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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因緣)》을 읽고서···.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因緣)》을 샘터 2001년 52쇄로 다시 펼쳤다. 첫 독서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흐른 뒤에 다시 만난 이 책은, 같은 문장임에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에는 관계를 ‘스쳐 가는 우연’쯤으로 받아들였다면, 육십 중반에 이른 지금의 재독은 인연을 시간과 선택, 책임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필연으로 읽게 한다. 독서가 삶의 이력과 함께 깊어진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피천득의 문장은 여전히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는 오늘날의 과잉된 언어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준다. 이번 재독에서 새롭게 인식된 것은 그 담담함이 결코 체념이나 냉소가 아니라, 삶을 충분히 통과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온화한 수용’의 태도라는 점이었다. 젊은 날에는 그저 맑다고 느꼈던 문장들이, 이제는 오래 견디며 살아온 사람의 숨결처럼 읽힌다.
특히 인상적인 사실은 이 수필들이 결코 ‘청춘의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수필을 감성적이고 가벼운 장르로 오해하기 쉽지만, 피천득의 글은 서른여섯이라는, 이미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시점에서 비롯된 사유의 결과물이다. 삶의 무게를 어느 정도 감당해 본 이후에야 가능한 절제와 거리감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오늘날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른 중반은 이제 막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시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시대 감각으로 다시 읽을 때, 피천득의 ‘중년성’은 더욱 또렷이 다가온다. 그의 수필이 지닌 성숙함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날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책 263쪽>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시대의 결 또한 이번 재독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을 거쳐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상이 수필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개인의 일상이 곧 시대의 초상이 된다. 과거에는 배경처럼 지나쳤던 장면들이 이제는 애잔한 역사로 다가오며, 거창한 설명 없이도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딸에 대한 사랑 역시 이번 재독에서 가장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젊은 시절에는 다정한 가족애로 읽혔던 대목들이, 이제는 부모의 자리에 서 있거나 그 자리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나이의 독자에게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과 함께 찾아오는 거리감, 말로 다 표현되지 않은 애정과 절제된 슬픔이 과장 없는 문장 속에 고요히 담겨 있다.
유선전화에 얽힌 에피소드들 또한 인상 깊다. 전화 한 통을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했고, 전화선이 놓이는 일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던 시절의 풍경은 오늘날의 즉각적인 소통 문화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통화 한 번에 담긴 설렘과 긴장, 오해와 해프닝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느린 시간 속에서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겼던 인간적 리듬을 복원해낸 기록처럼 읽힌다.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주는 데 그리 인색하지 않다." 책 299쪽>
《인연》에 등장하는 관계들은 대개 소박하다. 스쳐 간 사람, 오래 머문 사람, 이름조차 흐릿해진 인연들이 조용히 지나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바로 그런 사소한 관계들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피천득은 이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설명이 없기에 독자는 자신의 기억을 불러와 그 여백을 채우게 된다.
또한 ‘헤어짐’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노년에 접어든 독자에게 특별한 위로를 건넨다. 그는 상실을 비극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떠남 역시 인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남겨진 쓸쓸함마저 삶의 결로 인정한다. 그로 인해 독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보다,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감사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인연(因緣)》은 빠르게 소비되는 감정이나 극적인 서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숙성된 정서를 건네며, 인연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대하고 때가 오면 조용히 보내는 것임을 일러준다.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읽은 이 수필집은 독자의 나이만큼 깊이를 더하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오래되었으되 결코 낡지 않은, 개인의 기억과 시대의 시간이 겹쳐지는 여전히 현재형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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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내게 호흡(呼吸) 혹은 들숨과 날숨 그 사이의 이야기다. 수필은 나의 그녀가 담긴 일상이요, 그녀를 수식하는 달착지근한 미사여구이며 그녀의 진한 미소이다. 수필은 어제와 오늘이 담긴 하나의 음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음악은 한없이 잔잔하고 부드러우며 아련한 어쿠스틱의 아르페지오 선율과 닮아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지만, 청춘이 담길 수 있는 글이며, 열정적이거나 수많은 함의가 담긴 문학이 아니요. 그저 있는 그대로 해석될 나의 일상이다. 수필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지만 소름끼치는 전율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수필은 과거와의 화해이다. 그 속에는 나와 그녀와 일상이 가득 담겨있는 법이다.
진심이 묻어나는 글에 대하여,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류시화를 읽고 법정을 읽으며, 아사다 지로를 읽고 하루키를 읽으며 그리고 피천득을 읽으며 그 감흥을 끼적인다. 때론 그녀를 위해 샛노란 편지지에 사각거리는 0.3샤프를 손에 쥐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것이 조금은 담백한 하이테크씨로 바뀌기도 하고, 짙은의 음악이 담기기도 한다. 함께하는 노래는 쓰는 글에 따라 달라서, 10cm의 아메리카노를 들으며 템포있는 글쓰기를 하다가도, lily chou-chou의 Tobenai tsubasa를 들으며 쓸 때면 글은 잔잔해진다. 나 또한 아름다움에서 오는 기쁨을 위하여 글을 쓰고 있다. 소소한 일상이 묻어나는 삶의 진솔함에 대하여, 나는 피천득과 함께 숲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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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좋은 책이다. 말로다 표현 못할만큼 따듯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내 가슴을 채워 주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라는 구절이 참 가슴에 와 다았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선가 왜 책을 읽습니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꽤 심오한 답변들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니 별 생각 없이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심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책의 이구절을 보고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야말로 꾸밈 없는 우리의 책읽는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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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피천득을 서구 낭만주의나 순결성에 빠져서 삶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일관된 생각없이 에피소드만 무관하게 늘어놓는 작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수필은 수필다워야 한다. 수필이란게 뭔가. 어떤것이든지 무엇에 관해서든지 자신의 생각, 상념을 솔직하게 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수필에 특별히 사회 비판이나 교훈의 의미를 강요하는 것은 수필의 참 맛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피천득은 가장 수필다운 수필을 쓰는 작가이다. 그의 생각은 여기서 저기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기서 삶의 서정성을 이끌어낸다. 그가 발견한 서정성은 우리네 삶을 평온하고 따사롭게 비추어낸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세상의 찌든 면에 질식할 때 신선한 청량음료 같이 또는 깊은 녹차 같이 작용해 나를 안정과 일상의 평온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
그가 풀어놓는 상념들은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가득한 잔잔한 수필 한 편으로 완성된다. '인연'은 일상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서정성, 작가의 딸 서영이에 대한 애정, 그가 흠모하고 사랑했던 인물들에 대한 회고와 예찬 이렇게 세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간결하고 담백한 그의 문장들 또한 수필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인상깊은구절] 당신의 잘 알려진 작품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느 부분은 나와 우리 엄마의 에피소드였습니다....형은 나에게 있어 테니슨의 '아더 헬름'과 같은 존재, 그대가 좋아하는 시구를 여기에 적습니다.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형은 한 중국 여동학과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심이라는 아호를 지었습니다. 타고 남은 마음이라고.... |
|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수필이라는 장르가 있다는걸 알게됐지만 그저 일기같이 쉽고 지극히 개인적인 글로만 생각했었다.또 아무나 쓸수 있는 글로 은근히 얕잡아 보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히 수필이라는걸 찾아서 읽지 않았는데 하도 유명한 책이 있기에 왜 그렇게 오랫동안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지 궁금했다.그 은 바로 피천득님의 '인연'이었고 내가 읽은 첫 수필집이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었는 지를 알게 됐다. 짧은 글속에 인생의 심오한 깨달음들을 강압적이지 않은 어조로 편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처음 책을 사면서 글이 짤막 짤막하니까 지하철에서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몇장을 읽은 이후로는 더이상 이책을 시끄럽고 산만한 지하철에서 읽을수가 없었다. 한편 한편의 글들은 모두 깊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들기전에 한편 두편씩 읽으면서 명상집처럼 이용했다. 신기하게도 이책을 읽고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따뜻해졌다. 수필은 소설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한 멋이있다. 수필은 시를 읽을때처럼 짧은 글속에 '염화미소'의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 수필은 마치 일기처럼 내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한번더 돌아보게 한다. 특히 피천득님의 수필집은 읽는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도록 만든다등등..이 책한권이 나의 수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그 뒤로 한동안 수필집에 푹 빠져서 수필집들만 골라서 읽었다.한마디 덫붙이자면 수필가들은 다들 마음이 동심에 가까운것 같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나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깨끗해 지는 것을 느낀다. 아직 수필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모르시는 분이라면 더 늦기 전에 수필만의 매력에 빠져 보길 바란다. |
| 이책의 표지의 산호같이 아주 맑고 아름답다. 이 말로 모든 비평이 다 된 것 같다. 봄과 청춘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청초하고 맑았던 것 같다. 처음 "수필"을 읽을때에 기상천외하고도 줄줄이 이어지는 묘사가 정말 놀랍고도 재밌게 만들어 주었다. 산책길과도 같고 연적의 수선화에서 꽃잎하나만 옆으로비져나와있는 여유와도 같은 수필들을 길가는 대로 쓰되 방향있게 써주시고 학과 여인의 유연한 허리같이 느끼게 해주신 피천득씨께 감사든린다. ^^ 마음이 심난할때, 평화로울때 모두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주는 그런 글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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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인연'이란 대체 뭘까? 단순히 사람들이 만나 알게되고 친해지는 것? 난 그 단순한 진리조차 신기하다. 내가 만약 이 도시에 살지 않고, 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남이었을 것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라는 말을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며 늘 실감하고 있다. 난 이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할 수 있는 물음에 해답을 얻고자 피천득님의 '인연(因緣)' 이란 수필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을 펴보면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라는 매우 익숙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수필'이란 제목의 수필을 접할 수 있다. 난 이것을 보며 "아! 중고등학생 시절 때 접했던.." 이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리도 이 작품의 매력을 못 느꼈던지.. 아마 시험이란 큰 난관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난 수필을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신의 생각이 담긴 일기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천득님의 글을 읽고 수필에 관해 다시금 생각게 되었다. "수필은 정말 꾸밈없고 솔직한 글인 것 같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수필도 여느 장르 못지 않게 배우고 느낄게 많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자신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겪었던 경험을 통해 그로 하여금 나도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매력.. 덤으로 정말 이 작품을 읽으며 평소 몰랐던 것을 꽤 많이 배운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내가 어떤 한 지식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니까..
현대인들은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이 수필집만큼은 때와 장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나의 바램이다. 남의 영광을 힘입어 영광을 맛보는 것을 '반사적 광영' 이라고 한다. 난 '인연(因緣)' 이란 수필집을 통해 피천득님의 글을 접했다는 영광의 '반사적 광영'을 지닌 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그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 |
| 학교에서 우연히 친구가 읽던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피천득'... 많이 들어본 이름에 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 수필을 그렇게 읽어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 갔습니다.. 책에는 교과서, 문제집 등에 많이 나오는 글들도 있었습니다. '수필'에 관한 내용이나, '은전 한 닢'은 읽으면서 다시 여러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웬지 모르게 기쁘기도 하구요^^ 그 외에도 어디서 본 듯한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네요. |
| 아름다운 책이다. 자주 읽어도 늘 새롭고, 오래되었지만 구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책. 이런걸 바로 명작이라 할까. 깨끗하고 맑은 피천득님의 마음이 글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간간히 보이는 품위있는 유머도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이렇게 순결하고, 아름답고, 재치있을수가 있을까. 세속의 때에 찌들어 사는 나의 마음도 함께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책 상태도 너무 맘에 든다. 순결한 백색의 표지가 책을 펴기 전부터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듯 하다. 하드커버의 이 책은 집에 모셔두고 읽고, 포켓본을 하나 더 사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데 그것도 꽤 괜찮다. 지난 졸업시즌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한권씩 선물해 주었는데, 너무 좋은 글들이었다고들 해서 나와 같은 감동을 느낀것 같아 참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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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장미라는 한편의 수필을 읽고 한참동안 가슴설레였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쓸수 있는것이구나.. 은전 한 닢이란 수필을 읽고 나서는 작가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까라는 궁금함을 가슴에 품었었다. 이 두편의 글을 일고 가슴설레였던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살포시 웃음짓는다. 피천득! 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인연'을 통해 접한 이야기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나를 설레이게 한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내게 편지를 쓴듯 높낮이가 없는 편안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이 글들을 읽고 가슴가득 뭔가를 품고 있는듯 행복함으로 젖는다.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피천득의 미문! 난 이말을 너무도 사랑한다. 언제 어느때 읽어도 늘 들뜬 마음을 잠재우는 듯하고 그리움을 넘어 슬픔과 애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인연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인상깊은구절]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87- 오랫동안 못 만나게 되면 우정은 소원해 진다.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무는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것이 더욱 어렵고 보람있다. 정말 좋은 친구는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다. 우정의 비극은 불신이다. 서로 믿지 못하는 데서 비극은 온다. -286- 유치원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고, 사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아깝고 찬란한 다시 못 올 시절이다. -119-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