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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티티를 향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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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흑백사진 한장을 들여다 본다. 거기에는 건장한 남자의 뒷모습과 자신의 어린 모습으로 추정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있다. 언제 저 사진을 찍었던 것일까? 저 사진은 대체 누가 찍었을까? 저 남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저 곳은 어느곳인가? 저 날은 오늘처럼 하늘이 투명한 날이었을까? 저 시간은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 저것은 나의 과거인가? 지금의 나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
"아이텐티티를 향한 여행" 내용보기
낡은 흑백사진 한장을 들여다 본다. 거기에는 건장한 남자의 뒷모습과 자신의 어린 모습으로 추정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있다. 언제 저 사진을 찍었던 것일까? 저 사진은 대체 누가 찍었을까? 저 남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저 곳은 어느곳인가? 저 날은 오늘처럼 하늘이 투명한 날이었을까? 저 시간은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 저것은 나의 과거인가? 지금의 나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어느날 자신의 삶 앞에 홀연히 나타난 낡은 흑백사진, 그것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방향성을 상실한 것 같아 때로는 아찔해지는 현재의 삶에 나타난 먼 상실된 기억의 지층에서 발굴해 낸 화석이다. 사진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갖는 감정과 아우라를 걷어내면 정직하다.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 지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남아있는 어린시절의 불에 덴 자국이다. 그 화석을 바라보며 우리는 잊혀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왜 우리는 그런 힘겨운 작업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나는 나다"라고 너무나도 단순하게 보이는 이 명제를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나의 소유물? 나의 언어? 나의 생각? 내가 갖고있는 여러 사회적 관계성? 이 모든 것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확증이 되지 못한다. 무엇이 나에 대한 최소한의 담보물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기억이다. 그렇기에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우리의 시원을 따져보는 존재론적 작업이다. 하지만 기억은 얼마나 믿지 못할 대상이며 때로는 욕망과 허위로 윤색되어 있는가? 또한 우리의 기억은 끊임없이 시간 속으로 함몰을 시도한다. 우리는 가끔 오래된 낡은 수첩에서 발견하는, 지금은 더 이상 연락되지 않는 전화번호와 잉크가 번져가는 세글자의 이름에서 탈색되어버린 구체성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했던 때가 몇번인가? 그렇다. 기억은 망망 대해에 띄엄띄엄 놓여져 있는 섬이다. 수면 위로 그 섬을 지탱하는 지층의 구조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들의 삶은 끝없이 소실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치열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사회주의 미학 이론가 루카치는 그의 난해한 저서 "소설의 이해"에서 유효적절한 하나의 발언을 한다. "세계가 훼손된 개념 속에 있을 때, 자아는 오직 상상력에 의해서만 복원이 가능하다" 소설의 본질은 결국 허가된 거짓말이지만 우리는 문학을, 아니 소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유정의 두번째 소설 "이별보다 슬픈 약속"은 카피처럼 단순한 연애 소설로 읽혀지질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끝없이 질문했던 것에 대한 하나의 결과물로 읽힌다. 망망대해의 외로운 군도를 지탱하는 지층구조를 탐사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며 아이텐티티를 추적하는 루카지적 상상력의 여행이다. 번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연결했던 가교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로 이질적이 되어버린 자신의 주변에 대한 의문의 끝에서 알 수 없는 낡은 사진과 오래된 일기장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이 소설은 그 오래된 일기장의 내용과, 그에 따라 서서히 변화해가는 그녀의 일상을 엇박자로 배열해가며 진행시킨다. 잊혀진 그 뭔가를 찾는다는 것은 속성상 범죄수사와 비슷하지만 그녀의 글에서는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부담스러운 팽팽한 긴장감은 없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스피디하게 이끌어가는 그녀의 글은 독특한 그녀만의 글쓰기의 향기를 풍기며, 스폰지에 푸른색 잉크가 스며들듯이 빠르게 읽는 독자의 머리를 그녀의 독특한 색깔로 채색시킨다. 나는 소설에서 또 하나 찾는 미적인 요소가 스토리 전개와는 별개로, 문장 그 자체의 감칠맛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공 쥬스를 마시며 가끔 치아로 느껴보는 파파야 열매 덩어리와 같은 쫄깃함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에는 언제나 삶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경구나 금언도 아닌, 그리고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 참고서에 붉은색 볼펜으로 표시하는 별표 다섯개와 같은 표시가 아닌 나만의 느낌이 반영된 밑줄이 있다. 그 밑줄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내가 무슨 이유로 밑줄을 쳐놨는지 알 수 없는 사례도 많지만 그것은 소설을 읽던 때의 나만의 세계를 표시했던 부표의 역할로써 충분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만이 발견하여 나만이 소유하는 그 몇줄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은 행복한 소설이다. 이러한 범주에서 나는 정유정의 두번째 작품 "이별보다 슬픈 약속"이 나에게 행복했던 소설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하루끼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하루끼 소설속의 대사가 이탈리안 드레싱을 얹은 셀러드를 먹고난 뒤의 깔끔함과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대화는 스티디하며 콤펙트하다. 아주 감칠맛이 난다. 과거 쎄끄레뗑과 삐즈까르가 주고 받았던 핑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나는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대화로 나의 일상이 꾸려져갈 수 있다면 참 산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무슨 느낌요?" "아주 서툰 느낌. 하지만 단숨에 격렬해질 수 있는 느낌." "잘못 집었어요." "난 예민해. 뱀처럼. 조심해요, 서툴고 격렬한 건 망가지는 데는 더할 나위없는 궁합이야." "사랑 때문에 망가질 생각은 없어요." "큰소리 치지 말아요. 생각은 자주 자기를 배신해요." "난 꽤 이성적이라던데요." "가장 쓸모없는 무기야."> 아직인 신인인 그녀의 두번째 소설을 접어들며, 작금의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 여류작가들의 작품에서 느꼈던, 탈피하지 못한 사춘기적 감수성의 윤색과 치유할 수 없는 가벼움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발전을 계속해 20년후 그녀의 글이 고전의 대열에 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기를 빌어본다. 아울러 투명한 기운이 넘쳐나는 주말 오후를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넌즈시 일독을 권해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n 2003.06.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