 끝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마사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출현은 다른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남보다 앞서는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 현재의 순간에서 기쁨을 찾는 데 절대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처럼 사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아담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함께 갖고 있던 믿음 - 엄격하게 훈련된 재미없는 일이 좋은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 - 은 이제 마치 인간을 제물로 바치면 비가 내리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끔찍하고 명백히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118쪽) 권력, 부, 지위, 영향력 같은 것에 관심이 없고 바로 행복으로 가게 하는 다운증후군 아이 아담은 확실히 신비를 거부하는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니 하버드의 어느 누구도 마사의 편에 있지 않습니다. 평소 환자를 바라볼 시간도 없을 만큼 몹시 바쁜 하버드의 저명한 의사는 마사에게 임신중절을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권합니다. 아담이 태어나는 순간 아담을 검사하려고 벽을 따라 줄지어 서있던 의사들은 차라리 아담이 기형이거나 일찍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갑자기,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중에 맑은 금빛 오줌줄기가 의사들의 머리 위로 길게 아치를 그리며 솟아올랐다. 오줌줄기는 공중에서 방향을 약간 바꿔 산과의사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급히 물러섰다. “어휴, 신장은 이상 없군.” 그는 찡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그것은 자랑스러움으로 내 가슴이 부풀게 만든 아담이 한 수많은 행동 중 첫째 것이었다. (322쪽) 다운증후군 아이 아담과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신비를 받아들이고 둘레 사람들의 냉담함과 거부의 몸짓을 이겨내며 당당히 아담을 낳는 마사의 모습은 벅찬 감동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주체의 ‘선택’이며 행복으로 바로 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아울러 하버드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담이 하버드 산부인과 의사에게 맑은 오줌줄기를 갈겼지만, 그 오줌줄기가 세상을 모두 잠기게 하는 거대한 줄기가 되기 전에 우리 모두 받아들여야 할 선택이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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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지?
마사 베크는 아기가 다운증후군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양수검사를 하였다. 만일 아기에게 이상이 있다면 임신중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를 놓고 남편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편은 만일 아기가 기형이라든가 문제가 있다면 중절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비유로 들었다.
「아기에게 문제가 있다면 중절이 모두에게 고통을 덜어 주는 한 방법이야. 특히 그 아기에게는 말이야. 그건 다리가 부러진 말을 쏘아 죽이는 거나 같은 일이야. 다리를 다친 말은 천천히 죽거든. 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 그리고 달릴 수 없으니까 죽지 않는다고 해도 삶을 즐길 수가 없어.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살아. 달리는 게 말의 삶이야. 만일 아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태어난다면, 아기의 고통을 연장시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말은 달려야 말답게 살아가는 거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녀의 남편처럼 나도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보면 그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이 있다. 아이에게 부모에게 모두 큰 고통을 안겨 주느니 달리지 못하는 말에게 피스톨을 겨누듯 할 수 없더라도 안락한 죽음을 선물하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견해에 동의 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마사가 내게 준 선물이다. 아니 아담을 통해 받은 것이리라. 인간의 생명은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고귀하다는 것을 새삼 더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 마사는 잠시 침묵을 하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은 뭐지?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사는데, 사람은 뭘 하려고 사는 거야.」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 말은 달리기 위해서 사는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당신과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결국 중절을 거부하고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다운증후군 아들인 아담이 더할 수 없는 하늘이 주신 축복이요, 그녀에게 내려 온 하늘의 천사임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미국 우수한 대학인 하바드의 엘리트 부부라 할 존과 마사는 저능아인 아담을 통해 새롭고 가치있는 인생을 찾았다. 마사 베크는 스스로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다. 말이 달리기 위해 사는 것처럼」 |
| 우리가 그렇게도 위대하게 보는 하버드 박사 학위를 가진 부모들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갖게 되면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썼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어느 신문의 책 소개의 글을 읽고 사실 한참 이 책을 살것인가를 망설였습니다. 책방을 가서 책을 사기보다는 신문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알게된 책을 인터넷을 통해서 구입해서 보기에 괜히 '하버드'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혹하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사서 보지않았다면 정말 후회했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냥 어려서부터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기만 했던 이에게도 그분의 가르침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가끔 내가 하려고 했던 그리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걸 볼때면 내 주위에 날 지켜주는 천사가 있지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만이 천사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내 아이들과 가족들도그 분의 뜻으로 바라본다면 다 천사가 아닐까 싶네요. 이 책의 저자처럼 나또한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련을 나 나름대로 판단하고 분석해서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지길 강력히 하나님께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일들이 너무 이기적이며 속좁은 계산임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너무도 확실한 인생의 탄탄대로를 가진 그들이 아이를, 그것도 당연히 없애야 할거라고 믿는 그런 아이를, 가짐으로써 깨어지는 모습을 통해 세상적인 눈으로 볼때에는 실패한 그부부가 하나님의 눈으로 볼때에는 아름다운 가정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끝맺음을 합니다. 두려움속에서 용감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 임신을 하고 나면, 어떤 임산부던간에 갖는 불안함이 있다. "과연 뱃속의 태아가 정상일까? 혹 기형이면 어쩌나?" 나 역시도 임신 초기에 그런 불안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해외에서 거주 중에 임신을 하고,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병원진료가 더욱 힘들었던 때, 이 책 [아담을 기다리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읽고 주문하게 되었다. 책을 주문하면서, 내 심정은 어땠을까? 혹시라도 내 자궁속의 태아가 정상이 아니라도, 꿋꿋하게 낳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기를 수 있어야 한다.... 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독려가 필요했고, 이 책에서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 같다. 일주일 여 만에 책이 도착하고, 주문한 여러 권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이 책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리뷰에 나왔던 것 처럼, 아담이라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저자와 그의 남편이 가졌던 경험들, 또 아담이 태어나서 그 아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되는 세상의 이면들. 그러한 경험들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감성과 솔직한 고백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편, 나 자신이 자궁속에 태아를 기르는 임산부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임산부로서 겪는 상황들, 어려움들 등에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임신 중에, 괜히 불안한 마음가짐으로 괜한 책을 손에 든 건가? 하는 처음의 불안감은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먼저 읽기를 잘했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기형의 아기를 내 삶의 장애나 나를 가두는 어두운 울타리가 아니라, 단지 삶에 대해 다른 방식을 가진, 나와-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형태아에 대한 나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고, 어떤 아기라도 소중하게 내 자궁안에 자리잡았다는 고귀함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을 손에 들었지만, 그로인해 얻은 바는 적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지금 나는 임신 7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담을 기다리며- 에서 얻은 깨달음은 지금도 나와 태아에게 정서적 안정의 바탕이 되고 있다. |
| <아담을 기다리며="">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내 맘을 짠하게 했던 책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얇지 않은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가슴 짠하고, 콧등 시큰하고, 눈이 아려오는 느낌을 가졌다. 아, 나한테도 아직 이런 감성이 남아 있었구나. 야, 나두 냉혈한이 아니야~라고 내 친구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하버드라는 '세상적 가치'에 함몰되어 살던 한 똑똑한 사회학도가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아들을 통해 '잊혀진, 그러나 오래된 가치'를 찾아간다. 인간에게 있어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만큼 치명적인 '결함'이란 무엇인지, 장애를 바라보는 정상인들의 허위의식이 리얼리티를 구상하는 그녀의 탁월한 글솜씨에 힘입어 생생하게 드러난다. '장애'라는 척박한 일상이 '일상의 신비'로 되살아난다. 예스에서 첨 이 책을 봤을 때, 이런 평범하고 도덕적인 소개글을 보고 그저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에 카트에 넣어놨다. 그후로 한참 지나, 필요한 책이 있어 주문을 하면서 곁다리로 구입. 그후로도 한참동안, 회사 책상 한켠에 다른 책더미 속에서 조용히 날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일하기 너무 싫어 몸을 배배 꼬던 어느날, 드디어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앉아 묵묵히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가슴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참으로 씁쓸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어우, 쟤는 다운증후군 같아, 넘 싫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무신경하고 뻔뻔하고 우월적인 태도를 가진 인간이 바로 나였다는 걸 깨닫았기 때문에 그렇게 가슴이 뻐근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는 대신, 책의 한 부분을 옮겨본다. "그래, 결함이라는 게 정확히 뭐야?" 내가 물었다. "진정해!" 존은 당황한 눈길로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태어나도 혼자서 계속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문제가 있는 아기들이 있는 줄은 알아. 그렇지만 임신중절을 하지 않았다면 살 수 있는 아기들은 어떻게 해? 어디에서 선을 긋는 거야? 손이 하나만이 있는 아기는 '결함'이 있는 거야?" 존의 눈이 커졌다. "병원에서 아기 손이 어떻다고 했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 만일 이 아이가 뭉둥발이거나 그렇다면? 당신 나한테 임신중절을 '해야 된다'고 말할 거야?" 존은 점점더 혼란스러운 듯했다. "마사,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요점이 뭐야?" "요즘은 당신이 결함이 있는 아기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경우인지 말해보라는 거야. 예를 들면... 어, 글쎄, 활동과잉 아긴, 못생긴 아기는 어때?" "그런 건 검사를 할 수 없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어때?" 내가 말했다. "요즘은 의학이 온갖 마술 같은 짓을 하잖아. 좀 있으면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이나 동성애나 우울증의 유전인자가 있다고 임신중절을 할걸." (...) "아기가 얼마나 똑똑해야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얼마나 잘생겨야 돼?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튼튼해야 되는 거야?" 나는 버터 나이프를 꽉 움켜쥐고 그것으로 존을 가리키면서 한마디 할 때마다 조금씩 그를 향해 내밀었다. 존은 내가 정말 그를 찌르려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뻗어서 살그머니 버터 나이프를 빼앗았다. "여보." 그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건 유전학 얘기가 아니야. 우린 슈퍼인간을 만들어내는 얘길 하는 게 아니야. 우리 삶에서 비극을 덜어내는 것에 관한 얘기야. 나는 눈을 가늘게 하고 존을 바라보았다. "비정상인 태아를 중절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도리 없이 남자로군." 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무도 보기 전에 없애버리며 괜찮다는 거지. 그건 웃기는 얘기야. 임신 5개월된 여자 누구나 붙잡고 물어봐. 아기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리고 그 여자의 관점이 정말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봐!" 다운증후근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없는 것일까? 태어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아담을> |
| 하버드대학원 부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호기심으로 가볍게 펼쳐든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하고 가슴 저려하기도 하면서 책에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객관적 성취,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력, 눈에 보이는 업적따위의 즉물적 잣대만을 가진 성공을 향해서 숨막히는 경쟁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칼날같은 이성과 객관의 틀 안에서 '진리라고 증명된 것'만을 받아들이며 경쟁에서의 승리와 그에 따르는 성공을 얻는 것이 삶을 [완벽함]으로 이끌지는 몰라도 [행복]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는 행복의 [조건]에 끄달려 자신을 몰아가는 동안 문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은 없는지...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해보싶은 사람에게 -인간의 아름다움,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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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기다리며]의 단점부터 얘기하면 이 책은 신비주의가 많이 가미된 책이다. 마사와 그의 남편 존이 아담을 가지게 되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은 신비주의 시각에 가깝다. 나는 비교적 영적인 사람이라서 그냥 읽었지만 무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특히 무신론자라면...) 그냥 허구로 알만한 내용도 많았다. 그치만 이글을 쓴 사람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본인도 자신에게 일어난 그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그런 것들을 어느 하나로 정의내리지 않았다. 그것에 관한 모든 의견에 오픈되어 있었고, 모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로지 자신의 환상일수도 있다고 적기도 했다. 그치만 정말 나같은 사람에겐 그런 말이 필요없다. 이 책은 정말 진실이다. 난 믿는다. 이 책은 나에게 따뜻하면서도 뭔가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언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던진 질문들을 마사도 던진 것을 알았다. 정말 사람이 왜 사는건지 말이다.(마사는 많은 철학서를 봤지만 역시 모르겠다고 했다.) 이 책에도 해답이 들어있진 않다. 그래도 이 책은 그 모든 느낌을 뛰어넘어서 가장 크게 나를 변화시킨게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사는게 기쁨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지금 깨닫고 보니 이전에 왜그리 우울해했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책 속의 어느 부분에서 그걸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정말 그걸 느꼈고 난 변화되었다. 늘 우울해하던 나였는데..솔직히 황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아담의 마법에 걸렸나보다. 정말이지 사는게 기쁘다.
사족으로 책 상태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글자체가 좀 작았다. 그래서 눈이 약간 피곤한 감이 있었다. [인상깊은구절] 이제 나는 우리 '정상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의 보물들을 내다버리고 쓰레기들을 소중히 지니느라 인생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똑똑한 체,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흔들림이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려고 애쓰며 요란을 떨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실은 겁먹고 어리둥절해 있다. 아이러니는 우리가 사랑을 받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만큼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을 보면 겁에 질린다는 사실이다. ~ 아담과 함께 살고 아담을 사랑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담은 나에게 사물 자체를 보고, 무자비하고 흔히 무감각한 세상이 그것에 갖다붙인 가치를 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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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학업 성취를 위해 혹은 경재력을 위해 배속에 있는 아이를 지워버리는게 괜찮은 것인가? 더구나 그 아이가 다운 증후군이라면 더더욱 정당화가 될수 있는가...에 많은 여성들은 그런 삶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마약 나 자신이 이 여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질문을 던져보아도 이것은 '나 자신의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난 앞으로의 큰 오해를 안고 살아갈지 모른다.
마사 베트... 하버드의 엘리트로서 학업 성취에 대단한 열정이 있고 다운증후군의 아이를 가진 엄마로써 자신의 성공과 가족간(혹이 아이) 사랑에 당당히 성공해버린 여성이다. 이 여성의 성공원인에는 그 대단하고 잘난 지식과 어떤 신비주의 이념이 아니라 '깨달음'이란 것에 있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다움증후군 아이'아담'이 이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마사베크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여성의 성공담'을 그리거나 '아이를 가지면무조건 낳아라'라는 강요는 하지 않은다. 자신의 이때까지 살아온 가장 잘나며 멋지다고, 훌용하게 살것이라고 생각되는 삶에 아담을 통해 다시 한번 자기자신의 더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그런 과정을 그린것이라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산전검사를 해서 사회에 해가 될 만한 태아를 제거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들의 의무입니다!" 라는 말에 마사베크는 나는 하버드에서 교육을 받는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자가 수천명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고문하고 죽였다는 폭로기사를 읽었을때 그 말을 한 사람을 생각(P.252)했고 '누가 사회에 해가 되는 사람인지 말해보라고, 만일 똑똑한 유나보머를 두둔한다면 나는 그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인지 궁금할 뿐이다.(P253)라는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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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박사과정에 있는 전도유망한 젊은 학생 부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할 것을 알게 된 후 그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새롭게 깨닫고 경험한 이야기.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되고, 정말 인생의 소중한 것과 하찮은 것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책의 제목이 ‘아담을 기다리며’인데 얼마 전에 내가 읽은 ‘아담’(헨리 누엔/IVP)이라는 책에서도 중증 장애인의 이름이 ‘아담’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담’이라는 이름에 남다른 관심이 간다. 더욱이 이 ‘아담’이라는 이름은 저능아로 태어날 것을 알면서 그 아이를 기다린 부부가 누가 제안하지도 않았고, 서로 간의 합의도 없이 각자 어떤 신적인 직관에 의해 그 아이를 부르게 된 이름이었다. 원래 ‘아담’이란 이름은 창세기에 나오는 첫 사람을 일컫는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가리키며,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며, ‘인간의 타락과 생명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아담’으로 이름 붙여진 이 아이는 우리의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흐릿한 눈으로 삶을 왜곡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흐릿한 눈을 밝혀 서로를 가장 정확하게 보게 해 주는 진실의 안경이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뜨고 인생을 배우는 그 어머니의 놀라운 경험은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을 대하는 데 늘 부담을 느끼는 나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나와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듯 하다. 이 책은 내용도 놀랍지만 이야기 전개가 정밀하나 입체감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번역도 유려하다. ‘보물들’을 내다버리고 ‘쓰레기들’을 소중히 지키느라 인생을 소비하는 ‘정상인’들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이 책을 늘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청량제로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남보다 앞서는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 현재의 순간에서 기쁨을 찾는 데 절대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처럼 사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
| '하버드'. 그 이름이 주는 의미는 '천재들의 집합소'로써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성공 대기자들이 거쳐가는 정류장과도 같다. 우리가 너무 똑똑한 사람을 경원하고, 이른바 상류층을 질투하는 일은 그가 너무 잘난 이유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의 행복이나 성취에 취해 자기보다 못한 이들의 존재를 깔아뭉갠다는 것에 있다. 재벌 2세가 어찌, 연탄 때는 집에서 자란 아이의 배고품을 알 것이며, 전교 수석만 했던 아이가 코피 터지게 공부해도 등수가 한 등도 올라가지 않는 열등생의 비애를 짐작조차 할 수 있으랴...그래서 사람을 자신이 경험한 세상의 눈으로만 모든 것을 본다고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쪽이 다른 한 쪽에 처지는 결혼도 아니고 부부가 모두 수재 소리를 듣는 집안에 태어나게 된 다운증후군의 아이는 그래서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이 되어 앞으로 닥칠 슬픔의 전주곡처럼 그의 존재를 온몸으로 알려왔다. 장애인이 우리보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고난 생명을 없애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나 단점 하나는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도, 외형상 특이하게 드러나는 결점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한 인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아담에게서 모성을 느끼며, 그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하버드 천재의 모습보다 강인한 어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랑만이 사람을 가장 용기있게 만들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나름의 소중함을 간직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