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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순자>를 읽으면서 만일 조선이 성리학에 빠지지 않고 <순자>를 많이 읽었더라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순자는 '예'를 주장하였는데, 예는 밖으로 드러나는 형식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맹자는 '의'를 주장합니다. 사실 '의'라고 하면 좋은 덕성임에는 분명하지만 겉으로 쉽게 파악되는 덕성은 아닙니다. 순자의 제자인 이사가 진시황제를 통해 천하를 통일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개인에게서의 '예'가 사회, 국가적으로 확장된 것이 곧 올바로 정립된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연한 시스템이 구비된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에 비해 효율성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것이고, 결국 나라의 강약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학과 성리학에 빠져 사변적으로만 흐른 조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책의 제목은 '제자백가'이지만 주인공은 '순자'입니다. 공자가 주창한 '치평'의 도를 순자가 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그에 반해 맹자는 '수제' 측면에 빠져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고, 심지어는 요순을 유학에 끼워넣어 변질시킨 장본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 동안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읽은 입자에서 볼 때 거부감이 있고 의아한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이 씨리즈를 처음부터 읽어간다면 저자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오랫만에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산선생께서 하신 좋은 책은 등허리를 저절로 곧게 펴게 만든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감회가 많아서 꼭 리뷰를 쓸 때 덧붙여야겠다고 했습니다만, 지능이 낮는 탓에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단지 저자께서 이 글을 읽으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따로 연락을 드릴 길도 없는지라 부득이 여기에 부탁의 말씀을 올립니다. 책을 읽다보면 공자의 말씀이라고 알려진 것 중에서 많은 것들이 공자 후대에 만들어져 가탁된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논어>의 <요왈>편 같은 경우도 그에 해당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 같이 많은 지식을 갖추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자왈'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고 여기고 좋은 말씀이라면서 새깁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립니다. 유가의 경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 중에서 정말 공자의 말씀이라고 한 것과 후대에 가탁한 말이라고 한 것을 구별해 주는 책을 만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또한 저자께서 주장하시는 공자 실제에 대한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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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활약한 춘추시대 말기는 봉건질서가 붕괴하면서 격렬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이로 인해 하급 사족 중에도 발군의 재능을 토대로 신분세습의 한계를 뛰어넘어 경 대부의 반열에 오르는 자들이 나오게 되엇다. 공자가 그 산 증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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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님의 "순자론"에 이어 "논어론"..그리고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와 "제자백가,사상을 논하다"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의 통치학(후흑학)까지.... 한 사람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 아닌가 싶지만 정작 읽고 싶었던 "주역론"은 돈이 부족해 읽지 못했다...ㅠㅠ
신동준님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는 한가지... 유학(공학)의 적통은 맹자가 아니라 "순자"라는 것이다. 주희의 소위 도통론에 의해 요-순-우-탕- 문-무-주공- 공자-증자-자사-맹자-정이,정호-주희에서 맹자를 적통으로하고 순자를 이단시 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수신제가의 수제파로 순자는 치국평천하의 치평파로 주장한다.
공자의 군자상은 내성(內聖)과 외왕(外王) 두가지 모습을 겸유해야했다. 그런데 맹자는 인에 의를 덧붙여 내성을 천착해 들어가고 순가는 예에 법을 덧붙여 외왕을 확충해 나간다. 맹자는 호연지기로 충만한 인물을 군자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순자는 지혜로써 치국평천하에 이르는자를 군자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치세에는 맹자가 제시한 사대부상이 바람직하나 난세에는 순자가 강조한 군자상이 보다 요망된다. 내성에 치중한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송나라와 조선이 외란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내 패망을 자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적의 외침앞에 외왕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한 내성의 논리는 한낱 웃음거리밖에 안되는 것이다. p304-305 발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는 주희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공학의 정수인 인(仁)을 사덕(인의예지)의 한 개념으로 축소시켰고 주희는 공학의 경전인 논어를 사서의 한 과목으로 축소시켰다. 일본은 공학의 적통인 순자를 본받아 메이지유신으로 갔으나 우리나라는 주희의 맹자를 볻받아 명분론을 주장하다가 병자호란을 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