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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주의가 만들어낸 민족신화의 허상과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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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만들어진 민족주의'라는 부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족주의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일부러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개념인데, 새삼스럽게 '만들어진' 민족주의라니? 역전 앞이라는 표현과 다를 게 뭐람.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부제가 책의 내용을 단적으로 압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족주의란 대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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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만들어진 민족주의'라는 부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족주의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일부러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개념인데, 새삼스럽게 '만들어진' 민족주의라니? 역전 앞이라는 표현과 다를 게 뭐람.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부제가 책의 내용을 단적으로 압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족주의란 대개 계획되고 만들어지고 주입되기 마련이라 감정은 뚜렷하지만 감정의 경계선은 불확실하고 막연하며 공허하며 상황이 따라 바뀌기 십상이다. 처음 시작은 같은 민족끼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나름 소박한 테제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느덧 '사이좋게 지내야만 한다'가 되어버리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같은 민족이 아닌 사람은 배척하거나, 같은 민족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같은 민족 운운하며 같이 행동할 것을 강압하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중국에서는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여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황제 신화>는 바로 이 동향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며, 이 사태가 어디에서 연원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황제 신화를 약술하면 오랜 옛날 황제라는 위인이 있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렸는데, 그 황제가 현재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내용이다. 현재 중국은 이 신화를 들어 중국인이 모두 황제의 후손이니 모든 중국인은 같은 조상의 후손으로서 마땅히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중국의 소수민족도 모두 황제의 후손이니 중국의 일원으로 행동을 같이해야 마땅하다고도 한다. 요컨대 황제 신화를 소수민족이 자치하거나 개개인의 중국인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탄압하는 구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체 없는 신화로 강압하는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자, 중국은 한 술 더 떠 황제를 실제 역사 인물로 '입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황제가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의 문헌적 증거는 사실상 하나밖에 없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황제의 이야기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마천이 황제 이야기를 지어내지야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기>가 쓰여졌을 무렵의 문헌에 황제 신화가 유난히 많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사마천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기록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집권층이 황제 신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외에는 황제 신화를 다룬 신뢰할 수 있는 고대 문헌자료는 모두 전국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춘추시대 이전의 문서 중에는 황제라는 이름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문헌연구적인 관점에서는 전국시대 이후에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추론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 고고학적 증거는? 단적으로 말해, 북한의 단군릉이 단군이 실재했다는 증거라는 논리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이다. 북한은 단군의 무덤을 발견했다면서 단군릉이라 이름붙이고 대대적으로 정비했지만, 정말 단군의 무덤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유물과 무덤의 축조양식 등은 고구려 시기의 것이고, 북한의 주장대로 설사 정말 청동기 시대의 유골이라 해도 단군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어찌 되었든 북한의 단군릉에는 옛날 무덤이라도 있지만, 중국에 산재한 황제 유적지와 기념지에는 그런 것도 없다. 황제 관련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나, 황제 신화에 나오는 지명과 이름이 비슷한 곳이 있으면 황제가 있었던 장소라고 단정하고 각종 기념관과 수많은 조각상을 세웠다. 그것이 전부다. 

이런 판국에서 황제가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빈약한 역사 자료를 토대로 갖가지 무리수가 동원된다. 황제 신화에 황제가 여러 맹수를 이끌고 싸웠다는 구절이 나오면, 여러 맹수는 각각의 맹수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부족을 뜻한다고 주장하며 황제가 여러 부족을 거느린 증거라고 말한다. 황제 시기 즈음의 유적지에서 원시적인 유물이 나오면, 황제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정판은 황제기년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황제가 살았던 시기를 밝혀냈다면서 수천 년 전의 정확한 시기를 제시한다. 역사에 대해 병아리 눈물만큼의 조예라도 있다면 기가 막혀 말문을 잃을 상황이, 중국 정부의 주도 하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렇게 황제의 존재를 뚜렷이 각인시킨 후, 황제를 실존인물처럼 포장하여 중국 역사를 선전하고 중국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고 있다.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황제를 기념하는 행사를 벌이는 것을 보면, 황제 선전을 정권의 정당성 천명과 동일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황제 신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황제 신화에는 민족주의의 폐해와 악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체 없는 신화에 역사의 이름을 날조하여 포장하고, 타인에게 동일성을 강요하고, 민족의 이름 아래 극단적인 주장을 하며, 그 바탕에는 선민의식이 있어 자문화중심주의마저 엿보인다. 삼인성호라는 말처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실체 없는 허상을 반복해 주입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내재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한층 불안해진다. 이런 이념이 옳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나라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무섭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원래 만들어지는 법이라지만, 황제 신화처럼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진 민족주의 신화도 다시 없을 것이다. 수백 년 전 타국으로 이주한 조상의 후손을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민족을 같은 민족의 테두리 안으로 끌여들여 동일한 행동을 강권하는 민족 신화라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도 아니건만, 강 건너 불 보는 기분으로는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황제 신화>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한국은 중국의 이웃나라라 중국의 동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입장에 있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주장했던 동북공정도, 따지고 보면 중국이 소수민족을 이념적으로 단일화하기 위해 벌였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국에도 극단적인 국수주의 민족주의자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나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중심주의를 얼토당토않게 추종하는 사람이야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요즘 인터넷의 동향을 보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 같아 한창 걱정하던 중에 이런 책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책을 읽을 때 그렇게 감정이입이 잘 된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인가 싶었다. 역사서에는 몇 줄의 기록이 전부인 단군 신화를 제멋대로 부풀려 상상한 내용을 단군의 역사적 진실이라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의 억지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동분자 취급하는 공격적인 대응도 어찌 그리 중국의 황제 신화와 닮은꼴인지. 주제가 주제인만큼 감정이입해서 읽었다가 괜히 더 심란해지기만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중국과 달리 정부가 조직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부풀리려 나서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p*******1 2011.05.05.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