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현의 「숨어있기 좋은 방」은 분명 여느 소설과는 다르다. 철저히 자신의 주도 아래 스스로 파괴되어간다.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재와 숨어있기 좋은 방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난한 집의 장녀, 한 남자의 아내, 시댁의 며느리 역을 시덥지 않게 생각하고 언제나 자의식이 먼저이며 주체가 되어 섹스를 하는 등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어 있다. 하지만 이금이란 인물이 한 가지 놓치는 점이 있어 아쉽다. 역할이 때론 짐이 되지만 이 역할을 합리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또 다른 파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역할들은 대개가 피곤하다. 헌 짐짝같아 어디다 내다버리고 싶다. 사회에 발을 디딘 이상 불가결하게 우린 관계 속에 언제나 놓여지게 된다. 이름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누구누구의 딸, 아들, 엄마, 아빠 등 관계와 역할 속에서 해석되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삶인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싫어 결혼을 후회하고, 아이를 낳기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현재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싫어하는 행위였으면서도 그 감정에 대한 책임이 서툴렀다. 게다가 파멸과 혼란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대물림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지금은 어려서 모르지만 언젠가 그녀의 딸도 엄마의 행위에 대해 혼란을 느끼며, 엄마를 닮아갈 것이다. 그녀가 아버지의 부재에서 혼란을 느꼈듯이......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일탈과 함께 그 이면에 온전함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현재 내 손에 없기에 더욱 방황하게 된다. 아예 깨끗이 무관심하게 분리해버리면 될텐데, 인간은 그것 또한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힘들거나 자신 없을 때는 그냥 맥없이 자신을 놓아버린다. 이 소설이 좀 더 확고하고 의미 있는 여성성을 보이려면, 희망을 놓지 않고 다부지게 이금이는 살았어야 했다(물론 상투적일 수 있지만, 하지만 삶은 상투적이다). 단순히 결혼을 함으로써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악착같이 먹을 거 입을 거 아끼면서 돈을 모아 복학을 해 학교도 마치고, 글을 쓰는 재능을 살리거나 공부를 더 했어야 한다. 그녀는 너무 쉽게 이 모든 걸 놓아버렸다. 난 여기에 분노한다. |
|
도서관에서 책 빌려읽는 많고 많은 장점 중 최고를 뽑으라면 절판되어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케케묵은 책을 신중히 또 아껴가며 읽은 후 그 책이 좋아져버렸을 때이다. 내용이 좋아, 작가가 마음에 들어, 그 책을 내 옆에 오래오래 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고 싶어져도 이미 세상 빛을 잃은 지 오래인 책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어느 것 하나 좋은 점/싫은 점만 존재하는 건 없나보다.
윤이금(소설 속 주인공)에게 숨어 있기 좋은 방은 2층 베란다에 서면 하루에도 수십번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한심한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뿐인 태정이 여행자처럼 살고 있는 여관방이다.
회사 돈이 든 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려 사장한테 한바탕 욕먹고,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을 끝내 못참고 사장 얼굴에 재떨이를 던져 버리고 나온 윤이금. 정처없이 걷다 고목나무에 이끌려 들어간 여관방에서 낯설지만 친근하기 짝이 없는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라곤 하루종일 방에 박혀 있는 일 뿐인 것처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 술 취한 남자들이 오줌이나 찍찍 갈기는 문이 달린 집으로 들어가고, 친절한 대학 선배의 프로포즈를 방패삼아 집에서 벗어나고. 숨어있다 돌아가고 벗어났다 되돌아가고. 그렇게 정처없이 걷고 걷는 윤이금을 보면서 난 왜 그녀한테 한심하다, 대체 생각이란 있는 여자냐, 모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정조없는 엄마야,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시켜주는 시댁에 잔말않고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텐데 왜 그걸 참지 못했냐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을까. 그렇다고 집 나간 아빠, 아등바등 살아보려 악착같이 살면서 무슨 일만 있으면 '고흐의 의자'를 앞에 놓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엄마, 사춘기 여동생, 철없는 막둥이를 가족으로 둔 그녀에게 연민따위를 느끼지도 않았다. 책 읽는 내내 내 심정은 열악한 상황에 힘들어하지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딱 윤이금 상태였달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근데 여기가 어디지, 하고 허망히 중얼거리는 것. 은희경 작가 소설에 나오는 이 문구가 떠오르는 소설이기도 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근데 여기가 어디지, 하고 가슴으로 허무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기차 소리에 위로를 받는 윤이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신이현 작가의 다른 책들 - 내가 가장 이뻤을 때, 잠자는 숲속의 남자, 갈매기 호텔 / 알자스, 에펠탑없는 파리 -도 부지런히 읽고 싶다.
|
| 주인공 이금이라는 스물 두살의 여자는 천방지축에 멋대로 편한 인생이다.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왔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박 아니, 조롱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정말 웃기는 여자군 하고 넘어 가기엔 그녀의 삶에서 풍기는 향이 너무 강하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공중을 유영하는 느낌이다. 물론 얼마 못 가 안정된(?)바닥에 내려오겠지만... 모두가 꿈꾸는 일탈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그녀가 정말 궁금해진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그녀는 가지고 있다.할 수 만 있다면 소설속으로 들어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고 그녀에게 묻고 싶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뭐든 3일만에 잊어버리는 사람,자신이 최고의 뒤죽박죽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일탈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그녀의 바이러스가 위로해줄 것이다. |
|
1. 이 책이 맘에 드는 첫번째 이유는 우리소설에서 보기드물게 '반윤리적'이라는 이유다. 2. 김상욱의 <다시쓰는 문학에세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이 책에 대한 평 부분.. " 만일 90년대 여성문학에 도달한 성취를 들자면, 우리는 이 작품을 비껴갈 수 없다. 그는 감상적 탄식으로 충만한 공지영과 다르며, 보편적 절망만 있고, 여성으로서의 자각적인 고통이 없는 은희경이나 인간 존재에 점착된 삶의 결을 읽어내고자 부심하는 신경숙과도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여성적 현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감상이 아닌 존재의 거친 출렁거림으로 드러낼 줄 안다." 3. 가끔씩은 이렇게도 있어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든지 해도 되는 그런 시간속에 있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이 책안에 숨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인공 이금처럼 살 수도 없고 살 자신도 없기때문에... [인상깊은구절] 할 일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어디로 가도 좋았고 무엇을 해도 상관없었다.나는 그런 나의 상태가 맘에 들었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어떡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애.다시쓰는> |
| 무책임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 바로 윤이금. 이 책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포함된 사회에 대해서도 온통 무관심이다.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금은 관심을 두는 것조차 포기한 사람 같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한 사람. 뭔가 그녀의 삶에 재미를 주는 것이 없는 한 그녀는 곧 죽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아무 것도 아닌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자신을 의미 있게 해줄 그 무엇인가를 말이다. 그러나 이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미있게 살고 싶으나 그 방법을 모르고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방에 숨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금이 정말로 원한 그 '재미'라는 것이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를 말이다... |
|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장을 넘기면서 놀랍다는 느낌밖에는 없었다. 이런 소재를 여자가 과감하게 썼다는 점과, 모두들 소리높여 외치는 문학적 가치때문이었다. 아직까지 보수적인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있던 나는 섹스가 곧 자유로움과 등식이 되는 이런 류의 소설을 못 견뎌 했다. 사실 이제와 보면 그렇게 심하게 야한 소설도 아닌데 말이다.그리고 윤이금이라는 캐릭터가 남성으로 대치된다면 유난하게 여길 이유가 없어진다. 영화[거짓말]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과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해 화제를 낳았듯 자유로운 여성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에게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녀는 A가 새겨진 주홍글씨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여성의 역할 때문에 기호품도 자제해야 하는 여성의 태생적 한계까지도 넘어서려는 작가의 몸부림이 안쓰럽다.내게> |
| 연주에게 ...솔직히, 너에게 편지 쓰는 건 무의미하다. 너네 집 주소를 까먹었거든. 결국 나에게 되돌아 올 것...그래서 너에게 쓰는 건 곧 나에게 쓰는 것... 오늘, 금요일... 비오는 이 날에, 너에게. 비같은, 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비오는 날 내 바지단 처럼 축축한 소설 얘길 할까 해. `신이현 님의 숨어있기 좋은 방... 어찌 보면 항상 뒷북만 치고 다니는 내게 주인공 윤이금은 확실히 부러운 사람이야. 물론, 내가 객관적으로 보면, 이금을 둘러싼 환경보다는 낫다고 할수있겠지. 그러나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나는 우리집이 완벽하게 오순도순 즐겁게 살거나, 아님 누구봐도 파산인 집이거나..그랬음 좋겠어. 하루하루 죽는 소릴내고, 가끔 접시며 그릇들이 날라다니지만, 남들이 행복해 보인다고도 하고, 역시 집이다...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고... 그러나 `역시 어쩔 수 없다. 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곳. 그게 우리집이야. 이렇게 사는게 사람살아가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지만. 난 싫어. 너무 싫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나를 만드는 내 집이 빨리 방향을 잡길. 그럼 나도 `이금 처럼 후회보다는 또다른 선택이 어울리는 그런 여자가 될 수 있을까. -배부른 자의 한심한 푸념이라 생각치 마. 누구든 그 상황이 되기까진 모른다구.. 이금은 말야. 사실 조금 걱정은 돼. 그녀는 사장에게 재떨이를 던지고 집을 나가 여관에 박혀버리거든. 그리고, 그녀는 태정을 사랑하면서도 휘종과 결혼하거든. 또, 그녀는 휘종과 살면서도 태정이를 만나버리거든.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후회를 느낄수가 없어. 맘대로 살지만 그녀는 당당하거든. 이금이가 여관에서 만난 태정이는... 그에게선 아무것도 기대해선 안돼. 천재소년이 아닐까. 라든지 재벌2세가 아닐까. 라든지... 그는 그냥 비냄새 풀풀 풍기며 복권이나 긁고 상품이 당첨되길 바라며 엽서나 보내는 그런 애거든. 태정이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같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벌고, 파티를 열어 이미 결혼해버린 여자를 기다리는 개츠비와 이금과 휘종이 보는데서 자신의 피를 보이는 태정이. 둘의 공통분모는 집착이 아닐까. 이금이의 맘대로 생활을 나름대로 구해준(?) 휘종이... 공지영의 `착한여자 읽었지? 정인이와 결혼한 현준..기억하니? 나는 왜 휘종을 보면서 현준이 생각이 나는지 말야. 싫다. 싫어.....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생각게 한다는 평이나, 여관방이 상징하는 것이 뭔지...그런거는 말야. 태정이가 자살을 해버리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생각할 수가 없었어. 여관방 너머 보이는 고목나무의 상징이 뭔지, 왜 태정이는 침대밑에서 사는지, 그런거는 말야. 이금에게 기도하는 휘종의 어머니가 너무 웃겨서 그런 생각은 하기 싫더라. 어느쪽이든, 확실해 전까지는 난 아마 이런 감상에서 못벗어 날꺼야... 연락좀 해! 志安 |
| 난 가끔 미칠것 같다. 내 뇌는 틀안에 밖혀있다. 가끔 신경질이 폭발할 때면 내 뇌를 꺼내 던져 버리고 싶다. 틀에 밖혀 낑낑되느니 차라리 하늘을 날아 다니다 꿍하고 떨어져 깨져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이다. 이금... 그녀는 나와 같은 뇌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현실세계에선 자신의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고 급기야 세상을 등지는 내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마치 나의 동체를 만나는 기분으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방황하는 이금과 그녀를 기다리는 태정. 태정의 자취방은 이금의 도피처이다. 이제 이금은 그 도피처가 싫어진다. 잡을 수 없는 희망이라서... 갈 수없는 꿈나라라서 이금은 그 방이 싫어 진다. 나 역시 혼자만이 알 수 있는 도피처가 있다. 하지만 그 도피처 마저 나를 구속해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사랑을 하고 싶지도 결혼도... 취직도... 누군가와 연계되는게 너무 싫다. 고리를 끊고 훨훨 날고 싶다. 이금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부모의 압박과 매달리는 남자 기다리고 있는 태정. 너무나 모범적인 남편... 털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자들이다. 시인 천상병님이 말씀하셨듯 세상 훌훌 털고 소풍오기 전의 자신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 물질이 있어야 하고 애정이 있어야 하고 그냥 가만히 누워있으면 손가락질 하는 세상이 나의 뇌를 꺼내고 싶게 만든다. 이제 도로 짚어 넣을 때가 되었지만 뇌를 찾을 수가 없다. 누군가 가져가 버렸나 보다. 찾아야 하는데... 찾아야 하는데... 마음은 생각보다 간절하지 않은가 보다. |
|
내 주변엔, '숨어있기 좋은 방'의 열렬한 독자들이 있다. 한 친구는, 자기 생각엔 '숨어있기 좋은 방'이 한국어로 씌어진 최고의 소설이라나 뭐라나 하는 말까지도 했었다. 이렇게 말한 친구는 이 소설의 주인공, 윤이금과 매우 닮아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무책임하며, 대강 착하기도 하지만 주로 못된 편(남에게 대단히 무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이고, 돈을 벌어 잘 사는 것보다는 무일푼의 모험을 택하겠다는 지향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윤이금은 정말 한국 소설에서는 초유의 여성 캐릭터인 듯하다. 이렇게 막 사는 여자 인물은 본 적이 없다. 막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서 짤리게 되자, 학원일이 그만하면 좋았다고 평가하면서, 슈퍼 앞에 전을 치고 '당면 사세요. 당면 하나를 사시면 멸치 액젓을 드립니다. 맛보시고, 알뜰 구매 하세요'라고 외치면서 잡채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일보다는 나았다고 말하는 대목부터 알 수 있듯이, 무진장 웃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내가 겪거나 본 적이 없어서이겠지만, 설정이나 인물이 어느 정도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반면 대사나 상황은 어처구니없을만큼 리얼한 소설이기도 하다. 홍상수 영화가 웃기는 이유와 거의 같은 이유에서 웃기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두 번씩이나 읽으면서도 '좋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는 않는다. [인상깊은구절] 그렇다. 윤이금이라는 인물에게서 두드러지는 전형적인 특징은 바로 이 무책임성이다. 대학의 자퇴라든지 직장의 사퇴 혹은 결혼 같은, 소위 인생의 중대사를 앞에 두고 그녀는 고민의 흔적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인생의 중대사 뿐만 아니라 그녀가 겪게 되는 사건이나 행동들에 있어서도 진지함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남들이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도 실은 이 무책임성에서 온다. (작품해설, '소외된 삶의 존재론적 원형') |
| 오랜만에 읽어보는 참으로 특이한 책이다. 여주인공 이금은 우리나라 소설 역사상 가장 불온한 여주인공이다. 삶에 대해 특별한 의지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고 대책이 없도록 아무 생각이 없어보인다. 이런 여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신이현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실 우리들은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가족이고 직장이고 뭐고 모든것을 다 떠나 아무도 모르는곳에서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없이 홀가분하게 살아보고 싶은 그런 일탈. 하지만 실생활에서 그런 무모한 일탈을 시도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소설속에서도 그런 무모한 행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금은 실행에 옮긴다. 읽다보면 뭐 이런 소설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기억속에서 오래 남는 소설중 하나다. 참고로 신이현은 작가 장정일의 부인으로 알고 있는데 참 특이한 부부같다. 예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책을 담처럼 쌓아놓고 하루종일 독서에 열중하는 두 사람- 장정일과 신이현을 본 기억이 있는데 .... 이 책 이후 또 다른 소설을 한권 더 낸걸로 알고 있는데 장정일만큼 의욕적으로 창작을 하지 않는지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