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은 당쟁의 전성기이자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숙종,영조,정조 시대를 집중 조명한다. 그 이후의 당쟁은 당쟁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일당 독재가 강화되었다. 그 결과 조선은 망국으로 다가간다. 17세기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조선의 농업생산력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앙법,시비법등의 농업기술 개발로 보완을 하지만 원래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조선의 땅은 연이은 가뭄과 홍수에 치명적인 타격을 당한다. 생산력이 떨어지면서 축소된 잉여를 두고 가진자들의 다툼이 치열해진다. 17세기 이후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권력 투쟁은 이념과 학문의 순수성을 철저히 파괴하며 독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단죄하는 방법은 법도 아니요, 왕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념의 칼날'인 주자의 권위와 명망이었다. 결국 주자는 본의 아니게 사상을 탄압하는 데 동원되었다. 성리학이 보수화 되면서 정통,원조,상하, 유별이라는 차별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부터 남녀의 구분이 강화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차별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정조당시 일시적으로 생산력이 증가되어 탕평이 가능해진다. 증가된 이익으로 인해 다툼이 약간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더 큰 싸움을 위한 소강상태였을 뿐이다. 명분과 의리따위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듯 했다. 영조는 탕평이란 명목아래 정파들의 이해관계를 일정한 선에서 충족시켜 주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의리의 후퇴를 수반했다. 신하들의 일차적 관심은 명분과 의리로다는 이해관계였다. 18세기 후반이 되어 소빙하기가 최극단으로 다다르자 조선은 만성적인 자연재해로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대응 방법은 오직 하나 이익을 소수가 가져가는 것뿐이었다. 정국의 주도권은 안동김씨를 중심으로 하는 외척세력과 소수의 경화벌열에게로 이양되었다. 이른바 외척세도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당쟁이 민주주의라는 과감한 주장을 한다면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뿌리는 투표도 아니고 자유 평등도 아니고 바로 "경제"다. 경제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올라야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조선도 경제가 붕괴되면서 당쟁도 올바른 방법이 아닌 독과점으로 흘러간다. 2014년 대한민국의 경제는 더 이상 성장없는 발전의 시대가 되었다. 계속 경제적 독점과 정치적 독점을 용인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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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蕩平策)에서 탕평은 삼경(三經)의 하나인 상서(尙書)의 홍범구주(洪範九疇)가운데 제5조인 황극설(皇極說)의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에서 나온 말로서 치우치거나 무리짓지 않으면 왕도가 넓어지고, 무리 짓거나 치우치지 않으면 왕도가 공평해진다는 뜻이다.
붕당으로 시비가 진실하지 않고 용인(用人)의 길이 넓지 않으며 기강이 서지 않고 언로가 막히며 염치가 없어졌다고 지적한 조문명의 표현에서 그 폐단이 잘 나타나 있는데, 붕당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위의 다섯 가지 가운데 용인 즉, 당색에 관계없이 유능한 인재의 등용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자연히 해소되므로 탕평은 곧 노소남북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탕평책은 영조와 정조 때에 당쟁을 일삼고, 능력보다는 자신의 무리에 가담한 사람을 우선 천거하는 방식으로 정사가 농단되어 이를 무마하고, 인재를 바르게 중용함으로써, 당쟁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나고, 백성들에게 선정의 결과가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고자 했던 정책이다.
과연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가능한 이야기로 들리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탕평책'이니 '백의종군'이니 하지만 그 실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조나 정조, 그리고 이순신 같이 한 민족의 역사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하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음식에도 문화는 있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젓가락을 쓰지만, 막상 숟가락은 우리나라에서만 쓴다.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국물을 덜 때만 숟가락을 쓴다. 중국과 일본의 것은 국자처럼 생겨 우리 것과 다르다.
또한 밥을 먹을 때도 저들은 밥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퍼먹고, 우리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우리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밥그릇을 들고 먹으면 거지도 아닌데 들고 먹는다고 상스럽다며 야단을 친다. 저들이 만약 밥그릇을 내려놓고 먹으면 개도 아닌데 입을 박고 먹는다고 꾸지람을 한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반드시 국물이 뒤따른다. 국이 빠진 식탁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국물이 있어야만 밥을 먹는다. 이름 하여 탕 문화(湯文化)이다. 탕은 물 수와 양을 합한 글자이다. 양은 뻗쳐오른다는 뜻이다. 음식 재료를 넣고 끓여서 만든 것이 탕(湯)이다.
국을 나타내는 한자로 갱(羹)을 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오래 끓이면 각 재료의 맛이 어우러져 원 재료의 맛과 전혀 다른 깊고 오묘한 맛이 우러난다. 이것으로 보아 탕 문화(湯文化)는 조화(造化)의 문화(文化)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로마서 12장 15절)'고 했다. 곧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과 마음의 교통을 의미 한다.
보여주기 위한 만남은 의미가 없다. 만남에 행복이 있어야 한다. 만나서 악수하고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칙에는 합의하고 상대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났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만남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괴테와 실러의 만남,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만남, 공자(孔子)와 안연(顔淵)의 만남.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영혼의 각성이 일어나고, 정신의 새로움이 생기고, 종교의 혁명이 일어나고, 학문과 예술의 꽃이 피어났다.
조화의 탕(湯)이 담긴 음식에 나의 숟가락과 상대의 숟가락을 같이 담그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다. 새해벽두부터 정치권이 분주하다.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벌써 네 번의 무슨 모임 무슨포럼이라해서 모였다. 탕(湯)속에 피어나는 탕평(蕩平)의 만남이 되는 2014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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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당쟁사 2 이책은 조선시대 당쟁사 1권과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하면 당쟁사가 떠오르는데 매우큰 부분이고 또한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당쟁사만 다루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책을 찾던중 다른 책과 같이 찾은 책이다 사실 당쟁사만 깊게 한번 보고싶었는데 이런 책을 찾아서 매우 기쁘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또한 그중에 조선시대를 더 알고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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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의 '조선시대당쟁사'를 읽지 않고는 조선의 당쟁의 역사를, 나아가 조선시대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조선사나 당쟁을 서술한 책은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접한 대중 역사서 중엔 이 책이 단연 최고다. 실타래 같은 계보나 다난한 사건, 수많은 인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그 이면의 진실까지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성무선생의 시각은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추악한 이면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그의 비판은 현재의 우리를 위한 반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당쟁을 이해해야 조선의 역사가 보인다. 당쟁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 전에 먼저 흐름과 진실에 접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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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다룬 책은 시중에 이미 다양하다. 그중 가장 정확하고, 재미있으며, 대중적인 책으로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유명하다. 그런데 박시백의 책을 읽고도 당쟁사에 대한 갈증은 다 해소되지 않아서 이 책을 읽게되었다. 이 책이 마침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에 참고문헌으로 나와있기도 하고, 저자는 국편위원장을 나온 정통학자이기 때문에, 조선의 당쟁사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어서다. 이 책은 전 권보다 좀 더 두껍다. 당쟁으로만 조선을 훑어봐도 조선사가 거의 다 잡힌다. 그만큼 당쟁은 중요한 테마. 자세히, 또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지만, 생각보다는 난도가 있었다. 쉽게 쓰여진 대중교양서라기엔 조금 어렵다. 그 부분이 매력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온 지 조금 된 이 책을 뒤늦게라도 만나서 다행이라는 마음이다.(요즘은 책이 절판되는 게 제일 안타깝다. 예전보다 쉽게 구할 방법은 많아졌지만, 그래도 절판 전에 사 읽는 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