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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큉이라는 분은 '교회'라는 책에서 이런말을 했다. '실제적인 본질은 비본질속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본질을 부르짖지만 그본질은 다시비본질이 될수있다는 말이다. 교회에대한 것도 추상적이고관념론적인 비판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비판이 되어야 한다고 큉은 말했다... 대체나 먼소린지 정말 꼼꼼이 읽지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스큉의 입장에서라면 이책도 비판받아야 한다,,, 나도 이책을 정말 비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문제는 이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상이 맞기때문이다.. 아무리 한스큉이 본질도 비본질이 될수있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재체계속에서. 아니 복음의 원래적인 의미에서라도 한국교회는 본질에서 떨어져도 한참을 떨어진것같다.. 그증거를 들어볼까?? 이책에대한 리뷰들과 반응들을 보라..그리고 긍정의힘이나 잘되는나를 보라.. 바로 고개가끄덕여지지 않는가???
저자가 이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강조점은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한국교회에서는. 한국교회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가고 복음과 예수그리스도와 바울과 위대한 신앙의선배들의 모습과는 멀어도 한참멀어진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상황은 이건 무슨 기독교?? 기독교가 아니다..이건 복음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정말 신앙이라고 보기어렵다.. 그냥 조직관리이고 사람관리이고 세상조직들과 아니. 다른종교들과 다를바가 없다. 복받고 잘되고 축복을 빌어주고 사람들 위로해주고... 그것이 기독교인가?? 그것이 교회의 사명인가?? 아니, 그것이 복음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던 복음인가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기계가 되어버렸고 램프의 요정이 되어버렸다.. 교회는 온갖 신비주의 잡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신비주의..이슬람이나 조로아스터교.별이상한 종교에도 다있는 그런 신비주의 말이다....
본래의 기독교,참된복음..참된 십자가..하나님, 그리스도.. 진정한 믿음..이러한 고민들이 사라진 시대에 그러한 고민을 하게해준 저자와 책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쉬운점은 위에서도 잠간 언급했지만. 이책은 '원론'이라는 것이다....
각론이 아니다...원론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다보면 이 원론에 충실하지 못할때가 있다..사람이니까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정말 거의 완벽한교회라 할수있다.. 그러나, 목회자도 흠많은 인간인것을..어찌하겠는가.. 목회하다보면 그렇게 되는것을..어쩌겠는가.. 설교하다보면 좀 웃기기도 해야하고 마케팅적 요소도 들어가게 되고..그런것을,... 그래도 이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옳바르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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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1권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을 뒤 느꼈던 느낌과 다르지 않다. 다만, 약간의 괴로움이 더해졌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모델로 삼고 싶었던 빌하이벨스와 릭워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저자가 근거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척교회 컨설팅을 강조하던 한 실천신학 교수의 강의가 생각났다. 저자가 복음의 가치와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마케팅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에는 철저히 동의한다. 강단에서 죄와 회개에 대한 메시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또한 동의하고, 죄와 회개에 대한 메시지가 강단에 서기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있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세상 속의 성공적인 무엇인가가 성경을 통한 고찰없이 받아드려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느꼈다. 목회를 준비하는 한 사람으로써,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시대에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밀려온다. 그리고 동시에 마케팅 속에 교회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진정 하나도 없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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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 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독일 문학가 실러는 200여년 전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했다. 5월2 9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한국일보에 매주 화요일 문화평론 ‘상 상’을 연재한 진중권(44) 중앙대 겸임교수는 그의 논지에 동의를 하 건 안하건, 실러의 명제에 어긋나지 않는 글쓰기를 보여줬다.
특히 대중적 성공을 거둔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대해 “솔직히 말 해 봐주기 좀 민망했다”며 혹평한 칼럼 ‘심형래의 디워와 데우스 엑 스 마키나’ (8월14일자)는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네 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동료 지식인들의 비판까지 가세했지만 진 교수는 ‘대중의 반란’ ‘이른바 대중지성에 관하여’ 등 후속 칼럼을 발표하며 대중에 대해 지식인이 취해야 할 태도를 단호하게 보여줬 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인데 상처 받거나 혹 은 변심의 유혹을 받지는 않을까? ‘상상’ 연재의 마감을 즈음해 가진 인터뷰에서 진 교수는 “나는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다. 사랑을 받는 것은 스타들의 몫이지 ‘먹물’들이 추구해야할 일이 아 니다. 먹물들은 대중들의 사랑이 아니라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말 로 소신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렸다.
그는 미국에서 개봉한 뒤 대중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참패한 <디워 >의 말로를 거론하며 “(<디워>를 옹호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갔느냐?”고 되물었다. 그 논쟁은 마치 황우석 사태처럼 우리 대 중의 몸에 새겨진 ‘구술문화적 습속’이 빚은 촌극이라는 게 진 교수 의 주장이다. ... (중략) ...
진 교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더라도 지식인과 대중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며 “나는 나의 발언을 했을 뿐, 비난을 자처한 것이 아 니다”라고도 했다. 물리학자가 대중을 설득시키면서 이론을 발전시 킬 수 없듯 미학자인 자신은 자신의 영역에서 그 영화를 평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이 그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의 우중 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엘리트주의자일까? “대중은 두 가지 성향을 모두 지닌다”는 그는 “디워 사태 이후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격려편지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집단적인 감정을 표 출하는 우중이 있는 반면 식견을 쌓은 ‘대중지성’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활자로 된 사전을 능가하는 인터넷 사전인 위키피디아를 편찬 하는 대중들이 그렇다. ‘활자문화의 습속’ 이 새겨진 이들 사전편찬 자들은 공동체로 활동하지 않는 고독한 개인들이다.
‘구술문화’에는 분명히 참여와 열정이라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 장점을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냉정한 이성의 인 도는 불가결하다고 했다. 대중의 비난이 들끓게 되면 침묵하거나 수 위를 조절하는 지식인들의 성향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대중 들의 ‘열정’을 ‘꿈’으로 이끄는 내비게이션 역할은 이성이 담당해야 한다” 며 “그것은 지식인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사람을 호감과 비호감으로 나누어 판단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이성 적인 사회로 거듭나야합니다.” 진 교수는 “앞으로도 왕따가 되는 것 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07. 12. 2. 한국 일보, 이왕구 기자, 진중권 "나같은 '먹물'은 대중의 사랑보다 신뢰 받아야)
"왜 개독교가 되었나?" 얼마전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 가하다가 교정에 나붙어 밤중인데도 내 눈에 확연히 눈에 띈 글귀였 다. 살펴보니, 지난 11월 3일, 숭실대 기독인연합이 한경직기념관 에서 연 포럼의 주제였다. 그때 참여한 패널 중 하나가 바로 진중권 씨였다. 내가 알기로 비기독교도인 그를 참석시켜 쓴소리를 면전에 서라도 들어 고칠건 확실히 고쳐 보겠다는 의도였을까? 하여간 그 가 거침없이 쏟아낸 독설의 걸작 중 하나가 이렇다. "한 참가자가 성적 소수자의 차별금지 법안과 관련한 한기총의 움직임에 대해 묻 자, 진중권 교수는 “한기총은 사탄의 자식들이고, 독사의 자식들”이 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을 청소년 유해집단으로 분류하고 싶 다”며 “적어도 예수님은 팔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예수님을 팔고 있다”며 “열린사회의 적들”이라고 표현했다." (200 7/11/08 [02:10] ⓒ 뉴스파워,http://blog.naver.com/poemgene/1 20044324181) 전체 기사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욕설에 가까운 막 말을 내뱉었는지 현장에 없었어도 그 분위기를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를 초청한 당사자들의 소감이 어떠했을까? 모신긴 했는 데, 제대로? 아님 괜히?
여하튼, 나는 여기서 그들의 소감이 어떠해야 함을 논하려는 게 아 니다. 논점은 진중권씨의 자세에 있다. 실러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 된 한국일보의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언제 어디서건 사랑아닌 신뢰를 얻으려는 먹물로서의 면모를 포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그의 호기(豪氣)만은 알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이은 옥성호씨의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는 중이다. 논란 마케팅에 먹힌걸까?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나 제목부터가 끌리지 않았던 이 책이 상위 베스 트셀러 자리를 제법 오래 차지하고 있길래 사 본 나한테는 주효한 이유가 되겠다. 아무튼 여러 인터넷 서점에 달린 서평들만 봐도 그 가 한국 기독교에 일으킨 논란의 파장은 적지 않은 듯하다. 후속작 도 점점 그 여파를 타고 또다시 파란을 적지않게 일으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꽤 유익하게 읽고 있으나 그 내용을 간략히 라도 요약하고 넘어가기보다 정작 여기서도 내가 다루고자 하는 바 는 그의 진중권스러운 면모다. 무식해서 용감한걸까? 기독 지성이 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쯤 확인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 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 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 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 제사장 아론의 손 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 25:7~11)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 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 하겠느냐" (삼상 17:26)
"그러나 목회를 하는 시절, 나는 우리 공동체의 일원들이 (꽤 풍요 롭고, 교육도 잘 받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잘 아는 이들이더 라도) 너무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재산 을 보호하기 위해 값비싼 경비 시스템을 구입했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정교한 여러 무기와 핵무기가 가득 한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구현되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아예 비 관적이었다. 그들은 잔뜩 움츠리고 수심에 가득 찬, 무척이나 방어 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제 발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소심 한 삶으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유 진 피터슨, 자유, 17쪽)
비느하스나 다윗, 유진 피터슨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이 옥성호씨한테도 느껴진다. 다시한번 말한다. "어디 한번 확인해 보시라니깐?"
"만들어졌으되, 신은 강했다. 영국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신작 '만들어진 신'(김영사)은 올해 책 중 가장 빛났다. 이 책은 '극단적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문 제'라는 직격탄으로 국내외에 논쟁을 불러왔다. 선정위원 25인 중 20명이 이 책을 추천했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는 "비합리적 신 앙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 의미 있는 선동서"라고 했다. 7월부터 7만부 가량 나가 시장 반응도 좋았다. 도킨스가 신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 다면..." (동아일보. 2007. 12. 22. 토)
'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SFC) '드디어 나왔구나. 알리스터 맥그래스네? 와우! 이 정도면 특급 소방수다. 도킨스. 당신 이제 끝이야.' 내 이런 반응이 호들갑스러울수도 있겠다. 하 지만 도킨스가 올 한해 깝죽거렸던 꼴에 비한다면 너그럽게 여겨줘 도 무방하리라 본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내가 기독교 신앙에 잔뜩 의심을 품고 오락 가락하며 지내던 고3 시절에 당시 주일학교 선생님이 선물해 준 '회 의에서 확신으로'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인물이다. 지금도 믿는 자의 의심은 죄가 아니라 확신에 이르는 통로라는 내용으로 기억하 고 있지만 그때는 그것이 산적한 당장의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지 못해 큰 덕을 못 봤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하나님은 나의 궁금증을 점점 믿음의 반석에 이르는 계단 삼아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그리고 난 여전히 의혹에 휩싸일 것이 나 점점 더 확신 가운데 견고히 설 것임을 믿고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 때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맞불을 놓았다. 다 빈치 코드는 없다 (김영봉), 다 빈치 코드의 진실 (마틴 룬), 리 스트로벨의 다빈치 코드 해체, 다 빈치 코드 깨기 (어윈 루처), 예수님과 같이 본 다빈치 코드 (이인석), 다 빈치 코드 진실인가 허구인가 (행크 헤네그라프), 다빈치 코드 바 로잡기 : 다빈치코드의 허구성 철저해부서 (동영상 CD포함) (니키 검블), 다빈치 코드가 뭐길래 (신성욱), 다빈치 코드 그 해답을 찾아 서 (조시 맥도웰)..... 에구, 그만 할란다. 나는 영화만 봤는데 도대 체 저 따위 허무맹랑한 스토리에 현혹되어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굳이 나서서 해야 할 말을 과감하게 해 야 직성이 풀리게끔 하는 그 무엇이 내 중심에도 있는가? 시의적절 하게 종들을 통해 말씀을 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상 옥성호씨를 보며 해 본 생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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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에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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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구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 복음이 아닌 "다른방법"으로 숫자를 늘여 가는 것, 거룩하신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친절하신 하나님만을 말하고 있는 모습을 마케팅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결코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마케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정의와 함께 마케팅 교회의 시대적, 교회적 배경을 기록하였는데,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래그머티즘에 관한 내용은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쓰여져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교회적 배경에서는 근대 신학의 흐름도 볼 수 있다. 물론 여러군데에서는 조금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비판조로 느껴질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합당한 면이 많았던 것 같았다. 사실 마케팅 교회의 모델 부분에서는 좀 멤도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 책이 말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책 종반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강조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곧 마케팅에 물들게 된 이유로 다가왔다.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교회는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마케팅을 도입하게 되는 교회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누구보다 교회의 사역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인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교회와 경쟁하고 있거나 숫자적 개념의 성장과 목표를 세우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깨닫고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바른 교회관을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저자의 한마디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결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믿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단단히 작정하시고 만드신 방법입니다. 인간이 결코 십자가를 믿은 후, "내 힘으로 믿었다. 나의 결정으로 이 십자가를 선택했다."라는 말이 아예 원천적으로 나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드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믿는 것 외에는 결코 다른 길로는 믿을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말이 안 되는 구원의 방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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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만한 큰 교회가 몇 개 있다. 종종 그 교회들을 볼 때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화가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과 능력주의, 결과지상주의에 물든 교회의 적나라한 면을 보여주었던 한 성도의 인터넷 댓글이 충격적이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의 비리를 비판하는 글에 달았던 그가 댓글은 "여기 의견등록자들은 50명 이상 출석 성도 될까요?... 여기 글 남기는 목사들 중에 자기가 사역하는 교회에 50명 이상 전도했거나 5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 담임 목회자면 난 그들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절감한다. 현대 철학을 휩쓸었고 지금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다원주의)과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를 누구보다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받아들였는지 놀랐다. 하나의 진리만을 믿어야 하는 기독교가 다원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진리는 왜곡되고 신앙의 순수성은 더럽혀질 것이다. 실용주의를 받아들인다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도리어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많은 수의 영혼을 교회로 모으겠다는(하나님께로 인도하겠다는 생각과 같지 않을 수도 있는) 생각은 '믿음'으로 포장되어 교회를 마케팅으로 물들였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래그머티즘을 철학으로 삼은 현대인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는 진리를 어느 정도 포기했다.
저자는 사람을 많이 모은 교회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인가. 현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라져가고 있다. 신과 피조물의 자리가 뒤바뀌고 하나님은 친절하게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의 존재만 되었다. 죄를 미워하고 죄 짓는 인간을 보며 슬퍼하시는 하나님은 사라졌다.
1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이어 명쾌한 논증을 펼치며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다. 흥분되었던 논조는 많이 가라앉은듯하고 비판 과정 중에 듣는 이가 마음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1부의 큼직한 글씨가 마음에 들었는데 분량 때문인지 글씨가 도로 작아져서 아쉬웠다. 참고문헌에 "완전한 진리"가 없음이 의아할 정도로 한국판 "완전한 진리"라 할 만 하다. 특히 "완전한 진리"에서 다룬 복음주의에 대한 내용과 비슷한 논조를 토대로, 실제 미국의 대형 교회의 사례라는 팩트를 가져와 문제를 제기한다. 이 2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중에서 왜 우리나라 교회들이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과 핵심을 파헤치는 본론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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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비해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윌로우 크릭 교회나 새들백교회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게된 점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저자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엔터테인먼트에 물든...>까지 읽으면 저자가 비판하고 싶은 기독교의 부족한 점들이 무엇이 있는지, 한 차례의 투어가 끝날 것 같다.
두 권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읽으면서, 일관적으로 드는 생각은 저자가 지향하는 생각들 역시도 저자가 비판하는 은사주의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같은 논리로 비판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두권을 계속 읽으면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저자의 글이 주로 외국의 신학자들의 글을 대부분 옮겨놓은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저자가 정말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글을 쓰는 것인지, 외국의 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하다보니, 그 글을 다시 번역해주는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잘 궁금하다. 표절은 회피하겠지만, 이 책의 출판사 대표가 칭찬하듯, 정말 한국 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냈다기 보다는 미국 교회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은 혼동을 읽는 내내 가졌다.
또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비판이 주로 다른 사상가의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성경말씀을 예로 들고 있기는 하나, 그 성경말씀 역시도 다른 사람의 주해를 통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성경을 전문적인 신학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주장을 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루터와 구텐버그에 의해 성경은 더이상 사제들의 전유물이 아닌, 신앙인 모두의 것이다. 지혜롭고 지식이 충만한 사람들만이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아니기에 성경은 전문적인 번역이 또는 해석이 필요하다기 보다, 원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부분 사본인 성경의 원문이 무엇이냐에 따라, 좀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 논의는 여기까지하자.) 저자의 성경해석은 지엽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렇지만, 한국의 교회 목회자들이 한번쯤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조용히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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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심리학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인해 교회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마케팅 기법이 교회에 도입되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교회에 출석하도록(구원받을 수 있도록이 아닌!) 고안된 교회 마케팅 기법은 결국 기독교 복음의 상품화를 초래하고 말았고, 마케팅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구매자 중심의(이 경우에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한) 변형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변형은 결국 교회에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저자는 마케팅 기법이 교회에 도입되게 된 배경을 살피고, 빌 하이벨스 목사의 윌로우크릭 교회와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에 나타난 변화와 문제점을 실례로 든다. 나아가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숫자에 관한 숭배가 자리 잡고 있음을, 즉 ‘마케팅 교회’는 사실 물량을 숭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낸다.
2. 감상평 。。。。。。。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 이 책을 보면서 딱히 반대할 만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물론 이런 책을 읽고 반발할 사람들은 애초에 이런 책을 보지도 않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야 이런 책이 출판되었다’며 마냥 반길 수만도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안타까운 내용이니까. 사실 이 책에 지적되어 있는 내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잔뜩 쌓이기 시작해, 이젠 감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전엔 목사들 사이의 고민이었지만, 이제는 목사 이외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더 이상 참기 어렵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들밖에 없는 것 같다. 책의 지적을 요약하면 한 가지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덧 교회도 규모의 경제를 추종하고 있고,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를 받아들여 교회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세상 따라잡기의 결과가 세상을 능가하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기보다는, 세상에서 내놓은 것들의 아류작들밖에 보여줄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다. 그러다보니 퀀틴 슐츠가 지적하는 것처럼,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돌리겠다고 만들어진 기독교 텔레비전이 도리어 불신자들로부터는 외면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진품이 옆에 있는데, 그리고 비용의 차이도 별로 없는데, 굳이 복제품을 선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교회가 교회만이 가지는 독특함을 버리고 세상과 비슷해지려고 애를 쓸수록, 세상이 더욱 교회를 멀리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해답은 교회 자체의 성장만을 바라보지 말고, 교회가 가리키는 그분께 집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분의 통치를 확장시키는 도구인데, 도구가 자기를 개량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 정작 그 도구로 해야 할 일은 잊어버린다면 얼마 가지 않아 버려지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결국 바른 교회론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온 교회구성원들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달아야만 문제는 고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책이 이런 필요를 촉구하는 좋은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출판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띄는 큰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쉽지만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물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조용함 자체가 그들이 마케팅에 목을 매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책은 비교적 평이하게 쓰였다. 전작보다는 페이지가 더 늘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기가 힘들 정도의 내용은 아니다. 아마도 책 전체에 담겨 있는 교회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에 자연스럽게 공감을 하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을 읽으며 아쉬웠던 투박한 문체는 조금 교정되었고, 자신의 주장을 절제하며 제시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만 책의 프레임과 분석 자체는 다른 여러 외국 저자들 - 이를 테면 마이클 호튼 같은 -에 의해 분석된 것들에서 크게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사례분석이 대부분 미국교회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좀 아쉽다.(물론 왜 그럴지 짐작은 간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미국교회의 역사를 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좀 씁쓸한 일이다. 읽어보라. 확실히 추천도서 목록에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