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원제목은 《태사공서》였다. 태사공 사마천이 42세 이후 본격적으로 집필하여 14년에 걸쳐 완성한 모두 130권 52만 6,500자에 이르는 기전체통사로, 제왕을 기록한 12본기, 제후를 기록한 30세가, 뛰어난 인물을 기록한 70열전, 그리고 각종 제도를 기록한 8서, 연대기에 해당하는 10표로 이루어졌다. 시간적으로 전설상의 삼황오제에서 한무제까지 약 3천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옛 로마시대의 지중해에까지 널리 아우르고, 내용으로는 정치, 역사, 천문, 지리, 철학, 문학, 경제, 군사, 법학, 의학, 수리 등 다방면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포괄한 중국문사의 금자탑이다. 고금의 역사적 변화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사마천이란 위대한 역사가/문학가/저널리스트의 다중적 시선으로 마름질한 대작이다. 중국문학에 있어서 《사기》의 영향은 지대한데 진한시대의 산문중의 으뜸이요, 뒷날 당송8대가의 산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한유韓愈는 《사기》를 「웅심아건雄深雅健」 즉, 웅장하고 깊고 우아하고 강건하다 평하였다.![]() 저술의 취지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설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총130편 52만 6천5백자로, 12편의 《본기本紀》、10편의 《표表》、8편의 《서書》、30편의 《세가世家》、70편의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체제는 유기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텍스트인데, 본기는 연대기형식으로 제왕을 논하고, 세가는 제후를, 표는 연표로 시사적 기록을, 서는 제도와 문물을 상술하고 열전은 인물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기란 말은 고서 《우본기》에서 유래하며 황제로부터 한무제에 이르는 역대 왕조와 제왕의 흥패 그리고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흩어져 있는 천하의 옛일들을 수집하고 망라하여 제왕 행적들의 시말과 성쇠를 탐구하고 관찰한 다음, 사실에 근거하여 위로 3대의 역사를 간략히 추구하고, 아래로는 무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12본기를 서술했습니다. 순서대로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오제본기(황제, 전욱, 제곡, 요, 순),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고조본기, 여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 표는 시간을 축으로 삼고 표 형식으로 세계, 인물, 역사 사실을 나열하여 맥락을 밝혔습니다. 사적에는 시대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연대의 차이가 분명치 않아 10표를 만들었는데 크게 세표, 연표와 월표로 구분됩니다. 「삼대세표」(춘추이전) 「십이제후연표」(춘추) 「육국연표」(전국) 「진초지제월표」(진초교체기) 「한흥이래제후왕연표」(한나라) 「고조공신후자연표」 「혜경간후자연표」 「건원이래후자연표」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가 있습니다. 서는 《상서》에서 유래하고 사기의 총론에 해당하며 사회, 경제, 정치, 천문, 종교 같은 문물제도의 변화과정을 살폈습니다. 시대에 따라 예약의 늘어남과 줄어듦, 율력의 바뀜, 병권, 산천, 귀신, 하늘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해 그 득실과 폐단을 살피고 변화에 통하는 내용으로 8서를 지었습니다. 예의에 관한 「예서」, 음악에 관한 「악서」, 군사에 관한 「율서」, 역법에 관한 「역서」, 별과 기상 등 천문에 관한 「천관서」, 종교에 관한 「봉선서」, 물길을 다스리는 수리에 관한「하거서」, 경제에 관한 「평준서」가 그러합니다. 세가는 역사를 움직인 주체적 인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30개 수레바퀴살이 모두 하나의 속바퀴에 집중되어 그 운행이 무궁한 것처럼, 보필하는 신하들을 여기에 비기어 그들이 충신의 도로써 천자를 받드는 모습을 내용으로 30세가를 지었습니다. 세가란 작위와 녹봉을 받으며 그 지위를 대대로 물려 주고 받는 지반으로 서주 이래 분봉 받은 제후국과 서한 이래 역대 황제들이 봉한 유씨 종실 및 개국에 협조한 창업공신들을 포함합니다. 「오태백세가」에서 「전경중완세가」에 이르는 16편은 귀족제후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자세가」는 공자 일생의 여러 활동을 기술하고 교육가와 정치가로서의 공자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진섭세가」는 진의 멸망을 초래한 진 말기 농민봉기군의 수령 진섭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외척세가」「초원왕세가」「형연세가」「제도혜왕세가」「양효왕세가」「오종세가」「삼왕세가」의 7편은 모두 한나라 황실의 외척과 종친에 관한 기록이며, 「소상국세가」「조상국세가」「유후세가」「진승상세가」「강후주발세가」의 5편은 한나라 개국공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열전은 정의롭게 행동하고 남에게 억눌리지 않는 기개로 세상을 대체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친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70편을 지었습니다. 열전은 인물을 서술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한 사람만의 전기인 「전전專傳」(위공자열전), 두 사람 이상의 전기를 합친 「합전合傳」(굴원가생열전), 한 사람의 전기 뒤에다 그와 관련된 사적이나 측근의 전기를 덧붙인 「부전附傳」(위기무안후열전), 같은 부류의 인물들을 같은 전기에 다룬 「유전類傳」(혹리열전, 자객열전)으로 나뉩니다. 태사공자서는 열전의 마지막편이지만 사실은 사기 129권 전체에 대한 서문이자 결론입니다. 자신의 생애와 가문내력, 그리고 학술적 배경과 경력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 사마담의 중요 논문인 「논육가요지」 전문을 수록하여 아버지의 염원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자신의 학술적 입장을 동시에 밝혔습니다. 전문은 7,812자로 이루어졌는데, 1)사마천의 가계 서술, 2)사마씨 부자의 「논육가요지」, 3)사마천의 청년시절과 부친의 죽음, 그리고 태사령이 된 자신, 4)사마천이 아버지 유언을 받는 과정, 5)사마천과 호수와의 《춘추》논쟁, 6)궁형을 받고 발분저술하게된 동기, 7)《사기》 전편의 해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기가 참조한 참고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정식 텍스트만 따진다면 102종의 전적이 참고서로 등장합니다. 그 중 6경 및 주석서가 23종, 제자백가서가 52종, 고금 역사서 및 황실 기록이 20종, 문학서가 7종입니다. 이 밖에도 조정의 공식문서와 비밀문서, 개인이 수집한 기록과 채록, 현장탐방 그리고 조상 대대로 편집하고 정리해 놓은 옛날 기록과 이야기들이 이용되었습니다. 가령 역사서를 살펴보면, 《상서》《춘추》《좌전》《국어》《세본》《전국책》《초한춘추》등이 있었는데, 이들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보완한 것이 기전체입니다. 단순히 시간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춘추》의 편년체와 《국어》의 국별체國別體의 장점을 흡수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황로사상을 신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로도가는 양생과 정치가 동일한 이치에서 비롯되었으며 양생의 도를 정치에 운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논육가요지》란 글에서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의 여섯 학파를 논하면서 앞의 다섯학파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도가만은 각 학파의 장점만을 두루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의견이신지요? 육가에 대한 견해는 제 아버지의 생각과 동일합니다. 음양가의 장점은 사시운행의 큰 순서에 맞춰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고, 단점은 금기와 구속이 많고 사람을 두렵게 하는 요소가 많다는 점입니다. 유가의 장점은 군신, 부자, 부부, 장유의 구별이 분명한 점이고, 단점은 학설이 광범위하여 요점이 모자라 애를 써도 효과가 적다는 점입니다. 묵가의 장점은 경제에 대한 관심과 비용절감을 주장한 점이고, 단점은 지나친 검약을 강조하여 지키기가 어렵고 모두 실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법가의 장점은 군신 상하의 직분을 정확하게 규정한 점이고, 단점은 엄하기만 하고 은혜와 인정이 모자란다는 점입니다. 명가의 장점은 명분과 실질의 관계를 바로잡은 점이며, 단점은 지나친 명분에 얽매여 실질을 잃기 쉽다는 점입니다. 도가의 장점은 여러 학파의 장점을 취하여 시세와 더불어 순응발전하며, 요지는 간명하면서도 쉬워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며, 단점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태사공자서」이외에, 제자백가에 대한 선생님의 사상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무엇 무엇입니까? 유가에 대한 입장은 「중니제자열전」과 「맹자순경열전」, 「백이열전」과 「유림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니제자열전」은 공자의 77인의 제자들 중 35인의 사적을 기술하고 나머지 42인은 이름만 남겼습니다. 특히 단목사(자공)의 상업활동과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짤 수 있는 외교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맹자순경열전」에서는 의를 중시한 맹자와 예를 중시한 순자를 같이 기술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인과 사회에 대한 동일한 작용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백이열전」에서 당대 주류 사상이었던 춘추 공양학이 주장하는 천인감응설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백이와 숙제를 빌어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하늘이 착한 이에게는 복을 내린다는 이른바 유가적 천도관의 허구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이, 숙제는 인덕(仁德)을 쌓고 행실이 깨끗했으나 굶어 죽었고, 공자 제자 중에서 가장 학문을 좋아하였던 안연은 가난해서 거친 음식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사람을 회로 먹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도둑놈’ 도척은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자연사했다. 만약 천도가 참으로 존재한다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었겠는지 심히 의혹스러울 뿐이다.」 「유림열전」은 유학의 발전사 및 전승관계를 서술하면서 고금의 유림인물 53명을 기술했습니다. 공자와 육경을 매우 존숭하지만 동중서와 공손홍으로 대표되는 한무제 당시 수구적 유학자들의 허위성 또한 풍자했습니다. 한마디로 곡학아세하는 위선적 소인은 조롱하고 반면에 정도를 걸은 군자는 존중했습니다. 음양가에 대한 견해는 「맹자순경열전」, 「일자열전」과「귀책열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유물론적 시각을 지녀 천도와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점복의 역사와 그 작용 및 한무제 시대의 각종 미신적 폐단을 비판적 어조로 서술했는데 귀신과 신선에 대한 갈망이 장생불사에 이르는 길이라는 미신에 반대했습니다. 도가에 대한 언급은 「노자한비열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 4인의 합전으로, 도가와 법가의 연원관계를 밝히고 한나라 초기 도가가 실용주의화되고 은둔과 장수의 상징인 노자가 통치자의 구미에 맞추어 신선화되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의 황로철학을 이어받아 유물론적 자연관을 견지하면서 신비화된 음양오행설을 비판했습니다. 법가에 대한 언급은 「노자한비열전」, 「상군열전」, 「이사열전」과「혹리열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노자한비열전」에서 한비자의 비극에 대해 동정을 표하고 있고 봉건사회의 군신관계에 대한 감회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상군열전」에서는 상앙의 변법을 그리고, 「이사열전」에서는 입신출세, 처세술, 진시황을 도와 통일 대업을 이루고 각종 법제들을 마련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혹리열전」은 서한 전기에 살았던 12명의 포악한 관리들의 행적을 통해서 통치의 근본은 혹독한 법령이 아니라 도덕임을 강조했습니다. 법 적용이 지나치게 엄하면 도적이 들끓고 농민봉기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물론 혹리들 가운데 청렴하게 공적인 일을 처리하고, 법 집행을 함에 있어 아부하지 않는 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묵가에 대한 견해는 「맹자순경열전」과 「유협열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맹자순경열전」에서 묵적을 아주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비공과 검약만을 강조하고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의협심이 강한 유협들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보임안서〉에서 밝혔듯이,「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의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짊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의리가 드러나는 바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기로 결단하게 되며, 뜻을 세우는 것은 행동의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선비는 이 다섯을 갖춘 다음에야 세상에 몸을 맡겨 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제가 실제로 만나본 협객 곽해는 한나라 초의 유명한 관상가인 허부의 외손자로 조정에서 금지한 불법행위, 가령 가짜 동전을 만들거나 무덤을 도굴하는 등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유협열전」은 문제 이래 끊임없이 박해를 받아 무제 때 철저하게 소멸된 반체제 인사 유협들의 행적을 기념했습니다. 반고의 《한서漢書》라면 꿈도 꾸지 못할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