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원동력에 관한 과학적 탐구라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부제를 가진 ‘루시퍼 원리’는 그 부제만큼이나 매우 독특한 책이다. 보통 많은 책들이 선(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악(惡)과 집단 광기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악과 집단 광기에 관한 것은 책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멤돌았다. 책을 다 보고난 지금의 느낌은 악과 집단 광기에 관한 내용도 궁극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초유기체는 궁극에는 통계 물리에서 다루는 대상 같은 내부의 개개인의 네트웍이 이루는 전체적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책에서 많은 예로 들고 있는 작은 집단인 쥐와 원숭이의 예가 정말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적합한 예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으나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과 역사를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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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왜 역사는 반복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사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가? 이런 수많은 의문을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그동안 유기체의 생성과 유전, 그리고 그 속성에 대해서는 논한 책들이 많았으나, 하워드 블룸의 이 <루시퍼 원리>는 각 유기체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되는 유기체간의 관계와 그 속성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생물학적 이론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논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화학적 반응으로 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한 단세포 단위의 작은 유기체들에 적용되는 생존 개념과 달리 수 많은 정보를 단축 개념화 하여 효율적으로 네트워크를 운영해야 만 생존할 수 있는 고등 생물에게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과 개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책에서 개체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생물학적 관점에서 우리 인류의 역사에 나타나는 사실들 이면에 있는 근본 원리를 밝히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유기체와 초유기체의 비교, 초유기체의 네트워크, 그 네트워크의 단위인 밈(사상), 그리고 그 초유기체와 밈 들의 서열, 서열에 의해 정해지는 개체의 삶 등의 개념과 역활에 대해 현재 와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 각종 동물사회에서 관찰되는 사실들 등 풍부한 예를들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해 준다. 논리의 맞고 틀림을 떠나서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현명한 삶은 어떤 것 인가를 깊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어떻게 보면 학술 연구서 같으면서도 과거에는 개념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들에게만 인식, 유용 되어오던 내용을 작가의 논리로 정리하여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책으로, 사회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 아니 네트워크화 된 사회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이 집단의 능력에 무한한 역량을 갖는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속한 집단의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역자의 매끄러운 번역이 원서를 읽는 듯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인상깊은구절] “정상의 자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정상의 자리에 오른 동물은 그런 분명한 논리를 알고 있다." “밑바닥 서열의 수컷은 몸을 구부린 채 걸었고, 털에 흙이 묻어 지저분했으며, 비참한 모습에다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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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인 나로서는 선뜻 과학 관련 서적을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몇 년 동안 읽은 과학서가 <과학콘서트>일 정도로 범접할 수 없는 분야인데, 특히 외서는 특유의 번역체 문장이 내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루시퍼가 무엇일까? 라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한 번 읽은 지금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책에서는 루시퍼를 집단광기라고 정의하며, 인류 역사에서 여러 사례로 예의 광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 작은 사건들을 알아 가는 재미가 솔솔 했다.
우선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모택동의 사주를 받은 중고생들이 고유 문화재를 부수고 그들의 선생을 반동으로 몰았던 사건이 충격이었다.
또 근래에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던 이슬람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였다. 마호메트와 십자군, 시아파와 수니파, 사담 후세인과 호메이니에 이르기까지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 밖에 그리스와 로마 시대, 대영제국, 침팬지와 원숭이 집단 등에 관한 소사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흔히 독서는 숲과 나무를 보아야 한다고 들었다. 이 책을 대충 읽고나서 숲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 페이지를 펴더라도 집단광기라는 주제를 생각하면서 작은 이야기들에 몰입한다면 누구라도 이 책의 매니아가 될 것을 확신하며, 끝으로 이러한 과학서가 많이 출간되어 나와 같은 과학적 호기심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야모마모족의 남자는 두 가지-사냥과 전쟁-에 매우 몰두한다. 그들의 전쟁 형태는 랑구르 원숭이와 비슷하다. (중략) 공격이 성공하면 남자들은 죽이거나 쫓아 버리지만, 섹스 대상인 젊은 여자들은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일사불란하게 집안으로 들어가 울부짖는 여자들에게서 아기를 빼앗는다. (중략) 모든 것을 끝마치면 젖먹이 어린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승리한 야노마노 남자들은 사로잡은 여자들을 첩으로 삼는다. 야노마노족 언어로 결혼이 "무언가를 잡아채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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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불룸은 이 책에서 생물학, 인류학의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과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새로운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먼저 그의 이론은 진화생물학계의 주류, 즉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를 포함한 '신다윈주의자'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개체 선택 이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있다. 그는 '유전자의 보존'이란 이기적 목적이 개체 수준이 아닌 '집단이나 종족 전체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개체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한다.
사실 이런 논리적 조명하에서만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비행을 자원했던 가미카제 특공대나, 미남 영화배우의 죽음에 슬퍼하며 자살을 선택하는 수많은 여성 팬들, 대공황 때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하는 무리들 따위, 자기 보존 본능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위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자살론>의 저자 뒤르켕은 이런 종류의 이타적 자살을 '수면 아래서 자기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담을 완화하는 행위'라고 했다. 이 책의 3장 <자기 파괴적인 인간>에서는 자기 파괴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이런 개체들의 '일탈' 행동이 하나의 허구적 가설이 아닌 실증적 현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를 좀더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기 위해 저자는 초유기체, 즉 그것이 의식적 차원이든 무의식적 차원이든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하게 되는 집단에 관한 개념을 소개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하나의 개체란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결코 그럴 수도 없다. 인간도 초유기체 가운데 하나의 구성 인자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는 누구나 이 초유기체의 생존 본능이란 거시적 목적에 복종할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이 거시적 목적의 실현은 더 이상 생물학적 유전자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밈(meme), 사상적 유전자라 할 만한 이 '관념의 자기 복제 단위'는 '고독한 작곡가의 영감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로부터 평생 가난과 불운에 시달렸던 마르크스의 머릿속에서 뛰쳐나와 세계의 반을 지배하게 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예수의 기독교 혹은 마호메트의 이슬람교, 니체의 사상 따위 모든 이데올로기나, 교조, 교설, 이론, 사상 혹은 아이디어의 편린으로 '정신과 정신 사이를 옮겨다닌다. 그것은 그 전달의 매개체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간들의 의식을 점거하여 초유기체 아래 통합한다. 이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의 유전자가 아닌 하나의 신념, 하나의 사상을 위해, 그의 의식 속에 복제된 밈을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이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서열의 문제에서 집단간의 투쟁은 각기 다른 밈이 구성하고 있는 초유기체간의 투쟁을 의미하게 된다. 이 투쟁에서는 더 이상 누가 옳고 그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국 문화 혁명 당시의 권력 다툼,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과 미국과의 대립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당사자들은 진심으로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도 보다 큰 파이 조각을 차지하려는 혹은 먼저 먹이를 쪼려는 서열 다툼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전개하는 논리는 사실 비정하리만큼 냉정하며 도킨스보다 덜 환원주의적이고 더 인도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또 다른 새로운 사상적 지평으로 안내하는 블룸의 이 흥미로운 이론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몇 마디의 말로 요약할 수 없는 대단히 방대한 지식과 심오한 사상을 간직하고 있다. 무척 재미있게 읽히고 또 번역도 깔끔하게 되어 있는 이 책의 일독을 다른 분들에게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그것(학살 성향)은 서양이나 동양 문명이 발명한 것도,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유일한 특성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 밖 어떤 것, 우리가 원숭이, 물고기, 개미 등과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우리의 동물 두뇌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잔인성-으로부터 온다. 만일 인간이 여기에 무언가 기여하는 게 있다면 평화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이 인간에게 심어 놓은 것을 극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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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는 개체에서는 예외지만 집단에서는 법칙이다."
요즘 과학책이 매우 재미있어졌다. 학교에서 배우던 딱딱한 공식이나 지루한 전문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또 전문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아주 반가운 현상이다.
이 책도 과학책인지, 역사서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과학을 역사적 사실로써 꾸미고, 또 역사를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문 용어로 이를 학제적 접근이라고 한다나 ... 학제적 접근은 연구자나 필자들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책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주어야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돈이 아깝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돈이 아깝지 않은 책으로 꼽고 싶다. 우선, 진화론, 그리고 여러 진화론적 주장이 역사 해석에 미치는 영향 -- 사실, 신다윈주의이니 개체선택설이니 집단선택설이니 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 또한 여러 가지 과학적, 역사적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평가, 20세기 집단 정신의 마비 현상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시각은 참으로 압권이다.
최근에 <이타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읽고 어째서 [인상깊은구절] 밈과 동물 두뇌의 충돌질로 인해, 카리스마를 지닌 인간의 귀에는 초유기체의 게걸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은 계시나 영감으로 위장되어 마호메트, 사도 바울, 모세, 히틀러, 잔 다르크, 하마트마 간디, 사담 후세인, 레닌,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메시지는 변화하기도 하지만, 갖가지 위장 가면 속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집단을 이루고 말로써 집단을 깨우라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깨달은 자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세계 곳곳에 지배력이 미칠 수 있도록 강력한 세력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