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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읽고, 두 번째로 이 책을 선택했다. 이 글도 단숨에 모두 읽어내려갔다. 너무 좋은 소설을 읽으면, 뭐라 말하거나 글로 쓰기가 싫어진다. 어떠한 감상을 글로 옮길 때 퇴색되는 그 무언가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다만, 슈사쿠의 글을 모두 읽고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
| 침묵으로 유명한 엔도 슈샤쿠의 또다른 명작. 처음에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해서 인도가 나왔을 때 당황스러웠다. 인도에 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2차세계대전 일본군이 미얀마에서 패퇴하고 그 과정에서 군인들이 겪는 일이 담긴 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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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에서 건져 올린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깊은 강>을 읽고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쓴 <깊은 강>에 눈길을 적시며 속담 하나를 머릿속에 띄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물의 깊이는 가늠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음을 모르지 않는다. 여기에 ‘신의 (부)존재’ 혹은 ‘선과 악’이라는 대상을 놓고 다시 비틀어본다. 그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엿볼 수 있어도 깊디깊은 물 속은 헤아릴 수 없을 듯하다. 소설과 연관지어 보면 물은 곧 갠지스강이다. 문득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갠지스강에 아버지의 유해를 띄워보내며 희뿌연(이라 쓰고 ‘오염된’이라 읽는다) 강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내 그가 토해낸 물이 더해져 한층 더 깊어진 것은 결코 아니겠으나, 망자를 향한 애도와 슬픔으로 강의 깊이를 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소설은 인도로 단체 관광(觀光,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삶에서 길을 밝혀줄 어떤 빛을 보길 바랐다는 의미로) 가서 각자만의 무언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투병 끝에 죽으면서 환생하리라는 아내의 유언을 좇는 직장생활자 이소베, 수술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게 구관조 덕분이라 여기며 사는 동화 작가 누마다, 전쟁터에서 시체를 나눠 먹으며 자신을 살리려 했다가 끝내 미쳐버린 전우를 기리는 기구치, 대학 시절에 희롱했다 버린 동창이자 가톨릭 신자인 오쓰의 현재가 왠지 모르게 궁금한 기혼 여성 미쓰코. 네 사람은 삶 속에서 얕거나 깊게 신의 존재를 인정 또는 부정한다. 각기 다른 처지이기에 독자로서 그들의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인도에 와서 차츰 흥미를 일으킨 것은 불교가 태어난 나라 인도가 아닌, 청정과 불결, 신성과 외설, 자비와 잔인함이 혼재되어 공존하하는 힌두의 세계이다(228쪽).” 인도에 대하여 스스로 오도(誤導)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인도하면 불교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힌두교의 영향력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독자에게 소설이 제대로 된 길로 인도(引導)해준 것이다. 등장인물들도 처음에는 불교가 주는 안정감이 아닌 힌두교의 혼재된 분위기를 낯설게 느낀다. 쉼 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갠지스강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마다의 삶 속 어딘가에 내재한, 혼란스럽지만 정화해야만 하는 무언가에 대하여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듯 그들의 과거사를 하나씩 듣노라면 마치 현재의 장소로 모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나눈 동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미쓰코와 누마다는 최애 ‘피에로’를 갖고 있는데, 전자가 광대라는 타인이라면 후자는 광대 승천하게 만드는 타자로 볼 수 있다. “신(神)이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인간이 진심으로 이야기 나누는 대상을 신이라 한다면(121쪽)”, 그것이 바로 구관조라고 누마다는 말한다. 반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오쓰는 신을 부정하는 미쓰코에게 신을 ‘양파’라 불러도 괜찮다며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양파는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94쪽).”라고 덧붙인다. 두 사람의 통찰에 기대어 신이라는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외치는 뭇사람과 달리 방구석 여행자를 자처하는 독자에게 책이 인도 여행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 같다. 더불어 삶과 죽음의 의미와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도 다시 한 번 음미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아툴 가완디처럼 갠지스강의 강물을 머금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나 역시 오묘한 맛과 향 그리고 이질감을 참을 수 없어 뱉어내고 말 테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쓴맛, 즉 고통임을 깊은 강이 일깨워주려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구나 쓴맛보단 단맛 가득한 인생을 꿈꾸고 또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기에 자기만의 레시피로 삶을 요리하는 법을 터득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깊은 강>에서 그 실마리를 건져 올려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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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인도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인간의 죄와 구원, 그리고 신의 존재를 조용히 되묻게 되었다. 무겁지만 깊이 있는 주제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읽고 난 뒤 오래 생각이 남는 작품이었다. |
| 전 작인'침묵'에서 신의 부재를 고민했던 작가가 내놓은 최종적인 답안지다. 인도의 갠지스강을 배경으로, 속물적인 인간부터 구도자까지 다양한 군상이 모여든다. 강은 시체와 쓰레기, 기도를 차별 없이 모두 받아들인다. 작가는 특정 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대신, 삶과 죽음, 성스러움과 더러움이 뒤섞여 흐르는 것이야말로 진짜 구원이라는 다원주의적 결론을 내린다. 감동적인 화해보다는, 인생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거대한 '처리장'으로서의 강을 묘사했다. |
| '바다와 독약'에 이어 엔도 슈사쿠의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깊은 강'도 추가적으로 구매를 하였고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동양 대문호의 생각과 사상, 관념을 거쳐서 나온 기독교. 기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 서양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들을 한번은 얘기볼수 있을듯합니다. |
| 엔도 슈샤쿠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관속에 침묵과 함께 깊은 강을 함께 넣어달라고 했다고 하네요. 가톨릭 신앙을 넘어 더 큰 강으로 흘러가는 소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매번 다른 감동을 줍니다. 엔도 슈샤쿠의 다른 책들도 번역이 많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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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입니다. 엔도 슈사쿠가 집필한 마지막 장편 소설로 작가의 평생 탐구했던 주제가 집대성된 책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따라 읽다보면 죽음과 상실 내면의 신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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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의 깊은 강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종교적 탐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인도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구속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다루며, 일본인 주인공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종교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신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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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님의 대작 슬픔을 치유하는 깊은강. 먼저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각자의 걱정,이야기를 소설 내부에서 이야기합니다. 하나같이 문제점이 있죠.죽은 부인을 그리워 하는 아저씨, 자신이 아끼던 새가 죽고 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동화작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그로 인한 아픔으로 힘들어 하는 퇴역 용사, 사랑에 대해 무감각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며 아파하는 여성. 이 인물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간직한 채 동일한 장소로 여행을 떠나면서 발생하는 내용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겐지스 강을 통해 아픔을 마지막에 치유하며 막을 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