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일의 독서일기..후속타가 장장 4권까지 나온걸 모르고 지냈다..검색해보니 주르룩 뜨길래 몽창 주문하고.. 즐거웁게 읽어댄다..침대옆 스탠드에 방바닥에 여기저기 있다 언제나 집어서 아무데나 펼쳐서 읽는다..장정일은 참..영민하고 다감한 재능의 청년(?)이다..나는 그의 팬이다^^;;;목차나 색인이 따로 없어서 다소 불편할때도 있으나..그런게 있다면 쫌 웃길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세권정도 늘어놓고 보다보면 어데서 봤드라하고 한참 찾다가 또다른 페이지에서 다시 머물게되고..여하튼 집중해서 보지않아서 그런지..언제나 새롭다..정확한 말만 골라서 하려다보니..읽는 나는 별로 걱정없다..생각지도 못한 책소개도 받고..그의 독서관으로 슬그머니 초대도 받고..책읽기 다소 게으르되 관심있는분들의 선택이라면 일석삼조쯤의 효과가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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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너무나 흥미로운 작가이다. 사디즘의 원초작가라는 등의 평가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사실 전혀 끌리지 않는다. 그가 독서일기 중간중간에 밝히는 그의 소설에 대한 해설만 읽어보아도 충분하다. 그는 자기모멸에 대한 연작시리즈를 썼으며 몇 년전에 판매금지된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마지막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주제가 '자기모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영감을 주며, 애써 시간을 들여 그의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또한 그가 자주 사용하는 사도 마조히즘에 대해 상식 이상으로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의 소설화는 더욱 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의 해석 혹은 그의 시들, 잡문이 더욱 좋다.
고로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너무도 즐겁게 읽었다. 남들은 뭐라건 나는 그가 최대의 행복을 누리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년에 읽어대는 그의 책들이 전부 그의 행복이며 그가 이 세상에서 하고싶은 일이다. 혹자는 남이 읽은 2차적인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원본을 보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느냐고 하나, 그것은 원본콤플렉스로 설명되는 하나의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이런 일기를 쓰고프다는 질투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이런 2차적인 읽기를 통해, 즉 그의 해석을 통해 책들을 읽는 것 자체도 하나의 독서라고 생각되며 어차피 내 주관이 있고 스스로의 읽기 능력이 있는 한 내가 원본을 읽을 경우에도 결코 그의 언설에 넘어가서 그것이 내 고정관념이나 일차적인 꺼풀이 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오히려 내 경험상으로, 독서 후에 끌렸던 책을 읽고 비교해가면서 그가 주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더불어 나의 다른 관점에서 보는 그 책의 평가와 비교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들 책읽기는 최고의 취미이자 지식인-우리 나라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되기를 바라는-이 되기 위한, 혹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기본코스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읽기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장려되어 마땅하다 생각되지만 사람들의 그 만사형통이라는 책의 편견에는 반대한다. 또한 책을 읽고난 후에 좋았다,
재미있다로 도배된 서평도 저주한다. 아무리 텍스트가 기원적인 목적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주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평가의 스펙트럼이 나올 수 있을진대, 그것을 통한 책의 선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그 책 자체의 훌륭함만 칭찬할 뿐, 그것을 양식삼아 일어나는 독서자의 변화에는 대체로 너무도 rough하다. 고로 나의 이러한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씨리즈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또한 그 씨리즈의 중단이 아쉬울 것이 틀림없다. [인상깊은구절] 문8)당신은 음란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음란물이란 성적흥분을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이고 의도적인 고안물이지요. 예를 들어 권태기의 부부나 성장애자 혹은 쾌락을 즐기려는 연인이 단순히 성적흥분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찾는 비디오나 성보조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 드는 누드잡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심심풀이로 혹은 일부러 찾아 보는 에로만화나 소설 등등. 성범죄를 일으킬 목적으로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음란물은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음란물은 따로 있지 않고, 그것이 닿지 않아야 할 수중에 있을 때 음란물이 됩니다. 성인용 비디오가 청소년의 손에 닿는 그 순간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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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느낌이다. 그동안 왜 책을 많이 못 읽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TV탓인것 같다. 주로 책읽는 시간에 TV를 봤으니 책들은 책꽂이에서 혼자 골대만 지킨 셈이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 읽은지는 한 일주일이 넘었다. 그 느낌이 많이 무뎌졌다. 그런 까닭에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선배의 글로써 오독을 시작한다.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반사적으로 피플을 떠올렸다. 피플-장정일을 좋아하는-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독서일기가 처음 나왔을 때의 신선한 기분은 들지 않지만 책을 통해 한 세계를 보는 그 남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건 역시 즐거운 일. 그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맞던 아니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견고하고도 다양한 세상들의 존재가 너무 신기하지 않니. 그 '다른 색'때문에 사람들은 친구를 만드나 보다. 친구같은 후배, 피플. 건강하기를. 뭣보다 마음이. 가까이 오고 멀어져 가는건 사실 너무 흔한 일이지 않니. 우기가 시작되었지. 우리가 좋아하는. -벚."
좋아하는 선배에게서 장정일의 독서일기4를 선물받고 그 설레임에 두근거리며 읽어나갔다. 그러나 장정일은 자꾸 나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 이전 그의 글에서는 그의 해박한 지식을 엿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나누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었는데, 점점 그는 내가 읽지 못한 책들과 내가 들어보지 못한 작가들과 그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4는 이전의 글보다는 그 분량이 얇은 편이다. 예전에 비해 조금더 엄선된 독서읽기 탓인지, 많은 글보다는 더 깊은 글읽기를 시도함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도 장정일은 이렇게 밝힌다. 많은 글을 읽는 것보단 좋은 책을 선택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좋은 책을 선택하고자 한 까닭에 그는 자연스레 독서일기 분량을 줄였는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의 독서일기보다 실망스러운 부분도 없진 않다. 앞서 밝힌대로 그와의 나눔의 즐거움을 내가 느낄 수 없었고, 이전보다 그의 객관성을 잃은 생각들이 너무 많이 드러나 보인다. 아니, 이건 비난할 수 없는건지도 모른다. 편집에 있어서는 가로에 변형을 가져온 크기에, 디자인이 예쁘다. 하나더 이전에 그의 독서리스트가 자세히 적혀 있었는데, 이번엔 그것이 빠져 있어 아쉬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는 나의 독서에 커다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의 독서일기 시리즈만큼 다양한 책소개, 비판들, 생각들, 자유로운 논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은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다. 굳이 있다면 김 현의 "행복한 책읽기"나 고종석의 "책읽기 책일기" 정도.. 그런 희소성에, 그의 천재적 행보에, 나는 장정일을 좋아한다. [인상깊은구절] 정체성-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으로 결정지워진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곧 나다. 샹탈은 팽창하고 정복하는 장미향처럼 모든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으로 존재하며, 장 마르크는 화려한 성공보다는 세계의 변두리에 살고 싶다는 비활동적 욕망으로 산다. 그래서 샹탈은 연하의 남자에게서 예닐곱 살때의 자기 욕망을 채우고, 장 마르크는 시라노 드 베르즈락이 되어 연상의 여자에게 기식하며 산다. 두 파리지앵이 오매불망 바랐던 그 욕망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든든하게 보호해주는 울타리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우연히 극대화된 욕망의 실천 속에서 위기를 맞이한다. 샹탈은 "음탕한 꿈의 도시" 런던에서 재미를 보기는커녕 고독을 느끼며, 장 마르크 역시 굶고 지친 상태로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며 깨닫는다. "잠을 깨! 이건 사실이 아니야!" 바로 이 대목이 쿤데라가 독자에게 던지는 나비꿈이다. 욕망 속의 내가 진짜 인간인가? 욕망 밖의 내가 진짜 인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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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4="">를 읽고 있다. 심심할 때 보기 좋은 책이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동네 어귀 아파트 벤취에 앉아서 담배와 커피를 즐기며 조금씩 읽고 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이렇게 가볍게 읽어야 한다! 마음을 흐림 없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장정일 표 독서 일기의 미덕:
1. 주변의 책방에 널려 있는 대접받지 못하는 책들에 대한 간단한(!) 평을 얻을 수 있다. 서평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못한 '냄비와 엽전'들의 나라 한국에서 이만한 서평도 구해 읽기조차 힘들다.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이 아닌 동네 책방이나 가판대에서 구해 볼 수 있는 책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작가는? 물론 하루키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루키를 읽음에도 불구하고(어쩌면 하루키만 읽는 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들에 대한 서평을 어디에서 구해 볼 수 있는가! (물론, 이 네 번째 독서 일기에는 하루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리고 실제로 유니텔 문학동호회의 '독서와 비평'이라는 메뉴를 들여다 보자면 그의 독서 일기로부터 책을 구해 보는 독자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 그의 작품들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있다. 영화화된 그의 작품 때문인지 장정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싶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알송달송하다. 스스로 자기 작품에 대한 해명을 해준다. 전에 장정일 문학선을 친구에게 빌려준 적이 있다. '아담이 눈뜰 때'를 읽은 그 녀석은 이거 읽기는 읽었는데 왠지 기분이 나쁘고 뭔 소린지 알 수가 없다는 코멘트를 했다. 그의 독서 일기는 이런 사람에게 정신적 혼란을 수습케 한다. 4권에는 <네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다.
3. 그의 잘못된 독서 습관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의 독서 습관을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는 多讀家 아니, 나보다 더 졸렬한 亂讀家이다. 예전에 그를 부러워했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이제는 장정일식의 독서를 경계해 마지 않는다.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장정일식의 독서 습관은 저지되어야 한다!" 그가 읽어 댄 일년하고 4개월치의 적지 않은 양의 책 중에 꼭 읽고 싶다는 강한 울림을 갖는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짧은 소감들 조차 평범하기 그지없으니 그가 얼마나 표피적인 독서로 일관해 왔는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장정일 스스로 자신의 책읽기 습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하고 있는 구절이 두어 번 눈에 들어온다. 그 중 가장 전율할 만한 것을 옮겨 본다."이 일화는 책을 쓰고 또 읽고 살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문득문득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도 <햄릿>을 읽지 않은 하워드 링봄이 아닌가? 문제는 그게 아니고, 나는 네가 읽은 책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굴욕이 철철 넘치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시 읽고자 시도한 소위 고전과 명작들. 하지만 나는 또 고백한다. 지난해 봄 카뮈를 다시 읽어 보겠다고 <전락>과 <페스트>를 읽고 단 한 줄의 감상도 쓰지 못했던 쓰지 못했던 때의 막막함.
그리고 지난해 여름 구치소에서 읽었던 고은의 <화엄경> 앞에서 느꼈던 무지. 책 속에서 지식을 얻고자 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지식 밖에는 얻지 못했다. 마주 막연하게, 어려서부터 책 속에 쾌락의 길을 내고자 했던 내 소망은 기실 지혜를 얻고자 함이었으나 지혜에 눈뜨기보다는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만 얻었다. 오 지혜여! 어떻게 쾌락을 얻을까!"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독서에는 습관의 때가 묻는다." 스스로 자신의 나쁜 독서 습관과 그 습관이 가져온 폐해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나 또한 그런 후회를 하곤 하지만 그의 나이는 38이고 나의 나이는 24이다.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런 후회를 하지 않는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폭넓고 다양한 독서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 독서가 유아적인 쾌락을 얻는데 고착될 때 그것은 장정일식의 독서 습관으로 변하기 쉽다.
미덕을 이야기 한답시고 한참이나 씹어 재꼈다. 나는 못되먹은 독자다. (동시에 행복한 독자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4="">에서 내가 읽은 책은 <책 속의="" 어른="" 책="" 밖의="" 아이=""> (최윤정/문학과지성사), <피어싱> (무라카미 류/한뜻) 이 두권이다.(그의 독서의 중심에는 소설이 있기에 나의 독서 일기와 겹치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뽑은 읽어 보고 싶은 책의 목록을 적어 본다.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들, <공자, 인간과="" 신화=""> (H.G. 크릴/지식산업사), <권력과 지성인=""> (에드워드 사이드/창), <동양적인 것의="" 슬픔="">(정재서/살림), <광고, 거짓말쟁이="">(마정미/살림), <러시아 혁명/레린주의냐="" 마르크스주의냐=""> (로자 룩셈부르크/두레), <공자>(R. 도오슨/지성의셈),<유리알 유희=""> (헤세/청하), <현대의 신화=""> (롤랑 바르트/동문선). 과연 언제나 읽게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인상깊은구절] ."이 일화는 책을 쓰고 또 읽고 살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문득문득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도 <햄릿>을 읽지 않은 하워드 링봄이 아닌가? 문제는 그게 아니고, 나는 네가 읽은 책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굴욕이 철철 넘치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시 읽고자 시도한 소위 고전과 명작들. 하지만 나는 또 고백한다. 지난해 봄 카뮈를 다시 읽어 보겠다고 <전락>과 <페스트>를 읽고 단 한 줄의 감상도 쓰지 못했던 쓰지 못했던 때의 막막함. 그리고 지난해 여름 구치소에서 읽었던 고은의 <화엄경> 앞에서 느꼈던 무지. 책 속에서 지식을 얻고자 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지식 밖에는 얻지 못했다. 마주 막연하게, 어려서부터 책 속에 쾌락의 길을 내고자 했던 내 소망은 기실 지혜를 얻고자 함이었으나 지혜에 눈뜨기보다는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만 얻었다. 오 지혜여! 어떻게 쾌락을 얻을까!"화엄경>페스트>전락>햄릿>현대의>유리알>공자>러시아>광고,>동양적인>권력과>공자,>피어싱>책>장정일의>화엄경>페스트>전락>햄릿>네게>장정일의>장정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