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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청소년 문학 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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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겨울을 꽃 같은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글쟁이들의 열정에 나는 자주 숨이 막힌다. 황홀한 공감이란 일종의 정신이상을 찬양하는 나는 독자다, 부끄럽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불운이란 행운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기실 불행이든 행운이든 상관하지 않는 많은 문학인들에겐 내적 번뇌와 갈등, 그리고 혁명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곧 그들과 우리의 스토리, 얘기다. 그러므로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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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겨울을 꽃 같은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글쟁이들의 열정에 나는 자주 숨이 막힌다. 황홀한 공감이란 일종의 정신이상을 찬양하는 나는 독자다, 부끄럽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불운이란 행운을 키우는 자양분이다. 기실 불행이든 행운이든 상관하지 않는 많은 문학인들에겐 내적 번뇌와 갈등, 그리고 혁명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곧 그들과 우리의 스토리, 얘기다. 그러므로 그들이 토로한 질풍노도의 언어사를 수렴 평정할 수 있다는 건, 독자에겐 대단한 행운이요 작가에겐 장렬한 한풀이인 셈이 아닐까. 어쨌든 작가의 인생 역정은 극장의 대형스크린을 마주하는 관객을 수시로 감동의 장으로 안내함과 같은 경건함이 있다. 잭슨폴록의 작품만큼이나 사방팔방으로 용솟음치는 46인의 세계 문학거장들의 치열한 생의 기록, 그들의 문학사에 대한 감동을 요약한다는 것은 작금의 나로선 엄청난 영광이자 호사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문학거장들의 일대기가 뒤섞이는 걸 막고자, 유쾌한 뒤죽박죽의 가닥을 잡기 위해 지금부터 나는 장문의 리뷰를 쓸 계획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 않은가. 그 망각의 끝을 조금이나마 늦추고 기억하고자 하는 사안들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 결행하는 나의 이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만 이 리뷰가 나 아닌 또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고자 애썼음도 미리 밝혀둔다. 덧붙여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교양 오딧세이 중 열두 번째 [거침 없이 빠져드는 역사]의 문학 편이다. 리뷰를 읽어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작가의 가정환경과 문학입문의 계기, 문학 활동 과정 중 작가의 대표작과 줄거리 소개, 작가 사진, 관련 명화나 영화 등 예술/공연 소개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타 문학인의 인용문까지 있어 세계문학 거장들에 대한 간단한 상식정도는 아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고로 아주 유익한 도서라는 결론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혹 나의 감언이설에 엮였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겐 미리 심심한 사과를 드리는 바이다. 그러나, 무릇 책이란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철학적 교훈을 담고 있는 법.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매사를 아름답게 보려는 그대와 나의 노력으로 활자도 곱게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인의 조각으로 잘 알려진 ‘길가메시와 사자의 격투’에서 길가메시, 그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좀 더 천착해보자. 서사시에서 길가메시는 고대 수메르인이 창건한 우루크 국왕으로 인간 세상에 살면서 3분의 2는 신인 자다. 왕이 되자 주색에 빠져 나랏일을 등한시하게 되는 대목에서 백제 의자왕이 떠오르지 않는가. 각설하고 그를 저지하기 위한 신의 처방은 엔키두를 창조함과 동시에 ‘우정’을 탄생시킨다. 곧 우정파워로 멋진 사내 둘이서 거인 훔바바를 물리치지만, 여인의 사랑을 거절한 죄로 그녀가 보낸 하늘황소와 복수혈전 끝에 승리를 하고 - 절친이었던 엔키두가 죽자 길가메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어렵사리 구한 불사의 약초를 도둑맞고 고국(우루크)으로 돌아와 엔키두의 영혼과의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시는 막을 내린다. 얼추 속세의 오욕칠정을 딱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신화도 마찬가지지만, 길가메시 서사시 또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전쟁과 복수, 생사, 선악- 모두를 아우른 인간세계의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전쟁신화 [오디세이아]의 호메로스<BC 750~650?>와 르네상스의 위대한 기수인 [신곡]의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는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인들이니 패쓰,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중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Aeschylos, BC 525~ BC 456>도... ‘위대한 바라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하바라타]와 스토리의 출처가 분분한 [천일야화]는 개인적으로도 아랍신화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꼭 짚고 넘어가려 했으나, 리뷰의 제약 상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가 없음에 깊은 양해바람. 46인의 작가, 아~! 갈 길이 멈.^^)

 

*** 대기만성, 자수성가 형 작가 ***

 

나는 그것이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

그리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도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검둥이 사이에서도 흰둥이 사이에서도 자라며

...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나갈 뿐 죽는 것은 하나도 없다.

 

- 142쪽, 휘트먼의 민주와 자유를 찬양하는 시 [풀잎] 중

 

시시각각 격동하는 파란波蘭에 맞서 대의의 기표로써의 문학에 투혼을 불사른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엔 대기만성 혹은 자수성가한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죽기 직전까지 비참한 가정환경 속에서 바닥을 전전하다가 사후 명성을 떨치게 된 경우도 있다. 황실 권력다툼에 휘말려 법원에서 손목 절단선고를 받자 이탈리아로 망명한 세르반테스<Cervantes, Miguel de, 1547~1616>. ‘레판토 해전의 외팔이’라는 별칭을 안겨줬던 레판토 해전 등의 전투에 여러 차례 가담하기도 했던 그는, [돈키호테]에 (5년간의 노예생활과 수차례 투옥, 세금징수원 등)사회하층계급으로 살면서 그 자신이 뼈저리게 겪었던 중세봉건제도의 폐해와 기사제도를 미화하는 기사문학에 대한 비판을 담아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경제적 빈곤 속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부종으로 병사하고 만다. 또 영국 및 세계문학계에 리얼리즘의 절정을 수립한 찰스 디킨스<Dickens, Charles John Huffam, 1812~1870>는 아버지의 빚으로 12세 때 구두약공장의 견습공을 시작으로 변호사 사무실 사환, 법원의 속기사, 신문사 국회변론 통신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통해 정규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사회로부터 체득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문을 발행해 인도주의 사상 전파, 젊은 청년작가 양성에 주력했던 디킨스는 뇌출혈로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때 우익분자의 눈엣가시라 일컬어지던 프랑스 사실주의/자연주의의 집대성자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 그가 (가스중독)사망(피살 의문사 야기)하자 프랑스 정부는 빅토르 위고와 같은 국장을 치러준다. 문인으로서 세계적 명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그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가난하게 성장했으므로 대학진학마저 포기한 채 문학창작에 전념했던 자수성가형 작가다. 화가, 비평가, 작곡가 등 여러 예술인들과의 화려한 인맥 때문에 십중팔구 그가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했을 거라 지레 짐작했었던 나는 몇 해 전에 봤던 흑백영화 [목로주점]을 잊을 수가 없다.(고전의 실맛은 흑백영화로~!) 자, 다음으로 영국에 디킨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미국의 시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역시 해변의 작은 마을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문학가다. 정규교육을 6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는 우편배달부와 조판공을 거쳐 교사, 신문사의 편집장이 되어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하며 뚜렷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기도 한다. 혁명 지지론자이면서 목수와 건축사까지 겸하며 발표한 시집 [풀잎](우리의 김수영 시인의 ‘풀’이 아니 떠오를 수 없고나)의 출간은 그가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데 초석이 된 너무나도 유명한 시다.

 

목재상이었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약방에서 도제 생활을 하는 틈틈이 문학작품을 탐독하며 다수의 시와 희극을 발표했던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은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과 함께 희극에서 두각을 보인 작가로 유명하다. 1864년 노르웨이 정부가 덴마크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덴마크를 원조하지 않은 것에 분노해 고국을 떠난 뒤로 단 두 번의 조국방문을 제외하곤 내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살다 생을 마감한 그의 행운은 베르겐 극장에서 시작됐다. 거기서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승격하며 입센은 6년 동안 다섯 편의 희극을 썼고 145편에 이르는 작품편집을 맡으며 탄탄한 무대경험을 토대로 희극 [페르 귄트]가 발표하자마자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사르트르처럼 영예와 작위를 거절하는 괴벽의 소유자로서 노벨문학상을 한 차례 거절했다가 결국 상금을 받은 이상주의와 인도주의 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그 역시 몰락 귀족가의 출신으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어머니와 함께 런던으로 와 음악과 문예평론, 소설, 희극창작에 열정을 쏟았던 작가다. [성녀 조앤]의 발표로 세계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게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버나드 쇼와 함께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도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지만 대학에서 철학과 언어를 공부하고 입센의 원서를 읽기 위해 독학으로 노르웨이어를 공부할 정도로 수재였다. 18세 되던 해에 입센 희극에 대한 평론으로 문단에서 두각을 보이며 1922년엔 마침내 처녀작 [더블린 사람들]을 출간, 이어 여러 우여곡절 끝에 8년에 걸쳐 완성한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 [율리시스]가 그의 나이 40세 생일날에서야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프랑스어판으로 출판된다. 평생 단 네 편의 작품을 집필했던 그의 모든 작품은 하나같이 난해한데, 그 점에 대해 조이스는 ‘자신의 작품은 일반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평생토록 자신의 작품을 연구할 사람들을 위한 것’(247쪽)이라고 일갈한다.

 

격려가 없는 한 나는 생명은 어둡다고 말한다.

지식이 없는 한 모든 격려는 맹목적이다.

일이 없는 한 모든 지식은 부질없다.

사랑이 없는 한 모든 일은 공허하다.

 

- 242쪽,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중 ‘일’에 관한 시

 

러시아문학의 기초를 세움과 동시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 막심 고리키(Maksim Gor' kil, 1868~1936)야말로 자수성가한 대표작가가 아닐까 싶다. 어려서 부친과 어머니를 연달아 여읜 뒤, 11세 때부터 각지를 방랑하며 그는 신발가게의 견습생, 화가 견습생, 수공업 작업장, 증기선 취사원, 빵집 종업원, 잡초 제거 일꾼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독학으로 쌓은 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개혁의 경로를 탐구했던 의지의 멋진 사나이(문학인). 세상풍파가 심할수록 고리키의 문학에의 투쟁심은 탄력을 받았고 그는 각종 문학작품들을 섭렵한다. [어머니]를 포함한 고리키의 모든 작품엔 혁명의 소용돌이에 이리저리 치인 하층민들의 피폐한 삶의 애환이 그대로 재현된다. 이 외에도 헤밍웨이로부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미국 현대문학의 기원이란 극찬을 받았던, 미주리 주의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현실주의 비판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 20세기 아랍문학의 최고봉이자 동양 ‘선지문학’의 대가라 불리우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1883~1931). 그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소송까지 휘말려 경제파탄을 겪고 설상가상으로 여동생, 형, 어머니까지 차례로 사망한 끝에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른 채 홀홀 단신으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며 다량의 단편소설과 소설을 발표했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서정 산문시집 [예언자]는 독특한 풍격과 계몽성을 띄고 있는 독보적인 특색을 갖춘, 지브란의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작품이다.

 

*** 결손가정환경에서 피어난 문학적 독기 ***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169쪽,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 중

 

이제, 결손가정과 같은 조금은 불편하고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창작열을 불태웠던 몇몇의 작가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적과 흑]은 한 귀족집 가정교사가 그 집 딸을 강간했다는 소식과 파리의 한 목수가 돈으로 자신의 부인을 유혹하려 한 자본가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탄생한 작품이다. 돈에만 관심이 있는, 보수적이고 조급한 성격의 아버지. 아버지의 속박과 억압에 시달렸던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루이 16세의 처형을 환호하며 기꺼이 혁명의 대변자와 가담자가 되었으나, 사회와 인생에 절망하여 여섯 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런가하면 매일 10시간 이상, 1834년 11월에 가서는 시간을 늘려 20시간 이상을 창작열을 불태웠던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 활발한 기질을 타고난 그는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한 경찰가정에 입양된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양아버지에게 경제적 지원을 의탁해야만 했던 그는 문학창작만이 그에게 경제적 독립을 안겨줄 수 있음을 간파하고 ‘나폴레옹이 칼로써 이룩하지 못한 것을 펜으로 이룩하겠다’(116쪽)는 비장한 각오를 실현하고야 만 것이다. (인간희극:돈에 의해 변질된 사람들의 비극이라... 아! 나는 [고리오 영감]을 언제나 펼쳐볼 것인가) 계부의 독단에 대한 반항이 술과 마약, 매독과 중풍, 실어증 동반,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며 ‘영원한 고독’ 속에 침잠한 끝에 한 요양원에서 쓸쓸이 생을 마감하게 했던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악의 꽃]은 출판 직후 종교와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출판금지와 보들레르, 출판사측에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후에 그는 장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 말라르메, 라 포르그 등과 함께 19세기말 경직돼 있던 프랑스 전통시가의 수사 원칙에 반대한 대표 상징주의 작가의 최고 반열에 올랐다. 보들레르를 ‘사악한 생활을 하면서 선량함을 사랑하는 사람’(170쪽)이라 평한 고르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이 어디있을까.

 

*** 조금은 얄미운, 행운아의 최고봉 ***

 

매일 열두 시간씩 4년 4개월에 걸쳐 완성한 [보바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Flaubert, Gustave, 1821~1880). 그는 프랑스 서북부 루앙시 시립병원의 외과주임이었던 아버지 슬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감상주의 영향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방황기를 거쳐 한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보바리 부인]으로 낭만주의 소설청산에 기여한 작가다. 플로베르를 스승으로 모신 행운의 사나이,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은 몰락 귀족집안에서 출생했지만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명문가 출신의 어머니와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외삼촌을 둔 문학인으로서는 최고의 환경을 선사받은 작가였다. 그쯤 되면 단편소설의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배경이다. [비곗덩어리]의 줄거리를 읽자니 벌써부터 사두고 읽지 못한, 며칠 전 구매한 [벨아미]의 존재가 떠오른다. 허나 나는 영화 ‘아름다운 벗’을 먼저 찾아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있다. (음... 이 변덕과 나태를 어찌하면 좋을꼬!) 또다른 행운아인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은 공증인 아버지와 음악적 소양을 겸비한 천주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어릴 적 베토벤과 셰익스피어를 우상으로 삼아 당대 최고의 문학작품에 심취한다.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써 가르침을 청한 그는 얼마 뒤 톨스토이로부터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예술이다’(182쪽)는 문장이 담긴 답장을 받는다. 그리고 베토벤을 모델로 한 [장 크리스토프]로 19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잠깐 돌아가자.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가 나와서 말인데,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을 선정할 당시 그와 함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미 고인이 되었던 관계로 톨스토이의 수상이 확실시되었다가 프랑스의 시인 쉴리 프뤼돔에게로 돌아가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일었던 웃지 못 할 사건을 언급해야겠다. 톨스토이 수상이 무산된 이유가 더 가관이다. 톨스토이의 아나키스트적 사상이 노벨상의 이념에 부적합하고 공신력 있는 개인 혹은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분개할 노릇이다. 당시 스웨덴 아카데미의 처사는 후대 세계 독자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질타를 받기에 충분한 일화다.

 

영국계 미국인 시인, 극작가, 평론가... 심통 나도록 화려한 저 스펙을 보라! 좋은 환경에 명석한 두뇌로 엘리트 작가라는 평을 받는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그의 할아버지는 워싱턴 대학교 설립자, 아버지는 유력한 실업가, 어머니는 시인 그 자신은 열여덟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징시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거의 1세기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시 [황무지]는 전 세계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현실이란 전설의 꽃이다. 엘리엇에 버금가는 아랍 로열패밀리계의 행운아 타고르(Rabiandranath Tagore, 1861~1941)의 가족 전력을 보면 누구나 입이 쩍 벌어질 것이다. 인도인 최초로 영국을 방문한 할아버지, 철학가이자 종교개혁자 아버지, 인도에 서양철학을 소개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큰형, 음악가이자 극작가인 다섯째 형, 벵골어로 장편소설을 쓴 누나... 당연히 어렸을 적부터 체계적이고 심오한 교육을 받았을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8세 때 이미 시작詩作을 했던 타고르는 영국과 고국을 오가며 농촌 교육개선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 그 학교가 세계유명대학이 되면서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후 영국의 인도 식민통치에 항거, 세계 곳곳의 폭력과 강권 행사에 반대하며 많은 시와 중/장/단편소설, 극본과 가곡, 철학서등을 집필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을 보지 못했어도 그 두 작품의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이자 보르노 음악대학원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 역시 프라하 예술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졸업한 후 교수로 재직하며 체코영화에 대한 연구와 함께 문학창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던 1968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작품이 출판금지를 당하자 그는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가게 되었는데 이후 체코 국적을 잃게 되면서 영원한 망명자 신세로 전락한다. 작품, [생은 다른 곳에]는 ‘무국적자의 인생’을 살아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문학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당당함을 세계에 떨친 위대한 업적이라 할만하다.

 

*** 특이 경력과 남다른 출생, 기이한 삶을 선택한 문학인들 ***

 

백작과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대뒤마의 아버지는 나중에 한 여관 주인 딸과의 사이에서 대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를 얻는다. 부친이 별세하자 13세까지 책 한 줄 읽을 기회도 없이 어머니와 근근이 살아가던 중 스웨덴의 한 귀족자제와 친구가 되면서 문학의 서광에 반해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로 당구에서 딴 돈 90프랑을 들고 대망의 파리로 입성한다. 그러던 1832년 봉제공장 여공과 동거한 다음해에 대뒤마는 소뒤마를 낳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상류층의 귀부인, 여배우들과 어울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로 인해 존재감을 잃은 소뒤마는 한동안 사생아 취급을 받다가 그의 나이 일곱 살이 되어서야 아버지 대뒤마의 아들로 정식 입적하게 된다. 1844년 [몽테크리스토 백작] 발표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아버지의 명성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을 즈음, 아들인 소뒤마는 빈농 출신의 한 고급 창부와 사랑에 빠진다. 그의 작품 [춘희]는 생계를 위해 상류사회의 명사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져야만 했던 연인과의 갈등과 번뇌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탄생되었다. 아버지 대뒤마의 문학적 지위에는 못 미쳤지만, 뒤마부자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말, ‘아들아 나의 최고의 작품은 바로 너란다’(160쪽).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정이야 다 같구나. 은행 출납원 시절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당해 중미의 온두라스로 도망갔다가 결국 체포되어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던 ‘미국 유머의 백과사전’ 오 헨리(O Henry, 1862~1910). 특이한 이력의 작가답게 그는 교도소 양호실의 약제사로 일했던 동안의 창작 경험을 살려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에 몰두한다. [크리스마스의 선물]과 [마지막 잎새]로 잘 알려진 그는 참신한 구성력, 해학적 언어, 예상을 뒤엎는 반전의 결말을 담은 작품이 속출하는 족족 인기를 끌으며 단박에 세계적인 작가반열에 올랐다. 1915년 노벨상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수상했던 롤랑, 러시아정부의 정치적 압력으로 수상을 거부했다가 후에 수상을 받아들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달리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끝까지 완고하게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수상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그는 ‘작가의 언어에 대한 전염력이 외부적인 영향을 증가시킨다면 독자에게는 불공평’(255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와! 멋지다. 이러니 철학교수 임용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그를 차석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프랑스의 저명 작가로 그녀 또한 존재주의 문학의 대표 주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사르트르는 열다섯 살 시절 내가 지향했던 미래와 완전히 부합한다. 그는 또 다른 나이다. 그를 통해 나의 이상은 무한히 커지고 그가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258쪽>라고 썼다.)가 한눈에 뿅 갔지 싶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로서 반독일 운동과 미국의 월남전 참전 비판, 러시아의 체코 침공 서면 규탄 등 세계평화운동에 살신성인하는 인도주의자로서의 면모까지 겸비한 문학계의 간디가 아닌가.(생전 자유분방한 섹슈얼리스트로서의 여성편력만 빼면 누구라도 그의 매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ㅎㅎ)

 

자수성가한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완고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을 공부해 5년 뒤 법학 박사학위까지 따내지만, 비관적인 성격으로 인해 연거푸 연애에 실패한다. 그러나 이는 작가로서의 영감엔 커다란 수확이었으며 [변신]을 시작으로 고독의 3부작 [실종자], [심판], [성]을 연달아 집필하면서 그는 곧 모더니즘 소설의 시조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임종 전 대학 친구 막스 브로드에게 자신의 작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달라는 부탁을 뒤로 하고 그의 모든 작품을 출판한 브로드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는가. 천만다행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구경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사장될 뻔했던, 사후 ‘카프카학’이라는 이론이 생길 정도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한 문학거장의 글을 만나게 해준 브로드에게 백번 천번 감사해야 되지 않을까. 만능엔터테이너였던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전장에선 영웅이요, 정글에서는 용맹한 사냥꾼, 링 위에서는 굽힐 줄 모르는 권투선수였으며, 바다에서는 침착하고 강인한 어부로서 항상 승자의 모습이었으나 작품을 통해 보이는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이겨낸 자수성가 형 문학인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 대표작이 미국에서 최초로 출판되었던 [노인과 바다]가 아닌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기도 했던 작품. 그 외에도 모르면 간첩취급 받기 딱 좋은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헤밍웨이만의 철학적이고 품격 높은 문체의 향연에 나름 행복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집에만 머물러 있었던 기인으로 통하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1919~2010)의 아버지는 햄과 치즈 수입상을 하던 유태인이었다. 15살에 펜실베이니아의 군사학교로 가 1936년 생애 유일한 졸업장을 취득한 그는 대학만 세 곳을 다녔으나 모두 중퇴하고 1943년 군에 입대해 첩보공작 훈련을 받아 유럽에서 첩보작전을 수행, 제대 후 문학창작을 시작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빌어먹을’ ‘젠장’과 같은 청소년 특유의 말투 구사로 유머와 해학을 이끌었던 그는 그 작품으로 세계 평론계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인이자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ea Marquez, 1928~ ). 그의 아버지는 한때 약국을 운영했던 집배원이었으나, 그는 여덟 살 때까지 외조부모와 살면서 수많은 전설과 민담을 듣고 자랐다. 그 영향으로 일곱 살엔 벌써 [천일야화]를 읽었고, 대학에선 법학을 공부했으나 콜롬비아 내전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언론학을 공부해 오랜 세월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문학창작에 힘쓴다. 우리에게 감히 넘지 못할 고전이란 중압감을 주는, 18년이란 긴 세월 끝에 완성된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출간과 동시에 1,0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세계 문단의 성경이 되었다. 부엔디아 집안의 7대에 걸친 가족 흥망사를 읽는 내내 첫 장의 계보를 몇 번이나 들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But 읽어봤다는 기억 하나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고전의 뼈아픈 철학. 이 어찌 고뇌가 아닐쏘냐. 하하. 이로써 다수의 문학거장 흥망사 정리란 나의 대장정도 막을 내렸다. 아~! 이 감동의 쓰나미. 노벨문학상처럼 나는 스스로에게 ‘대견상’을 수상하며 이 기쁨을 자축하련다. 오! 아름다운 신 새벽이어라!^^



a*********9 2013.04.23. 신고 공감 3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