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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의 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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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대...... 유소사(有所思) - 당(唐), 이하(李賀)(790~816) - 동양의 명문장   거년맥상 가리곡, 去年陌上 歌離曲, 지난 해 길 위에서/ 이별의 노래 불렀는데 금일군서 원유촉. 今日君書 遠游蜀. 오늘 그대 편지 보니/ 먼 촉(蜀) 땅에 놀러 가셨네요. 렴외화개 이월풍, 簾外花開 二月風, 이제 주렴밖엔 매화꽃이 피고/ 2월의 바람 부는데 대전누적 천항죽. 臺
"漢詩의 風流..." 내용보기

그리운 그대...... 유소사(有所思) - 당(唐), 이하(李賀)(790~816) - 동양의 명문장

 

거년맥상 가리곡, 去年陌上 歌離曲,

지난 해 길 위에서/ 이별의 노래 불렀는데

금일군서 원유촉. 今日君書 遠游蜀.

오늘 그대 편지 보니/ 먼 촉(蜀) 땅에 놀러 가셨네요.

렴외화개 이월풍, 簾外花開 二月風,

이제 주렴밖엔 매화꽃이 피고/ 2월의 바람 부는데

대전누적 천항죽. 臺前淚滴 千行竹.

누대 앞에 떨어진 눈물만/ 천 줄기의 대나무 되었네요.

 

금심 여첩장, 琴心 與妾腸,

거문고 마음은/ 제 마음과 같아

차야 단환속. 此夜 斷還續.

이 밤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합니다.

 

상군백마 현조궁, 想君白馬 懸雕弓,

백마에 고운 활을 매신/ 그대 생각하니

세간하처 무춘풍? 世間何處 無春風?

세상 어디에/ 봄바람 없을까요?

군심미긍 진여석, 君心未肯 鎭如石,

그대 마음은/ 돌처럼 진중하지 않고

첩안불구 여화홍. 妾顔不久 如花紅.

제 고운 얼굴은 붉은 꽃처럼/ 오래가지 않네요.

 

야잔고벽 횡장하, 夜殘高碧 橫長河,

저녁 무렵 스러진 높은 하늘에/ 긴 은하수만 비스듬한데

하상무량 공백파. 河上無梁 空白波.

강 위에는 다리 없어/ 흰 물결만 공허하네요.

서풍미기 비룡사, 西風未起 悲龍梭,

서풍 불지 않아/ 북으로 변한 용 슬프게 하니

년년직소 찬쌍아. 年年織素 攢雙蛾.

해마다 흰 비단 짜며/ 두 눈썹 찡그리네요.

 

강상초체 무휴절, 江上迢遞 無休絶,

아득한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누안간등 사명멸. 淚眼看燈 乍明滅.

눈물 젖어 바라보는 등불은/ 자꾸만 깜박거려요.

자종고관 심쇄창, 自從孤館 深鎖窗,

외로운 집/ 깊이 잠긴 창 안에서

계화기도 원환결. 桂花幾度 圓還缺.

계수나무 꽃은/ 몇 번이나 피었다가 또 졌을까?

 

아아향효 명삼목, 鴉鴉向曉 鳴森木,

갈가마귀들은/ 날이 밝도록 숲 속에서 울어대고

풍과지당 향총옥. 風過池塘 響叢玉.

바람은/ 연못을 스치며 무리 진 옥을 울리네요.

백일소조 몽불성, 白日蕭條 夢不成,

밝은 낮조차 쓸쓸하여/ 꿈도 이루어지지 않아

교남갱문 선인복. 橋南更問 仙人卜.

다리 남쪽에서/ 다시 선인(仙人)에게 점괘를 물어요.

 

有所思  

송서에 따르면,한나라때《고취요가鼓吹鐃歌》18곡 가운데〈그리운 그대(有所思)〉가 있다고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대개 이 곡조를 흉내 내서 이별과 그리움의 슬픔을 노래하곤 했다.

이 제목도 동일하다. 

 

悲龍梭(비룡이 된 베틀의 북)

 

이원異苑》에 따르면, 도연명의 조부인 도간(陶侃)은 항상 산 아래에서 낚시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베틀 북[梭] 하나를 얻어 집에 돌아와 벽에 걸어두었다.

얼마 후에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리자,

북은 붉은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여성의 주요 도구인 북을 활용한 상징 언어다.

서풍이 불어야 북이 용이 되는 것이다.

 

叢玉 (무리진 옥) - - 대나무를 가리킨다.

일설에는 처마 끝에 매달아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옥으로 만든 말 모양을 말한다고도 한다.

이것은 당나라대 풍류가인 기왕(歧王)의 궁궐에서 대나무 숲에 옥 조각을 걸어 놓아서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게 하였다는 고사와도 관련이 있다.

바람이 불면 소리 내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여기서는 대나무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글로써 글을 감상해 보는것도 좋을듯하여.....하하하

 

여인네의 기다림은 아주 오래 되었다.

고대 남성우위의 사회에서 여성은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21세기 알파걸의 시대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고대의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하염없이 백마 탄 낭군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그 백마 타신 낭군은 바람기가 농후하시다.

 

이 노래는 그러한 여심(女心)을 시귀(詩鬼)이신 이하 선생이 대신 읊으신 것이다.

깊은 밤, 여인은 잠 못 이루고....... 우리나라 대중가요인 오동동 타령도 이와 흡사하다

이 하 선생은 타고난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주를 1/100도 발휘하지 못하고 아깝게 요절한 당대의 시인이시다.

 

운명이었을까? 숙명이었을까?

재주를 다 하지 못하고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일찍 진 아름다운 꽃.

그러한 이 하 선생이기에 이 시는 더욱 진하다.

 

흔히 이 하 선생을 시귀(詩鬼)라고 한다.

귀신의 재주를 가지고 귀신같은 시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요즘 와서 상징(象徵) 언어의 시대가 되어 더욱 선생의 시가 애송된다.

직설적이고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기에 그 해석이 어려우면서도

음미할수록 깊은 맛을 주는 것이 바로 시귀 이 하 선생의 시다.

 

이 시는 비교적 그런 시중에서 소탈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암울한 상황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에 그리 만만한 시는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읽는사람에게 달렸지만 여하간 임을 그리는 여심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압권은 각 운의 변화에 있다.

曲蜀風竹의 ‘욱’운,

弓風石紅의 ‘웅’운,

河波梭蛾의 ‘아’운,

絶滅窗缺의 ‘열’운,

木玉成卜의 ‘옥’운이, 아주 멋지게 변화하면서 그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면서 중간에

금심 여첩장, 琴心 與妾腸, 거문고 마음은/ 제 마음과 같아

차야 단환속. 此夜 斷還續. 이 밤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합니다.

5언으로 파격의 변화를 주어 여심의 흔들림을 전하고 있으니 그 아니 멋진가?

 

역시 시귀(詩鬼)라고할 만하지 아니한가? 하하하 귀신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참고로 하나 더 올린다

 

이 하 선생에 대하여 전해오는 기이한 전설 두 가지를 소개한다.

1 . 이하(李賀)는 자가 장길(長吉)이고 정왕(鄭王)의 후손이다.

일곱 살 때부터 글을 잘 지었는데,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이 처음 그런 소문을 듣고 믿지 않다가,

이하에게 시를 지어보게 하자 붓을 잡고 바로 평소에 구상해둔 것처럼 써내려간 후에

스스로 〈높이 관리가 찾아오다(高軒過)〉라고 제목을 정하니, 두 사람이 크게 놀랐다.

 

이 때부터 유명해졌다.

그는 몸이 가냘프고 마른 데다, 눈썹이 하나로 붙어 있었고, 손가락과 손톱이 길었다.

또 글을 빨리 쓸 줄 알았다. 그는 매일 아침 허약한 말을 타고 외출하면서,

어린 하인에게 등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메고 다니게 했다가,

우연히 떠오르는 구절이 있으면 써서 주머니 속에 던져 넣었다.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놓고 시를 짓는 일이 없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끌어 모아 숙제를 하는 것 같았다.

날이 저물면 집에 돌아와 충분히 그것을 완성했다.

크게 취하거나 상중일 때가 아니면 항상 이와 같았고, 잘못된 곳이 있어도 깊이 살펴보지 않았다.

 

하루는 그의 모친이 하인에게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게 해서 써 놓은 글이 많은 것을 보고 곧, “이 아이가 심장을 토해낼 때에야 그만두겠구나!” 하고 화를 냈다.

이하는 부친의 이름이 진숙(晉肅)이었기 때문에 그의 재주를 시기한 인물들이 진사(進士)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였다.

한유가 그를 위해 〈휘변諱辯〉을 쓰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의 글은 기이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것을 숭상했고, 그렇게 지어진 내용은

모두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들로서 일반적인 글짓기와는 전혀 달라서

당시에는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남긴 악부(樂府) 수십 편은 운소(雲韶)의 여러 악공(樂工)들이

모두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협률랑(協律郞)을 지내다가, 27세에 죽었다.

그와 함께 노닐던 권거,양경지,왕공원(王恭元) 등은 매번 그가 글을 지으면 이따금 가져가곤 했다.

이하는 또한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의 시가 가운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드물다.  

 

2 . 이하의 모친 정씨(鄭氏)는 아들을 무척 염려했는데,

이하가 죽자 모친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의 꿈에 이하가 찾아왔는데,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 같았다.

그는 모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다행히 어머님의 아들이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도 저를 무척 생각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님의 분부를 받들어 시와 글을 훌륭하게 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단지 하나의 지위를 얻어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문을 키우고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아침저녁으로 봉양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하늘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록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상제(上帝)의 명을 따른 것입니다.”

모친이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이하가 대답했다.

“상제께서는 신선의 거처에 사시는데, 근래에 월포(月圃)로 도읍을 옮기시고,

새롭게 백요궁(白瑤宮)이라는 궁궐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재주가 있다고 여기셔서,

저와 여러 명의 문사(文士)를 부르셔서 함께 새 궁전에 대한 기록을 쓰게 하셨습니다.

상제께서는 또 응허전(凝虛殿)이라는 궁전을 지으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악장(樂章)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신선 속에 사는 사람이 되어 아주 즐겁게 지내고 있사오니,

바라건대 어머니께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모친은 잠에서 깨어 그 꿈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고, 이때부터 슬픔이 조금 누그러졌다고 한다.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전하는 이 하 선생에 관한 일화를 참고했슴

 

 

 

h*****k 2012.06.14.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