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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워낙 유명한 분에다, 유명한 개인사 때문에 문학적 평가보다 개인적 호기심이 더 컸던 소설가다. 남의 일에 무관심한 편인 내게도, 그녀의 세번 이혼 소식이 전해준 파장은 적지 않았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세번씩이나 이혼을 했을까?" "그녀의 남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게다가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둔 가정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도 특히,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사회에서 그녀처럼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무척 궁금했다.
책을 내려놓으며 쨍하게 느껴지던 첫감정은 나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리고 공지영에 대한 공감과 미안함이었다. 스스로 조금 열린 생각을 하고 산다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세번이나 이혼했으니 뭔가 여자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을거야"라는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평범한 사람, 아프고 부대끼고, 고민하고, 울고, 웃는,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걱정하고, 외로워하는 내 이웃 중 한사람이었다.
같은 여자인 나도 이러했는데,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녀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단했을까.. 마치 몸뚱이 한쪽을 단두대에 올려놓고 살아가는 숨찬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미안하고 가슴이 싸했다.(생각해보면 정말 세번 이혼한게 죽을죄도 아닌데.. 한번 이혼, 세번 이혼,, 숫자의 차이만 있을 뿐 아닌가? 오히려 세번 결혼할 만큼 자기 삶에 열정적이고 용감한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들을 그토록 당당하고 행복하게(난 이 부분이 정말 맘에 든다. 그녀는 고통을 바라는 사회의 요구를 '견뎌낸'것만이 아니라 '행복하게 즐긴' 사람이라고 느낀다) 살아온 그녀에게 힘을 얻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소설가 이전에 대한민국 여성이다. 게다가 엄마고, 이웃이다. 누구는 무서워서 피하고, 누구는 귀찮아서 포기하는 행복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전보다 더 성숙해진 '인간 공지영'을 봤다.
그동안 공지영이 써왔던 소설들이 늘 사회적 파장과 이슈를 제공했듯이 이 소설도 우리 사회의 한가지 편견만은 깨줄 것을 믿는다. "부당하게 참고 살아가는 것으로 자신을 망치는 것보다 열번 이혼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공지영은 이제 내게 소설가가 아니다. 차 한잔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친구이자 이웃이 되었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게 비단 그녀가 뛰어난 이야기꾼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에 한 여자의 진실과 삶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 늦기 전에 공지영씨의 '자전적' 삶을 소설로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여자인 내가 여자를 적으로 여기는 못난 짓을 더 오래토록 해왔을지도 모르니까..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소설을 읽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아, 사랑스런 위녕.. 위녕이 고등학생의 눈으로 어른들을 비웃을 때의 그 통쾌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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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신작" "예약 판매" "선착순 저자 사인본 증정"
어찌 이 문구를 그냥 지나치랴.
무심한 듯한 '2007. 12月 공지영' 이란 사인을 보고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쓰겠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가족의 통통튀는 대화에 웃음이 많이났고
우리 가족이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뒤틀리고 부서진 것이라 해도, 설사 우리가 성이 모두 다르다 해도, 설사 우리가 어쩌면 피마저 다 다르다 해도, 나아가 우리가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다고 해도, 우리가 현재 서로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바로 '사랑'이니까.
가족의 근간은 '사랑'이라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그 작가의 말은,
----- p16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자꾸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뭐랄까, 사랑하게 된다. 걱정하게 되고, 에잇, 왜 그렇게 못난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가 없게 된다.
p47 열여덟해를 사는 동안 나도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랑은 불안하고 아픈 것이며 때로는 무한한 굴욕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p57 "쉽게 이해하고 용서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그건 미움보다 더 나빠.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낼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어서 우리에게 진정한 용서를 빼앗아갈 수 있으니까." p304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 자신하고 대면하는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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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강타한 베스트셀러인 즐거운 나의집은 저자인 공지영씨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 가족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 소설 -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철학책 - 세대공감이 있는 자녀교육서 라고 할수 있겠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세번 이혼하고, 姓이 다른 세 아이를 혼자 키워내는 소설가 엄마로서 실패와 다름없고 박복하기 그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가 이 소설에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고 비난할때, 더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양육을 위해서 밤낮없이 글 쓰고, 삐딱한 사회의 시선과도 끊임없이 싸우며 열심히 산다
엄마가 참 열심히 사는 분인가 보구나...하는 말도 듣게 된다
엄마는 행복해..?
"응, 행복해. 우선 네가 있어서 그렇고, 또 죽을 것 같은 강물을 어떻게든 건너온 자부심도 있어. 아침마다 생각해. 오늘은 우주가 생겨난 이후로 세상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날이다. 밤새 나는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있다 아이들도 아프지 않고 잘 자고 있다 새벽녂 창 밖은 아직 싸늘한데 우리집은 따뜻하다..."
삶에 있어서 경지에 다다랐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세월의 아픔에 저항하기 보다는 세월에 순응하고 자신으 인생을 열심히 일궈온 덕분이다
진솔한 모습은 통한다 자신의 실패를 담담하게 딸에게 고백하는 엄마....
당당하고 자신있는 성공한 사람의 모습,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스스로 행복한 멋진 삶을 살고 싶다는 딸.....
과거의 불행때문에 나의 오늘 마저도 불행해진다면 그건 정말 내 책임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이 간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정말 바보같은 일은....... "어제의 불행 때문에 이 시퍼런 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러시아의 박물관 하나 못보고 가서 오늘을 망친다면, 그건 내책임이라고....."
기분, 감정때문에 과거의 실패를 내일까지 끌고 가지 말자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왜, 엄마는 세번이나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했나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엄마도, 아빠도 모자라고 약한 사람들이야...라고 답해준다
실패속에서 얻은 최고의 보석은 바로 가족의 사랑이란다...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못하면, 남과 충돌하고, 인정하면 남도 이해하게 된다
알면 이해하고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지금 있는 자리가 바로 꽃자리.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 행복하고, 어제의 실패를 오늘까지 연결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달래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는 오직................... [가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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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라는 나이에 접어들고 나는 공지영을 만났다. '고등어'로 그녀를 만났고 그 후로 나는 속된 말로 미치듯이 그녀에게 빠져들었었다. 공지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애인을 만나듯 설레였고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서는 아파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녀가 만든 제목처럼 나의 존재는 항상 눈물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니기도 했고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싶었고 '상처없는 영혼'이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뜨거운 상처를 보듬어 줄 손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열정이 언제였을까? 조금씩 손에서 책을 멀리하면서 부터일까? 아니면 이제 그 두근거림이 시들해지는 나이를 가지게 된 후였을까? 잘 모르겠다. 일본작가와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을 즈음이었을까 싶다. 이렇다 할 단어를 선택하지 못하겠지만 터질 듯한 풍선이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바람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항상 내 귀에는 공지영의 소리가 있었다. 기대감을 조금 줄이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즈음의 인터뷰를 떠올리면서 그녀의 책을 만나니 나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유명인을 부모로 둔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한 부러움이 전부일 것이다. 그런 유명인의 부모는 이혼을 하고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미움이라는 벽 뒤로 가려버리고 말았다. 멋진 엄마는 세 번이나 이혼을 하고 성이 다른 남동생을 둘이나 안겨주었다. 재혼한 아빠는 불현듯 딸에게 느껴지는 전부인의 기억을 발견하고 뒷걸음질을 하고 싶어한다.
18살 위녕이라는 딸의 시각으로 재회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만남으로 이제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되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사실,그렇다할 이야기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무척 재미있으며 무척 감동적이다. 감동이라는 말을 쓰면 혹자는 감동까지 하며 콧방귀를 낄지도 모르리라. 적에도 내게는 감동적이었다. 재혼가정에서의 어긋난 하모니 분명 보인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서 좋은 것이다. 성이 다른 아이를 셋이나 가진 엄마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분명 있다. 그것을 끌어안는 가족의 힘이 있어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지영의 힘일까? 거창한 대단한 문장없이 쉬운 문장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보였다. 그녀의 글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그녀의 글에 안정된 힘이 가득하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것은 어쩜 시간이라는 말로 그 답을 찾으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소재로 자신의 가족사를 꺼내놓는 소설가는 많다. 물론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녀뿐이라. 위녕이 보는 세상은 자신에게 상처만을 주는 세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처를 싸매주고 매만져 주는 가족이라는 것이 세상의 다른 이름이라는 거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좋은 결정인지 아닌지,미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어떤 결정을 했으면 그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는 일뿐이야. 17쪽 괜찮아,울어. ...... 우는 건 좋은 거야. 좀 정리가 된다는 거거든. 맘속에 나쁜 열기가 가득하면 온몸의 물기가 다 말라버려서 울지도 못해. ...... 그러니까 괜찮아.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 81쪽
이렇게 나를 달래주고 결국 나와 함께 세상이라는 거대한 창에 방패로 있어줄 사람은 가족이니까. 내가 울고 싶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이 글을 기억할 수 있었음 좋겠다.
사는게 어려운 일이다,이걸 한번 받아들이고 나면,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사는게 더 이상 어려워지지 않아. 왜냐하면 어려운 삶과 하나가 되니까. 226쪽 죽는다는 것도 삶의 일부야. 잘 사는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는거지. 누구나 한 번은 죽으니까...... 314쪽 사는 건 참 맘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그렇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싶었다. 내가 앉은 가시방석이 꽃자리라는 말.340쪽
어둠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지나온 위녕의 성장소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느 계단 길의 한 중턱에 서 있는 어른에게 다가오는 성장소설같기도 하다. 살아있음에 그 끝에 죽음이 있음을 알지만 죽음을 앞서 두려워 하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내가 지나온 자리도 한 순간은 꽃자리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항상 나를 찌르는 가시방석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한 순간은 그러지 않았을까? 어려운 삶과 하나가 된다는 소설 속 글처럼 어려운 삶은 이미 나와 샴쌍둥이 임이 분명하다. 신만이 분리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 분리하려 애쓰지 않으리라. 나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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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 첫 문장에서 필이 확 꽂힌다.
"나로 말하자면 마음속으로 아빠를 떠나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가족과 질기고 징그러운 인연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가족, 때때로 즐겁기도 때때로 괴롭기도 했지만, 책을 덮으며 작가 후기의 다음 대목에서 울컥해지는 기분이었다.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바로 '사랑'이니까."
몇번을 곱씹어 읽어도 식상하지 않다.
황당명랑한 엄마와 애늙은 딸 위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위의 주제로 수렴되는 즐겁고 따뜻하고 가슴에서 온기가 그윽히 퍼지는 그런 것이었다.
기존의 공지영의 소설이 풍기던 서글픔이 따뜻한 유머로 승화된 새로운 소설. 이제까지의 공지영에 열광했든 식상했든 이 소설은 분명 새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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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지영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그로 인해 그의 책은 상당수 구입했다. 내가 작가의 작품에서 느끼는 매력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작품이 읽기가 쉽다. 이 말은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데 문체가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는데다 문단이 적당한 길이(대개 5쪽 내외)로 나뉘어져 있으므로 호흡을 조절하기 쉽다는 점이다. 특히 긴 시간을 내기가 힘든 경우에 작가의 작품들은 읽기에 아주 편리다.
둘째 지향하는 가치가 정의롭다. 대부분의 작가들의 그런 점을 지향할 것이다. 하지만 특히 공지영 작가의 경우는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표출하는 작품이 많다. 도가니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이 그렇지 않던가?
셋째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자유롭다. 정의로우면서도 까칠하다고 할까? 정의로우면서도 개성이 강하고 톡톡 튀는 인물들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넷째 자서전을 읽는 듯 편안하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은 1인칭시점의 서술이 많다. 주인공이 둘 일 경우에는 두 사람의 시점에서 번갈아 표현하기도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수필을 읽는 듯 편안하면서도, 일기를 통해 작중 인물의 내면을 훔쳐보는 듯한 짜릿함도 느껴진다. 그리고 많은 작품들의 주인공들에게서 공지영 작가의 자화상을 보는 듯 실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독자는 아니고, 공지영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할 수도 없다. 특히 부끄러운 것은 구입한 작품은 10여 편이 넘지만, 실제로 읽은 작품은 다섯 손가락을 겨우 넘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공사간에 바쁜 탓에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라도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믿음때문에 미루다 보니 책장 깊이 들어가서 펼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발표된 지 4년이 넘었고, 내가 구입한 것도 상당히 오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펼쳐들었지만 그리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5일이나 걸려서 완독을 했다.
이 책은 내가 공지영 작가의 작품에서 느끼는 매력을 거의 포함하고 있는 작품이다. 공지영 작가가 세 번이나 이혼을 했고, 각각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위녕이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다. 위녕을 서술자로 하는 1인칭주인공시점의 소설인 것이다.
이 작품은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에게 양육되던 여고 2학년인 위녕이 어머니에게 가서 살게 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작중의 어머니는 세 번이나 이혼해서 두 번째 남편의 아들과 세 번째 남편의 아들을 양육하면서 독신으로 살고 있다. 위녕의 어머니는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받아들임으로써 성이 다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녕의 어머니는 이웃의 다른 남자와 연정을 키우고 있다. 이해가 되는 가? 소설같은 이 상황은 작가의 사생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위녕이 어머니에게로 온 여고 2학년에서부터 수능을 마치고 대학을 지방으로 가기로 결심하는 과정까지의 2년 정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도 위녕이 회상하는 형식으로 소개되기는 한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위녕의 가정은 보통 복잡한 상황이 아니다. 성이 다른 세 남매, 독신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대부분의 종교가 이혼을 금하고 있지만, 특히 천주교는 이혼을 하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이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을 혼인장애(과거에는 조당)이라고 한다. 또한 주인공인 위녕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있으며 더구나 수능을 앞둔 고삼이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가출을 해도 열 번도 더 했을 것이고, 형제남매끼리 갈등으로 가정은 콩가루 집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녕의 형제들은 사이가 좋고, 가정은 화목하다. 그렇다고 위녕이 모범생 타입이나 순한 아이도 아니다. 아버지와 싸우고 어머니에게 올 정도로 강한 아이가 아니던가?
이혼 경력이 한 번만 있어도 본인은 물론 집안에서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남이 오히려 민망해서 거론을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녕의 어머니는 당당하기만 하다. 참고 살면서 불행한 것보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갈라져서라도 행복을 찾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위녕도 인정하고 있다.
위녕의 어머니와 같은 자세가 위험한 생각일까? 나도 혼란스럽다. 마음에 안 든다고 그때마다 이혼을 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의 가정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부모는 특히 어머니는 무조건 참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두 부모의 마음이 이미 서로에게서 떠났는데 억지로 산다면 당사자들은 얼마나 괴로울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자녀들은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위녕의 어머니는 법률적으로는 남편과 갈라졌지만, 전 남편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장래에 걸림돌이 된다면서 낳은 자식을 친정에 맡기거나 버리는 경우도 허다한 세상이 아닌가? 최소한 위녕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거두었다.
작품을 읽다 보니 위녕의 어머니나 가족들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가정은 아버지가 없다는 면에서는 결손가정이지만,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작품을 통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하리수 씨가 성전환자에 대한 시각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바꿨듯이, 공지영 작가와 이 작품의 존재가 우리 사회의 이혼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위녕이 대학 입학을 앞둔 상태에서 결말을 맺었다. 그러나 작품은 끝났지만, 삶이 끝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학생이 된 위녕, 고교생과 중학생이 된 위녕의 동생인 동빈과 제제의 삶이 계속 펼치지고 있을 것이다. 즉, 작품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즐거운 나의집'의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위녕의 시점 그대로라도 좋고, 동빈이나 제제의 시점이어도 좋고, 작품속의 어머니의 시각이어도 좋고….
* 덧붙임 : 이 작품은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내용은 모두 허구이다. 혹시 나의 리뷰에서 공지영 작가의 삶과 작품의 내용이 일치하는 듯이 표현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전달 부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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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언니'라는 호칭이 어울릴까,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작가님'도 이상하고, '선생님'도 이상해서 그냥 언니라고 부르려구요. 음... 우리 엄마는 모든 면에서 아주 '완벽한' 엄마였어요. 제 기억에 엄마는 아빠에게 맨발을 보인 적도 없었어요. 자녀들을 예의바르게 키우셔서 그런데요... 그래서요... 그리고... 여전히 이루고자 하는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는... 그런데 [즐거운 나의 집]을 읽으면서 언제나 솔직하고, 물론 소설 속 등장인물이 완벽하게 언니를 재현한 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많이 겪어요. 저는... 20대 초반에 만난 남자와 첫사랑이었구... 10년 넘게 사귀고 결혼했지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지금의 우리 남편은 '다니엘 아저씨'를 닮았어요. ^^;)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게... 그건... 의리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이런 모든 것들은... 그래서 평상시에는 잘 느끼지 못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오빠, 나... 이 정도의 엄마는 될 수 있을 것 같애. 남편이 웃더라구요. 글쎄요... 만약 마흔 이전에 제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누구나 다 결핍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만 내게는 너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들도 있구요. 그런데 그걸 품고... 그럼 그 이후에 나는, 그 이전의 나보다 언니의 사랑하는 세 아이들, 그리고 언니가... 지금처럼 좋은 작품도 계속 쓰고, [즐거운 나의 집]을 읽는 동안 내가 그동안 겪어 왔던 '사망의 골짜기'같았던 시간들을 그걸 견디고 이겨낼 만큼 내가 나름 멋진 사람이라는 걸 정말 고마워요, 언니. 나한테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비가 오는 여름밤입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는 조금 줄이시고... 안녕히 계세요.
(* 앗, 그 사이 자정이 지나 26일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실제로 편찮으신 거라면 아버님의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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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애틋함을 느끼게 해 준 책~ &...공지영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도록 만들어 준 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하여 feminism 의 대명사로도 여겨졌던 그... 나는 왠지 모르게 생활에서 체화되지 못하는 주변인들이 '페미니즘' 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마다 혹은 표출할 때마다 즐겁지 못하였다. 아마도... 더더욱 그래서 공지영에 대한 선입견이 더 컸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즐거운 나의집'으로 인해 한 작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고, 또 오랫동안 책꽂이에 있던 그 화제작 '무소의 뿔....'을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머리 속도 많이 변화한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긍정적 변화임을 자청할 수 있기에 나쁘지 아니하다.
배다른 세 자식이 아닌 성(姓) 다른 세 자녀를 둔 그녀...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그의 교육관과 생활철학.. &...다소 엉뚱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언행 등은 오히려 미소짓게 만들고 더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
많은 부분을 느끼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
추천 도장 꽝~!!
별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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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평소 샘으로, 질투로 - 왜 이 여자는 이렇게 잘난거야?- 지켜보던 작가 공지영의 내밀한 삶을 훔쳐보는 마음으로 읽었다. 작가는 이것은 분명 소설이라고 했지만 작가의 아팠던 삶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잘난 여자도 참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구나, 그 뜨거운 가슴으로 참 치열하게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 삶이 위로를 받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공지영을 한 때 참 좋아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등을 통해서 동시대를 지나온 여성의 삶으로, 그리고 민중들의 삶에 절대 무관심하지 않았던 지식인에 대한 공감으로...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여자가 싫어졌다. 아마 <봉선이 언니> 이후였을 것이다. 글에 진실성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지어냈다는 느낌. 그리고 '너, 여전히 잘났다’하는 질시가 함께 어우러져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공지영이 싫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욕하고, 그의 사생활을 씹었었다. 그러다가 공지영이 싫어 읽기 싫었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무슨 의무처럼 읽었다. 나 또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수도원 기행’과 같은 제목의 책은 내가 읽어줘야 된다는 무슨 의무감으로, 밀치다 밀치다 읽었다. 그러다 한 문장에 팍 꽂혔다. “하느님, 항복합니다. 당신 앞에 무조건 항복합니다. ” 맞는지 모르겠지만 대강 이런 말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어 하느님을 원망하고 피해도 봤지만 그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내 바둥거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느 수도원에서의 작가의 그 절규가 그대로 내 가슴에 꽂혔다. 아마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절절함이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 후로 공지영을 좋아하게 되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비록 소설이지만 달라진 공지영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지나 온 사람이 가지는 평온함, 땀으로 범벅이 된 육체 노동자가 세수를 한 다음의 그 마알간 얼굴처럼 공지영이 정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즐거운 나의 집>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더욱 유명해진 공지영의 긴 인터뷰 기사 속에서 좀 더 알게 된 그녀의 실제 생활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에 자꾸 소설 속의 엄마를 공지영으로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물론 그 차이야 별로 없는 게 사실이겠지만. 그리고 공지영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잘나서, 그렇게 유명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서 내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공지영도 결국은 ‘엄마’ -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 -였던 것이다. 나도 엄마다. 그래서 나도 공지영처럼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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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시' 때도 느낀 거지만 공지영의 작품은 늘 중요하지만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를 건드린다. 사형제 존폐라는 문제를 눈앞에 들이대더니 이번엔 이혼, 그것도 세 번이나 이혼한 여자와 그 가족의 삶이라니. '우행시'는 영화 때문에 봤고, '즐거운 나의 집'은 공지영의 개인사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 읽고 나면 묵직한 고민 하나씩이 남는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이혼남, 이혼녀, 그리고 그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요즘 이혼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혼한 사람들을 보며 자기가 한 약속을 너무 쉽게 깨는 무책임한 이들이라고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측면이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이 책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며 조금은 열린 시각을 갖게 되었다. 소설 속 엄마가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위녕의 말이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그들은 문제를 그냥 안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담스럽긴 해도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위녕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것이 깨지려는 가족을 붙들고 불행해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일이란 생각이 비로소 든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무거운 책 같지만 티격태격하는 엄마와 딸, 사랑에 빠진 중년 아줌마들의 귀여운 연애 행각, 어른 같은 아이 위녕의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게 한다. 공지영 책을 읽으면 늘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번엔 정말 쉴 새 없이 키득거렸다. 진지한 문제를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이 작품은 공지영 소설의 또 한 번의 도약이 아닐까. 소설 속 엄마는 서점 주인 다니엘 아저씨의 유머가 좋다고 하더니만, 공지영은 이제 웃음의 미학을 말할 작정인 모양이다.
진지한 주제를 유쾌하게 고민하고 나니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