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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에는 이러한 글이 나온다. " 인간이 불행한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대체, 자신의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잠자기, 라디오 듣기, 전화로 수다 떨기, 티비시청 ?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이 모든 것 뿐인가 ? 파스칼이 의도한 대답은 그게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방에서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몰라서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이상 행동의 연속일 뿐이다. 우리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러한 대답보단, 더 고상한 대답을 원했을 테니까. 방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 아닐까? 가난한 영혼이 군중과 함께 있다고 부유해지는 건 아니다. 그저 잠시 그 가난을 잊을 뿐!
영혼이 부유한 사람은 아무리 비좁고 외딴 방에서라도, 할 일이 있다. 그는 외롭지 않다. 수많은 고전들이 감옥같은 공간안에서 집필되었다는 점은 이 사실을 뒷바침 해준다. 책을 읽거나 노트와 펜이 준비되어 뭐라도 끄적거릴 수 있다면, 외딴방은 최고급 호텔에 마련된 만찬장 만큼이나 풍족하고, 여유롭고, 부유하단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여, 모든 작가들은 자신만의 외딴방을 사랑한다. 그가 만약, 시장바닥같은 어수선한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갖추지 않는한 말이다.
`유쾌하고 다정한'이라는 부제가 붙은, 현대 미국 작가 앤 라모트의 <글쓰기 수업>은 외딴 방에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앤 라모트는 작가이고 동시에 글쓰기 강사다. 이 책은 자신의 글쓰기 수업의 핵심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강의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든가, 주제를 어떻게 정하는가? 시점의 완성은 무엇인가? 아우트라인의 설정 등 소설쓰기의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무엇이며, 작가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하는가? 라는 통찰력 있는 물음을 담아내려 한 책이다.
앤 라모트 자신이 어떻게 글쓰는 작가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인생역정을 사실적인 경험담으로 풀이해 놓았다. 어린시절, 작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책읽기에 몰입했던 어느 저녁 나절의 추억이라든가, 특이한 외모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던 학창시절의 상처, 그리고 좋은 작문을 제출해서 친구들에게 복수하고 싶어했던 마음까지를 거침없이 고백한다. 더불어, 자신의 첫 소설이나 최고의 성공작이었던 작품 모두가, 병마에 시달리며 시한부 인생을 살던, 아버지와 친구라는 단 두 명의 독자를 위해 쓰여졌으며, 그 둘 모두 그 소설을 읽고난 후 결국 세상을 떴다는 극적인 사실까지를 소개한다. 비평가의 악평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자학 등으로 괴로움을 당했던, 솔직한 기억들을 또 이 책에 세심하게 기록해 두었다.
"나는 그가 넥타이를 매야 하는 정규 직장을 갖기를 원했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매일 아침마다 어디론가 출근을 해서 작은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일을 해주느라 남의 사무실에서 하루 온 종일을 보낸다는 것은 내 아버지의 영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 그랬다간 그는 죽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비록 50대 중반이라는 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기 명대로 살았던 것이 틀림없다. " p.9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책으로 한정시킬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카레이서만 운전을 잘 하는게 아니듯, 작가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생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맞서 성실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작가들이다. 더불어, 이들 잠재적 작가들은 가장 성실한 독자가 될 수 있다. 잘 쓰는 일은 잘 읽는 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좋은 독자는 좋은 작가이며, 뛰어난 작가는 훌륭한 독자라는 얘기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지금 당장, 무언가라도 쓰고 싶어진다. 앤 라모트는 글쓰기에 맹목적인 환상을 심어주진 않지만, 글쓰기를 멀리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이 읽는것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학교 글짓기 과제에 힘겨워하는 자신의 오빠에게 해주었던 조언은 곧 글을 쓰고 싶어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유념해둘만하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마리씩 새 한마리씩 해치우면 된다" 글이 막힌다면, 억지로 글을 쓰려하지 말고 그때가 어쩌면 우리의 외딴방을 빠져나올 적당한 시기임을 잊지 말라는 조언이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외면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가. 그러나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더 안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그 모든 인생과 사랑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p.297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왜 읽는가? 하는 질문은 왜 쓰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고 믿는다. 앤 라모트는 평소 이같은 나의 의문에 적절한 답을 주는 듯 했다. 대부분의 독서가들은 질주를 본능으로 알고 살아가는 듯 하다. 책읽기의 본능이란 계산없는 전력질주가 아닐까? 도서관의 서가들이나 매달 구입하는 서적들에 짓눌려 언제나 글읽기는 수지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장사다. 글읽기에서 흑자를 내는 것은 모든 독서가들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독서가의 책에 대한 욕망과 만족을 채우는 일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강줄기가 결국 바다로 연결돼 있듯이 모든 책읽기는 글쓰기와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채우는 목적은 끝없이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비우려는 궁극적 지향점에 닿기 마련이다. 대체, 당신은 그 많은 책을 왜 읽는가 ? 하는 단순한 질문은 잘 쓰기 위해서 라는 명료한 답을 요한다. 앤 라모트의 이 책의 결론도 이와 같다. 삶에 대해 의문과 결핍과 내면의 상처란 모든 글쓰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독자는 타인의 진실에 열광한다. 작가는 자신의 진실을 풀어놓는 사람이다. 글쓰기와 글읽기가 맞닿는 지점에서 작가는 탄생한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박수를 따라 친다. 거듭 거듭 그것 때문에 짓눌리는 대신.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p.364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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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를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그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을 가진다. 반면에 자리에 앉아 글을 써보고자 한다면 부담감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글을 읽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리뷰어로서 글쓰기는 어려운 위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의 글을 읽고 평가해서 리뷰를 올리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글이 다시한번
또다른 독자에게 다시 읽혀지고 평가받는다는 점은 리뷰어로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글이 남앞에 벌거벗져져 놓인다는 것 자체가 글을 쓰느데
장애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몇번씩 자판위에 손을
올려 놓는 이유는 아마도 바로앞에 있는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이유일게다.
[글쓰기 수업]에서 저자 앤 라모트는 두 명의 독자를 위해 두 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그 두 명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아무리 혹독한 비평이 있을지라도, 그들을 위해 최대한 열성을 가지고
글을 적었다고 한다. 아마 우리가 글을 쓸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일 것이다.
가끔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인생의 사치스러움이 아닌지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생활고가 급격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행여 작가 지망생이라면 현실의 경제난도 외면할 수 없다.
넉넉한 생활속에 취미로 글을 적는다는 것도 시간에 대한 낭비와 허울좋은
교양 운운할 수도 있다. 저자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세상에 대해 두려움과
현실감과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하고 있다. 한 자를 쓰더라도 집중력을
가지고 자신만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리며,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강조한다.
우리가 글을 쓰기전에 가져야 할 준비자세일 것이다.
글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까? 여간 고민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만 그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모든 글이 그렇고, 훌륭한 작가들도 처음부터 술술 써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의 사물을 유심히
시간을 두면서 관찰하고 그들 입장에 섰을때 感이 온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과 주위를 꼼꼼히 바라보고
차곡차곡 정보를 모으며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머리와 가슴속에
어느정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조언은 글을 쓰는 자세가 될 것이다.
[글쓰기 수업]을 읽다보면 많은 부분이 저자가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겪었던 경험담을 중심으로 적고 있다. 저자는 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과정상의 고초, 출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츄어로 몇 글자
적고 있는 우리네 입장에서는 남 이야기처럼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온라인상에 자유롭게 글을 쓰는 기회가 많아졌더라도,
아직도 출판의 기회를 갖지 힘든 우리 현실을 보면 회의감마저 든다.
그래도 미래의 나를 그려보며 오늘도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로 합리화될런지...
또한 책을 읽는내내 글쓰기를 넘어서 열정적이고 당찬 그녀의 인생에
대한 조언은 다시한번 글쓰기의 나의 초심을 잡아주는데에 충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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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쓴 글이 좋은 글일까?
의문을 해소해 보겠노라며 제법 여러 선생을 찾아 사사 받았고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글줄깨나 뒤져보았던 나에게는, 가끔씩 그것도 비록 서평이나 써대는 무명의 리뷰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끌쓰기를 즐기기에 숨 쉴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당연하고도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비단 나만의 궁금증은 아니었겠지만. 그래서 였을까? 이 책이 그렇게도 마음에 꽂혔던 이유가.
마침내 책을 손에 넣고, 잃어버린 소중한 장난감을 찾고있는 아이처럼 꽤나 다부진 마음으로 강의에 참석해 보았다.
그녀의 <글쓰기 수업>은 강의라기 보다는 한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인생 스케치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등산을 하다보면 가끔씩은 길을 잘못 들 때가 있다.
이름도 몰랐던(하마터면 그 이름을 영원히 모른 채 지나갔을) 어느 여류 소설가의 수필을 다 읽고 난 지금, 학창시절 상기된 얼굴로 '교생 선생님과의 열애사건'이야기를 들려주던 수학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문득 떠오른다(그분 또한 여성이셨고, 지금 되짚어보아도 유난히 감성적이던 듯하다).
나는 아마도 전혀 뜻하지 않은 강의실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선생님의 말씀에 취해 넋을 놓고 말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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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창시절 문학 선생님들은 앤라모트가 했던 이야기들을 해주진 못했을까? 뭐가 뭔지 감이 잘 안오는 어려운 이야기들로 글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인가보다 라고 주눅이 들곤 했다. 그리고 막연히 작가의 세계를 동경만 하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분들도 글을 써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글을 사랑하고 써보고 절망하고 다시 몰두하여 글을 지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너무나 섬세한 감정의 선으로 작가의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의 사연과 작가의 경험을 가지고서 글쓰기의 길로 편안하고 다정하게 인도한다. 현학적인 글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랑 차 한잔 마시며 "난 이렇게 생각해. 이게 도움이 돼." 라며 다정하고 진솔하게 이야기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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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알까,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의 이러한 기쁨을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은데, 그녀 말처럼 책으로 써서 내게 기쁨을 준 이 작가에게 주고 싶은데, 책을 출판하는 것까지는 못하겠고 고작 이렇게 몇 줄의 독후감으로라도 전해 주고 싶다는 내 간절함을. 그녀의 책이 내게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는지 정말 전해 주고 싶은데. 어렸을 때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었던 작가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이었다. 소설은 뭔지 모를 복잡함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복잡함을 다스릴 힘도 없었고 즐길 능력도 없었다. 소설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그 복잡함이 소설의 구성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알고 나니 내가 소설가가 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다행스러웠다. 이 책을 읽으니 그때 내가 느낀 다행스러움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노라고. 내가 접어들 길은 아니었노라고. 대신에 나는 혹시라도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 작가나, 자유기고가가 될지도 모를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쩌면 내 재주로 한 명도 이끌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부추긴다. 너희 중에 해리포터를 쓴 작가만큼 유명한 작가가 나올 수도 있다고. 소설을 쓰라고 가르치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보다 훨씬 즐겁다. 내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했던 그 복잡함에 도전해 보라고 부추기는 일이 그지없이 즐거운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 있는 작가의 길, 솔직히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아니 못쓴다. 그래서 작가가 못되는 것일 테지만. 정말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나 같은 가벼운 사람 때문에 정작 소설가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맥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다면 엄청난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작가만큼 힘을 주는 선생님을 나는 만난 적이 없다. 책을 다 읽고 덮는 것과 동시에 소설가가 되고자 한 자신이 기특하고 고마워 잠시 동안이나마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 때문에 책을 읽는 초반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글쓰기 수업보다는 소설쓰기 수업 혹은 작가 수업이 내용과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설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 나에게도 충분히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얻어야 할 값진 구절 또한 얼마나 많았던지. 제임스 미치너가 쓴 ‘소설’도 생각났다. 미국의 출판계 사정을 알게 해 준 책. 우리나라의 출판계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이것 역시 이 책의 작가가 내게 덤으로 ‘준’ 선물일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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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좀 과격한 표현인가. 어쩌면 검열에 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앤 라모트의 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것을 bird by bird로 표현했다. '새 한마리씩 한마리씩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그러다보면 짧은 글이 만들어지고 그것은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책으로 태어나, 좋은 글을 써서 남기고 싶어하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고독하고, 어떨 때는 자살까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산다는 것은 고달프거나 지루하다. 그런 운명적인 고독함과 삶의 내재된 치명성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이왕이면 고귀하게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의 하나가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닐까(자신의 글을 활자화하고 출판해 유명해지고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단순한 욕심은 여기서는 생각하지 말자. 라모트 역시 어떻게 출판 에이전트와 관계를 맺고 책을 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썩 달가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글쓰기의 본능은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다른 본능과는 달리 충족시키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인쇄된 종이보다는 모니터가 더 익숙한 현시대에서는 개인 블로그나 싸이월드 등에 공적인 또는 사적인 글들과 사진들을 올림으로써 갈증을 약간씩 달래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글쓰기 강좌가 있고, '그대로 따라만 하면 당신도 할 수 있다'식의 책들이 계속 출판되어 나오는 것이리라.
라모트 역시 본인이 뛰어난 작가 중의 한 명으로써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하고 작문에 대한 이런 책을 내기도 하였다.
책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부터(소재 구하기, 캐릭터와 플롯에 대한 구체적인 작문 방법 설명 등) 진정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글을 쓸 수 있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정하고 유머스러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읽는 중간 중간 좋은 말들은 메모를 하기도 하고, 어쩜 내 생각이랑 이리 같을까라고 자아도취도 하면서 꽤 즐거운 시간을 그녀와 보냈다. 그녀의 말이 내 공감을 사고 머리를 끄덕이게 만든 것은 라모트 자신의 삶이 그가 들려주고 있는 말에 일치하였고, 어떤 거들먹거림이나 그럴듯한 꾸미기로 자신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단순히 글쓰기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삶과 글에 대한 것이 되었다. 당연한 결과일까. 가슴에 남는 좋은 글은 영혼을 담은 글쓰기에서 나오는 것이고, 글에 영혼을 담기 위해서는 진실할 수 밖에 없을테니...
앤 라모트가 말한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 글을 쓰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 어디서 시작을 할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지 막막할 때는 유년시절부터 하나씩 하나씩 되돌아보라.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일단은 끄적거리고 묘사해보라.
-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라. 아무 것도 쓰지 못할 지라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보라.
- 그리고 새 한마리씩 한마리씩 처리하면 된다.
-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내 형편없는 초고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버리면 된다. 어떨 때는 수 페이지에 달하는 '쓰레기'에서 훗날 '명작'의 초석이 될 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문장, 묘사, 캐릭터를 찾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컴퓨터로 글을 쓴다면 종이 낭비와 죄없는 나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전기에너지는 별도).
- 복수는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행위이기는 하지만 글로는 괜찮을 수도 있다(아마도). 복수하기 위해 나를 화나게 하는 인물들이나 사건을 가지고 글을 써도 좋다. 단 조금은 묘사를 바꾸어 명예훼손에 대비해야 하고, 쥐방울 만한 페니스를 달아줘 그들이 따지러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과 삶에 대한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그것을 항상 쓴다면 언젠가는 나도 꽤 괜찮은 글(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무리이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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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
무릇 제목만 보아서는 필시 글을 쓰는 기술이나 이해를 돕는 실전 활용서처럼 그 방법론에 대해 풀어 놓았을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 풀어나가는 방법이 좀 색달라 보인다. 책을 항시 가까이 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저자가 자기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자의든 타의든 글을 쓰는 아버지를 보며 글을 씀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들을 열거하면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한지와 타고난 소질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글 쓰기 자체가 인생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구체적으로 관찰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과 동시에 그 모든 상황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시작으로 하여 저자에게 보다 대담해지고 독창적이 되기를 더불어 자발적으로 실수를 범하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말을 빌어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을 쓰느니,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제임스 터버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곧 삶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과 얼추 맞는 듯 하다. 예전과 달리 글을 쓰는 것이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닌 요즈음은 일반인들도 책을 읽고 기꺼이 서평을 쓰고 호평 내지는 비평도 끌어 안을 수 있으리만큼 글 쓰는 것이 다반사 되어가고 있긴 하나 그 중심에서는 더러 글을 쓰기가 어려울 때도 있거니와 두려움이 알게모르게 벤 적도 있는 이들에게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닌 우리네 생활 속에 진실을 엿보는 것이 글 쓰기 수업의 실제적인 목적이라 말하고 있다. 그 과정은 5단계로 글을 쓰는 이의 사상이나 집필 특징을 기점으로 마지막 글 쓴 이의 영혼이 담겨지는 출간까지를 담백하게 풀어가고 있다. 작가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고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외심을 가지고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움직임이 없이 외계와의 접촉을 단절하는 경우에 집중이 더 잘된다는 그들의 원칙에서 보다 사실적으로,최대한 개방적으로 묘사하게 될 때 우리의 글이 한층 향상될 것이라고 짚어주고 있다. 글을 쓰는 혹은 쓰려는 여러 사상을 지닌 초보자들에게 다소 독특한 형식을 취한 저자의 글에서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는 정신 상태는 뛰어난 창조력을 갖추게 하며 모든 사물은 원하고 바라는데서 생기고 마음에서의 바람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생생하게 현실을 바라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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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글쓰기 '수업'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기에, 나는 이 책을 어떤 기술적인 방법론에 대한 강의와 따끔한 충고 정도로 생각하고는 책 읽기에 앞서 밑줄 칠 연필부터 오른손에 잡고 첫 장을 펼쳐들었다. 기억에 새겨둘 만한 문구나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이 많기를 기대하면서. 물론 연필은 책을 읽는 내내 유효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에 가졌던 알 수 없는 기합(가령 이 수업에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같은 것)이나 딱딱한 자세 같은 건 좀 더 느긋하고 편안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일종의 예비수업 격이라고 볼 수 있는 '들어가기' 파트에서 저자와 어떤 교감을 나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고, 틈만 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앤 라모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독특한 외모를 가졌으며 지독한 말라깽이었던 그녀는 소년들의 짓궂은 놀림과 그로인해 늘 위축돼 있었던 것 같다. 앤이 말하길, 그녀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웃기다고 해서 그 글마저 웃긴 것은 아니라고. 이 말에 깔린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 왠지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면서 딱딱할 것만 같아 보였던 이 '수업'이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앤 라모트'라는,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적어도 내 기준에는) 한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이 책은, 사실 번역하면서 임의로 붙인 제목과 달리 원서의 제목은 'bird by bird'이다. 즉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란 뜻으로 그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30년 전, 당시 10살이었던 나의 오빠는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3개월의 기한을 얻었지만, 오빠는 마감 하루 전날까지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는 부엌 식탁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종이 한 묶음과 연필, 온갖 새 도감들에 둘러싸인 채, 눈앞에 놓인 과제의 거대함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 앉더니, 오빠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이 일화는 단순히 제목에 얽힌 일화로써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이 어떤 분위기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도 전달한다. 책은 시종일관 이런 식의 따뜻한 조언들과 적절한 예시, 비유, 은유로 가득차 있다. 그것이 때로는 붕 뜨고 낯설어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 중 대부분은 문화가 달라서 느낄 수 밖에 없는 거리감이 상당수, 이해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와 닿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물론 (번역이긴 해도) 제목에 버젓이 '수업'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는 방법적인 것들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총 Lesson5까지 진행되는 '수업' 중 Leason 1이 그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Lesson1이 가장 지루했다. 가장 실질적인 것임에도 어쩐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던 매우 원칙적인 방법들이라서 실은 약간의 실망도 했던 것 같다. 물론 마음에 와닿는 비유(예시)와 새겨두어야 할 듯한 문구도 많아서 끊임없이 밑줄을 치긴 했지만.; ...그렇게 Lesson1이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도움말이었다면 Lesson2부터는 마음가짐이라든지 정신적인 어떤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도움말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내 책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미덕은 Lesson2부터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에 왜 '유쾌하고 다정한'이란 수식어가 붙는지 이해가 되었으니까. '앤 라모트'의 '수업'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글쓰기가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고, 문장을 만들어 종이에 활자를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데에 있다. 그녀는 책을 출판하는 일이 누군가를 단박에 유명인으로 만들어주거나, 부유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강조한다. 글쓰기를 통해 그녀와 주위사람들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커다란지를 역설한다. 물론 그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 창작의 고통에 얼마나 시달려야 되는지도 재차 강조하지만 말이다. 특히 글을 쓰려고 하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K-Fucked(라디오 방송국)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자기보다 잘 나가는 타 작가에 대한) 질투의 목소리 부분은 정말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나야 거창하게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개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웹에 소소한 짜투리 글을 올리는 데에도 수만 가지 잡생각들과 싸워야 하고, 웹상에서 잘 쓴 글들을 보면 부러움에 몸부림을 치며 '나도 잘 쓰고 싶다'라는 생각에 끙끙 앓기도 하니, 비록 같은 입장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였다. 이 밖에 창작에 도움을 주는 방법들로 색인 카드(메모)를 활용하라거나 전화와 수다를 통한 정보 검색, 창작모임의 활용, 조잡한 초고를 읽어줄 사람이 있으면 든든하다거나, 편지를 쓰라는 조언, '생각 중단 장애'에서 빠져나오는 방법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때로는 신경질 적이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편집증 환자처럼 구는 저자를 보면서 어떤 면에서는 이질감을 또 어떠면에서는 동질감도 느꼈지만, 그래도 멋드러진 글을 써낼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대한 창작의 한 부분이 되겠단 생각에 역시 창작의 고통은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 마지막 수업에서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영혼 때문'이라는 말을 남기며 글을 맺는 "글쓰기 수업"은 이 책이 글쓰기 수업인 동시에 '앤 라모트'라는 작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느끼게 한다. 처음엔 단순히 글쓰기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걸 얻어보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에 책을 읽었지만, 다 읽고나니 언젠가는 '나도 내 인생을 따뜻한 글들로 풀어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책은 역자 후기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소소하게나마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역자의 아버지 이야기, 앤 라모트의 이야기 만큼이나 따뜻했고, 뭔가 뭉클하게 와 닿는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