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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아주 오래지 않은 근래,
지금,
지금이후 미래,
소설속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무심코 말을 뱉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하고 말을 한다기보다 뱉어내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말의 홍수속에서 말의 진정한 의미조차도 잃어가고 있다. 왜 눈과 귀는 둘인데 입은 하나인지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반대로 입이 하나이기에 두배로 말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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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소한 거짓말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사실 어쩌면 맨 처음의 거짓말은 항상 사소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1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2를 하게 되고 또 제3, 4의 거짓말을 하면서 그 양과 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소설의 주인공 ‘옌셔우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차라리 털어놓았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을 습관적으로 혹은 지레 겁을 먹고 거짓말로 얼버무린다. 몇 번의 거짓말은 긴 꼬리를 남기고 결국 그 꼬리는 밟히고 만다. 머리에 폭탄이 터진 듯 아찔하고 불안한 상황. 아, 이제 끝이구나 싶을 때. 바로 거짓말이 모두 탄로 나는 순간.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얼마나 많은 쓸모없는 이야기와 흔적을 남기는가. 굳이 주고받지 않아도 될 문자메시지, 통화 기록, 멀티메일로 오고 간 사진이나 파일들. 그것도 모자라 요즘은 블로그와 트위트에도 올리는 그 모든 말들. 언젠가 우리가 불리한 상황에 그것들이 스스로의 발목을 옥죌지도 모르는데도.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닭털만큼 사소한 몇 마디인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바보가 아니에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요’ 같은. 이러한 닭털보다도 더 하찮은 온갖 말들로 서로를 무장한 사회가 바로 산업화 사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훅 불면 날아가버릴 얘기들로 자신과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소설을 읽으며 반성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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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류전윈 장편소설/ 김태성 옮김/ 황매
몇 년 전 이 작가의 <닭털같은 나날>을 읽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그의 신작이 아니, 대표작이 드디어 나왔다. 역시나! 라는 말이 입에 고인다. 류전윈은 진정한 이야기꾼이여서 그를 통하자 중국의 시공간이 단숨에 꿰뚫어지고 있었다.
세 장 구성의 각각 이야기를 연결하면, 이 책이 단순히 핸드폰의 기능과 정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의 역사 그리고 소통의 여러 지점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이라는 게 느껴진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유명 티비프로 사회자의 거짓말 인생. 그는 말로 벌어먹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농락한다. 그리고 그 말의 전달은 핸드폰이라는 손기계를 통해 오염된다. 단지 핸드폰으로 말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 자체가 소통의 여러 오해를 담은 채 이야기를 확대시킨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의 신랄함을 즐기고자 한다면, 이 책을 꼭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도 소설도, 중국은 일본의 아기자기함과는 다른 거침없는 호방함이 있다. 요즘은 그게 좋다.
"안 해도 될 말을 했어." 그러면서 입을 이죽거렸다. "말 많이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겠나?" 옌셔우이는 페이모의 평소 말투를 흉내 내며 위로하려 했다. "페이라오, 그렇게 말하지 말게. 자네는 말이 많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겐 이 사이에 낀 이물질을 빼 주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평생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걸세." 페이모는 옌셔우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생각대로 탄식을 늘어놓았다. "입에 말을 달고 산다는 것은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만 가지 일(一萬)이 걱정되지 않는데 만일(萬一)이 걱정된단 말일세."
옌셔우이는 위원쥐엔과의 결혼에 대해 크게 만족하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불만족스런 것도 없었다. 찬장에 넣어 둔 말라비틀어진 만두를 배가 고플 때 꺼내 먹으면 대충 허기를 채울 수 있지만 배부를 때 먹으면 마치 플라스틱을 씹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녀의 이미지는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녀가 위원쥐엔이나 뉴스앵커처럼 겉모습은 예쁘지만 속은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즐거워졌다. 그녀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 주는 것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녀는 입만 열었다 하면 철부지 같은 소리를 잔뜩 내뱉었고 한마디 한마디가 그로 하여금 배꼽을 잡고 웃게 했다. 그녀는 마치 <홍루몽>에 나오는 실수 많은 하녀 같았다. 하지만 <홍루몽>의 시녀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완전한 멍청이는 귀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4분의 1쯤만 멍청한 것은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그제야 옌셔우이는 실없는 말들이 얼핏 듣기에는 어이가 없지만 사실 잘 들어 보면 제법 명랑한 면이 있어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옌셔우이는 자신도 결국 평범한 위인에 지나지 않아 섭공호룡(葉公好龍 - 춘추시대에 용을 지독히 좋아하던 섭공이 어느 날 진짜 용을 만나자 크게 놀라 도망쳤다고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농경사회가 좋았던 것 같아." 옌셔우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어째서?" 페이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는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 없었잖아. 그러니 과거 보러 갔다가 몇 년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 어떤 핑계를 대도 그대로 다 먹혔지." 그러고는 탁자 위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지금은......" 옌셔우이가 말을 재촉했다. "지금은 어떤데?" 페이모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워. 너무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옌셔우이도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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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때문에 우리는 말의 광속의 시대에 살고 있고 더이상의 비밀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옌셔우이의 핸드폰이 그렇고 페이모의 핸드폰이 그렇다.
옌셔우이의 이야기가 끝나고 시작되는 3장은 옌 씨가 타지에 있는 큰아들에게 집에 오라는 연락을 하기 위해 2년이 걸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 말을 전할 방도가 없던 1920년대 말의 농촌에서 큰아들이 있는 곳에 가는 사람에게 소식을 부탁하고, 부탁 받은 사람은 또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게 되고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으로 갈수록 진해지는 '말'은, 물론 전할 말 하나는 같지만 그 과정에서 각각의 속속들의 삶이 더해져 드디어 큰아들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부름을 들은 지 2년만에 집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옌셔우이가 사는 핸드폰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다. 옌셔우이의 거짓말과 불륜은 실시간으로 핸드폰과 함께 붙어다닌다. 페이모가 말했다.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그래도 농경사회가 좋았던 것 같아." 옌셔우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어째서?" 페이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는 걸어 다니는 방법 밖에 없었잖아. 그러니 과거 보러 갔다가 몇 년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 어떤 핑계를 대도 그대로 다 먹혔지." 그러고는 탁자 위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지금은......" 옌셔우이가 말을 재촉했다. "지금은 어떤데?" 페이모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워. 너무 가까워. 너무 가까워서 숨을 못 쉬겠어." 옌셔우리도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이 작가의 <닭털 같은 나날>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일본 현대 소설은 미소 된장국 같은데 중국 현대 소설은 그러니까 우리 음식으로 치자면 투박한 뚝배기 같다. 세련된 치장은 없는데, 우묵하고 묵직한 게 사람 냄새가 더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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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시사프로 진실을 말한다. 인기 진행자 옌셔우이는 친구 대학교수 페이모와 같이 프로그램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잇다. 역사와 사회, 중국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로. 부인은 위워쥐엔. 애는 없다. 그러나 인기가 잇다 보니 편집자 가슴이 수박만한 우유에와 오로지 sex만을 탐닉하다 와이프한테 걸렸다. 그리고 이혼통보. 우유에와 계속 sex를 즐기다 강사인 션슈에를 또 꼬셔서 동거에 들어 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국 유학생 김옥선과도 바로 sex에 골인. 그러나 이혼한 와이프가 자기 애를 낳는 다는 예기도 듣고..
나는 유약진이다에서 기막힌 소설을 보여 준 류진운인 데 실망이다. 나머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용은 바람둥이 예기다. 죄책감도 없고. 재미도 별루다. 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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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이 수요를 부른다는 말이 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라서 늘어나는건 당연한 이치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하는것도 경제의 한 원리다. 그전에는 없던 어떤것이 공급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수요가 생긴다는 뜻일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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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전윈의 책을 두번째 읽었다. 처음엔 책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시골 소년이 도시로 와서 도시의 불빛에 어안이 벙벙한 그런, 멍한 느낌 때문이었다.
지난번 읽었던 "고향 하늘아래 노란 꽃"은 시골을 배경으로 한 향토적이고 해학적인 책이었다. 이번엔 현란한 도시의 TV프로 인기 진행자가 주인공이었다. 더구나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서론도 길었다.
한없이 느린 호흡이 계속되고 집중력이 흐려질 쯤, 갑자기 얘기가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느린 호흡이 주기적으로 경련하듯이 파도 위를 넘나들더니 내 안에서 어느덧 책을 덮을 때쯤 고요한 바다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바다는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한없이 조용한, 어쩐지 세상 만사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간직한 듯한 그런 바다였다.
남들은 어떻게 이 책을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난 마음이 저릿했다.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이 직접적인 욕설과 술수와 교활함을 해학으로 위장한 "맹수집단"같은 책이었다면 이 책은 커다란 눈망을로 발톱을 세우고 사람을 노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인간은 문명화되면서 어떻게든 "잘" 살아간다. "핸드폰"은 인간에게 얼마나 개인적인 축복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개개인의 파멸로 표시되지만 사실은 문명화된 인간 군상의 파멸이다. "문명화"에 대한, "도시화"에 대한 "편리함"에 대한 일종의 "경고"같은 소설이다. 이 책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애틋함을 표현할 수 있고 서로를 아낄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해 말이 난무하는 현재, 연락이 난무하는 현재, 거짓이 난무하는 현재, :작가는 그것을 대비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나중에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서 자기 핸드폰을 불 속으로 몰래 던져 버린다. 그는 이렇게 읖조린다. "...모든 것이 너무 가까와서... 두려워.."
나 역시 핸드폰으로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개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것과의 무게를 따지자면.. 이젠 .. 함부러 말을 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번 해 보게 되었다.
호흡이 상당히 느리지만 시골 농군이 말하는 듯한 순박함이 있는 책이다. 인물을 묘사하는 대사와, 등장 인물들의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작가의 생각을 케내면서 소가 여물을 씹듯 음미하며 읽는다면 어느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가 순박한 것은 작가의 의도일 가능성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