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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국가 전쟁/케네스 월츠/ 정성훈/ 아카넷/2007 정치, 외교, 전쟁사 어떤 부분에도 특별한 교양이나 상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은 읽는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박사 논문이더군요^^;; 박사님이나 교수님이라고 해도 교양서를 출판할 때에는 어느 정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는 것도 있고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감정을 넣어서 양념을 치기도 마련인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건조한 책입니다. 내용 자체는 어찌 보면 간결한데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첫째 인간 본성 자체의 결함 이를 테면 사악하더거나 호전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한데에서 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즉 통수권자나 독재자, 정치인들 자체의 기질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둘째 국가라고 하는 체제 이를테면 전제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등의 체제 자체에 어떠한 결함이 있어서 인지 셋째 마지막으로 이러한 것들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역사와 환경이 각기 다른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알력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투키디데스같은 역사 학자부터 홉스, 칸트, 스피노자, 루소 등등의 계몽 시대 철학자들 그리고 모겐소 같은 현실 정치 학자들은 물론 과거에 활약했던 수많은 왕들과 지금은 대통령과 수상들에 이르기 까지 정치와 전쟁에 관련한 글을 쓰고 이런 저런 주장을 했던 이들의 여러 의견들을 포집하여 소개하고 그 모순과 대착점을 지적해서 전쟁의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란 전쟁을 억제하는 상황에서 겨우 얻을 수 없는 소극적인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정치를 피력하고 있죠. 이 논문이 나온 것은 1950년대이고, 우리는 이미 이후로도 70년도 시간이 흐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인간은 본래 평화를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조금만 유리하다 싶으면 전쟁을 할 생각을 하기 십상인 호전적인 존재이며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쪽으로 쏠리면 무리 의식에 따라 동조되어 전쟁에 찬동하기 쉬운 존재하는 것도 알려졌죠. 작가가 여기서 주장하는 데로 자유주의는 국가의 힘을 약화시키고 개인의 힘을 강화시키니까 통수권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니 전쟁 억제력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사변을 일으키기도 하며 사회주의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재자에게 끌려다닌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구요. 무엇보다 국가간의 알력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와 이념과 체제는 다른데 공통으로 노리는 이권이 있으면 당연히 전쟁이 나기 마련인 것 아니냐고 굳이 학술적인 말을 쓰지 않아도 체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감이 좀 잡힌 것은 과거 우리가 이름만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피상적이기만 했던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항목에서 어떤 견해를 피력했냐 것을 살펴 봄으로써 그 안에서 인간 본성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했느냐도 잘 드러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지금 밝혀진 과학이나 인문학의 견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순진하고도 이상적이기만 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지금도 그런 도덕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생각으로 현실 정치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안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거였습니다.
일반 교양서적으로 읽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전쟁은 여기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 뿐 아니라 또 다른 여러 다른 것이 요인이 되어서 일어나는 만큼 이 책 역시 한계가 있지 만요. 애초에 테러부터 핵전쟁까지 전쟁이라는 것의 아우트라인이 어디쯤 그어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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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왈츠는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석학으로 인간 갈등, 즉 전쟁의 원인을 파악해 평화를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인간 국가 전쟁>을 집필했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이 평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발자취는 전쟁의 연속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때로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명분을 앞세워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전쟁이 불러온 비극은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왜 전쟁이 끊이지 않을까?
첫 번째 이미지 - 국제 분쟁과 인간 행태 전쟁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면 주요 원인은 인간의 이기심, 공격성, 어리석음이이 될 것이고 인간의 심성을 바로잡는다면 전쟁은 사라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에 의한 교화와 공격적 에너지의 생산적 에너지로의 승화를 통해 무익한 다툼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점에는 성선설에 기반한 낙관론자와 인간 본성에 악을 품고 있다고 여기는 비관론자 간에 의견차가 있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에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므로 견해는 다양해진다. 스피노자(네덜란드 철학자, 1632-1677)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보존 욕구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성과 정념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며 이성이 완벽히 정념을 제어했을 때 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으며 전쟁 또한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런 이상적 단계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분쟁과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스피노자는 갈등의 원인을 인간 본성으로 돌렸고 그 원인을 안다해도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는 회의적 입장을 취했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니버,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모겐소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인간 본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봤고 본성에 집중된 전략으로 평화를 획득할 수 없다고 여겨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많은 심리학자와 행동과학자들은 낙관론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에 치닫는 원인인 인간성의 결함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다면 평화를 끌어낼 수 있다. 개선할 대상에 대한 교육과 수양을 통해 본성의 결함을 이기면 어리석은 판단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낙관론자들은 모든 인간이 이성적인 행동을 하거나 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기 때문에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두번째 이미지 ㅡ 국제분쟁과 국가의 내부 구조 전쟁과 평화에 대한 원인을 사회 구성원의 본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두번째 이미지에서는 만약 구성원들이 모여 형성된 집단, 즉 국가로 관점을 돌려보면 전쟁의 원인에 대해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지 살펴보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 대상으로 국제정치와 국가자체를 논한다. 국가는 내분과 사회불안의 해결를 위한 도구로 전쟁을 택하거나 국가가 가진 지리적이거나 경제적인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감행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고양시켜 다른 불만을 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상주의로 시작된 전쟁이 국가 실익을 위해 철저히 계획된 전쟁보다 훨씬 파괴적 결과를 띤다는 점을 증명한다. 역설적으로 세계 평화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며 시작된 전쟁이 자칫 끝없는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 세 번째 이미지 ㅡ 국제분쟁과 국제적 무정부 상태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자연 상태의 인간은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 대신 생존과 재산에 대한 지속적 위협에 시달리므로 '생존과 번영'을 위해 사회를 구성하게 됐고 개인적 자유는 사회적 자유로 대체되고 소유는 소유권으로 대체된다. 루소는 국제 관계에서 국가의 의사결정이란 국민의 통합된 의사를 대변하기 보다 통치자의 욕망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국가란 국가에 대한 공동체 의식(정체성)을 가진 국민들이 합일된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가 합일된 의견을 내는 것은 국가로서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국제 관계에서의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는 다양한 국가들로 구성되어져 있고, 각 국가가 확신에 찬(국민이 합의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이것이 다른 국가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고 그에 따라 국가 간 분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소가 제안한 해결책은 강제력을 가진 상위체제(세계정부)의 수립을 통해 국제적으로 준수될 법을 제정하여 따르도록하고 이를 위반한 국가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성향에 의해 사회와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회계약설을 국제 관계로 확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이 개인적 자유를 일부 포기하고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얻은 것처럼 국가 또한 사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고 세계정부에 의탁함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얻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전쟁은 양측의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해결되지 않은 원인으로 발생한다. 전쟁을 야기하는 원인은 국가의 지도자층과 지도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며 상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거나 방어를 위한 목적의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로부터 얻고자 하는 이득(경제, 영토, 종교, 이념 등)에 당위성을 부여하거나 다른 국가가 성장해 자신을 압박하리라는 염려(예방전쟁)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아주 사소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 사소한 원인 뒤에 도사린 수많은 원인들과 혐오의 축적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한 두개의 이미지로 설명될 수 없으며 세 가지 이미지, 즉 인간, 국가, 국제관계의 측면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이해가능하고 평화의 추구 또한 이 세 가지 이미지를 함께 고려할 때 타당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은 강제력을 지닌 세계정부의 수립으로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나 이것은 실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 국가 전쟁>은 1959년에 발간된 책이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정세에 대응해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헤안을 가진 책이기도 하다. 모두가 패자로 귀결되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원인를 다룬 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분석함으로써 인간 사회와 국가를 해석함에 있어 더 객관적이고 개방된 시각을 견지해야 함을 역설하고, 인간 본성, 국가 구조, 그리고 국제 체제 가운데 한 가지 측면에 치중하기 보다 통섭적 관점이 문제의 원인 파악과 해결책의 모색에 도움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역자들의 의견을 빌자면 '케네스 월츠'의 <인간 국가 전쟁>은 현재까지도 국제정치학 분야의 필독서로 여겨지며 그의 현실주의에 입각한 날카로운 시선은 많은 학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내게 '케네스 월츠'라는 저자와 <인간 국가 전쟁>을 소개해 준 것은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이다. <인간 무리>에서 마크 모펫은 <인간 국가 전쟁>을 인상깊게 언급하고 있어 호기심이 생겼고 내게 생소한 국제정치라는 분야를 읽게 됐는데 책의 주제도 흥미로웠거니와 저자의 논리적 분석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1988년 <인간 국가 전쟁>의 번역을 담당했던 '김광린 선생님'의 추천사와 2007년 번역을 담당한 '정성훈 선생님'의 역자후기를 보며 내가 <인간 국가 전쟁>을 읽으면 느꼈던 바를 더 견고히 할 수 있었고, 두 역자분들의 학문에 대한 진중한 태도와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가 깊이 있는 평가를 담을 수 없지만, 이 책을 읽는데 있어 문장과 전체적 흐름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는 역자들의 고심어린 노고 덕이라 생각한다. <인간 국가 전쟁>을 비롯해 내가 읽고 배움을 얻었으며 저자의 식견에 감탄했던 많은 책들의 역자분들께도 감사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본문에 언급된 글 가운데 머리속을 맴도는 부분이 있어 발췌해 본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회란 그 구성원들이 무해한 상징에서 만족을 얻도록, 또한 그 사회가 어렵지 않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매진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랠프 린턴(미국의 인류학자, 1893-1953)의 말이다. 인간 본성이 가진 근본적 결함의 분출구를 무해하고 통제가능한 상황하에 두라는 의미이다. 이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큰 고민 없이 삶을 영위할테고,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다면 전쟁 또한 사라지겠지만 이것이 과연 인간 삶의 진정한 모습인지 생각해 보게 되고, 어쩌면 우리가 이미 이런 사회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