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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잘 아는 사람은 현재의 흐름도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역사니 정치니 하는 것이 짐짓 세속의 때가 묻은 일이며 또 그들끼리의 일이거니 하면서 구체적으로 관심갖기를 게을리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나의 역사시간은 왕의 후궁들과 그들 주변의 사람들이 꾸미는 음모의 이야기가 지루한 어조의 역사선생님의 목소리와 어울려 졸음에 범벅이 되어있다. 생각해보면 역사를 더욱 흥미있게 전달하려던 역사선생님의 배려? 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알 수 없는 몇 번째 후궁과 또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아들 등등의 복잡한 계보사이에서 늘 길을 잃고 졸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 두툼한 책을 받았을 때, 이것은 희망 반, 걱정 반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정말 제대로 다시 한번 조선의 역사를 정리하겠구나 싶기도 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찌 알아서 서평을 쓰랴 싶기도 하였던 것이다. 누구나 나라를 세울 때는 이상국가를 꿈꾼다. 조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내세워 자신의 이념 하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열었다. 그가 난세의 고려말에 백성을 구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포부가 큰 인물로 평가되던지 혹은 자신의 욕심을 펼치려했던 인물로 평가되던지 그의 사상은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국가이념으로 자리잡는다. 이렇게 시작한 조선은 책속에서 누누이 말하듯이 군약신강의 나라가 된다. 조선조 초 성종대에 이르기까지는 겨우 ‘왕권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훈구세력과 사림의 왕을 가운데 둔 세력겨루기 속에서 결국 ‘신권국가’가 되고 만다. 왕들은 그들의 세력을 누르려 했지만, 늘 세력을 누른답시고 등용한 다른 편의 신권을 강화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왕은 신하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때로 그들 패거리들에 의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저자는 이러한 군약신강의 분위기가 결국은 부패한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조선이 내부로 부터 분열하여 패망에 이라는 의견을 펼치고 있다. '화석화된 왕도주의 이념이 붕당구도를 통해 '국론분열'과 '폐쇄주의'를 널리 퍼트렸다.'(책 p.9) 유연하지 못한 나무는 꺽이는 법, 조선은 주변정세에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을 잃게 되고 결국 그렇게 무너졌던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왕과 신하의 세력겨루기라는 큰 틀 속에서, 왕권을 키우려 했던 왕과 신권을 키우려했던 신하들을 뽑아 조선사의 맥을 짚어주는 이 책의 방식이 혼돈스럽게 얽혀있던 조선사를 말끔하게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아주 좋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의 조류를 타고 역사서와 사극이 붐을 이루고 있다. '나라가 망하는 첫째 책임은 바로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한 위정자와 이러한 위정자를 묵인한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있다.' 고 한 저자의 말을 다시 새기며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 우리가 쓰는 역사에도 편협화되지 않은 너른 시선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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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한국사에 다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뭐 그리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올 해만해도 공중파에서 역사 드라마 주몽을 시작으로 대조영, 태왕사신기, 그리고 케이블 TV의 정조 암살 미스테리까지 우리의 역사를 다룬 많은 드라마르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서점가에도 고구려사를 비롯하여 유독 조선사를 다룬 많은 책들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이 책들은 각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온 새로운 시각의 역사적 사실을 논하거나 숨겨져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을 파헤쳐 새로이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의 책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이책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600 페이지에 가까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으로 17명의 조선시대 역사적 위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위 인물들을 단순한 열거식이 아닌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두껍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재미있게 나열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개인적으론 붕당정치 부분을 가장 관심있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유인 즉슨 조선시대나 現 세대나 정치를 중심으로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충신들이 있었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해 줬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 책의 제목과는 달리 당 시대에 부국강병을 논하기 보다는 정치적 실권을 잡은 권력에 따라 역사가 움직였다는 점이 책의 제목과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라 느껴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태종,세종,세조,정조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웠던 조선말기의 고종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더불어 읽는 재미까지 솔솔 느끼게해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일부 삽화를 같이 첨부했더라면 쉽게 이해하고 읽는 재미를 더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가져봅니다.
한국사 중 조선시대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 특히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접근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모두모두 추천할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능이나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께는 권하지 않고 싶습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기존의 교과서에서 열거한 냐용들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 일부나마 등장하기 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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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일까. 겨우 역사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이유가 무엇일까.
요즘 텔레비전에서 사극이 한창이다. 태종, 세종도 볼 수 있고 성종, 영조, 정조도 볼 수 있다. 홍길동 퓨전극까지 나오고 있으니 광해군 비슷한 사람도 볼 수 있다. 임금이 무엇이기에 드라마가 온통 임금 이야기들인지. 사람들이 몇 백 년 전의 임금 이야기에 왜 그리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옛날을 보면 오늘이 보이는가, 옛날을 보면 내일을 짐작할 수 있는가. 그 때문일까, 그것을 알기 위한 것일까.
임금도 신하도 결국은 사람. 그리고 그들이 갖고 싶었던 것은 권력이었다. 백성을 위한다는 사명감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권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권력인가. 권력이 무엇이어서 죽고 죽이는가. 우리나라뿐만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고, 나를 반대할 것 같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죽여야 했고,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고 마는 권력의 세상.
그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뒤로 달라졌을 세상. 하기야 그런 상상이 무슨 소용 있으랴마는. 아니다. 그런 상상도 중요하다. 지금도 권력에 대한 다툼은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지금 누가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는가에 따라 바로 내일의 우리 역사가 결정될 것이니까.
잘 알고 있을 텐데,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일 텐데, 왜 우리는 몇 천 년 이어온 잘못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결정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어리석게도 같은 길을 걷는 것일까. 권력이라는 것에 그 모든 것을 감추어버리는 매력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끝없이 되풀이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임금도 딱하고 신하도 딱하고 백성도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각기 저 살 길을 찾는 것이었을 텐데, 내가 살자니 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왕권이니, 신권이니 하는 것 모두 결국 내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 온전한 개인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내 삶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나라의 운명을 책임졌다는 임금이나, 임금을 보필한다는 신하나, 일개 이름없는 백성이나 똑같은 무게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답 없는 물음만 자꾸 생기고 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나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을 이 책을 통해 확인했다. 고등학교 때 그 책을 읽고 지금까지 세조에 대해 가졌던 편견의 실체를 파악했으니. 이래서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보다. 조선 시대의 모든 임금들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좀 우스웠다. 일개 백성의 하나인 내가 임금을 동정하다니.
고마운 책이었다. 조선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해 주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가엽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슨 굴레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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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를 읽고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는 제목부터 독자를 기만한다. 책 어디에도 왕과 신하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경세의 철학이나 치세의 윤리에 대하여 치열한 경연을 벌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왕과 신하가 한자리에 모여 정치적 담론을 나눈 듯이 보이는 책의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500년 사직의 조선을 관통하는 조선의 정치윤리 혹은 정치철학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핀 저자 신동준의 역사평설이라 말하는 것이 더욱 합당할 듯하다. 즉 조선을 이끈 왕들의 정치는 무엇이었으며 정도전을 비롯한 신하들의 정치적 이상과 사상적 기반이 무엇이었는지를 저자는 살핀다. 저자에 의하면, 맹자의 왕도정치를 치세의 이상으로 삼았던 조선은 결코 이씨의 나라는 아니었다. 맹자의 왕도정치란 왕권에 대한 신권의 우위, 혹은 신권의 견제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을 전제로 한 통치철학이었던 바, 조선은 애초부터 ‘군약신강’으로 요약할 수 있는 신하들의 나라였음을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개국과 함께 정도전이 뼈대를 잡고 퇴계 율곡에 의해 정립된 성리학의 왕도이념은 왕권국가가 아닌 신권국가에 가까웠다. 특히 강력한 왕권의 확립으로 세종의 태평세를 물려준 태종이나 그 이상을 이어받은 세조의 치세 이후, 사림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조선은 왕의 나라라기보다는 붕당으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나라였다. 따라서 저자는 왕권의 존재여부와 사림의 등장,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기로 조선 사직 500년을 구분한다. 왕권의 확립을 위해 피의 숙청을 서슴지 않았던 냉혹한 군주 태종의 시대와 그 치세의 직접적인 유산인 세종대의 태평세, 할아버지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세조의 치세, 건국의 기틀이 완비되어 모든 물자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했던 경제적 부흥기인 성종의 시기까지가 그래도 왕권의 존재가 두드러졌던 왕의 조선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왕의 시대는 여기서 끝나고 신하들에 의해 군주가 바뀌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조선의 역사는 질곡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연산군의 폐위를 가져온 중종반정이후, 조선의 정치는 사림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를 맞이한다. 이른바 붕당정치의 출현이다. 중종의 조광조 등용으로 시작된 사림의 정치적 등장은 4대 사화를 거치면서 확고한 정치적 실세를 구축하고 퇴계 율곡을 거치면서 과거의 훈척세력까지 사림을 자처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선조의 적극적인 사림등용은 곧 붕당의 결성을 초래하였고 훈척의 견제마저 사라진 강력한 신권을 거머쥔 사림세력은 이후 감히 왕권까지 좌지우지하는 신하들의 나라로 조선을 통치하기에 이른다. 위정자의 정치적 신념을 쫓아 만든 정치집단이라는 점에서 붕당은 서양의 정당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조선의 붕당은 성리학을 맹신하는 사림세력만이 독점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정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오로지 주자의 해석을 금과옥조로 삼아 이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간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은 사상적으로 오직 성리학만이 존재하는 반신불수의 사회로 차츰 골병들어 갔고, 이는 몇몇 영명한 군주의 혼신을 다한 개혁정치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이념이든 이를 절대시할 경우 반드시 폐쇄적인 당파주의를 초래하기 마련이듯이, 사림세력이 독점한 붕당 구도 아래에서 조선은 신권국가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왜곡된 왕도의 이념 하에서 조선은 국론분열과 폐쇄적인 정국 구도 속에서 외우내환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조선으로 경색되어갔다. 선조의 붕당, 숙종의 환국, 영정조의 탕평의 줄타기에도 불구하고 한 번 추락한 왕권은 다시 설 수 없었다. 신하들은 여전히 파쟁과 붕투로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기에 바빴고 나라와 백성은 그 정쟁의 진창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이른바 조선 말기의 세도정치는 붕당이 만들어낸 최악의 사례이다. 가렴주구 황구첨정 백골징포를 비롯해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세도정치의 폐해는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위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외척에 의한 권력의 농단은 곧 조선 패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세도정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외척 역시 사림의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한 때 사림과 격렬한 각을 세우며 정권을 다투었던 훈구세력과 조선말의 외척세력이 다른 점이다. 대원군이 세도정치의 폐해를 혁파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지났고 골수까지 치민 패망의 병인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500년 사직은 외세의 말굽에 짓밟히며 무너졌다. 500년 사직을 이어간 조선에 대한 질문 저자는 책을 통해 조선 500년의 정치 이념으로 맹자의 왕도정치를, 아니 신권 우위에 바탕을 둔 왕도사상으로서의 성리학을 조선의 통치이념이라 밝히고 있다. 때문에 정도전이 뼈대를 잡은 조선이란 나라는 건국의 기틀부터가 신하들의 이상 실현을 전제로 한 국가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조선은 결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신권이 득세할 수밖에 없는 신하들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처럼 강력한 황권의 존재유무에서 비롯되는 환관정치가 조선에서는 출현할 수 없었고,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이란 것 역시 반정이라기보다는 신권의 구미에 맞는 왕의 옹립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견 탁월한 견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500년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저자의 견해는 옳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현재에 이르러 그 결과적 양상만으로 추론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는 데에는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저자처럼 지극히 성리학이나 역사에 깊은 통찰이 없는 필자로써는 저자의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하기에도 궁색하다. 다만 그렇다면 조선이란 나라가 그 숱한 외환과 내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500년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즉 저자는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은, 그래서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주장하지만 필자는 그럼에도 조선은 500년 사직을 이었다는 점이 궁금한 것이다. 오래 전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푸른역사 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해방공간까지 역사의 전환기에 서서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했던 인물들과 그들의 선택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글이었다. 그 안에서 필자는 오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00년 역적으로 살았던 정도전의 이상이나, 동상이몽에서 깨어났을 때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중종과 조광조, 탁월한 외교력과 실리의 추구를 체현했음에도 보위에서 쫓겨나야했던 광해군, ‘실질’과 ‘의리’에 입각한 유교 본질정치의 두 가지 갈림길에서 협력하고 갈등했던 정조와 김종수, 이상적 개혁론자에서 농민을 발견하면서 현실의 개혁론자로 변해갔던 정약용, 자주냐 타협이냐를 놓고 서로 다른 근대의 길을 모색했던 전봉준과 김옥균 등 그들이야 말로 ‘부국강병을 논한’ 왕과 신하가 아니었을까. 왕권이 미약하였거나 강건하였거나, 군주가 영명하였거나 우유부단하였거나, 율곡처럼 신하가 붕당의 폐해를 지적하며 경계하였거나 오히려 붕당을 지어 권력을 농단하였거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신권국가로서의 조선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 마당에도, 저자 역시 왕권의 상징으로써 왕의 존재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왕권이 신권에 의해 제 역할을 못하던 때조차도 국가의 상징으로써 왕권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다. 왕의 존재, 이것이 조선의 500년 사직을 이끌고 떠받친 근본이었음을 우리는 살필 필요가 있다. 사림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정치가 집단이 그들의 힘에 의한 신권 통치를 행하던 때에도 그것은 왕의 존재를 전제한 정치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500년 사직의 조선에서 역성혁명의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되는 것이다. 즉 비록 신권이 활개 치며 권력을 농단했을지언정, 그것마저 왕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에게 있어 왕은 세상의 중심이었고 그 치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천인이었다. 어떤 붕당정치, 어느 세도정치도 어명을 참칭하지 않고는 권력의 행사란 불가능하였다. 그것이 비록 신하들의 나라, 신하들이 전횡을 일삼은 조선이란 나라가 500년 사직을 이어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또한 때때로 등장한 영명한 군주는 그 백성의 힘을, 보이지 않는 참 권력의 원천에서 치세의 역량을 얻고자 했다. 바로 그것이 조선이 나라로써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성리학의 왕도사상을 맹신한 왜곡된 정치구조 하의 조선은 신하들의 나라였다는 저자의 주장은 반은 옳고 반은 틀렸다. 틀렸다기보다는 왕권의 존재가 거의 없었기에 새로운 세상의 질서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붕당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나라로써의 기능을 상실해 갔다는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저자의 신권국가 주장은 다만 강력한 왕권의 부재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갔고 패망의 길을 재촉한데 대한 역사적 안타까움의 토로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리학에 대한 어리석은 맹신과 양명학이나 서양의 근대문물에 대한 금기 천시는 분명 조선 패망의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성리학 맹신 집단의 권력 독점은 조선이란 나라의 가장 큰 망조였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500년 역사는 이어졌다. 바로 조선에, 조선의 백성들에게 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조선의 왕이여! 그 중 몇몇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 중 여럿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아, 조선의 신하여! 그 중에 누구는 조금 더 많았더라면……. 필자는 그래서 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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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책이 무지 두꺼웠다. 591페이지에 가격은 18000원. 이벤트 당첨된 책이라 부담은 없었지만, 받아본 책의 두께감에서 깜짝 놀랐었다... ^^; 이 책은 조선의 왕과 신하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리더십을 살펴보는 책이다. 책의 서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패망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은 일본의 외부침략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패망의 기본도, 그 궁극적인 책임은 우리 국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주권자인 우리에게 말이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나누어져 있다.
제1장 정도전 - 신권 우위의 국가 건설 꿈꾼 혁명가 제2장 하륜 - 왕권 강화로 조선 5백년의 기틀을 닦다. 제3장 태종 - 피를 흐렬 국가의 기강을 다진 패왕 제4장 세종 - 왕도와 패도를 겸해 부국강병을 이룬 전략가 제5장 세조 - 나라를 위해 역사의 치욕을 감내하다 제6장 성종 - 어머니와 신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제7장 연산군 - 태평세에 풍루를 즐기다 역사의 희생양이 된 불운아 제8장 중종 - 우유부단으로 왕권을 실추하다 제9장 붕당정치 - 신하의 시대를 열어 조선을 혼돈에 빠뜨리다. 제10장 선조 - 붕당정치라는 비극의 씨앗을 심은 주인공 제11장 광해군 - 시대를 잘못 만난 뛰어난 국방 외교가 제12장 인조 - 조선 최악의 어리석은 군주 제13장 숙종 - 당쟁을 부추겨 왕권 유지를 꾀하다 제14장 영조 - 탕평책으로 붕당정치를 종식한 현명한 왕 제15장 정조 - 탁월한 능력을 지닌 비운의 개혁 군주 제16장 세도정치 - 수령들의 가렴주구로 조선 패망을 재촉하다. 제17장 고종 - 현명한 길과 어리석은 길 사이에서 엇갈리는 행보를 거듭하다.
이 책에서 내가 학교때 배웠던 내용도 틈틈히 들어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도 있었지만, 의외로 내가 알고 있던 내용에서 벗어나 반대의 의견이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저자는 그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는 잘못된 부분이라 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지금까지 우리가 이만큼 온것은 그들이 있어서 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옛 조선시대나, 현 시대나, 정치속은 비슷한것 같다. 권력을 탐하기도 하는 반면, 국민을 위해서 노력한 군주가 있기도 하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나에게 역사정보를 심어주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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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가히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가히 흥망의 이치를 알 수 있다
(정관정요-P.128)"
이 책을 우선 한 마디로 정의 한다면, 근래 읽은 책들 중 난이도가 "최상"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부족한 역사 지식이 한 몫을 크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장장 5백년에 달하는 조선의 역사, 그리고 그 중에서도 비교적 통치 기간이 길었던 대표적인 왕들과 신하들 까지 무수한 등장 인물들과 여기에 관련된 낯선 이름의 사건들도 한 몫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엔 Multi Player가 되려는 욕심은 접어야 했다.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음악을 듣는 다거나, 음식을 먹는 다거나 하면 바로 집중력이 떨어져, 촘촘한 행간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정도전을 생각 하고 한참을 읽다 보면, 다시 하륜의 이야기 였고, 하륜의 이야기 인가 하고 무심코 읽다 보면 정도전의 이야기 였다. 그마 만큼 이 책의 작가는 방대한 역사를 한정된 지면을 통해 이야기 하면서, 역사를 거울로 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뒷받침 하는 주요 사건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 내려고 고군분투 한 것이 역력했다.
정도전과 하륜 그리고 조선의 5백년 역사의 대표격인, 태종(3대,이방원), 세종(4대,충녕대군), 세조(7대,수양대군),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왕과 나"의 주인공 성종(9대), 연산군(10대), 중종(11대), 선조(14대), 광해군(15대), 인조(16대), 숙종(19대), 영조(21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이산"의 주인공 정조(22대), 그리고 고종(26대)을 중심으로 그들을 섬기던 신하들 까지 일일이 손 꼽아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등장 인물들만 해도 무수히 많았다.
처음엔 이책이 던져 주는 지식의 방대함에 눌려, 수십편의 논문들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중 다른 책을 집어드는 실례(?)도 가끔 범 했고, 여러번 책을 열다 덮다를 반복 했다. 하지만, 정도전과 하륜 그리고 태종을 지나며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세종에 이르자,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뒤 늦게 느끼기 시작 했다. 책의 중반 부에 다다르자, 이 책 속에 작가가 보물찾기 처럼 곳곳에 숨겨둔 역사의 비밀들과 뒷이야기들을 알아 가는 재미를 찾게 되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왕과 신하가 함께 어우러져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논의"하고, 나라의 장래를 함께 도모 하는 민주적인 화합의 장면을 연상 시켰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이 던져 주는 이상적인 정치 화합 구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조선의 역사를 왕권과 신권이라는 권력 관계의 대립 구도를 통해 논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조선의 유구한 5백년 역사의 패망의 근본 원인을, 미약한 왕권에 반해 신권이 지나 치게 강했던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왜곡된(?) 통치 구도" 및 "성리학을 맹종하는 사림 세력에 의해 유지되었던 붕당구조"에서 찾고 있다. 작가는 조선이 5백년 역사 중 무려 4백년 동안이나 신하들이 통치 권력을 운용한 신권 국가 였음에 주목 하고 이를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언급 하며, 만일 조선이 초기 태종이 완성한 강력한 왕권 국가로 이어져 내려 왔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 다르게 전개 되었을 것 이라는 아쉬움을 피력 하고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란, 나라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고, 군사력을 튼튼하게 한다는 말이다. "나라 경제와 군사력"이라는 큰 틀은, 이 책에서도 언급 되었던 몇몇 왕들의 애민 사상과도 일치 하듯이, 백성을 위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 있어야만 당위성이 성립 될 수 있다. 부국강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이나 위정자들이 일관되게 추진해 왔으며, 이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수 없이 살상하는 짓도 마다 하지 않게 했던 애물단지 같은 정책 이다. 이런 부국강병을 위한 조선의 뺏고 뺏기는 역사의 반복을 통해, 나는 작가의 말 처럼 다시 한 번 부국강병의 정치 이념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목적지는 언제나 백성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옛 부터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국리민복(國利民福=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 보다 더 중요한 이념은 존재 할 수 없으며, 근 1백 여년에 걸친 일제 식민 지배와 조국 분단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는 이제 국민의 힘을 모두 모아 부국강병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 한다. 대선이 코 앞인 요즈음, 작가의 말 처럼, 국민이 직접 위정자들을 뽑는 "선택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선택의 책임을 주권자인 국민들이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조선을 "왕의 나라 대 신하의 나라"의 대립 구도를 통해 살펴 보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렇다면 과연 조선은 만백성(萬百姓)을 위한 나라 였는가?" 하는 의문점을 갖게 한다.
작가의 절실한 외침 처럼, 대한 민국이 오롯이 국민을 위한 부국강병을 꾀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울로 삼고 "지금의 우리의 선택이 주는 책임이 부메랑 처럼 우리 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상기 하고, 보다 멀리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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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구나 책을 읽기 전에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조선의 왕과 신하가 서로 <부국강병>이란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조를 대표해서 왕권이 강했거나 왕권강화를 외치던 국왕(태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영·정조, 고종)과 신권이 강해야 한다고 주창했던 (정도전, 김종직, 조광조, 송시열 등)이 등장해서 [조선의 부국강병책]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물론 책을 펼치는 순간 여지없이 깨진 상상이었지만,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깨진 것은 나의 역사적 고정관념이었고, 조선 멸망의 의문이었다.
이 책을 읽고 깨어질 수밖에 없던 <역사적 고정관념>은 '붕당정치의 긍정적 측면'이었다. 물론 붕당이 국리국략이 아닌 당리당략만을 좇았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도 고려조에선 없었던 <정당정치>를 하는 등 민주적 요소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논조와 근거로 본다면 절대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무릇 정당정치는 서로 상반된 이념과 정책을 내세우며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야 하는데, 조선시대 붕당은 이도저도 <사림>일색이기 때문에 동인이든 서인이든, 북인남인, 노론소론이 죄다 <성리학>이라는 하나의 이념뿐이니 제대로된 <정당정치>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로선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조선 멸망의 의문>을 풀게 되었다. 바로 <성리학>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석화 된 성리학(사상)> 때문이었다.
그동안 난 <성리학>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며 [조선 멸망]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의문에 휩싸였다. 도대체 <성리학>이 부정적이고 폐단적이었다면 어떻게 해서 강성한 조선을 건국하였는지, 또 그렇게 훌륭했다면 왕도정치라는 위대한 사상을 실천했던 위대한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망할 수가 있었는지, 또, 비록 망국했더라도 500년을 풍미했던 지도자들이 새나라를 건국하는데 이렇게 무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에 휩싸여서 좀처럼 풀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성리학>이 아니면 같은 유교라도 이단으로 몰아서 금기시했던 <사상의 화석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왕도정치나 군신공치와 같은 이념이 나쁠 리가 없다. 그러나 시대는 흐르면 변하게 마련이다. 언제나 태평성대일 수는 없다는 것을 정도전 이하 신진사대부들의 후예인 사림들은 망각했던 것이다. 가래로 할 일을 호미가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굴러오는 바위덩어리를 계란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화려한 공예품으로는 바위보다 계란이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무식한 바위를 더 높은 가치로 쳐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이 땅의 <성리학자>들은 모든 해법을 [왕도정치] 하나로 해결하려 하는 우를 범했다. 다시 말해,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군강신약>인지, <군약신강>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유능하고 훌륭한 임금이라면 신하가 임금을 도와 잘 보필하는 것이 중요하고, 임금이 무능하면 신하가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마땅히 신하라면 왕권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일꾼을 자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신진사대부들은 초기부터 왕권을 안정시키기보단 자신들의 입지를 견고히 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고 나라꼴이나 백성들의 헐벗음 따위에는 하등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성리학적 지식만이 옳음을 주장하고, 백성은 물론이려니와 임금마저 이 틀에 길들이려고만 하였다. 이 책의 내용상으로 볼 때, 저자는 한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선 임금은 보위하고, 신하는 깨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굉장히 편협한 주장같지만, 이 책의 가치는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조선역사>를 꼬집고, 재평가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데 있다. 예를 들면, 폭군의 대명사였던 로마황제 <네로>가 사실은 훌륭한 예술가이면서, 정치도 훌륭하게 해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온갖 악평에 시달렸던 것처럼, 조선시대 연산군에 대한 평가도 다시 내려야 한다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론 저자의 주장에 십분 공감한다.
물론 E.H. 카의 말처럼 역사는 그 시대 역사가에 따라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재해석>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받아야 한다는 점을 봤을 때 이 책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정황이 그렇고, 근거가 타당하다면 충분히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해묵은 숙제가 속시원히 풀려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의 진의가 기존의 사학관점과 많이 달라서 고개를 갸우뚱하시거나 책의 두께에 질려 덮으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사의 관점이 꼭 하나일 수는 없다. 카의 말처럼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가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견해로 역사를 서술했다고 <틀린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성리학>이란 단 하나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다시 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부국강병]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딱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 [열린 사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절]로 볼 수도 있으나 작은 것을 희생시켜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지조>나 <신념>을 가장한 [닫힌 사고]보다 훨씬 나은 사고방식이다.
요즘처럼 정치적으론 진보와 보수, 경제적으론 양극화로 세대간 계층간 갈등하고 격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고 방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단 하나의 가치만으로 훌륭한 머슴(?)을 골라낼 수 있을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꼭 먹어 보는 법만 있는 건 아닐텐데 말이다. 역사책 한 권 읽다 별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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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책은 왕과 신하가 부국강병을 논하기라는 제목 보다는 서로 주도권을 잡기위한 왕과 신하간의 투쟁이라고 보는 게 나을 듯한 역사 비평서였다. 작가는 578페이지의 분량 내내 ‘군약신강’이라는 논제를 가지고 조선의 역사를 풀어나간다. 조선이 패망한 주원인을 군약신강 때문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그 점에서 신권을 강조한 정도전을 위시한 조선의 사림을 전반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에 반해 왕권을 주장했던 하륜, 이방원, 세조, 연산군 등은 기존의 부정적인 해석에 비해 다소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권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조선 역사의 시작을 이성계나 이방원이 아닌 정도전과 하륜으로 시작한 점이 타 역사서에 비하면 독특한 구성이다. 신권을 강조하며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로 이끌어나가려 했던 정도전과 강력한 왕권으로 절대왕정을 주장한 하륜을 서로 대비하며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곧이어 이방원과 수양대군의 집권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며 작가의 관점을 뚜렷하게 내보인다. 작가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거나 틀리다거나 할 수는 없다. 기존의 해석에 반한다하여 무조건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관점의 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그 시대를 생각해보니 여지껏 내 머릿속에 형성되어있던 선입견과 작가의 비판적 사고가 충돌하여 복잡해진다.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는 독자의 몫이리라. 혼돈, 작가는 내 머릿속을 혼돈으로 몰고간다.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의 고뇌와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에 대한 재평가,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과 붕당에 가해지는 비평 등은 역사의 진실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낭만 군주 성종, 간교한 군주 중종, 최악의 군주 인조 등을 읽으며 작가가 이야기하는 군주의 통치론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성종은 군왕에게 가장 필요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중종은 연산군과 달리 연산군의 폐위로 야기된 힘의 공백 상태에서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나갈 의지도 없었고 지략도 갖추지 못했다. 중종은 결코 어리석은 임금은 아니었으나 시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시종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신권 세력에게 휘둘린 평범한 임금이었다.’라고 평하며 성종과 중종의 우유부단함을 통치론의 결격사유로 지적한다. 그에 비해 태종, 세종, 세조, 정조 등은 강력한 왕권을 실천한 왕으로 묘사하는데 ‘정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안심하는 소심한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세를 그르쳤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비평을 가하기도 한다. 인물에 대한 평가를 기존의 선입견이 아닌 자신의 지식과 안목으로 장단점을 비교하여 평하는 부분은 매우 본받아야할 좋은 점으로 느껴졌다. 다만, 사실에 대한 근원상을 추론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논리비약하는 부분이 있었다. 논문조의 책이다 보니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중앞에 활자화되는 서책이라는 점에서 그 부분을 좀 더 명쾌한 증거를 제시하며 주장함이 옳지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의 역사를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과 신권을 강화하려는 신하들의 투쟁으로 묘사하는 듯한 느낌을 끝까지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지만,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한번 읽어봐야 할 책으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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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학식이 풍부하고 의리에 투철하고 참신한 기품의 젊은 인재를 많이 충원 함으로써 왕권을 더욱 강화 하고자 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 된 것이 바로 규장각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기존 관료 체제로는 신권이 왕권을 압도하는 기형적인정치 구조를 고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책 485페이지에서 - 조선왕조사를 개괄 적으로 살펴보면서, 왕권의 형태와 치적과 사건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마치 소설처럼 책 한 권에 집약했다. 조선의 500년 역사에서 통치 리더쉽을 갖춘 지도자를 찾아보는 이 책은,왕권 정치와 신권 정치의 특징별 사례를 연대별로 살펴보고 있다. 조선의 통치는, 내우외환에 시달린 격정의 시대로, 조선 패망의 근본 원인을 왕권의 미약에 따른 신권이 강해지는 왜곡된 구조에서 찾게 되는데, 이는 조선의 붕당 정치에서 비롯된 성리학의 폐단에서 왔음을 시사하는 면이 있다.
조선의 붕당은 위정자들의 정치 집단으로, 성리학을 맹신하는 사림 세력의 독점으로 이뤄져, 주자의 성리학을 절대시하는 바람에 결국, 당파주의를 초래하여 조선이 신권 국가로 되는 일에 일조 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의 강화 됐던 왕권이 신권의 강화로 변화되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물 정당정치였던 점이 오늘날에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요인으로,외침과 조국 분단에 의한 오욕의 역사를 씻고 부국강병하는 묘책을 찾아보는 책이다.
저자는 일간신문 정치부 기자 생활과 동양 정치 사상 전문학자로, 한중일 삼국의 정치 사상및 리더쉽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통치 리더쉽을 찾아보기 위하여, 조선 500년 역사의 왕권과 신권의 고찰에서 살펴본 보기 드문 역서이다.
정도전과 하륜의 뛰어난 경세 지략을 살펴 보는 일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 고종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 치적과 변란을 통해서 정치적 변화를 살펴보고, 성군과 폭군에 대한 구별과 충신과 간신의 대표젹 사례를 들어가며, 정치 구도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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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처럼 단일 왕조로 500년 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세계에서도 찿아보기 드문 일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통치체제는 많은 이들에 의해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특히 왕권과 신권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사료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 당시 시대상을 읽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만, 사료들 중에서도 서로 상반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어 오히려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후세 사가들의 펜끝에서 역사가 좌지우지 되기도 한다는 것이 괜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이야기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리학이다. 고려때 유입된 성리학은 오히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독특한 일이 발생한다. 임금에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생활과 사고를 움직이는 것은 성리학이었다. 이런 성리학적 사고와 생각이 현재에도 우리들 생활 곳곳에 남겨져 있는 것을 본다면, 당시 성리학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성리학의 왕도이념, 즉 군왕이 도를 행할때는 군신의 협력하에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하가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논리는 줄곧 조선의 정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이 개국하는 출발점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 된 정도전을 비롯한 혁명파들이 성리학의 왕도이념을 좇아 조선을 왕권보다 신권이 우위에 있는 ‘신권국가’를 만들고자 하였다가 태종이 된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고 만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조선은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왕권국가’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후 등장한 일부 훈구 세력이 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신권으로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여,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신권을 제압하는 ‘신권 국가’로 치닫게 된다. 이는 방계 출신으로 보위에 오른 선조가 자신의 취약한 왕통을 보완하고 왕권을 유지하려고 붕당 간의 갈등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상주의에 치우친 붕당은 백성들의 살림살이 보다는 자신들의 권력투쟁에만 집착하였고, 급기야는 임금의 보위마저 좌지우지한 세도정치에 까지 이르면서 패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대표적인 사례로 헛된 명분론에 얽매여 호란을 자초한 인조반정, 효종의 적자 여부를 둘러싼 현종 때의 예송 논쟁, 거듭된 정비의 폐출로 얼룩진 숙종 때의 환국 정치, 비현실적인 요․순의 고대 성왕을 추종한 영조 때의 완론탕평, 군왕 스스로 신하들과 쟁지를 일삼은 정조 때의 군주도통 등을 언급하면서 왕권과 신권 간의 다툼에서 조선 패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고 한다. 동시에 지은이는 우리가 일반적인 것이라고 받아 들이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인정(仁政)을 베푼 임금으로 기억하고 있는 세종과 명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종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세조와 연산군, 광해군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대한 지은이의 필력은 신선하고 흥미롭기 까지 하다. 그와 같은 조선 붕당의 역사는 현재의 정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거때만 되면 정책은 부재하고 자신들의 이권에 따라 철새처럼 몰려 다니는 정치인들. 언제나 ‘국민’을 앞세우지만 이는 허울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투쟁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지금 현재의 우리 정치현실을 오버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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