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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또래 아이들 마음을 정확하게 드러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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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애쓴다.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시험기간이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에서 부딪친다. 바로 친구문제.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부모보다는 친구에게 더 마음을 열고 오로지 친구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괜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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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애쓴다.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시험기간이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에서 부딪친다. 바로 친구문제.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부모보다는 친구에게 더 마음을 열고 오로지 친구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괜한 감정싸움을 하곤 한다.

 

이 책을 딸이 먼저 보았다. 나는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땠냐고 물으니 '딱 내 얘기네.'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 보니 정말 딸 얘기다. 한창 모든 촛점이 친구에게만 향해 있는 나이의 여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니 딸의 말이 정확한 셈이다.

 

세 편이 들어있는데 두 편은 정확히 주제가 모아진다. 모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한 친구만 그러질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그 친구에게 악착같이 다가갔으나 결국 자기 기준에 따라 친구를 내치는 이야기 <수호천사>. 어찌보면 친구란 생각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건만 자혜와 선우 사이에는 그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위태위태 한 것이 바로 일방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혜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했고 자신만 이해받으려고 했으니까. 상대를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선우의 상황과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남 보다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니 어찌보면 자혜의 모습이 바로 현재의 대다수 아이들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에 선우를 이해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약간 억지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 <셋 둘 하나>는 정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자기 기준에 의해 친구를 사귀고 모두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들은 서로 자신만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특히 외톨이 친구를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였을 때는 더욱 더. 셋이 하나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넷이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셋과 하나였고 더 알고 보니 하나 하나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작가이기에 가능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으며 모든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리고 두려운 두 번째 이야기. 만약 나에게 이 또래의 아이가 없다면 객관적이며 모범적인 대답을 해 줬을 것이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으니 그냥 지켜봐 줘라라고. 그러나 이미 같은 또래 딸이 있는 엄마로서 그처럼 냉혹한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회'에 합류하면 안될까.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아주 뛰어나지 않을 바에는 평범한 것이 최선인데. 이렇듯 효주 아빠가 하는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게 바로 '사회화'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란 것일까. 그나저나 내 딸도 만만찮은 성격인데 이걸 읽고 따라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별별 걱정을 다한다.

 

그나저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어떤 판단을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지만 초등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비록 나이는 한 두 살 차이라지만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고 취급하는 문제도 다르다. 이래서 다 '때'가 있는 것인가보다.

l*****8 2007.1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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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청소년기의 감성을 다시금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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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청소년기의 감성을 다시금 느끼면서...]     실은 잘 모르던 작가이다..최나미... 작가에 대한 인지도 없이 책을 보는 것은 새로운 떨림을 준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궁금증을 가지고 보는 것은 아무도 없는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과도 같다고나 할까?   최나미의 창작동화에서는 아이의 엄마인 나로써는 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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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청소년기의 감성을 다시금 느끼면서...]

 

 

실은 잘 모르던 작가이다..최나미...

작가에 대한 인지도 없이 책을 보는 것은 새로운 떨림을 준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궁금증을 가지고 보는 것은 아무도 없는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과도 같다고나 할까?

 

최나미의 창작동화에서는 아이의 엄마인 나로써는 학창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소설이었다. 단지 그 시절의 일화를 떠올린다기 보다 잊혀졌던 순간의 기억과 감성, 그리고 잊혀져있는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먼 그리움과 아련한 세상에 대한 반항과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의 얼굴을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이야기 '수호천사','마술모자','셋 둘 하나'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이에서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중간단계에 있는 아이들이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에 대한 흔들림도 자각도 강하면서도 너무도 거칠고 어른보다는 훨씬 순수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통과의례에 있는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말이다. 작가의 시선은 그런 아이들에게 늘 향했음을 책을 읽으면서 감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쓰였다면 그 시기의 아이들의 감성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그렇지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없을거라고 여겨졌다.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선우와 친해지고 싶었던 자혜는 누구보다 당당한 아이였다. 그런 자혜를 모두 부러워하는데 유독 무덤덤한 선우를 위해 자혜는 우정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불사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남들이 보는 정다운 친구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길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선우를 위해서 선우 아버지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자혜의 모습에서 자혜는 자신의 위한 수호천사 대신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수호천사가 되었으리라...

 

'마술모자'에서의 효주는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뒤늦게 안 부모님의 이혼사실로 상실감을 겪는 소녀이다. 중학교 가기를 거부하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반항적인 효주..중학교를 안가는 것이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건 아닌데..라고 하는 효주의 모습을 보면서 마술모자를 쓴 아주머니는 평범함 속에 깃든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준다. 부족한 한 부분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곁에 있는 다른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되돌리기 늦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효주가 마지막에 엄마의 전화번호를 다시 찾는 장면에서는 결합되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분명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족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작품인 '셋 둘 하나'는 절친한 친구 세 명과 왕따를 당하는 한 친구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셋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면서 안정적인 숫자라고 생각되어진다. 이런 셋의 구조 속에 등장한 또 다른 한 친구..그러나 넷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친한 무리 속에 들어선 은혜는 그들과 친해지고 같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국 신뢰받지 못하는 우정에 배신감을 느낀다. 은혜가 돌아간 뒤 남은 세 명의 친구들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이던 우정은 어쩌면 서로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어막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그리고 셋이 철저하게 각각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을 알아가는 성장통의 한 과정처럼 여져겼다.

 

세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청소년기를 문뜩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반항으로 가득찬 시기. 이유가 없이도 세상을 향해 독기를 내 뿜을 수도 있었던 그 시기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이면서도 돌아보면 내가 변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시간이었음도 뒤늦게 깨닫는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예전의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내게 만약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도 생각해 본다.

아직은 아니지만 몇 년이 지나면 내 딸아이도 이런 방황과 고민을 하는 시기가 있을테지..내가 그럴 때 교과서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으려면 엄마가 아닌 이 시기의 아이들의 감성과 아픔도 다시금 느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초등 고학년의 심리를 잘 잡아내는 작가..라는 프로필이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c******u 2007.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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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여는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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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2, 1. 발사! 카운트다운은 숫자를 거꾸로 헤아린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는듯 원점으로 돌아오는 카운트다운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존의 것을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0의 상태에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지점으로의 회귀에 무게를 실어 주고 싶다. ‘셋 둘 하나’라는 특이한 제목을 보면서 과연 어떤 내용일까하는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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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2, 1. 발사!

카운트다운은 숫자를 거꾸로 헤아린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는듯 원점으로 돌아오는 카운트다운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존의 것을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아무 것도 없는 0의 상태에서 앞으로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지점으로의 회귀에 무게를 실어 주고 싶다.

‘셋 둘 하나’라는 특이한 제목을 보면서 과연 어떤 내용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수호천사, 마술 모자, 셋 둘 하나의 세 단편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편의 것을 제목으로 삼은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글을 읽어나가며 단지 한 단편의 제목이 아니라 세 글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모두 해결되어 슬프게 혹은 기쁘게 마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의 끝이 새로운 시작을 열어 놓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아이로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는 자혜. 그래서인지 늘 당당하다.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친구들의 관심조차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혜에게 의외의 적수가 나타난다. 전학 온 선우의 엉뚱스러움은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 선우를 견제하던 자혜는 적보다는 친구로 만들기로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선우에게 영원한 우정을 맺으려는 자혜에게 선우는 칼날을 꽂는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선우의 말에 자혜는 선우에게서 멀어져간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먹을 것이라고 하는 선우에겐 ‘영원’이란 의미가 부질없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기본적인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먹을 것의 소중함을 부르짖는 선우의 마음을 자혜를 헤아리지 못했다. 인간의 감정이란 일방적일 수 없다. 일방적이라면 누구든 한 쪽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귀신 소동을 통해 선우의 아픔을 알게 되고 선우의 손을 잡은 자혜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혜와 선우의 우정은 또다른 시작을 열었다.

중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효주는 자신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고집쟁이, 독불장군으로 문제아 취급을 받는 자신이 중학교에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아빠도 할머니와 고모의 걱정어린 잔소리도 효주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갈등으로 밖으로 나온 효주는 손수레에 여러 가지 물건을 싣고 다닌 아줌마를 만난다. 마술 모자로 덮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가 효주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족이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마술 모자에 빌고 피붙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사는 아줌마와의 만남을 통해 효주는 노래의 정체를 알게 된다. 부드럽게 머리를 매만지며 불러 주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 속에서 발견한다. 의도적으로 아니라고 부정하던 엄마를 다시 찾는다. 일상적인 생활을 거부하던 효주의 반란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여 다시 시작된다.

삼세판. 3이란 숫자가 적용되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런 3에 대한 연구마저 있었으니 참 희한한 숫자다.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완전함을 찾고자 했음일까? 단짝 친구 세 명은 늘 누군가는 하나가 된다. 서로에게서 그 하나가 되고 싶지 않은 위태위태함을 발견한 재희는 전학 온 왕따 은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함께 한다. 비로소 둘 둘의 편안함을 발견한 친구들이 우정은 평온을 맞은 듯 하지만 사회 시험을 통해 금이 간다. 자신과 함께 해주는 친구들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은혜의 절절함을 믿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은혜를 몰아친다. 함께이면서도 늘 셋과 하나였던 은혜의 비참함을 아이들은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들 자신들이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잡아 둔 것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들의 우정이 비겁했음은 인식하고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어야 함을 깨달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우정이 자랄 수 있는 시작점이 생긴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수많은 카운트다운을 통해 새로 시작하지만 늘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오늘이 바로 그 카운트다운의 0이 되는 날임을 안다면 오늘보다는 한 뼘쯤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t******6 2007.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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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성장통을 겪으며 커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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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과 동일한 <셋 둘 하나>와 <수호천사>와 <마술모자> 세 편의 단편을 읽으며 한창 친구들과 구체적이고도 본격적인 관계형성에 한창인 딸아이가 떠올랐다.   1,2 학년때와는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두루뭉술하던 친구관계가 보다 구체적으로 맺어지고 있음을 딸아이와의 대화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다. 20여 명이 되는 같은 반 여자친구들 가운데 3~4명과 보다 특별한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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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과 동일한 <셋 둘 하나>와 <수호천사>와 <마술모자> 세 편의 단편을 읽으며 한창 친구들과 구체적이고도 본격적인 관계형성에 한창인 딸아이가 떠올랐다.

 

1,2 학년때와는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두루뭉술하던 친구관계가 보다 구체적으로 맺어지고 있음을 딸아이와의 대화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다. 20여 명이 되는 같은 반 여자친구들 가운데 3~4명과 보다 특별한 사이로 어느새 '베스트 프랜드'라는 이름까지 만들어 벌써부터 자기들만의 크리스마스파티와 잠옷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 세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고학년들로 딸아이보다는 더욱 구체적인 주제로 다뤄지고 있지만 머지않은 딸아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같아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선우를 둘러싼 또래 아이들의 위기와도 같은, 그래서 더욱 없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성장통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호천사>는 다시 읽으면서 한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옳든 그르든 부모(어른들)의 이끌림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그러나 선우와 아이들은 용기내어 말한다. '우리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획일화된 교육의 그늘아래 조용히 상처입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마술모자>의 효주.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겠다는 효주의 선언은 어른들에게 상식을 벗어난 무모한 짓이라 생각되지만 그러한 결정에 이유있는 그리고 용기있는 효주의 이야기는 다람쥐쳇바퀴 돌듯 하루를, 한 달을, 현재를 그리고 오랜 미래를 살아갈 요즘의 아이들의 생활에 물음표가 던져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왕따를 주제로 한 <셋 둘 하나>. 내 딸아이도 그렇지만 외동이 많아진 아이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혼자이기를 거부한다. 특히 학교나 학원 등의 처음 집단(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어쨋거나 무리속의 일부이기를 희망한다. 무리와 조금의 틈이라도 느껴지면 불안해 하며 어쩔줄을 모른다. 내 딸아이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집단생활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서는 생각이 통하는 몇몇 아이들과 클럽을 만들기까지 하며 나름대로의 무리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셋 둘 하나>에서 겉으로는 '셋'이라는 똘똘뭉친 무리로 여겨지지만, 그 속에는 어김없이 둘과 하나로 나누어져 왕따아닌 왕따(상대적 소외감)를 느끼게 된다. 만약 재희무리와 은혜가 처음부터 넷이었다면 넷은 좀 더 안정적이었을까??

 

나 역시 외동으로 자라 하나(혼자)라는 외로운 성장통을 지독히 겪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는 혼자에 익숙해져 있다. 특별한 관계보다는 어느곳에도 한정되지 않고 두루두루 맺고사는,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로운 하나(혼자)......

 

아마도 아이들은 나름의 성장통을 이겨내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됨을 시간이 흘러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씩씩하게 성장통을 극복하기를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

 

 

 

j************4 2007.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