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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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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짐은 애절한 슬픔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불신으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이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헤세드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지독한 슬픔의 탄식은 하나님의 부재 때문입니다. 우리가 광야에 있을때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장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의 현장에 서 있다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더 부르짖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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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짐은 애절한 슬픔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불신으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이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헤세드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지독한 슬픔의 탄식은 하나님의 부재 때문입니다.

우리가 광야에 있을때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장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의 현장에 서 있다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더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광야는 하나님의 약속이 시행되고 있는 장소입니다.

애가는 진실한 믿음의 반응입니다. 가식적인 기쁨을 내려놓고 정직한 슬픔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애가는 믿음의 부인이 아니라 가장 친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애가는 하나님앞에서 가장 정직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며, 새로운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부재의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는 인내와 신실한 싸움을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 처절하고 치열한 아픔을 안고 하나님앞에 나와 통곡으로 기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일수 없는 현상에는 엎드림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애가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볼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있는 상태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쁨, 슬픔등의 상태를 가식 없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극도의 절망과 아픔속에서도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슬피 우는 것은 하나님앞에 나아 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에 응답을 하시든, 안하시든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포기 할 수밖에 없었던 욥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을 놓치 않았습니다. 인간으로서 잃을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잃은 욥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시 채워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으리 놓치지 않도록 정직하고, 불굴의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고통의 광야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부재함으로 인해 받은 고통을 대신 할 것을 찾든가? 더 깊은 아픔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친밀함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선택하라고 합니다.

애가는 안전한 하나님의 임재로 돌아갈 다리를 제공합니다. 우리를 온전히 충족시킬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이 우리를 온전히 충족시킵니다. 문제와 고통의 해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에 더 간구해야 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갈망은 광야에서 빚어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증오, 미움, 복수등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애가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합니다. 대적을 증오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사랑을 신뢰하게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할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고통스런 현실들도 예배의 제물로 바쳐져야 합니다. 우리 애가의 반대편에 하나님의 애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애가를 통해 하나님앞에 눈물이 흘려질 때 하나님의 위대한 치유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상한 영혼과 회개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살수 있는 것은 마땅히 바랄수 없는 은혜와 긍휼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그분께 드릴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한 영혼과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죄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오직 정직한 애가 뿐입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무능력의 깨달음으로 우리는 더욱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울수 있게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무너진 마음속에서도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억을 해주신다면 언젠가 회복될수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처절한 애가 뒤에 흘러나오는 찬양은 이전과는 다른 경배입니다. 문제의 해결, 응답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더 간절히 간구애햐 합니다.

 

애가를 담은 삶은 가난하기는커녕 더 풍요롭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 한분만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헤세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만 갈급하며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애가가 축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s***9 2009.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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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잃어버린 슬픔의 노래
"교회가 잃어버린 슬픔의 노래" 내용보기
[들어가는 글]마이클 카드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그가 <엘 샤다이>의 작곡가라는 것도 이 책의 표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저 좋은 작곡가이려니 하는 생각과 그가 '애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책을 썼다는 것에 일종의 흥미를 느꼈다. '애가'는 현대 찬양운동, 보다 정확히는 현대 찬양의 흐름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며 가지고 있는 하나의 오브제이기도 하다.책의 서문을 유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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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마이클 카드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그가 <엘 샤다이>의 작곡가라는 것도 이 책의 표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저 좋은 작곡가이려니 하는 생각과 그가 '애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책을 썼다는 것에 일종의 흥미를 느꼈다. '애가'는 현대 찬양운동, 보다 정확히는 현대 찬양의 흐름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며 가지고 있는 하나의 오브제이기도 하다.

책의 서문을 유진 피터슨이 썼다. 유진 피터슨은 서문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일어났던 한 일을 소개한다. 스물두 살 된 딸아이와의 그들만은 "신성한 슬픔"으로 슬퍼할 때 들어와 팔을 어깨에 얹고 목회자스러운(?) 음성으로 전형적인 위로의 말을 건넨 이의 일, 그리고 그 일 후에 그는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캐런, 나는 누구에게도 저런 실수를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최근, 교회에서 가르친던 한 청년의 죽음으로 위로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위로예배,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천국환송예배라고 부른다. 장례예배라는 말보다는 천국에 가는 이를 기억하며 환송하는 이들의 예배라고 불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름이기도 하다.

비록 설교의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에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인지 항상 조심스럽기만 하다. 혹시나 내가 하는 설교를 듣고 그 가족들 중의 누군가가 '차라리 설교를 하지나 말지..', 하는 마음을 품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니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괜찮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거나 혹은 내 우스꽝스러운 설교로 슬픔을 잠시라도 잊게 될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어쩌나 하는 그런 마음이 항상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애통의 언어, 애가]

애통의 언어, 애가, 그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승리의 언어, 찬양과 대조되는 위치에 종종 놓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은 슬퍼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싸인다. 기쁨의 노래를 해야지, 슬프고 우울한 노래, 가슴을 저미는 노래는 사람을 우울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시대는 더욱 더 승리의 신학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대형교회, 무한한 가능성을 전파하는 설교,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 그 이면에 눈물은 패자의 우울함 이상은 결코 아닌 것이 되어가고 애가는 불신앙의 정죄함과도 상통하게 된다. 기타의 우울한 선율보다는 드럼의 웅장함과 키보드와 베이스의 둔탁함과 워시퍼들의 발랄한 율동과 멋드러진 애드립에 환호하는 것이 현대의 찬양의 일반적 경향이라면 거기에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기에 슬픔을 갖는 것은 나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시편의 상당부분의 애가로 채워진다. 단순한 환호보다 단순한 승리의 노래보다, 저주의 노래, 심판의 노래, 슬픔의 노래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성경의 시가서이고, 그것이 성경기자들의 찬양의 결코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부였다.

마이클 카드는 이러한 애가의 중심에 있는 하나의 질문을 발견하다. 이것은 불평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불평이고, 하나님의 인애(헤세드)에 대한 불평이다. 무소부재하시다면서, 인애하시다면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임재)
.......하나님 날 사랑하신다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 (헤세드)


[예배하기 위해 광야로 부르시는 하나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그들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로 예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단순히 노예생활에서의 해방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드릴 예배의 환경은 바로 "광야"였다. 여기에 우리의 찬양에 대한 관심이 있다. 그들이 드릴 찬양은 바로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그 광야길의 행로에 대한 요구사항이었던 것이다. 충분히 하나님은 그 길에서도 예배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것에 대한 인정, 그것이 바로 worth-ship,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편한 장소에서만 예배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예배받기 위해 백성을 예배하기 편한 곳으로 모시는 하나님이 아니셨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 그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하나님은 예배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측 가능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기에 우리의 찬양은 항상 천편일률적인 환호성으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비록 세상을 떠난 아들을 곧 천국에서 만날 것을 믿는 어머니이지만 자식의 주검앞에서 목놓아 울수 밖에 없으며, 그의 관을 붙잡고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불신앙이 아닌것을 아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모든 감정을 로보트처럼 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욥과 다윗과 예레미야, 그리고 예수님의 슬픔의 노래를 통해 진정한 애가의 의미를 살핀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노래이며, 그것이 우리가 부를 찬양의 노래가 됨을,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됨을 이 책은 다시금 밝혀준다.


[욥과 다윗과 예레미야, 그리고 하나님의 애가]

친구들과의 지루한 신학적 대화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애가를 상실해가는 욥의 모습, 그들과의 논쟁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윗의 애가보다 먼저 부른 하나님의 애가, 그 애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왕을 찾는 것을 슬퍼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를 위해 사랑을 노래하는 하나님의 노래, 그것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애가 외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떠난 백성을 위해 기꺼이 슬픔을 노래하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 마치 아들을 대신해서 죽기를 바라는 왕 다윗의 노래속에 드러난 그 슬픔이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지는 않는가? 예례미야, 그의 눈물은 하나님의 고통과 분노로부터 흘러나왔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차라리 더 이상 선지자노릇하기를 포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까지 표현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슬픔은 찬양으로 흘러나온다. 납득하기 힘든 예레미야의 애가, 그 속에 담긴 찬양, 이것은 슬픔과 그 슬픔을 넘어선 자에게만 가능한 노래이기에 이 노래는 가장 깊은 찬양이 된다.


[애가, 그 슬픔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의 현존]

책의 저자의 친구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하게 될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승리에 취해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이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한 사람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을 통해, 한 개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심지어 그 극한 상황에서의 치유가 아닌 그분의 임재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애가는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에게 목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게 하셨을까? 그것은 알지 못한다. 그 상황에 대한 설명과 답변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 완전한 답이 없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애가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그 슬픔을 예배의 제물로 드리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슬픔은 의미있는 형태의 제물이 된다. 우리의 유일한 해답은 바로 거기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현존이다. 그 임재야말로 우리의 소망이고 모든 의문의 대답이다. 우리는 슬픔을 통해 애가를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소유한 애가는 우리로 하나님을 가장 깊이 있게 만나는 체험을 하게 한다.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우리로 슬프게 두시는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애가를 소유한 자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깊은 예배를 가능하게 할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예배에 애가가 회복되어야 한다. 억지스런 기쁨과 억지스런 승리의 미학에 빠져든 승리주의 신학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자아실현과 마인드컨트롤의 신앙이 아닌,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호소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약함과 뼈아픈 후회를 기꺼이 발산하고 거기에 낮은 곳에 기꺼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거기에 우는자의 예배가 있으며, 거기에 슬픔을 당한 자의 위로가 있다. 거기에 슬픔을 기쁨으로 역전시키는 놀라운 기적이 있으며, 거기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백성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우리의 찬양은 슬픔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슬픔을 통해 우리는 웃음중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교회가 잃어버린 슬픔의 노래
http://jeliclelim.tistory.com/262
JelicleLim(2008.6.10)
e*******7 2008.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눈물의 의미
"눈물의 의미" 내용보기
이 책은 성경의 네 인물 욥, 다윗, 예레미야, 예수님에 슬픔의 의미가 기록되어 있다.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의 책은 처음 읽어 보는데, 제목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신선했다.  내용중엔 성경을 읽을때 비중있게 여기지 않는 부분의 의미를 '아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깊은 통찰력과 표현으로 이 책에 몰두하게끔 만든다. 그 중
"눈물의 의미" 내용보기
이 책은 성경의 네 인물 욥, 다윗, 예레미야, 예수님에 슬픔의 의미가 기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의 책은 처음 읽어 보는데, 제목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신선했다.  

내용중엔 성경을 읽을때 비중있게 여기지 않는 부분의 의미를 '아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는 깊은 통찰력과 표현으로 이 책에 몰두하게끔 만든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거짓 부재(사실 하나님의 고유속성상, 모든 곳에 편재하시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를 통해 어떻게 우리에게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일깨우시는지, 그 신비의 내면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하나님앞에서의 정직한 감정 표출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될것이다
k*****0 2008.11.13. 신고 공감 0 댓글 0