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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톱니바퀴가 언제나 한쪽 방향으로만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불쑥 방향을 바꾸면서 온갖 모순을 초래하고 만 것이었을까." -44p
지금 세계는 많은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해 이끌어가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의 강대국들이 대부분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덩달아 그것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첨예한 대립을 형성했었다. 그 중심에는 미국과 소련이 존재하는, 이른바 냉전시대. 사실 누군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것이 우위이냐 질문하면, 난 당연하듯 민주주의라고 답할 것 같다. 이건 문화를 비교하는 질문과 비슷해 보이기에 어느 것이 우위인지는 정답이 없을 것 같다만. 현재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시점에서 ‘그래도’라는 단어를 이용해 민주주의가 더 좋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피력할 것 같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체제에도 물론 문제는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고. 공산주의도 긍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살렸다면 지금의 실패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과욕이 발생하면서 문제점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에 더 이상 왈가왈부는 오해의 요지만 일으킬 것 같아 자제하고,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 속에 개인의 희생에 대해 추상적으로 나타낸 소설을 읽었다.(이해력이 부족해 추상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콱 막힌 주변 환경과 그에 따른 신분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두 가지가 혼합되어 번뇌하고 우울한 자기 감정을 서술하고 있는 소설이었다. 짧지만 강력한 소설임에, 아가멤논의 딸 속편인 <후계자>가 출판예정이라고 한다. 궁금했던 부분이 풀리기 기대해보며... 사실 안 풀려도 아가멤논 자체만으로 무한 상상하기에 좋은 것 같다. 실제 작가는 아가멤논의 딸을 쓴 후 20여년 후에 후계자를 썼다고 하니. 공산국가 시절이던 알바니아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그는 이 작품들을 프랑스로 빼돌리기 위한 엄청난 위험들을 견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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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카다레가 왜 세계적 거장인지 온 몸으로 깨닫게 해주는 책. 내용으로 보자면, 카다레의 조국 알바니아의 80년대 정치현실이었던 공산주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으로, 우리에겐 이미 시기가 지난 느낌이 있다. 차라이 이 책이 쓰여졌다던 8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면, 민주화 운동이 거세던 그 당시에 더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주제가 시기에 뒤진다고 해서 글 자체의 매력이 감소하는 게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깨닫는다. 억압적인 국가체제가 개인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그리고 조종된 개인은 어떻게 신경질적으로 서서해 변해가며 어떻게 파멸의 수순을 밟는지를 섬뜩하면서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사랑하는 연인의 신상에 닥친 변화에서 어떤 불길한 예감을 받고 이를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 이피게니아의 희생에 대입하여 그 의미를 추론해가는 과정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 주는 비장미가 더해져 더할나위없는 무게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또 가장 감동을 받은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대머리의 추락'이라는 슬픈 전래 동화를 화자 주변의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일에 비유하여, 똑같은 비극적 상황에서 인간의 숭고함과 비굴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대목이다. 같은 고발 문학이라 해도, 이처럼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혜안을 가지고, 이처럼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이미 몇 년 전 알바니아는 공산독재 체제에서 벗어났고, 망명객이었던 카다레는 여전히 파리에서 살고 있다 한다. 시대가 바뀐 후, 이제 카다레의 작품은 어디에 초점이 맞춰질지 궁금하다. 이 책의 속편이 곧 출간된다고 하니 그것도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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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압제가 인간의 정신과 개인의 내면마저 어떻게 비틀고 기괴하게 파괴시키고 마는지, 그 모든 것을 떠나 인간의 속악한 심리를 카다레만큼 잘 표현해내는 작가가 있을까.
숨통을 틀어쥐듯, 이 차갑고 서늘한 공포 속에서도 가끔씩 헛웃음이 터져나올 만큼 풍자적인 블랙 유머는 인간의 심리에 천착하는 그의 치밀한 펜끝이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급임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사회고발성 다큐물의 그 거칢과 호전성을 생래적으로 거부하는 나는, 이 소설로 인해, 이스마일 카다레의 전작들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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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눈의 복수 신화나 지고한 사랑이야기 같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졌던 전체주의 체제와 추한 권력에 모여든 파리 떼들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 은유로 쓰여‘카다레’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특히 악과 몽매주의, 폭력과 공포로 시민의 심리를 옥죄고 영혼을 부숴대던 그런 시절을 겪었던 우리의 그 때와 동일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깊은 공감과 동질감을 갖게 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애절한 사랑의 테마를 기저로 하고 있고, 더구나 그리스 비극중 하나인 아가멤논의 딸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과 대유(代喩)되어 인간사회가 저지르는 던적스런 역사의 반복에서 역설적이게도 체제와 지역, 시간성을 넘어서는 보편으로서의 인간성을 읽게도 된다. 소재 또한 마치 오늘의 한국사회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천박성까지 빼 닮아서 거의 모든 문장을 우리식으로 몇 글자만 수정하고 가필하면 한국소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하다. 화자인‘나’란 인물은 방송국 직원으로 독재정권의 악마성, 폭력성에 수치와 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골수 당원이나 서게 되는 국가의 최대 행사인 노동절 행사장에 예상치 못한 초대장이 날라든다. 이 뜻하지 않은 초대장은 권력의 상층부에 가까이 갔다는 상징적 의미이지만 그에게 달가울 리가 없다. 승승장구 권력의 핵심인물이 된 연인‘수잔나’의 아버지는 화자와 딸의 교재를 중지할 것을 명령하고, 권력 경쟁을 위해 서슬 시퍼런 감시를 놓지 않는 눈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사랑은 중단되어야 한다. 화자는 여기서 수잔나와 이피게네이아를 권력의 희생제물로서 동일시하며, ‘희생’이란 제의(祭儀)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모색한다. 희생을 요구한 권력의 진심, 그 진의를 탐사하는 관념의 여정이 독재자와 그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파렴치한 이들만이 입장 할 수 있는 행사장으로 향하는 물리적 행보와 병행하여 진행된다. 행사에 초대를 받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대중들과의 도로에서의 구별, 그리고 본 행사장에 가기까지 거치는 몇 차례의 검색지역에서 마주하는 인간들의 면면은 가히 볼만한 인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검문이 철저할수록 초대장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듯이 그 차별을 즐기는 군상들, 그리고 그 권력의 상징적 공간에 새로이 진입한 인물들을 발견할 때 “저 인간은 대체 뭘 해준 대가로 초대장을 받았을까?”, “누굴 감옥에 쳐 넣었소?”라는 자기 모순적 의혹을 드러내는 표정처럼 징그러운 벌레 같은 인간들의 역겨움이 묘사된다. 동료를, 이웃을, 상사와 부하를 고발하고 음모가 난무하는 불신의 세상에서 신분상승은 타인을 짓밟고 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제로섬게임, 극한적 경쟁에서는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자다. 여기에 수단의 도덕성, 수치심, 죄의식이라는 것이 개입할 여지란 없어진다. 승리하면 정당화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권력과 부의 모양새와 똑 같다. 형편없는 자들의 이야기, 천박한 인간의 완벽한 예, 저 아래 세계에서 지상의 세계로 헛되이 날려드는 이 세계의 악마적 메커니즘이 신랄한 우화와 함께 등장한다. 인간의 살코기를 주어야 날아오르는 독수리, 그 독수리의 등에 올라 비상하지만 준비한 타인의 몸이 소진되고 나면 도달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잘라내야 한다. 이윽고 아래 쪽 세계에서 위쪽 세계로 독수리가 솟아올랐을 때 “독수리가 죽은 사람의 뼈를 싣고 올라왔어요!”라는 말만이 허공을 맴돈다. 도덕적 가치들의 훼손, 불건전한 도취감, 성취감이 오늘의 인간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 한 번 더러워진 인간은 그 다음,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쉽게 더럽히게 된다. 이 패악스럽고 추악한 탐욕의 메커니즘이 보편화된 비천한 쾌락을 온통 세상에 내재화시켜 이를 분별해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많은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정신적 피폐화와 인간 삶의 중요한 진실들을 파괴하는 이 정신적 몰락의 현실과 결별하려고 함에도 우리 사회는 자기성찰과 반성은커녕 더욱 더 집착하고 매달리는 꼴이다. “세계는 지금 몽매주의와 결별하고 있어요. 그런데 끝까지 그걸 옹호하고 있잖아요.”라는 화자가 기득 권력에게 외치는 분노의 울부짖음은 마치 우리를 향한 것만 같다. 그렇다면 수잔나와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제물은 권력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던 것일까? 이 오래된 희생제의의 고전적 본보기인 권력자 아가멤논이 행한 딸의 처형은 자신의 권력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한, 즉 모든 병사들의 죽음을 요구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해주기 위한 잔혹한 욕심이었을 것이다. 이를 대의를 위한 영웅의 탁월한 전략이라고 칭송하는 빌어먹을 인간들이 있겠지만 그 만큼 우리 인간들은 더욱 교활해지고 세련되고 잔인해졌다는 의미일 게다. 사랑하는 연인을 희생 제물로 뺏긴 화자가 이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모든 삶의 원천인‘거기’부터 재교육해야 한다는 조롱어린 외침에서 사랑을 잃은 자 그대로의 분노가 느껴진다. 전체주의 권력의 독선과 그것이 조성해내는 암울하고 황폐해진 인간성의 고발을 통해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귀한 가치들을 되돌아보고 회복하고자하는 숭고한 의지의 산물로서 이 소설은 그 몫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권력의 본질이 메타포 천재의 손길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 수작(秀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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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책과 가벼운 책 두 권을 동시에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무거운(?) 책으로는 주역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어렵기로 유명한 주역 입문을 위한 책이다. 물론 입문할껀 아니고..-_- (점 봐달라고 하지 마라) 하여튼 주역강의를 읽는 중간중간 소설이나 에세이를 볼까 해서 이누가미 일족에 이어 마침 휴가이니 이 책을 시작 했는데, 다른 책들에 비해 얇고 작은 이 책이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네.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가 1985년부터 썼다는데, 십몇년에 걸쳐 프랑스로 조금씩 반출되어 2003년에야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사회주의 속 인간의 정신적 몰락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제도가 사람을 망치려고 작정하면 진정한 지옥으로도 떨어뜨릴 수 있구나. 실연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둘러 싼 신화와 언제든지 누구든지 몰아쳐 떨어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제도와 얽혀서 이 책엔 단 한글자도 버릴 것이 없다. 다 읽고 나면 치밀한 구성과 묘사와 비유에 오싹할 지경인데도, 읽는 중간에 몇번 킬킬거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제도의 '앞장 선 희생'이 대중 자체를 제물로 만들어 버리는 단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지. 그러나 제도 속 삶이기에 벗어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이야기는 알바니아 이야기이지만 결국 저 '제도'는 우리 모두를 둘러싼 개인적 현실의 이야기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이겨낼 수는 있는 걸까? <후계자>와 함께 이부작이라고 하니 그것도 읽어 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