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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읽어도 수상하다. 이런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진짜 있는걸까?
이혼에서 오는 신경쇠약으로 딸에게 줄기차게 약을 먹이고 딸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갓 나은 아이를 버리려고 하고, 딸과 남편의 근친상간을 의심하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그리고 딸.
딸과 어머니는 운명으로 맺어진,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만큼 다양한 문제를 갖고 있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 나온 19개의 단편은 충실하게도 문제적 모녀관계에 천착하고 있다. 모녀와 대립 혹은 남자(아버지 포함)를 사이에 둔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낳고 있다. 따지고 들자면, 이 세상에 정상적인 관계란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있기는 한걸까?
신경쇠약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딸들의 관계를 단순하게 '이상해'라고 단정짓기에 작가의 술수가 노련하다. <여자가 되어라, 내 딸아>의 어머니는 딸의 '여성다움'에 집착한다. 결국 자신의 뜻대로 딸이 여성다움이 넘치는 댄서가 되자 엄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한다. 음...있을 수 있는 얘기야..라고 단정지을 무렵,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그 여성다움이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만신창이가 되어 죽은 딸의 여성다움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럴수가...그녀들의 관계는 끝없이 충돌하고 앞에서 전편에선 딸이었던 여자가 뒷편에서 어머니로 등장한다. 물고 물리는 관계는 끝없이 이어지고, 그렇게 이 세상의 모녀 관계가 존재한다. 사랑은 아니,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움직이는거야'.
<왜 날 사랑하지 않아>에서 보여준 극악무도한 위트가 전혀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모녀 관계에서도 빛을 발하는 <로즈 베이비>. 차가운 미모가 빛나는 작가 클레르 카스티윰의 기괴한 악마적 발상의 끝은 어디인지...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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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단편 소설들의 묶음이기에 별 부담 없이 집어 들었다. 웬걸.. 첫 편을 읽고 어딘지 조금 불편했다. 이런 찜찜한 기분으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싶은 게. 아니, ‘로즈 베이비’라는 아리따운 제목을 이렇게 써먹다니, 살짝 배신감을 느낀다. 엄마와 딸, 딸과 엄마. 아니, 엄마와 나, 나와 딸의 이야기다. 가장 좋은 친구이면서 때론 가장 귀찮은 존재이고, 뭐든 함께할 수 있는 동료이면서 하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들기 일쑤고, 누구보다 배려하고 싶은 소중한 존재면서도 서로에게 함부로 하기 십상인 관계. 게다가 가장 필요로 하면서 누구보다도 짐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서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존재. 그렇기에 상처도 깊고, 배신감도 크고, 서운함도 잦은 사이. 곁에서 오래,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어찌나 서로를 몰라주는지. 이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감정 하나하나가 짧은 글에 베어 있다. 때로 어린 딸로, 젊은 엄마로, 다 성장한 딸로, 나이 든 엄마로, 성치 못한 딸로, 병든 엄마로서. 자기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상대방을 향해 내뱉고 절규한다. 젊은 딸, 젊은 엄마, 건강한 딸, 건강한 엄마가 아닌 당하는 자(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때면, 의외의 화자가 쏟아내는 얘기가 신선하기도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정돈되지 않은 듯 생각나는 대로 풀어나가는 전개가 가까운 친구랑 수다 떠는 양 친밀하게도 느껴진다. 감정이 극에 달할 때면, 내 속에 존재하는 미미한 악마근성이 꿈틀거릴 때가 있다. 그래봤자 잠깐 동안의 상상에 그치고 말지만. 그러나 카스티용은 보란 듯이 이를 의도적으로 끄집어 내어서는 마구 비틀고 한껏 부풀려 놓았다. 그이의 날이 선 문체가 혹자에겐 불쾌할 수도 있겠고, 잔인하게 다가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약간의 불편함을 견딘 끝에 오는 묘한 쾌감 때문에 그녀의 글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뭐랄까, 날 괴롭히는 이의 잘잘못을 다른 이들도 제발(!) 알기를 바라면서도, 내 입에 담기엔 험하거나 유치하고, 행동으로 옮기기엔 과하다 싶어 이내 포기하고 마는 사소한 원한 같은 것, 그래, 그런 맥락의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실컷 까발려 준다, 그녀는.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지 싶다. 어쩌면 그녀는 서로의 존재감을, 그 대립성을 극대화 시키면서 제발 좀 상대방을 인식하라고 다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도 딸인 시절이 있었고, 너도 언젠가 엄마가 될 거라고, 너도 한때 짐이었고, 또 짐이 될 수도 있다고. 어린 딸이 결코 너의 소유물일 수 없고, 나이가 들었을지언정 너의 엄마도 그저 사랑을 꿈꾸는 한 여자일 뿐이라고. 읽는 동안의 불편함과 모종의 쾌감, 배신감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 그녀가 내게 주려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였기 바라며 글을 마친다. 흔치 않은 매력이 있는 까닭에, 그이의 다음 책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야기 전개를, 비비 꼬인 문체를 견딜 수 있는 이는 동참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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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제도에 강박적으로 희망을 거는 경향이 있다. '가족'은 단란해야 하고 화목해야 하고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 버팀목과 지지가 되는 기반이며... 등등. 헐리웃 무비들은 그야말로 그 강박증에 정점을 찍는다. 거의 모든 영화의 결론이 그래서 이 가족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식의 내용으로 결론 나는 것이 많다. 각설하시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로즈 베이비>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특히 그 사람이 내가 앞서 설명한 '가족'에 대한 강박적 현상에 동참하는 사람 중 하나라면) 식겁과 놀람과 어쩌면 혐오 그 자체가 될 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표지를 보라. 로맨틱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리고 장미-로즈 베이비-아기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귀엽게 칭하는 말...의 제목에서도 읽는 사람은 잔혹함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기 마련이니까.
그럼 이제 나의 감상을 말해볼까나?
사실 처음에는 나도 불편했다. 마치 모 방송국의 가족에게 학대받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안타깝고 화가 나고 어쩌면 저런 일이 하면서 분노하고 그랬거든....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감정들이 치고 올라왔다. 나 역시 결국에는 보편적인 가치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이야기 자체에 대해 빠져들게 되더라 이거다. 이야기를 보편적 기준에서 봤을 때 어떻다 이런 것이 아니고 그냥 그 기묘하고 뒤틀린 심리를 가진 사이코의 심리를 덤덤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 클레르 카스티용의 매력이겠지. 정말 악마적인 이야기를 어쩌면 태연하게 잘도 펼쳐놓았는지....뒤틀린 심리를 가진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정말 치밀하고 설득력 있었다. 하긴, 작가가 그렇게 태연하지 않았다면 읽는 독자들도 바로 불편하다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워낙 태연하게 이야기를 휘리릭 적어놓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겠지.
가족은 분명 중요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띄는 무언가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거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뒤틀린 현상이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클레르 카스티용을 만나게 해줘서 고맙게 느껴진 책이기도 하다. 다음 작품을 찾아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