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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울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울기만 하는 나를 위로해주실 주님이 있기에 나는 맘놓고 울었다. 울고 또 울며 나는 주님을 생각했다. '이젠 나를 버리자.'
나는 초라해져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초라해지는 것을 거부했다. 예수님은 스스로 초라해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이 되어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못했고,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못난 제자의 모습이었다.
처음의 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죄 많은 모습이었고, 나 스스로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님은 이런 내게 다가와 사랑으로 안아주셨다. 난 주님의 품 안에서 나의 초라한 모습 대신 주님이 주신 귀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오직 주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나 스스로 귀한 사람의 모습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님께선 초심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초심을 잊어버렸고, 끝없는 무저갱과 같은 곳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있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잘난 모습으로 서있을 것인가? 주님은 이제 버리라고 말한다. 나의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모두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한다. 나는 왜 아직도 거부하는 것일까?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새벽닭이 울자 통곡을 하며 울었던 베드로처럼 나도 통곡을 하며 울어야 할 것이다. 나의 잘못, 나의 욕심들을 내려놓고 나는 통곡을 해야 할 것이다. 눈물이 말라버린 것일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통곡을 해야하는데 나의 눈물시계는 멈춰버렸다.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 것일까? 절대 그럴 수 없다. 다시 초심을 회복하기 위해 오직 주님만 의지한다면 통곡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그 날이 올 것이다.
내일은 주일이다. 직장문제, 신앙문제 모든 문제들을 예배당에 내려놓고 와야겠다. 주님께서 모두 해결 해주실 것이라 믿고 모두 내려놔야겠다.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주님께 달렸다고 나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 주님께서 살라 하시면 살아야 할 것이고, 죽으라 하면 죽어야 할 것이다. 순종으로 믿음을 지켜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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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65-75절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말씀이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려 제사장 가야바의 안뜰에서 수모를 당하실 때에 베드로는 바깥뜰에서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내용이다. 베드로는 일전에 자신은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였으나, 막상 그 때가 닥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닭이 울기전 세번 주님을 부인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말씀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가 얼마만큼 큰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래,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지.', '주님께서 정확히 미래를 예견하셨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한두페이지 읽어갈 수록 윤석전 목사님의 생생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는 그저 역사책에 기록된 사실일 정도의 말씀이 아니었다. 이 베드로의 모습이 혹 내 자신의 모습은 아닌가! 아직 예수를 믿는 것을 가지고 내 생명을 걸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 뿐이다. 만약 내가 베드로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라고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윤석전 목사님은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사건을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과 예수님의 고난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세히 조망하신다.
하나님은 분명 성경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분의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외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전적으로 오로지 예수님만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다. 정녕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예수님을 철저히 버리셨을까? 자신의 아들이 죽음으로 인하여서, 그의 피조물이 죄를 용서받고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아들을 죽여 인간을 살리실 정도로, 우리를 나를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도 육의 옷을 입고 오셨을 때에 우리와 같이 연약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셨다. '나의 원'이 무엇인가? 나는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죽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철저히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순종했다. 그가 어린양처럼 죽어 피를 흘려야만 인간의 죄가 용서되기 때문이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진정한 모습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예수께서 붙잡혀 가시던 순간에 얼마나 비참한지 모른다. 비천한 비자 앞에서 자신이 혹 죽을까봐 그가 끝까지 따라가리라 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 닭이 울자 베드로는 일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낸다.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그 말씀이 생각나자 심히 통곡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사람이다. 성경에는 마리아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평소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의 어머니'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그러나, 마리아는 준비되었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예수를 낳도록 하겠다고 하시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다. 즉, 처녀로써의 임신이 남들보기에 부끄럽고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실 때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결코 '저는 처녀인데 임신하면 창피해서 어떻게 합니까? 다른 사람을 시키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역을 자신의 일로 확고히 끌어들인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일화 이외에 마리아에 대해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더 해본다면 10달 배아파서 낳은 자식이 곧 끌려가 죽는다고 하는데 어느 어머니가 마음이 편할까? 그럼에도 성경에 마리아가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에 길을 가로막고 안된다고 외쳤다거나, 내 아들을 놓아달라고 청원을 한 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그녀는 진정 예수님의 일을 가로막지 않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아팠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이 악물고 지켜본 것임에 틀림없다.
'평소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내 삶가운데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 일을 나와는 별게의 일인 것 처럼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음을 발견한다. 그 분은 그 분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음에도 나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주여, 이 초라한 나를..'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 초라한 내 모습. 세상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 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나의 모습, 그러한 모든 모습 속에 죄인인 자신을 발견한다. 나의 모습이 더는 베드로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마리아의 모습과 같기를 소원한다. 늦기 전에 깨어있어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참 소중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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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올리려 하니
마음이 무서워지고 무거워진다.
난 늘 초라하다고 느껴 본 적은 없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교만하고, 삶에 불성실 했는지 일께워 준다
주님을 부정한 베드로가, 진정한 회계로 거듭나고,
주님을 따른 것 처럼 우리도
어두운 밤에서 깨어나 새벽닭 울움소리에 회계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나의 모든 일상들은 늘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왜? 편하고 쉬우니까.....
이 책은 연세 중앙교회를 섬기시는' 윤석전 목사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주일날 교회에서 설교하시는 것 처럼 성경 구절을 표현하시고
또 그에따른 말씀으로 우리가 알기 쉽게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써 놓았다.
주변분들에게 전해듣기만 하던 목사님의 설교를
이렇게 책으로 감사하게, 접하니 이것도 주님의 은혜가 아닐 런지...
매사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우리에게
변하지 말 것을 염려 하시며
"하나님은 역사 속에 고정되어 계신분이 아니십니다.
지금도 병 고치고, 능력이 있으시고,
회계와 역사를 일으키시며,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역사 속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일 하시는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시며 우리를 깨워 주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고
우리가 탈무드를 아이들의 교훈서로 권하는 만큼
이 책에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이
권면되고 있다.
부족한 나의 심성이 이 책을 읽었음에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 책의 깊이가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일게다
지금은 먼 나라 하와이로 여행을 와서 이 글을 쓴다.
외롭고 힘든 먼 나라에서의 일상들을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교민들의
일상에서, 하나님은 언제어디서건 우리를 지키시고, 위로를 하시며
상처를 어루만져 주신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다.
우리가 행하는 많은 것들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것들을 더욱더 많이 이용하고 사용하고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에게 감사하고,
진정한 내것으로 만들어 주님께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노력해서 허물어지는 담장들을 조금씩
수리하면서, 우리를 늘 지키시는 주님을 파수꾼 삼아
행복하게 누려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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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서평 남기려고 들어와보니 2001년에 처음 출간되었었고 그 후로도 2004년에 나왔던 책이네요. 저는 2007년 12월 개정판이라고 되어 있는 책으로 보았는데 표지가 확실히 더 세련되어진 것 같습니다. 2007년판 책은 안 올라와있어 최근버전에 서평 남깁니다. 그러고보니 연세출판사에서 윤석전 목사님 책이 이전부터 많이 나왔었나봅니다. 저는 최근에서야 윤석전 목사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거든요. 윤석전 목사님 책은 몇 권 보았는데 모두 직접 하신 설교를 책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설교를 그대로 책으로 옮겼기에 설교투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일단은 윤석전 목사님 설교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책으로라도 그분의 설교를 접할 수 있어서 우선 그 점이 무척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책은 좀 정독해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이 책은 예수님의 생애의 한 순간 한 순간 발자취를 따라가며 한 편씩 설교한 것입니다. 일단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책을, 아니 설교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이야기뿐이더라고요. 예수님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맺는 것 같습니다. 또 본문 중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예수님 이야기 하고 싶다고요. 다른 이야기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것만 보더라도 윤석전 목사님의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직접 설교로 들었다면 그 열정이 좀 더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는 대체로 은혜있고 좋았는데 100% 완전히 동감할 수 없는 내용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 아무래도 설교이다보니 일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학적인 면이라든지 혹은 명확성이랄까 하는 부분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서두없이 그냥 풀어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동감이 안되는 부분 중 하나는 "물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물질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풍족히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또 병도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면서 오직 물질에 있어서만은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한다는 말씀을 예로 들면서도 여기서 부유는 물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하지요. 물질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겠지요. 일일히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설교 때마다 물질 이야기가 거의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콕 짚어서 절대 돈을 많이 벌 수 없다고 나왔습니다. 예수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 물질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이 부분은 동감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물질인들 못 주실까요? 물론 물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무조건 축복사상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기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질이나 성공을 반대하시는 분이 교회는 크게 하시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예민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오히려 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당만 키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윤목사님도 그런건 아니시겠지만요.
물질 부분 뿐 아니라 또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예를 들어 결혼하면 주의 일을 못하니 결혼하기 전에 많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결혼을 늦추는 청년도 있다며 높이 치켜세우더군요. 이런 부분도 동감할 수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전대로 영광, 결혼한 후에는 그대로 영광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결혼한 후 부부가 함께 주님 일 한다면 오히려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물론 윤석전 목사님의 의도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발상이 가끔씩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은혜스러운 부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찔려서 부끄럽고 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게 만드는 부분도 정말 많았습니다. 한없이 약하고 믿음없는 저의 모습에 정말 주여!!! 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의 첫 주제에서 말하듯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시므로 말씀을 대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비판을 한다는 것이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서평을 쓰자니 제 생각을 옮겨본 것 뿐이고요.
책으로만 느끼기에도 윤석전 목사님의 하나님 사랑에 대한 열정은 가히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아무리 용써도 발뒤끄머리도 안된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날마다 성장하며 더욱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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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죽여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상상할 수 없는 사랑으로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새벽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을 베드로가 듣고 주여, 저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하였으나 베드로는 결국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합니다.
저 또한 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많이 부인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죽게 하시고, 그를 믿기만 하면 아무 값없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나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또 지금 이시간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며 소중한 날들이라는 것을 잊고 나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길임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되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어떻게 해야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 주심으로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죄를 속죄받고 받아주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시고, 끝까지 보호해 주심을 압니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좌절하기도 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초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이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베드로와 같은 삶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살아가면서 베드로의 모습을 봅니다. 마지막 닭이 울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모습을 찾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며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생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