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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잠자기 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필자 또한 그 들 중 하나이다. 침대에서 읽는 책은 꿀맛이다. 그 꿀맛에 이끌려 잠자리에서 책을 본다. 책 <침대와 책>은 필자의 호기심을 끌었다. 게다가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부제까지 달려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책 판형도 일반적인 판형에서 세로로 길이가 긴 판형이었다. 책 표지도 한 여인이 책 한 권을 집어들고 침대로 향하는 그림이 파스텔톤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 정혜윤의 독서력을 인정한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은 듯하다. 부러울 정도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읽은 책의 독서기와 자신의 경험담을 잘 섞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음식을 잘 섞으면 새로운 맛을 내기도 하지만 잘못 섞으면 혀를 괴롭히는 맛을 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고 느꼈다. 여기에 가끔 언어 유희까지 섞으면 더욱 괴이하다. 또 각 장마다 기복이 심하다. 어떤 장에 있는 글은 하드보일드같은 문체이지만 어떤 장에 있는 한 문장의 길이는 반 페이지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권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가십을 이 책 한 권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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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책 속 구절을 가지고 표현해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 수많은 책을 읽고, 소화하고, 자기화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책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지경까지 이른 지적 편력에 『침대와 책』은 나에게 우선 놀라움의 대상이다.
그녀는 이렇게 책으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쉿! 오늘은 내가 외로운 날이야. 오늘 누구만큼 외로우냐 하면 『검은 책』에 나오는 이스탄불의 칼럼니스트 제랄만큼 외로워.”(외로운 날 꼭 듣고 싶은 말 중)
“오늘 내가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장에서 뽑은 책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 통행로』 그리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이런 책들은 반성을 권하지 않아서다. 이런 책들은 반성하라고 말하는 대신 성찰하라고 말한다. 쉽게 화해하라고 말하는 대신 오랫동안 싸우라고 말한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대신 극복한 연후에 사랑하라고 말한다. 내가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삶뿐이며 삶을 증오할 때가 삶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알려준다.”(밉고 싫고 감정은 파도치고 삶은 휘청대는 날 중)
『침대와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눈물이 나는 장면과 맞닥드리게 되는데,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
“예전에 더 어리고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땐 집에 와서 남반구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마룻바닥에 펼쳐놓고, 세상의 중심이 서울이 아니라 시드니, 오클랜드, 난디 같은 도시인 지도들의 의미를 읽어보곤 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와 완전히 거꾸로인 지도들의, 의심할 바 없어서 처음엔 어처구니없지만 나중엔 당당해지는 의미들.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 지도들의 선을 따라 그리다 보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관점이 이동되면 차분해지곤 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 명함은 트레이싱 페이퍼 용지다.” (밉고 싫고 감정은 파도치고 삶은 휘청대는 날 중)
내 생각과 내 방식이 옳고, 내가 정당하다는 독선에서 비롯된 다툼과 짜증, 열받음, 분노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관점이 이동되면 차분해지곤 했다.”라는 말.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다'라는 푸념을 듣고 있는 내가 눈물을 쏙 뺄 만큼 나 자신을 성찰하고 또 자각하게 한다.
“오로지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같기 때문이다. (혹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심하게 되었다. 뭔가 행동해 줄 수 있을 때에만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할 때)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라는 말을 하는 관계를 늘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사회에서 할 일이다.”(별일 없이도 기분 좋아지고 싶은 날 중)
‘우리’라는 말은, 뭔가 행동해 줄 수 있을 때에만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 ‘우리’라는 말을 하는 관계를 늘리는 것, 그것이 자신이 이 사회에서 할 일이라는 이 말에 배어 있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 그리고 애정이 혹시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착각에 살짝 눈물이 나왔다는 주책 아닌 주책.
그녀는 ‘책’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한다. 방점을 ‘책’에 두는 것과 ‘자기 이야기’에 두는 것에 따라 읽는 재미도 다르고, 느낄 수 있는 공감의 폭도 다르리라 생각한다. 내가 권유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에 방점을 두는 것!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맺는 그 숱한 사람들을 참으로 끈적끈적하게도 사랑하는 이 ‘여자’의 진하고도 깊은 정서를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
추신 : 이 책을 19세 이하에게 권유하고 싶지 않다. 사실 30대 이상의 성인 남녀만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초라하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의 모든 사랑 노래와 사랑에 관한 구절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타인의 슬픔에 같이 울어줄 수 있을 만큼 슬픔을 경험해본적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의 진정한 독자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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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황경신의 책을 읽는 듯한 아니 글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대체 그 책들과 어우러진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글들이 붕붕 떠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아니 구입하기 전부터 이 책에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컸다. 그런데 감각적이고, 유려하고, 쿨하게 쓰여진 글,,그리고 해박한 책에 대한 지식까지 그런데 그것뿐이다. 왜 그녀의 독서기가 내 마음에는 천착되어지지 않는 것일까,,, 정혜윤 그녀는 리얼리스트일 줄 알았다. 황경신같은 뜬 구름잡는 작가가 아니길 바랐다. 황경신 작가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녀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고, 그야말로 편력일 뿐이다.
아 이 안타까움,,마지막까지 읽는 데는 엄청난 고통을 동반해야만 했다는 사실, 그녀는 알까?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지만,,,, 그러니 제발 정혜윤 피디님,, 조금만더 땅에 발을 붙이세요,,,, 그리고 힘껏 그 땅을 밟으세요... 당신이 밟은 그 땅 위로 당신 뒤를 따라 걸어볼 용의는 얼마든지 있으니,,
제발 허공에 뜬 구름 잡는 듯 쓰지 마세요,, 어떠한 작가가 되었든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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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하면서 늘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 책의 충동구매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사고 싶은 책이 생기면 메모해두었다가 서점에 나가서 실물의 책을 살펴보고나서 구매를 결정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온라인에서 관심가는 책을 클릭 몇 번하다가 느낌이 좋으면 일단 구매부터 하는 습관이 들었다. 이렇게 구매한 책들이 책장에 쌓이고 나면 먼저 손이가는 책들부터 보게되고 충동구매했던 책들은 뒤에 남아 언젠가부터는 수십권씩 내 손을 기다리며 자리를 차지하게 되곤하는 것이다. 이번에 날을 잡아 그동안 밀려왔던 책들을 다 읽어버렸고 앞으로 다시는 책을 충동구매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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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그리고 관능적인 독서기' 라! 이런 제목의 글을 보고 여자들은 모르지만 그냥 지나칠 남자가 있을가? 인터넷 서점에 이러한 제목의 글이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마우스에 올려진 내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난 그렇게 그녀의 침대와 책을 엿보고 싶었다. 난 제목에 낚였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침실에서 본 것은 "울고, 우울하고, 떠나고 싶고, 사랑에 아파하고, 아름다워지고 싶고, 자유와 평화를 원하고, 늙음에 대한 걱정,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2007년)에서 자신의 침대에서 우리들에게 책을 읽어준 사람은 현 방송사 PD인 정혜윤이다. 주로 시사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저자의 이 책은 전혀 시사적이지 않다. 아주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떨림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있는 가사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지'와 'Q'의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이 끝이 났다'로 '사랑이 끝나버린 걸 아는 순간'이란 제목의 글은 시작이 된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너에게'라고 서명이 되어 있는 책을 받아볼 일이 없어지는 것이고........'세일하는 와인을 몇 병 샀어. 치즈 사 와. 같이 먹게'란 말을 들을 일 역시 없어지는 것이다. 또 이런 문장을 잃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멋지다. 아니 슬프다.
또 저자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에서 약혼자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남자의 절규를 들려주며,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사랑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열여섯 살 소년의 모습과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우리에게 읽어준다. 정혜윤은 사랑을 잃어버린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다. 아마 그녀도 쓰라린 이별의 경험이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기죽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침대에 차례차례 눕혀야 할 네 남자' 는 제목 한 번 거창하다. 자! 제목에서는 관능미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런데 그녀는 자유를 원하고 있다. 자유와 사랑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자유보다는 '구속'이 훨씬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는 것인가? 사랑이 끝난 후의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건가?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가 눕히려고 하는 네 남자를 만나보자.
몽테뉴가 첫 번째다.
둘째는 움베르트 에코이다.
그녀가 세번째 눕힌 남자는 마크 트웨인이다. 마크 트웨인은 '60만 단어 이상으로 규모가 큰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마크 트웨인을 침대로 데려간 정혜윤은 '파격'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다 '파격' 즉 정형화된 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지막 남자는 셜록 홈스이다. 홈스를 통해서 정혜윤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담대해지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나보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니까.
제목에 이끌려 인터넷 서점에서 힐끗거리던 그녀의 침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 난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침실로 성큼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정혜윤의 침실은 결코 관능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아픈 가슴을 애써 달래고 있는 연약한 소녀였던 것이다. 혹시 내가 그녀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이제 나는 그녀의 침실에서 나와 내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내 손에는 그녀의 침실에서 가져온 책이 몇 권이 들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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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침대에 비그듬이 누워 책을 읽는 기분을 생각하며 산 "침대와 책."
하지만 침대에서 읽기엔 너무나 작가 성향이 강하여 내용에 집중 할수가 없었다.
억지로 붙들고 책을 읽으려 고 하는 나 자신에게 불편해 졌다. 구성은 탄탄했지만 내용 면으로 공감하기 힘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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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주문했다. 서평을 봤을때는 이 책이 해이해진 나 자신을 다잡기에 좋을듯하다는 판단, 지적 쇼크로 인해 우울의 바닥을 치더라도 내 지적허영에 큰 자극제가 될거라는 생각.
오,노! 이건 아니다.
이 책 서평에서 별점 낮은 글을 몇개 봤을때, 혹시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북받쳐 오르는 짜증을 악평으로 화풀이 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분들이 옳았다. 이 책은 그저 읽히지 않는, 전달력이 떨어지는 책일뿐이다.
정혜윤님은 해박하신지는 모르겠으나,그 많은 책으로 부터 얻은 지식들을 다른사람들과 공감하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체화한걸 늘어놓는것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녀만의 시선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독특한 시선이 스스로 기특한듯, 나르시즘에 젖은 문체가 읽는동안 계속 걸리적댔다.
개인적 감정을 고취시키느라고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화자는있으나 청자는 없는 공허한 수다 같은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나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들을 공유하고자 책을 냈을터인데, 그녀가 가진 많은 지식을 그녀의 필력이 따라잡지 못하는듯하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아직 끝까지 읽지도 않았는데,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회의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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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책을 잔뜩 내 주변에 둘러놓고 책의 엄호를 받은 채
독서를 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며 낙이다. 근데 나처럼 침대에서 책읽는 여자가 책을 내다니. 그녀의 자기소개 또한 맘에 들었다. 그리고 목차도 흥미진진하고 그녀가 읽은 책들을 나도 전수 받고 싶었다.뭔가 통하는 게 많을 거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낚였다. 대학의 시험기간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돈주고 산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다시 펴서 읽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접어놨다가 다시 읽고...즐거움이 아닌 돈주고 샀다는 거에 대한 보상을 받기위함인 의무가 되버렸다.
그녀는 몽상가다. 흔하게 말하는 4차원 여성. 아니4차원은 귀엽기라도 한 느낌이 드는데 이건 뭐... 아씨 그니까 뭔소리야...싶다. 책은 많이 읽은 건 알겠다.기억력이 어마어마하게 좋다는 것도 알겠다.근데 뭔지 모르게 잡탕이다.허공에 붕 떠있다.
비유를 하자면 최상의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 각종 진기한 우리가 잘 몰랐던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몽땅 다 넣고 요리를 하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맛의 요리가 탄생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왜 침대와 책인지 알겠다,그나마 침대에서 읽어야 한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읽으면 가뜩이나 난해해서 토할지도 모른다.
이 책과 스타일이라는 책을 인터넷에서 반값에 팔아버렸다. 나는 원래 소장가치 없는 책은 안입는 옷을 장농에 쌓아놓고 있는 거 같아서 불편한 감정이 들어서 제거해 버리는 편이다.
부디 내가 안입는 이 옷을 이쁘다고 하면서 오래 입어줄 사람이 주인이 되면 서로 기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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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와 책 > 너무나 매력적인 조합이다. 잠과 책을 즐기는 내게 있어서 침대란 그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 진정한 독서가, 정혜윤의 책이 있다. 가장 은밀한 공간인 침대로, 그녀의 과감한 초대를 기쁘게 받아 들였다. 밤마다 침대에서 안락함을 만끽하며 읽는 책은 단순한 책의 의미를 넘어선다. 슬프고 한없이 우울할 때는 위로가 되고, 단조롭고 지루한 순간에는 산뜻한 재미를 주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 심심풀이 정도로 책을 펼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그녀의 책 이야기는 그녀의 침대와 함께 일상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어릴 적에 즐겨 사던 껌이 있었다. 10개 들어 있는 껌은 저마다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껌 종이는 반짝이는 광택인데다 예쁜 그림과 아름다운 시가 적혀 있었다. 내 취미는 여러 종류의 껌 종이를 잘 펴서 모으는 것이었다. 시를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름답다고 느꼈다. 예쁜 껌 종이 수집이 목적인 내게는 껌은 그저 껌이었다. 한낱 껌 종이로 구겨져 버릴 운명이 몇 줄의 아름다운 시로 인해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그때 막연히 느꼈다. 아름다운 글이 가진 매력을 말이다. 한 권의 책 속에 수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일상 속에 더불어 숨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적절해서, 전혀 몰랐던 책에 대해 관심이 간다. 특히 우울한 다음날 술 한잔 딱 걸치고 돌아오는 길에 펼치는 수잔 손택의 책 <우울한 열정>이 마음에 든다. 나 역시 토성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수잔 손택은 특히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기’란 표현에 대해 아주 멋진 해석을 붙였는데 이런 행위야말로 바로 우울함을 쾌활함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느낌이 그렇다. 사소한 일상 속 그녀 침대 위 책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일상은 책과의 동거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책들, 그래서 침대 주변을 자리잡은 책들이 나에게도 윙크를 보낸다. 그녀에게 책이란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는 인생의 힌트라고 했다. 그녀가 부럽다. 인생의 조언자가 늘 곁에 있으니까.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책 읽기)을 아니까. 또한 그 즐거움을 나눌 친구가 있으니까 - 정말 멋진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와 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자에게는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 친구의 애정이 담긴 글을 볼 수 있다. 정혜윤이라는 사람을 통해 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보면서 ‘아니 프랑수와’가 떠올랐다. <책과 바람난 여자>란 책의 저자인데 그녀는 굉장한 독서광이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야만 잠들 수 있다는 독특한 습관을 지녔다. 그러고 보면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독서광들에게 최적의 독서 장소는 침대가 아닐까. 침대에 함께 들어가야 할 사랑하는 누군가보다 더 많은 손길을 원하는 책. 내 책장에 꽂혀 먼지를 뒤집어 쓴 책들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 책들이 나의 침대에 입성할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