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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르느와르 그림 속의 이 소녀가 부러웠다.
베르트 모리조와 외젠 마네의 딸 줄리 마네. 에두아르 마네의 조카이며, 르느와르, 말라르메, 드가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던 그녀를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고호를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포럼 광장의 테라스 까페>만은 미치도록 사랑한다.
그림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무서울 정도다. 그림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저 밤하늘 아래 저 까페의 저 의자 위에 바로 네가 앉아있어야 해."
그림을 뚫고 뛰어들어가고 싶을만큼 그 시대가 나를 부른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19세기 후반 파리를, 그리고 까페를 이토록 매혹적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인상주의자라고 부르는 일련의 예술가 집단이다.
그들의 유산에 많은 사람들이 열병을 앓는다. 새로운 화집과 시 한 구절을 발굴해내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고 구글과 네이버를 밤새 헤매는 것은 기본.
중증이 되면, 100년을 늦게, 그것도 세상의 반대쪽에 태어나버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도 한다. ^^
이런 환자들에게 줄리 마네의 일기는 달콤한 디저트로 다가온다. 주메뉴는 당연히 거장들의 작품일테지만 때론 티라미수 한조각이 훌륭한 정찬을 마무리짓기도 하니까.
우리는 작품이 아닌 그들의 대화와 제 3자인 줄리의 눈을 통해 말라르메의 부드러움, 르느와르의 밝고 따뜻함, 드가의 괴팍함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몽마르트르, 루브르, 퐁텐블로, 두아른네... 나는 줄리가 되어 이 곳들을 걷는다. 드레퓌스, 파쇼다, 러프동맹... 나는 줄리가 되어 이 시대를 불안해한다. 아스트뤽, 졸라, 발레리, 나탕송... 나는 줄리가 되어 이들을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황홀한 것은 줄리와 함께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줄리의 일기 대부분은 전시회나 화가들의 집에서 본 작품감상이 차지한다. 권위에 눌려버린 현대인들의 감상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특히 쉽게 구할 수 없는 모리조의 그림이 많은 것도 큰 수확이다.
사실 난 시샘이 많은 사람이라 배아파 죽을까봐 이 책을 사는 데 한참을 망설였었다. 카트에 보관만 해놓고 미적거리다 품절사태!...-ㅇ-... 결국 구하는 데 발품 좀 팔았지만 기분은 좋다.
모리조를 더 존경하게 되었고 르느와르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드가를 더 귀여워하게 되었다...^^
아, 그리고 신선한 발견. 자샤리 아스트뤽! 완전 귀여워!!
지난 10여년간 시중에 나온 인상주의에 대한 책은 거의 다 사들였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해도 권태기는 오는 법. 점점 손대지 않는 책이 늘어나고 감상은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럴때면 Baatsch의 <Les Impressionnistes>를 보곤 했는데, 이에 견줄만한 사랑스러운 책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